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단월검제-67화 (67/141)

#067화.

“아! 어서 오시오, 백룡문주. 간밤에 잠은 잘 주무셨소?”

안으로 들어가자 나군천이 그를 반갑게 맞았다. 그에 상천은 긴장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예. 편히 쉬었습니다.”

“다행이구려. 이쪽으로 앉으시오.”

상천은 나군천이 권하는 자리로 가서 앉았다. 자신이 쉬던 방에 있는 의자만큼이나 편한 의자였지만 마음가짐 때문인지 굉장히 불편하게 느껴졌다.

나군천과 하신, 상천이 모두 자리에 앉자 기다리고 있던 시비 한 명이 차를 가져왔다.

이내 향긋한 차향이 퍼졌지만 긴장감을 풀어주지는 못했다.

“어제 대결은 잘 봤소이다. 나이도 어린데 상당한 실력을 가지고 계시던데.”

“과찬이십니다. 아직 멀었습니다.”

나군천의 칭찬에 상천이 민망한 듯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러자 나군천이 아니라는 듯 손을 저으며 말했다.

“아니외다. 본인은 어제 정말로 감탄했소. 이십대 초반의 나이에 그 정도 실력이면 노력 여하에 따라 절정의 무위도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더구려.”

나군천이 절정을 얘기할 때 상천은 심장이 뛰는 것을 느꼈다.

‘내가 정말 절정에 오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본인이 이렇게 백룡문주를 모신 것은 어제 약조한 부분도 있고 얼굴 한 번 자세히 보고자 하는 마음에 불렀소이다. 어제 워낙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어서 본인이 차마 다가가지 못하겠더이다. 하하하!”

나군천의 말에 상천이 쑥스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

“옹안에 있는 지부장에게 전해 듣기로는… 백룡문의 사정이 많이 안 좋다고 들었소. 사실이오?”

나군천의 물음에 상천이 미소를 거두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여기저기 손볼 곳도 많고 문도들의 숫자도 적습니다. 사실, 어찌 보면 문파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수준입니다.”

“음…….”

상천의 대답에 나군천이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말한 대로 본인은 앞으로 일 년간 백룡문에 다양한 지원을 할 생각이오. 물론, 차차 본문에서 파견된 사람들이 백룡문에 가서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 알아보겠지만, 혹시 문주께서는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 생각해 놓은 것이 있으시오?”

나군천의 물음에 상천이 잠시 생각을 했다.

마음 같아서는 이것저것 다 지원을 해달라고 하고 싶지만 그것은 너무 염치가 없는 것 같았다.

“사실 필요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건물 보수도 해야 하고 사람도 필요하고 돈도 필요하고. 그러다 보니 어떤 것을 말씀드려야 할지 고민입니다.”

“문도들의 숫자는 얼마나 되오?”

“스무 명 정도 됩니다.”

“그럼, 수준은 어떻소?”

나군천의 물음에 상천은 점점 자신이 작아지는 것 같았다.

“두세 명을 제외하고는 수준을 논할 정도가 못 됩니다.”

“음…….”

“사실 어떻게 보면 문도라고 하기에는 조금 그렇습니다. 그저 함께 사는 사람들에게 제가 무공을 조금 가르쳐 주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상천의 대답에 나군천은 무슨 사연이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리고 조심스레 물었다.

“이런 것을 물어보면 실례가 되지는 않을까 모르겠소만.”

“어떤 것을…….”

“사실 궁금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오. 어쩌다가 스물한 살의 나이에 문주가 되었으며, 문파는 어쩌다가 그 지경이 된 것인지.”

그 물음에 상천이 잠시 망설였다. 그것을 보고 나군천이 말을 이었다.

“말하기 어려운 일이면 대답하지 않으셔도 되오. 하지만 나름 이곳 귀주성에서 어느 정도 성장을 이룬 문파의 문주로서 동도의 어려움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그러오. 나 하나만 잘나가려는 문파는 언젠가 탈이 나게 마련이오. 서로 돕고 화합을 다져 힘을 합쳐야 할 때 합칠 수 있어야 모두가 오래, 평화롭게 갈 수 있는 것 아니겠소? 그래서 이번 연회도 마련한 것이오.”

나군천의 설득에 망설이던 상천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리고는 자신이 백룡문에 들어가서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털어놓았다.

합산도문과 관련된 일은 말하지 말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굳이 숨길 이유가 없다는 생각에 솔직하게 모두 이야기했다.

상천의 이야기를 다 들은 나군천이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간 고생이 많으셨구려.”

“아닙니다. 그래도 주변에서 도와주시는 고마운 분들이 계셔서 크게 힘들지는 않습니다.”

상천의 대답에 나군천도 고개를 끄덕였다.

“백룡문주의 이야기를 들으니 본인도 여러 가지 깨닫는 바가 크오. 지금 문주와 얘기한 것들을 종합하고 또 사람들도 파견하여 어떤 지원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 좀 더 고민해 보도록 하겠소.”

“감사합니다.”

상천의 인사에 나군천이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문득 무언가가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

“아, 그러고 보니 얼마 전 합산도문의 여식이 다녀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나군천의 물음에 상천은 깜짝 놀랐다. 그런 것을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지 못한 것이다.

상천은 잘 모를 수 있지만 반월도문 정도 되는 문파라면 그 정보력은 상당한 수준이라 할 수 있었다.

당황하기는 했지만 상천은 이내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별일 아닙니다. 앞서 말씀드린, 합산도문에서의 일로 찾아온 것입니다.”

“그 일은 합산도문을 나오면서 끝난 일 아니었소?”

“저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장 소저는 그러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돈을 가지고 왔기에 안 받으려고 했습니다만 받고 깔끔하게 끝내는 편이 좋을 것 같아 그리했습니다.”

“그럼 이제 합산도문과의 관계는 모두 끝난 것이오?”

“그렇습니다. 다시는 볼일 없습니다.”

상천의 어투는 단호했다. 잠시 그런 상천을 바라보고 있던 나군천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알겠소. 언제 떠나실 생각이시오?”

“돌아가는 대로 곧장 출발할 생각입니다.”

“그렇군. 알겠소. 조심히 가시오. 배웅하지 못하는 것, 양해 바라오.”

“예.”

“밖에 나가시면 시비 한 명이 접객실까지 안내해 드릴 겁니다.”

하신이 상천에게 웃는 낯으로 말했다. 고개를 끄덕인 상천은 나군천과 하신에게 포권을 짓고는 그의 집무실을 나섰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상천이 밖으로 나가고 나군천이 하신에게 의사를 물었다.

“거짓은 없는 듯합니다.”

“그렇군. 음… 합산도문에서 그런 일이 있었군.”

나군천이 턱을 매만졌다.

그가 알고 있는 부분은 합산도문 전양지부에서 장우량의 여식이 공격을 받았고 그 흉수를 잡았다는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이번에 상천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더 자세한 내막을 알게 된 것이다.

“합산도문에 안 좋은 감정이 많을 테니 그쪽에 힘을 보탤 것이라는 걱정은 접어도 좋을 듯합니다.”

“그렇겠지. 그건 그렇고 합산도문의 일, 뭔가 냄새가 나지 않는가?”

“예. 그대로 끝날 일이 아닙니다.”

“합산도문에서 보이는 이상 징후는 있는가?”

“심어놓은 세작으로부터 온 보고에 따르면 그리 분위기가 좋지는 않다고 합니다.”

하신의 대답에 나군천이 큰 관심을 보였다.

“분위기가 좋지 않다?”

“예. 딱히 눈에 띄는 사건이나 일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숨도 쉬지 못할 정도로 무거운 분위기가 계속되고 있다고 합니다.”

“음…….”

나군천이 인상을 찌푸렸다.

눈에 보이는 이상 징후가 있어야 뭔가를 계획하고 대처를 할 텐데 그러지 않으니 자칫 일이 터진다면 피해를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이번 연회에 참석한 문파들과는 계속해서 우호를 다져 놓을 수 있도록 하고, 조만간 지원을 빌미로 주기적으로 백룡문에 사람들을 파견하도록. 합산도문과의 중요한 연결고리가 될 수도 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물론, 지원은 하시겠지요?”

하신의 물음에 나군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다. 약조한 것은 지켜야지. 백룡문주를 보니 잘만 지원하면 제법 성장할 수 있겠어. 그런 문파 한두 곳 있으면 우리에겐 큰 힘이 될 수 있겠지.”

“물론입니다.”

나군천의 말에 하신이 미소를 지었다.

방으로 돌아온 상천은 서기종과 낭호를 앞에 앉혀놓고 나군천과 나누었던 대화를 전부 다 말해주었다.

가만히 상천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서기종은 합산도문과 관련된 이야기를 했다는 부분과 장여진이 찾아왔던 일에 대한 이야기에서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왜 문주가 자네를 보자고 했는지 알 것 같군.”

이야기를 다 들은 서기종의 말에 상천도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마지막에 장 소저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올 때 느꼈습니다만 크게 상관은 없을 것 같습니다. 어차피 반월도문에서 우려하던 부분이 해소되었을 테니.”

“그렇겠지. 어차피 우리는 떳떳하니까. 어쨌든 반월도문의 지원을 받게 되었다는 건 그만큼 좋은 일이네. 적어도 금전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걱정 안 해도 될 듯하네.”

서기종의 말에 상천이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자, 이제 돌아가시죠.”

상천이 홀가분한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외의 수확을 안고 상천 일행은 백룡문으로 떠났다.

***

장여진은 여소정과 함께 처소를 나와 산을 오르고 있었다.

합산도문 깊숙한 곳, 아니, 정확히 말하면 장우량의 처소보다 더 높은 곳으로 오르고 있었다.

한참을 오르던 장여진의 눈앞에 마치 신선들이나 살 법한 곳이 펼쳐졌다.

제법 편평한 곳에 굵은 노송들이 하늘 높게 자라 있었고, 옆은 안개가 주변을 덮고 있었다.

그리고 노송과 안개 사이에 낡은 초옥 하나가 자리 잡고 있었다.

장여진은 초옥 쪽으로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가 다가가자 초옥 안에서 노인 한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신선이 있다면 이런 모습일 것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신비감을 자아내는 모습이었다.

“할아버지!”

“이게 누구야? 허허허!”

노인을 본 장여진이 환하게 웃으며 그에게 달려갔다. 노인 역시 그녀를 보고 굉장히 반가워했다.

“잘 지내셨어요?”

“잘 못 지냈어! 손주 보고 싶어서!”

“할아버지도 참.”

노인의 말에 장여진이 환하게 웃어 보였다.

“자, 얼른 들어가자. 너도 들어오고.”

“네. 들어가자.”

장여진과 여소정이 노인을 따라 초옥 안으로 들어갔다.

초옥 안은 아늑했다.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용품들이 있었고, 생각보다 따뜻한 것이 생활하는 데 크게 문제는 없는 듯 보였다.

장여진과 여소정이 잠시 방 안에 앉아 있을 때, 노인이 주방에서 차를 들고 왔다. 그러자 여소정이 서둘러 그것을 받아 들었다.

“고맙네.”

“아닙니다. 그리고 말씀 편히 하십시오, 수석장로님.”

여소정의 말에 노인이 대답 없이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노인은 합산도문의 수석장로인 신건(辛建)이었다.

장여진의 할아버지인 장백천(張白玔)의 친우였기에 장여진이 어려서부터 할아버지라 부르며 잘 따랐다.

수석장로이기는 하지만 신건은 합산도문 내의 일에 크게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나이도 여든이 넘어 이제 일선에서 물러설 때가 되었다는 스스로의 판단 때문이었다.

장우량의 간곡한 부탁 때문에 아직 수석장로의 자리에 앉아 있기는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명예직에 가까웠다.

“그래, 오랜만에 어찌 찾아온 게야?”

여소정이 따라준 찻잔을 집어 든 신건이 장여진에게 물었다.

“딱히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고요. 그냥 할아버지도 보고 싶고, 답답하기도 하고 그래서요.”

“답답해? 뭐가?”

신건의 물음에 장여진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제가 딱히 밖에 나가거나 그러질 않잖아요. 그래서 그렇죠, 뭐.”

그녀의 대답에 신건은 말없이 장여진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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