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2화.
장우량은 여전히 집무실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있던 갈위는 목과 몸이 분리된 채 싸늘한 시체로 변해 있었다.
쾅!
그때 집무실의 문이 거칠게 열렸다.
그리고 잔뜩 화가 난 장세진과 차분한 표정의 장무진이 안으로 들어섰다.
둘 다 딱 봐도 심각한 부상을 입었음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듯했다.
“젠장! 그 빌어먹을 늙은이! 으아아!”
장세진이 난동을 부렸다. 그에 장우량이 인상을 찌푸리며 장무진을 바라보았다.
“장여진을 놓쳤습니다. 비밀통로로 빠져나간 모양입니다.”
“그래서 저러는 건가?”
장우량의 물음에 장무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
장우량이 낮은 목소리로 딱 한마디 내뱉자 놀랍게도 방금 전까지 난동을 부리던 장세진이 딱 그만두고 차분해졌다.
“진작 그래야지.”
“말씀만 하시면 뒤쫓겠습니다.”
장무진의 말에 장우량이 고개를 저었다. 그것을 본 장세진이 눈을 부릅떴다.
“쫓지 말란 말입니까? 예?”
“그래.”
“제 아랫도리는 벌써 그년 생각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단 말입니다!”
장세진의 발악에 장우량이 싸늘한 눈초리로 그를 노려보았다. 그러자 장세진의 입이 꾹 다물어졌다.
“어차피 나중에라도 잡을 수 있다. 갈 곳이야 뻔하니. 물론 그곳이 광서성이 아닌 다른 곳이라 지금 당장 쫓을 수 없을 뿐이다. 대계가 본격적으로 움직이면 그때 잡으면 된다.”
장우량의 말에 장세진이 불만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앉아 있었다.
그런 장세진을 가볍게 비웃어준 장무진이 주검이 되어 쓰러져 있는 갈위를 가리키며 물었다.
“뭡니까?”
“내 제안을 거절하기에 황천길로 보내줬지. 모처럼 인심 한 번 쓰려고 했더니만 죽음을 자초하더군.”
장우량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장무진이 안에 들어와 있는 수하 한 명에게 고갯짓을 했다.
그러자 그가 갈위의 시신을 끌고 밖으로 나갔다.
“아〜 이거 피비린내 장난 아니구만.”
장세진이 코를 막으며 중얼거렸다. 그러자 장우량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말했다.
“네놈 몸에서 나는 비린내도 장난 아니니 그런 소리 마라.”
“예.”
장세진이 입을 다물자 장우량이 장무진을 보며 물었다.
“신건은? 뭐, 너희가 여기 있다는 건 그 늙은이도 처리했다는 거겠지만.”
“힘들었습니다.”
“시간이 좀 오래 걸리긴 했군.”
그러자 장세진이 질렸다는 듯 말했다.
“그 늙은이 팔십 넘었다더니 아직 팔팔하더만요! 아마 세상 천지에 살아 있는 팔십 넘은 노친네 중에 제일 팔팔했을 거요. 하마터면 골로 갈 뻔했네.”
장세진이 지혈을 시켜놓은 자신의 상처들을 바라보며 너스레를 떨었다.
“얼른 가서 치료들부터 해. 앞으로 할 일이 많아.”
“알겠습니다.”
“그러지요!”
장우량의 말에 장무진과 장세진이 짧게 대답하고는 집무실을 나섰다. 그러자 장우량이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자, 이제 그럼 일차 관문은 모두 끝난 건가? 후후.”
***
비호의 등에 업혀 멍하니 남녕으로 향하던 장여진의 눈에 밤하늘이 보였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에 보름달이 떠 있었고, 그 주변에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때, 그 많은 별들 중 하나가 떨어졌다.
그것을 본 장여진은 지금까지 참아왔던 눈물을 쏟았다.
네 사람은 동이 틀 무렵이 되어서야 남녕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남녕에 들어선 후부터 네 사람은 조금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비밀통로로 빠져나온 것이 꽤 오래전인데 아직까지 쫓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자신들이 사라졌다는 것을 모르거나 쫓을 생각이 없거나 둘 중 하나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물론 전자는 거의 가능성이 없다고 보고 후자 쪽에 무게를 두고 있는 상황이었다.
남녕에 도착하고 그들은 일부러 가장 번화한 곳으로 향했다. 지금이야 동이 틀 무렵이라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지만 해가 완전히 뜨고 나면 인적이 많아질 것이고 그렇다면 몸을 숨기기 좋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물론 남녕지부로 가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지금은 모든 사람을 의심해야만 했다.
이번 일이 본산 내부에서부터 번진 일인지, 아니면 외부에서부터 번져 들어온 일인지 알 수가 없는 상황에서 남녕지부를 찾아가는 것은 자칫 제 발로 호랑이 굴에 걸어 들어가는 것이 될 수 있었다.
그 때문에 네 사람은 일단 객잔에 방을 잡았다.
신건이 준 노잣돈이 있기는 했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기에 최대한 돈을 아껴야 해서 방을 한 개만 잡았다.
최대 두 명이 사용하는 방에 네 사람이 들어가자 비좁았다. 게다가 비호의 경우에는 남자였기에 더 난감한 상황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일단 상태가 좋지 않은 장여진을 침상에 눕히고 나머지 세 사람이 머리를 맞대었다.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비호가 여소정에게 물었다. 하지만 여소정이라고 딱히 길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일단 지금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너무 정신이 없어서…….”
장여진을 생각해서 최대한 정신을 바짝 차리려고 노력은 했지만 그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게다가 본산이 저렇게 되었다는 것은 예전에 함께 했던 남화대 대원들도 변고를 당했다는 뜻과 같았기 때문에 더했다.
“일단은 행선지부터 정해야 할 것 같네요. 그래야 한시라도 빨리 광서성을 빠져나가지요.”
화룡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딱히 생각나는 행선지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차에 여소정의 뇌리에 스친 곳이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을 생각하면 그곳으로 가야 할지 고민이 되는 곳이기도 했다.
“생각나는 곳이 한 곳 있기는 한데…….”
여소정의 말에 비호와 화룡이 어디냐는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여소정은 쉽게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그녀가 생각한 곳은 다름 아닌 백룡문이기 때문이었다.
지난번 방문했을 때를 떠올리면 다시는 갈 수 없는 곳이었다.
돈을 받는 대신 깔끔하게 끝내고 다시는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던 상천의 차가운 말투가 아직도 귓전에 생생했다.
그러니 그곳에 가기가 망설여졌다.
물론 지금 상황이 상황인만큼 무작정 찾아가면 받아주기야 하겠지만 오래 있을 만한 곳이 못 되었다.
“어딘데요?”
“백룡문이라는 곳입니다.”
“백룡문이요? 거긴 어디죠?”
“귀주성에 있습니다. 무작정 찾아가면 상황이 상황인만큼 받아주기는 하겠지만 오래 있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여소정의 말에 화룡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사정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그리로 방향을 잡는 것이 좋겠습니다. 현재로선 그곳 말고 딱히 갈 곳이 없지 않습니까?”
비호의 말이 옳았다.
그럼에도 선뜻 그러자고 하지 못하는 것은 그날 상천과 서기종이 보였던 차가움 때문이었다.
반대로 그럼에도 그곳으로 갈까 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은 마지막에 웃으며 배웅하던 공혜가 했던 말 때문이었다.
‘또 오세요’라는 짧은 한마디가 조금이나마 용기를 낼 수 있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여소정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일단 백룡문으로 가는 것으로 하지요.”
“좋습니다. 그리고 이동할 때는 마차로 이동하려고 합니다. 말 네 필을 구하는 것보다는 마차가 싸기도 하고 아가씨의 상태가 별로 좋지 않으니…….”
미리 생각해 둔 듯 비호가 여소정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말했다.
일단 행선지와 이동 수단이 정해지고 나니 조금은 마음이 놓이는 그들이었다.
좁은 방에서였지만 그래도 피곤한 몸을 쉬었다.
잠깐 잠이 들었다가 한 시진 정도 후에 깨어난 여소정은 곧장 장여진의 상태부터 살폈다.
다행히 장여진은 잠이 들어 아직까지 깨어나지 않고 있었다.
많이 울었는지 눈을 감고 있음에도 부은 것이 티가 났고, 눈가에 눈물 자국이 얼룩져 있었다. 게다가 자는 얼굴에서도 근심, 걱정이 드러나는 것만 같았다.
안쓰러운 마음에 여소정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힘내세요, 아가씨.”
여소정이 그렇게 중얼거렸다.
반 시진 후, 화룡과 비호도 잠에서 깨어났다.
거창하게 씻을 상황은 안 되는지라 대충 지저분한 것들만 정리를 한 그들은 다시 한자리에 모여 앉았다.
“남녕지부에 갈 수만 있으면 좋으련만.”
비호가 신세 한탄하듯 중얼거렸다. 하지만 화룡이 단호하게 얘기했다.
“위험해.”
“그걸 누가 모르나? 아니까 이런 말도 하는 거지. 위험하지 않으면 이런 말 할 시간에 진작 갔어.”
비호와 화룡이 티격태격했다. 그러는 사이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여소정이 입을 열었다.
“아실지 모르겠지만 남녕지부장님은 목숨을 내놨으면 내놨지 저들과 한 배를 타실 분이 아닙니다. 그러니 안전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여소정의 말에 화룡은 이번에도 고개를 저었다.
“살아 있다고 해도 진짜 남녕지부장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에요. 본산에서의 일만 봐도 그렇잖아요? 게다가 설령 그가 진짜라고 해도 남녕지부에 있는 사람들 중 누군가가 변절자일 수도 있고요. 위험할 가능성이 더 높아요.”
“그래도 확인해 볼 필요는 있지 않겠습니까?”
“저도 그러고 싶지만… 지금은 시간이 없어요. 수석장로님께서도 광서성을 벗어나기 전까지는 안심하지 말라고 하셨잖아요? 원래 계획대로 곧장 백룡문으로 가는 게 나을 것 같아요.”
화룡의 말에 비호와 여소정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아쉽지만 지금으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
“그럼 난 나가서 마차를 좀 구해보지.”
“혹시 모르니 조심해.”
“걱정 마.”
비호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침상에서는 여전히 장여진이 깊은 잠에 빠져들어 있었다.
한 식경 후.
밖에 나갔던 비호가 마차를 구해 돌아왔다. 그에 세 사람은 장여진이 깨어나면 곧바로 떠날 수 있도록 채비를 했다.
챙길 것이야 거의 없었지만 적어도 백룡문까지 가는 동안 먹고 마실 것 정도는 준비해 두어야 했다.
이것저것 준비를 다 끝내고 장여진이 깨어나기를 기다리던 세 사람은 그로부터 한 시진 후 객잔을 떠날 수 있었다.
***
이른 아침 합산은 고요했다.
전날 피바람이 몰아쳤던 그곳인가 싶을 정도로 너무나 고요했다.
간혹 들리는 소리는 나뭇잎 소리나 산새 지저귀는 소리가 전부였다.
잠시 후.
합산의 고요함을 깨는 소리가 저 멀리 아래에서부터 들려왔다.
말발굽 소리와 일사불란한 발걸음 소리가 그것이었다. 소리만 들어도 상당히 많은 인원이 합산을 오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합산도문의 정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그리고 예전에 질풍대와 뇌격대가 운남에서 귀환할 때처럼 합산도문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대로변에 도열해 있었다.
그때보다 더 각을 잡고 서서 움직이지 않는 모습이었다.
무표정으로 오로지 정면만을 응시하는 그들의 모습을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그리고 그들 사이로 장우량과 장무진, 장세진이 나란히 서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기를 얼마 후.
합산의 고요함을 깨뜨렸던 말발굽 소리와 발걸음 소리가 점차 가까워지더니 이내 정문 안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얼핏 스무 명 정도는 말을 타고 들어오고 있었고, 그 뒤로 족히 백 명은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걸어서 들어오고 있었다.
가장 선두에 있는 말이 정문에 들어서서는 천천히 속도를 줄이더니 얼마 가지 않아 멈춰 섰다.
말이 멈춰 서고 그 위에 타고 있던 사람이 사뿐히 말에서 내려왔다.
그자는 다름 아닌 초운학이었다.
초운학은 밝은 미소를 지은 채 주변을 훑어보며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장우량과 장무진, 장세진의 앞에 섰다.
“오셨습니까?”
장우량이 허리를 굽혔다. 그리고 양옆에 서 있는 장무진과 장세진 역시 허리를 굽혔다. 다만 전날 입은 상처들 때문에 가볍게 굽히는 정도에 그쳤다.
“수고했네.”
“아닙니다. 계획이 철두철미했으니 성공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습니다.”
장우량의 말에 초운학이 가볍게 그의 어깨를 툭툭 쳐주고는 장무진과 장세진을 바라보았다.
“상처들을 보니 신건이 만만치 않았던 모양이군.”
“쉽지 않았습니다.”
초운학의 물음에 장무진이 공손히 대답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장세진이 나섰다.
“하마터면 진짜 골로 갈 뻔했습니다. 죽을 때 다 된 늙은이가 무슨 힘이 그렇게 센지. 어후… 말도 마십시오.”
장세진의 말에 초운학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가 계산을 잘못했군. 아무리 늙었다지만 천하일도라 불리던 사람인데. 미안하네.”
“어이구, 아닙니다! 어쨌든 잘 끝났으니 된 거 아니겠습니까? 하하!”
“그렇지. 하하하!”
초운학이 기분 좋게 웃었다. 그리고는 다시 한 번 합산도문 내 풍경을 바라보다가 물었다.
“장여진은?”
“놓쳤습니다. 죄송합니다.”
장우량의 말에 초운학이 아쉬워하며 말했다.
“아쉽군. 곧 다시 볼 거라고 했는데 다음으로 미뤄야겠군. 혹여 거칠게 대했다거나 몹쓸 짓을 하지는 않았겠지?”
초운학이 마지막 말을 하며 장세진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장세진이 자신도 모르게 중요 부위를 가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하하하!”
그런 장세진의 모습에 옆에 서 있던 장무진이 한심스럽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 미소를 지어 보인 초운학이 다시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합산도문이 우리 것이 되었다지만 끝난 게 아니다. 이제 시작일 뿐. 앞으로는 세력 정리에 들어간다. 일단 지부 정리를 끝내고 그 외 나머지 문파들 정리에 들어갈 것이다. 거기까지가 대계의 시작을 위한 준비 단계이다. 운남에 갔던 일은 제대로 처리했겠지?”
“물론입니다.”
장무진의 대답에 흡족한 표정을 지은 초운학이 말했다.
“오늘 하루 정도는 마음껏 쉬는 것도 좋겠지.”
“알겠습니다. 그리 전하겠습니다.”
장우량이 다시 한 번 허리를 굽히며 대답했다. 그런 그를 지나쳐 가며 초운학이 중얼거렸다.
“이제 우리의 첫 번째 지부가 생긴 건가?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