소설리스트

단월검제-74화 (74/141)

#074화.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은 눈만 껌뻑거릴 뿐이었다.

그만큼 장여진 일행의 방문은 갑작스럽고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자, 우리는 옆방에 가 있자.”

병목이 눈치껏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 옆방으로 건너갔다. 그러자 방 안에는 장여진 일행과 상천, 그리고 서기종과 낭호, 녹엽만 남았다.

방 안에 어색한 기류가 돌았다.

누구 하나 먼저 입을 열지 못하는 무거운 분위기를 깬 것은 역시나 비호였다.

“죄송합니다.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그가 거듭 사과를 했다. 상천은 대답 대신 입술을 앙다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갑자기 찾아왔을 때는 뭔가 사연이 있을 터. 자초지종을 설명해 주시오.”

서기종의 말에 이번에는 여소정이 나섰다.

“합산도문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 말에 상천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짧게 겪어보지 못했지만 합산도문에서 받았던 느낌은 무언가가 비집고 들어가기 어려울 정도의 단단함이었다.

그런데 그런 곳에 문제가 생겼다니.

“급히 몸을 빼내 도망쳐 나오기는 했지만 이곳밖에는 마땅히 갈 곳이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당황스러우실 수도 있고 탐탁지 않으실 수도 있겠지만 다른 대안이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여소정은 정작 상천과 서기종 등이 듣고 싶어 하는 ‘합산도문에서 벌어진 일’에 대한 이야기는 아꼈다. 아꼈다기보다는 아직까지 합산도문 내에서 벌어진 일에 대한 정확한 상황 파악이 안 되고 있었기에 자신들도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상천 등도 좀 더 자세히 묻고는 싶었지만 분위기상 그러지 못하고 있었다.

“정확하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알다시피 우리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 처지가 아니오. 감정이 있고 없고를 떠나 객관적인 우리 상황이 그렇다는 뜻이오.”

차갑기만 하던 상천의 분위기는 다소 누그러져 있었다.

“많은 것을 바라는 게 아닙니다. 일단 저희가 이곳에서 당분간 지낼 수 있게 도와주시면 됩니다. 지금 이것저것 너무 혼란스런 상황인지라…….”

여소정의 말에 상천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와서 봤으니 알겠지만 지금 문파 상황이 말이 아니오. 우리도 정신없긴 마찬가지이나 그래도 괜찮다면 그렇게 하시오. 단, 절대 백룡문에 피해가 가는 일은 없도록 해주시오.”

“그런 건 걱정 마세요.”

작은 희망을 느꼈기 때문인지 장여진이 조금은 가벼워진, 하지만 여전히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지금 반월도문의 지원을 받고 있는 입장이오. 수시로 반월도문 사람들이 들락날락거리는 상황에서 그들의 눈에 당신들이 띈다면 우리 입장도 곤란하게 될 것이오. 그것만 조심해 준다면… 한동안 이곳에 머물러도 좋소.”

상천의 말은 사실상 하루 종일 방 안에만 있으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불편은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는 입장이었다.

“걱정 마십시오. 저희 입장에서도 지금은 반월도문의 눈에 띄어서 좋을 것이 없습니다.”

상천의 말에 비호가 대답했다.

“그럼 쉬시오.”

짧은 한마디를 남기고 상천이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별말 없이 앉아 있던 서기종과 낭호, 녹엽 역시 밖으로 나갔다.

남아 있는 장여진 일행은 저마다 안도감 섞인 한숨과 함께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

“하〜 좋구만! 이런 기분이었어.”

장우량이 의자에 기대앉아 집무실 책상 위에 두 다리를 올린 채 기분 좋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제는 전혀 주변 의식을 하지 않는 듯했다.

“살판났군요.”

그때 집무실 문이 열리며 초운학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자 장우량이 슬그머니 책상 위에 올렸던 다리를 내리며 미소를 지었다.

“완전 지상 낙원이 따로 없습니다. 하하!”

장우량의 말에 초운학이 살짝 미소를 짓고는 그의 앞에 섰다.

“그런데 무슨 일입니까?”

“잠시 자리를 좀 비우려고요.”

“어디 다녀오실 생각이십니까?”

장우량의 물음에 초운학이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제가 군사 자리에 앉은 것 때문에 의아해하는 지부장들이 많은 모양이더군요. 몇 곳 돌아다니며 면담 좀 하려 합니다.”

초운학의 대답에 장우량이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직접 다니면서 일을 처리하실 생각이십니까? 굳이 그러지 않으셔도…….”

그의 물음에 초운학이 여전히 미소를 띤 채 대답했다.

“아, 그런 건 아닙니다. 말 그대로 잘 봐주십사 하는 인사나 하러 다니려는 거죠. 후후.”

초운학의 대답에 장우량이 작게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제가 돌아올 때 즈음에 맞춰 준비해 주실 것이 있습니다. 뭔지는 아시겠죠?”

“물론입니다.”

장우량이 미소를 지었다.

***

아침부터 백룡문은 정신이 없었다.

여름이 가까워 오면서 점점 날이 더워지고 있었기 때문에 더워지기 전에 일찍 일을 끝내려는 인부들이 이른 시간부터 찾아왔기 때문이다.

담벼락 공사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기초 공사가 필요없이 기존의 담벼락을 보수하는 것이기 때문에 오래 걸릴 것이 없었다.

다만 백룡문 내 여러 건물의 경우에는 기초 공사부터 새로 시작해야 되는 상황이라 많은 인부들이 달라붙어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인부들이 몰려온 후부터 장여진 일행은 방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상천도 그렇고 자신들이 우려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어찌 보면 단순히 일을 하는 인부들이었지만 반월도문에서 고용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백룡문에서 보고 들은 것이 그들의 귀에 들어갈지도 몰랐다.

그렇기 때문에 화장실을 갈 때를 제외하고는 방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는 그들이었다.

장여진 일행이 안에만 틀어박혀 있긴 했지만 상천의 입장에서는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마치 품 안에 언제 터질지 모를 벽력탄 하나를 품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특히나 아직 어린아이들이 눈치없이 그들을 입에 올리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그런 상천의 마음을 알고 있기에 병목과 공혜, 배동삼 등은 아이들의 입단속을 하는 데 애를 쓰고 있었다.

상천과 장여진 일행의 걱정은 단순한 노파심이 아니었다.

실제로 인부들 사이에는 반월도문의 사주를 받은 사람들이 있었고, 백룡문을 감시하고 보고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아직까지는 시간이 오래되지 않아 보고할 것이 없었지만 몇몇 인부들은 일을 하면서도 날카로운 눈빛을 하고 있었다.

상천은 아직까지 못 느끼고 있는 듯했지만 장여진 일행이 온 후 많이 예민해져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낭호는 인부들 중 몇몇에게서 이상한 것을 느끼고 있었다.

“잠시 얘기 좀 하지.”

낭호가 상천에게 다가가 조용히 말했다. 그러자 의아한 표정을 지은 상천이 그를 따라 한쪽 구석으로 걸어갔다.

“무슨 일이오?”

“인부들에게서 이상한 것 못 느꼈나?”

“인부들에게서?”

낭호의 물음에 상천이 고개를 저으며 왜 그러냐는 표정을 지었다.

“인부들 중에 이상한 느낌을 주는 사람들이 몇 있다.”

“어떤 느낌?”

“감시하는 것 같은 느낌.”

“감시?”

낭호의 말에 상천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신은 한 번도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뭐, 기우일 수도 있겠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

그렇게 말한 낭호가 자리를 피했다.

상천은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낭호의 이야기를 들어서 그런지 상천의 눈에 보이는 모든 인부들이 자신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낭호의 말처럼 인부들 중 누군가가 자신들을 감시하고 반월도문에 보고를 하고 있다면 이는 기분 나쁜 일이라는 생각에 표정도 좋지 않았다.

“왜 그러는가?”

서기종이 슬쩍 상천의 곁에 다가와 물었다. 그러자 상천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낭호가 하는 말이 저들 사이에 우리를 감시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고 합니다.”

“감시?”

서기종도 전혀 생각하지 못했는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저들 중에 감시자가 있다고?”

“그냥 느낌이랍니다.”

상천이 일을 하고 있는 인부들에게 시선을 고정시킨 채 대답했다.

“음…….”

그럴 가능성이 없진 않겠다는 생각에 서기종이 생각을 하며 턱을 매만졌다.

그때,

일을 하던 인부 한 명이 상천과 서기종 쪽을 힐끗 쳐다보다가 상천과 눈이 마주치자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를 본 상천의 눈이 빛났다.

그날 저녁.

식사를 마치고 상천과 서기종, 낭호와 녹엽이 연무장에 모였다.

방 안에서 나눌 대화는 아닌 듯 서로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낭호의 말처럼 그들이 우리를 감시하고 있다면… 이건 확실히 따져 물어야 할 일 아니야?”

녹엽이 살짝 흥분한 듯 평소보다 커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서기종이 검지를 입에 가져가며 조용히 하라는 표시를 했다.

다분히 안에 있는 장여진 일행을 의식한 행동이었다.

“일단은 확인을 해볼 필요가 있겠어.”

“어떻게?”

“떠봐야지. 어차피 저들은 반월도문의 사주를 받은 사람들일 뿐이니 심리 싸움엔 약할 거야.”

“그래서 만약 사실로 밝혀지면?”

“따져야지.”

서기종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그때까지 입을 다물고 있던 상천이 말문을 열었다.

“맞을 겁니다. 아까 저와 눈이 마주치자 당황하던 인부가 한 명 있었습니다.”

“진짜야?”

상천의 말에 녹엽이 황당하다는 듯 물었다. 그에 고개를 끄덕인 상천이 다시 입을 열었다.

“어쨌든 지금은 저들이 있으니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반월도문에 따져 묻고 그들이 그러지 않겠다고 약조를 해도 모를 일이죠. 인부들이 바뀌지 않는 이상. 아무래도 공사가 끝나기 전까지는 이렇게 지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상천의 말에 서기종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만약 사실로 밝혀지면 인부들을 교체해 달라고 해야지. 숨 막혀서 살겠나.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일 년인데.”

서기종의 말에 이번에는 녹엽이 나섰다.

“그래도 일은 하던 사람이 해야지 괜히 또 다른 사람이 오면 시간만 더 지체될 거 아냐. 게다가 새로 오는 사람들이 반월도문의 사주를 받지 않았다고 어떻게 단정 지을 수 있는데?”

“골치 아프군.”

일리있는 녹엽의 말에 서기종이 작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이러나저러나 똑같은 상황이라면 그들에게 우리는 언제 어떻게든 할 수 있는 만만한 곳이 아니라는 인상을 한 번쯤 심어주고 조심하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그러는 게 낫겠지.”

서기종도 뾰족한 수가 없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리고 담벼락 공사가 끝나면 다시 아이들의 수련을 시작하죠. 동삼이 수준은 어떻습니까?”

“만족스러워. 상당히 실력이 늘었어. 자질도 있고 의지도 있고, 노력도 많이 하고.”

“그럼 교관으로 삼아도 되겠습니까?”

“음? 교관으로?”

“예. 예전부터 가지고 있던 생각인데 병목 형과 동삼이의 실력이 가장 좋으니 어느 정도 수준에 올라서면 교관으로 삼아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지금이야 인원이 얼마 안 되지만 나중에는 필요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상천의 말에 서기종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당장이야 서기종이나 낭호, 녹엽이면 충분히 가르칠 수 있는 인원이지만 나중에 문도들을 받아들이고 인원이 늘어나면 힘에 부칠 수 있었다.

“가능하네. 지금 실력으로도. 물론 처음에는 좀 어려워하겠지.”

서기종의 말에 상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처음에 그들을 가르칠 때 많이 어려워하지 않았던가?

“일단은 그렇게 해주십시오.”

“알겠네.”

대화를 끝내고 안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 상천이 서기종을 불러 세웠다.

“서 형, 잠시만…….”

상천이 자신을 불러 세우자 무슨 일이냐는 표정으로 서기종이 남았다.

“무슨 일인가?”

“부탁드릴 것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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