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단월검제-70화 (70/141)

#070화.

장세진은 음흉한 미소를 지은 채 자신의 처소에 있었다.

이제 곧 장여진과 저녁을 먹기로 한 시간. 장세진의 입가에 번진 미소가 더욱 진해지고 있었다.

“이제 가볼까? 맛있는 거 먹으러?”

그렇게 중얼거린 장세진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자신의 처소를 나섰다.

장여진의 처소에 도착한 장세진은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밖에서 아무리 기척을 해봐도 답이 없어 문을 열어보았지만 장여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디 갔지? 오라버니와 약속해 놓고 퇴짜를 놓는 건가?”

의아해하며 문을 닫고 나온 장세진은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장무진을 보았다.

“여기서 뭐하는 거지?”

“몰라도 되오.”

형제 사이의 대화이건만 두 사람의 말투가 이상했다. 마치 남을 대하는 듯했다.

“장여진은 여기 없네.”

“무슨 소리요?”

장무진의 말에 장세진이 짐짓 모른 척 물었다.

“아까 수석장로에게 갔다더군.”

“수석장로가?”

“그 늙은이가 뭔가 눈치를 챈 것이겠지.”

장무진의 대답에 장세진이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리고는 화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놈의 늙은이가…….”

그렇게 말하며 장세진이 곧장 신건의 거처로 가려 하자 장무진이 그를 붙잡았다.

“잊었는가? 오늘 밤 무얼 해야 하는지.”

“알고 있소.”

장세진이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어차피 장로들에게 손을 쓰고 나면 그 늙은이에게도 가야 하니 조금만 참으시게.”

“후우…….”

장무진의 말에 장세진이 깊게 한숨을 쉬었다.

“그 늙은이는 내가 맡을 테니 손대지 마시오.”

그렇게 말한 장세진이 장무진을 지나쳤다. 그런 그를 힐끗 본 장무진은 조소를 머금었다.

***

장우량은 집무실에서 두 다리를 책상 위에 올린 채 삐딱하게 앉아 있었다. 의자에 등을 기댄 채 콧노래까지 흥얼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불안한 표정의 갈위가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고, 그 주변에는 검은 무복을 입은 사내 세 명이 날이 시퍼렇게 선 도를 겨누고 서 있었다.

연신 주변으로 눈을 굴리며 불안에 떨고 있는 갈위에게 장우량이 입을 열었다.

“왜 그러시는가, 군사? 자네답지 않게.”

“왜, 왜 이러십니까, 문주님?”

갈위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장우량이 섬뜩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가 뭘?”

“저, 전 아무런 잘못도 없습니다!”

“하하하!”

갈위의 말에 장우량이 파안대소를 터뜨렸다. 한참을 그렇게 웃던 그가 웃음을 멈추고는 갈위를 바라보았다.

“내가 언제 군사에게 죄 지었다고 했나? 하하하! 군사에게 사람 웃기는 재주도 있는 줄 몰랐는데.”

장우량의 말에 갈위는 시종일관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 잘난 머리로 한 번 생각해 보시구려. 지금 상황이 무슨 상황인지. 설마 아직 눈치 못 챈 건 아니겠지?”

“왜 이러십니까, 문주님!”

갈위가 답답한 듯 소리쳤다. 하지만 장우량은 대답해 줄 생각이 없는 듯했다.

댕〜 댕〜 댕〜 댕〜 댕〜 댕〜 댕〜

그때, 술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그 소리를 듣고 있던 장우량이 입을 열었다.

“내가 군사에게 질문 하나 하겠소. 자! 지금 이 시간 삼 장로인 담리백(潭里佰)의 처소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 것 같소?”

그의 질문에 갈위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담리백은 외골수인 사람이었다.

정치 같은 것은 잘 모르고 오직 무공과 문파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무공 수련을 할 때는 무엇 하나라도 될 때까지 무식하게 수련만 하는 사람이었고, 문파에 해가 되는 일이라고 생각되면 결사반대를 하는 사람이었다.

융통성이 없어 답답하다는 소리를 많이 듣긴 했지만, 문파에 대한 충성심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높다고 자부하는 사람이었다.

댕〜 댕〜 댕〜 댕〜 댕〜 댕〜 댕〜

술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들리자 담리백은 읽던 책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항상 이 시간이면 달빛을 벗 삼아 무공 수련을 하는 그였다.

도를 들고 처소를 나서려는데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찾아올 사람이 없기에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장무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삼장로님, 안에 계십니까?”

“아니, 질풍대주가 무슨 일인가?”

장무진의 목소리에 담리백은 아무런 의심 없이 문을 열었다. 역시 그 앞에는 장무진이 웃는 낯으로 서 있었다.

“무공 수련을 하러 가려던 참인데. 무슨 일인가?”

담리백의 물음에 웃고 있던 장무진이 순식간에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당신 죽이러 왔지.”

쒜에엑!

서걱!

“으헉!”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장무진의 도가 눈 깜짝할 사이에 도를 들고 있던 담리백의 오른팔을 어깨부터 잘라 버렸다.

피가 분수처럼 쏟아졌고, 지독한 통증과 정신적 충격에 담리백은 휘청거리며 뒤로 쓰러졌다.

쓰러져 있는 담리백에게 천천히 걸어간 장무진이 도를 그의 코끝에 겨눴다.

“너, 넌… 넌 누구냐!”

담리백이 창백해진 얼굴에 식은땀까지 흘리며 겨우 물었다. 계속해서 쏟아지는 피와 지독한 통증에 점점 정신이 아득해지고 있었다.

“나? 누구긴. 당신 잡으러 온 장무진이지.”

“아니, 넌 장무진이 아니야! 도대체 정체가…….”

담리백이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어가자 장무진이 인상을 찌푸리며 도를 휘둘렀다.

“못다 한 말은 저승 가서 하시고.”

서걱!

담리백의 목이 그대로 떨어져 나갔다.

그렇게 합산도문 삼 장로 담리백이 허무하게 목숨을 잃었다.

사색이 된 갈위를 보며 장우량은 재미있어 죽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모르겠는가? 아니지, 자네라면 눈치챘을 것 같은데. 자, 그럼! 다음 질문. 이 시간에 이 장로 유소광(劉燒光)의 거처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맞히면 상을 주지. 하하하!”

장우량이 사악하게 웃었다. 갈위는 두려움에 몸을 떨기만 할 뿐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쩌엉!

“크흑!”

유소광이 신음과 함께 뒤로 물러섰다. 이미 그의 몸은 흘러내린 피로 흥건했다.

“역시 이 장로요. 이 정도까지 버티는 걸 보면. 가뜩이나 짜증 나 죽을 것 같았는데 조금이나마 재미를 주는군.”

장세진이 섬뜩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누구냐, 넌!”

“거참. 이런 건 또 안 좋은 점이네. 몇 번을 물어보는 거야? 계속 내가 똑같은 대답을 해야 돼?”

“넌 장세진이 아니야!”

유소광이 피가 섞인 침까지 튀기며 소리쳤다. 그의 입에서 나온 분비물이 자신의 옷에 묻자 장세진이 잔뜩 인상을 찌푸렸다.

“이봐, 영감! 이거 비싼 옷이라고! 기껏 지금까지 깔끔하게 입고 있었는데 피 묻었잖아! 아니, 침인가? 아무튼. 더럽게! 좀 데리고 놀다 죽이려고 했더니 너무하네! 사람 마음도 몰라주고.”

“이놈!”

장세진의 말에 유소광이 소리를 지르며 그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정작 장세진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난 네놈 자식 아니니까 이놈, 저놈 하지 말라고!”

서걱!

유소광의 도를 간단히 피한 장세진이 그대로 그의 목을 쳐버렸다.

그러자 그의 목이 있던 자리에서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고, 장세진은 재빨리 몸을 뒤로 빼냈다.

“하마터면 묻을 뻔했네. 이 옷, 이따가 예쁜이 사랑해 줄 때까지 입고 있어야 하는 건데 말이지. 더러운 피를 묻혀서는 안 되지.”

그렇게 중얼거린 장세진이 피 묻은 도를 들고 그의 처소를 나섰다. 그러자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수하 한 명이 그의 뒤를 따랐다.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던 장세진이 멈춰서 수하를 돌아보았다.

“아, 그리고 너.”

“예.”

“이제 됐어. 그동안 고생했다.”

“예? 무슨 말씀이신지…….”

장세진의 말에 수하가 무슨 소리냐는 듯 물었다. 그러자 인상을 찌푸린 그가 도를 휘둘러 수하를 정확하게 반으로 쪼개 버렸다.

“그동안 세작 노릇 하느라 고생했다고. 왜 이렇게 말을 못 알아들어? 짜증 나게.”

그렇게 툴툴거린 장세진이 유소광의 처소를 떠났다.

“자〜 이제 눈치는 대충 챘을 것이고.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가 궁금하겠지?”

장우량이 책상 위에 올려놓았던 다리를 내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무릎을 꿇고 있는 갈위의 앞에 가서 털썩 주저앉았다.

“이보게, 군사.”

“…….”

장우량의 부름에 갈위는 사시나무 떨 듯 몸을 떨었다. 두려움이 너무 커서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가 없었다.

“대답은 해야지?”

“예…….”

장우량의 말에 갈위가 겨우 목소리를 짜내어 대답했다.

“그렇게 너무 두려워할 것 없다니까 그러네. 내 장담하지. 군사를 죽이는 일은 없을 것이네. 내 말만 잘 듣는다면 말이야.”

그 말에 갈위는 아무 말도 못하고 떨고만 있었다.

“난 군사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네. 합산도문을 이렇게 키우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사람 아닌가? 그래서 난 자네와 계속 함께 가고 싶단 말이지. 아, 무슨 일을 하는데 함께 가느냐고? 궁금하지 않은가?”

“사, 살려주십시오. 제발…….”

갈위가 거의 우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에 장우량이 피식 웃고는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러자 갈위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히이익!”

“어허! 그렇게 무서워하지 말라니까 그러네. 누가 보면 내가 자네한테 해코지하는 줄 알겠네. 내가 뭐라고 했지? 안 죽인다고 했잖아. 난 자네랑 계속 같이 가고 싶단 말일세. 이건 진심이야. 알겠지?”

장우량의 말에 갈위가 두려움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니까 내 말 잘 듣게. 난 말이지…….”

거기까지 말한 장우량이 갈위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서는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사도련을 집어삼킬 생각이네.”

장우량의 말에 갈위가 깜짝 놀랐다. 그런 그의 반응이 재미있는지 장우량이 또 웃음을 터뜨렸다.

“아니, 뭘 그리 놀라고 그러나? 사도련 집어삼키는 게 뭐 대수라고. 나라고 련주 하지 말라는 법 있나? 그래서 하는 말인데, 난 자네가 우리에게 힘을 보태줬으면 좋겠네. 어떤가? 이건 정말 자네 능력을 높이 사서 하는 제안이야.”

장우량의 물음에 갈위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살려면 그의 제안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하지만 제안을 받아들이면 자신은 악의 편에 서는 것과 같았다.

자신의 선택이 끔찍한 결과를 가져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그런다고 해서 얼마나 더 오래 살 수 있을지도 장담할 수가 없었다.

“고민되나? 흠… 지금 바로 대답을 듣는 건 무리였군.”

장우량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러자 갈위는 점점 더 초조해졌다.

“좋아! 인심 한번 쓰지. 해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릴 때까지 시간을 주겠네. 대충 반 시진 정도 남았으니 잘 생각해 보라고. 알겠는가? 하하하!”

그렇게 말한 장우량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다시 의자에 가서 앉더니 아까처럼 책상에 다리를 올렸다.

갈위의 머리가 복잡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