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단월검제-73화 (73/141)

#073화.

백룡문은 분주했다.

아이들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열심히 뛰어놀고 있었다. 병목과 배동삼은 이리저리 움직이며 열심히 무언가를 하고 있었고, 상천과 서기종은 진지한 표정으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담벼락은 금방 다시 올릴 수 있을 겁니다. 다만 건물들은 손볼 곳도 많고 새로 지어야 하는 곳도 많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 같습니다.”

무언가가 그려진 종이를 펼치며 중년인 한 명이 설명을 했다. 그는 반월도문에서 고용한 건축업자로 백룡문의 건물 보수를 책임지고 있었다.

그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상천이 고개를 돌려 서기종을 바라보았다.

“뭐, 상관없지 않나?”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서기종의 물음에 짧게 대답한 상천이 건축업자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진행하지요. 그리고 공사를 하는 동안에는 위험할 수 있으니 아이들 간수를 잘해주십시오. 어지간하면 다른 곳으로 옮겨 가서 생활하는 것이 좋긴 하겠지만 지금 당장은 상황이 여의치 않다고 하니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상천의 대답에 살짝 고개를 숙인 건축업자가 작업 대기 중인 인부들에게로 향했다.

“후, 이렇게 빨리 진행될 줄은 몰랐습니다.”

상천이 작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러자 서기종도 고개를 끄덕였다.

반월도문이 약속을 이렇게 빨리 실행해 옮길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 있다가 갑자기 들이닥친 건축업자들에 잠시 당황한 그들이다.

물론 그전에 옹안지부장이 수하들을 데려와 이곳저곳 둘러보기도 하고 여러 가지 물어보기도 하면서 이것저것 파악을 하고 돌아가긴 했다.

그 후로 나흘 만에 건축업자가 들이닥쳤으니 생각보다 빠른 조치였다.

“오라버니, 나 저잣거리에 좀 다녀올게.”

상천이 서기종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공혜가 다가와 말했다.

“저잣거리? 무슨 일로?”

“먹을 것 좀 준비해야지. 사다 놓은 거로는 턱도 없어.”

“그래? 그럼 같이 가자. 혼자는 못 들고 올 거 아냐.”

상천의 말에 공혜가 고개를 저었다.

“아냐. 어차피 오라버니가 따라와도 힘들어. 가져다 달라고 하면 돼.”

“혼자 가도 괜찮겠어?”

공혜의 대답에 상천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지난번 천변색마의 일로 절대 공혜를 혼자 내보내려 하지 않았다.

정작 공혜는 충격을 다 털어버리고 예전처럼 생활하고 있었지만 상천은 그러지 못하는 듯했다.

“괜찮아. 오라버니는 여기서 일봐야지. 금방 다녀올게.”

그렇게 말한 공혜가 백룡문을 나섰다. 담벼락 공사를 하는 인부들에게 웃으며 인사하는 것은 덤이었다.

“다행이군. 괜찮아 보여서.”

서기종이 저잣거리로 향하는 공혜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에 상천도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죠.”

상천의 목소리에는 진심으로 안도하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저잣거리로 나온 공혜는 콧노래를 부르며 장을 보고 있었다.

그럴싸하게 바뀔 백룡문을 생각하면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남들에게도 ‘여기가 백룡문입니다!’라고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솔직히 그전까지는 문파라는 느낌보다는 그저 ‘내가 사는 집’이라는 느낌이 더 강했다.

하지만 반월도문의 지원을 받아 건물도 새로 올라가고 체계가 잡히게 되면 문파 같은 느낌이 들 것 같았다.

자신도 무공을 익히고자 하는 열의는 없지만 적어도 백룡문의 일원으로서, 그리고 여자로서 해야 할 역할에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이런저런 기분 좋은 생각을 하며 장을 본 공혜는 웃는 낯으로 저잣거리를 떠나 백룡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

저잣거리를 벗어날 즈음,

낯익은 얼굴을 본 공혜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런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그 사람도 공혜를 바라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오랜만이에요.”

그 자리에는 어색하게 미소 짓는 장여진이 서 있었다.

장여진 일행과 공혜는 백룡문으로 가기 전 다루에 들렀다.

식탁에 둘러앉은 그들은 잠시 동안 아무런 말도 없었다. 그런 무거운 분위기를 공혜가 깨뜨렸다.

“어떻게 지내셨어요? 여기까지는 무슨 일로…….”

공혜의 물음에 장여진은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합산도문에서 벌어진 일은 아직까지도 충격이었고, 그것을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스스로가 그것을 현실로 받아들이지 못하니 남들에게 이야기하기에도 어려움이 따랐다.

그런 장여진을 대신해서 여소정이 입을 열었다.

“합산도문에 안 좋은 일이 있었어요. 아가씨께서는 도망쳐 나오신 거고요.”

“네?!”

여소정의 말에 공혜가 깜짝 놀랐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도망쳐 나올 정도면 자신이 상상도 하지 못할 큰일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제야 장여진의 표정이 어두웠던 이유를 알게 된 공혜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일단은 몸을 피할 곳을 찾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어요. 마땅히 생각나는 곳이 백룡문밖에 없어서…….”

“잘하셨어요. 오늘부터 공사를 시작해서 조금 시끄럽고 정신 사납기는 하겠지만요.”

“공사요?”

“네. 어떻게 된 거냐면…….”

여소정의 물음에 공혜가 자초지종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다 들은 여소정이 웃는 낯으로 입을 열었다.

“축하해요. 잘됐네요, 정말.”

“고맙습니다.”

공혜도 환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하지만 장여진 일행 입장에서는 마냥 좋게만 볼 수는 없었다.

갈 곳이 백룡문밖에 없어 찾아오기는 했지만 백룡문이 반월도문의 도움을 받고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었다.

상황이 그렇다면 수시로 반월도문의 사람들이 찾아올 수도 있을 것이고, 그러다가 자칫 자신들이 그들의 눈에 띄기라도 한다면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질 수 있었다.

같은 사도련의 일익이라고는 하지만 합산도문에 안 좋은 일이 벌어졌고 그 때문에 자신들이 도망쳐 왔다는 것을 알게 되면 어떤 식으로든 자신들을 이용하여 이득을 챙기려 할 것이 분명했다.

물론 별일이야 있겠는가마는 당분간은 조용히 숨어 지낼 필요가 있었다.

“자, 여기서 이러지 말고 같이 가요.”

공혜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러자 여소정이 장여진과 다른 일행을 한 번 바라보더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먼저 가세요. 저희는 짐도 챙겨야 하거든요. 오늘 아니면 내일쯤 갈게요.”

“아, 그럼 그렇게 하세요. 미리 가서 언질이라도 해놓을게요.”

“아니요. 그러실 필요 없어요. 들어보니 바쁜 것 같던데 괜히 신경 쓰이게 할 필요는 없어요.”

여소정의 말에 공혜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들과 헤어진 공혜는 서둘러 백룡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공혜가 다루를 나서고 장여진 일행은 난감한 표정을 지은 채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난처하게 됐네요.”

“그러네요. 하필 이런 때에…….”

여소정의 말에 화룡이 난감한 표정과 함께 말했다. 그러자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비호가 입을 열었다.

“차라리 백룡문에 가지 말고 다른 곳에 가 있는 게 어때?”

“어딜 가?”

비호의 말에 화룡이 말 같지도 않은 소리라는 듯 물었다.

“아니, 뭐… 어디든…….”

“돈이라도 많으면 객잔을 빌려서 장기 투숙을 하겠지만 지금은 그것도 아니잖아. 선택의 여지는 없어.”

단호한 화룡의 대답에 비호가 입을 꾹 다물었다.

“어쩔 수 없잖아요. 지금으로서는 대안이 없으니. 해 지면 그리로 출발하는 게…….”

화룡의 말에 여소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처럼 지금으로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백룡문에 자신들이 있는 것을 반월도문에서 알게 되어도 당장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어쩌면 지금 이곳에 자신들이 있는 것도 이미 반월도문에서 알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일단 객잔으로 돌아갑시다, 그럼.”

어차피 결론은 백룡문으로 가는 것이니 다루에 앉아서 계속 얘기하고 있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 때문인지 비호가 남은 차를 단박에 들이켜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른 사람들 역시 뒤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전히 장여진의 표정은 많이 어두웠다.

담벼락 보수를 하던 인부들은 유시 초가 되어서야 일을 마치고 돌아갔다. 중간에 공혜가 만든 맛있는 새참을 먹어서 그런지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그들의 표정은 밝았다.

모두가 돌아가고 조용해진 시간.

백룡문을 찾은 다른 이가 있었다.

방에 있다가 잠시 바람을 쐬기 위해 밖으로 나오던 상천은 때마침 들리는 문밖의 인기척에 정문을 향해 다가갔다.

딱히 찾아올 손님이 없던 까닭에 상천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누구십니까?”

정문 앞에 선 상천이 밖을 향해 물었다. 하지만 분명 밖에 누군가가 있는데도 아무런 대답이 들리지 않았다.

그러자 상천이 다시 한 번 물었다.

“누구십니까?”

이어진 상천의 물음에도 대답이 없었다. 그에 그가 정문을 열려고 했다.

그때, 밖에서 다시는 듣지 않을 줄 알았던 목소리가 들렸다.

“저예요.”

상천이 멈칫했다.

순식간에 딱딱하게 굳은 그의 표정에서는 감정을 읽을 수 없었다.

“더 이상 볼일 없소.”

“…….”

상천의 말에 장여진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도대체 우리가 무슨 인연인지는 모르겠지만 더 이상 서로의 인생에 간섭하지 맙시다. 그게 서로가 속 편하지 않소?”

“…세요.”

상천의 말에 장여진이 무어라 말을 했지만 목소리가 작아 제대로 듣지 못했다.

“뭐라고 했소?”

“도와주세요.”

장여진의 대답에 상천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도대체 그녀가 내게 도움을 청할 일이 무엇이 있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은 없을 것 같소. 그러니 돌아가시오.”

그렇게 말한 상천이 몸을 돌렸다.

그러자 등 뒤에서 정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고, 상천은 다시 몸을 돌렸다.

몸을 돌린 상천의 눈에 안으로 들어서는 비호의 모습이 보였다.

“무슨 짓이오?”

다짜고짜 허락도 받지 않고 안으로 밀고 들어오는 비호를 보며 상천이 사나운 표정으로 물었다. 하지만 비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상천 앞에 서서 포권을 했다.

“비호라고 합니다. 문주님께는 죄송하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목숨이 달린 일입니다.”

“…….”

정중하면서도 단호한 비호의 말에 상천은 말문이 막혔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목숨이 달린 일이라는 말 때문이었다.

상천의 시선이 비호의 뒤쪽에 서 있는 장여진에게 닿았다.

힘이 없고 어딘가 불안정해 보이는 모습.

비호의 말처럼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무언가 큰일이 있는 듯했다.

“후우…….”

상천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도대체 장여진과 무슨 깊은 인연이기에 이렇게 자꾸 얽히게 되는지 답답하기만 했다.

“일단 들어오시오.”

“감사합니다!”

비호가 환한 표정으로 포권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상천은 그 인사를 받지 않고 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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