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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월검제-65화 (65/141)

#065화.

“너무 무희들의 춤만 보니 지겹지들 않으시오? 본인은 지겹소만.”

나군천의 물음에 몇몇 문주들이 동의를 하고 나섰다.

“그래서 본인이 본문의 무공 자랑 좀 하려고 하오. 쑥스러운 일이기는 하지만 워낙 기분이 좋아서 그러니 양해들 해주시구려. 하하하!”

나군천이 넉살 좋게 웃으며 말했다.

반면 연회장에 모인 문주들은 눈을 빛냈다. 모두가 무인들인 바, 사도련의 일익인 반월도문의 무공을 견식할 수 있다는데 마다할 사람은 없었다.

“비산.”

“알겠습니다.”

나군천이 뒤에 서 있는 연비산의 이름을 부르자 그가 고개를 숙이고는 중앙에 있는 무대로 올라섰다.

그가 올라서자 좌중이 조용해졌다.

단순히 서 있을 뿐인데 뿜어내는 기도가 상당했다.

그나마도 나군천의 앞인데다가 다른 사람들도 생각해서 연비산 스스로 조절을 하고 있기에 망정이지 그러지 않았다면 고스란히 뿜어져 나오는 그의 기도를 제대로 받아낼 수 있는 사람은 이 자리에 없었다.

“보여 드릴 도법은 반월도문의 독문무공인 광폭십식(狂爆十式)입니다.”

그렇게 말한 연비산이 자신의 애병인 반달 모양의 묵빛 도를 꺼내 들었다.

반월도문의 문도들은 반달 모양의 새하얀 도를 들고 다녔다. 심지어 제왕무적대의 대원들도 그랬다. 하지만 연비산만큼은 예외였다.

연비산이 심호흡과 함께 도를 들었다.

그러자 종전과는 또 다른 기도를 뿜어내었다.

“핫!”

우렁찬 기합과 함께 연비산이 광폭십식을 펼쳐 내기 시작했다.

무공명만큼이나 선이 굵고 폭발적인 초식들로 이뤄진 도법이었다. 그럼에도 빈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탄탄한 무공이었다.

게다가 내력은 일절 사용하지 않고 있음에도 그 위력이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연비산이 무공을 펼칠 때마다 여기저기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상천 역시 탄성을 지르며 연비산이 펼쳐 내는 광폭십식에 빠져들고 있었다.

처음 보는 절정의 무공이었다.

여소정이 펼쳐 내는 맹호도법을 본 적이 있고 직접 익혀보기도 했지만 합산도문의 십이잔혼도가 아닌 이상 광폭십식과는 차이가 컸다.

게다가 여소정과 연비산의 수준 차이도 있기 때문에 상천이 느끼는 위력은 상당히 달랐다.

연비산이 시연한 광폭십식은 짧은 일각 만에 끝났다.

하지만 그 여운은 계속해서 연회장을 꽉 채우고 있었다.

짝짝짝!

누군가가 박수를 쳤다.

그러자 삽시간에 연회장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연비산은 그런 그들에게 돌아가며 포권을 하고는 무대에서 내려왔다.

그러자 나군천이 다시 일어서서 입을 열었다.

“마음에 드셨는지 모르겠소. 이번에는 다른 분을 한 번 모셔보고자 하는데…….”

그렇게 말한 나군천이 좌중을 한 번 훑어보았다. 그러더니 똑바로 상천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번에 천변색마를 잡아 본문뿐만 아니라 귀주성의 골칫거리를 처단해 주신 분이 이 자리에 계시오. 백룡문주, 올라 와 주시겠소?”

나군천의 말에 문주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백룡문의 상천이 천변색마를 잡았다는 소문이 제법 멀리까지 퍼져 있던 까닭이었다.

지목을 당한 상천은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문주들의 입에서 또 한 번 탄사가 터져 나왔다.

문주라 하여 어느 정도 나이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십대 초반의 청년이 자리에서 일어났으니 놀라는 것은 당연했다.

상천은 다소 긴장한 표정으로 나군천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러자 나군천이 미소를 지으며 그를 옆에 세웠다.

“다들 놀라셨을 것이라 생각되오! 젊은 나이에 큰일을 해 냈으니. 게다가 일문을 책임지고 있는 문주라는 사실에. 그래서 반월도문의 문주 된 입장에서 백룡문주께 감사의 표시를 하고자 하오.”

그 말에 다들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것은 상천도 마찬가지였다. 천변색마를 잡을 당시 그가 누구인지도 몰랐고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도 몰랐으며 그를 잡으려고 잡은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공혜가 잡혀가지 않았고, 자신이 그를 보지 못했다면 그런 일을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가져와라.”

그 말에 연비산이 준비된 목함을 가져다가 나군천에게 건넸다.

목함을 건네받은 나군천은 모두가 보는 앞에서 그것을 열어 보였다.

“오〜!”

여기저기서 감탄사가 나왔다.

그 안에는 금자 두 냥이 들어 있었다. 금자 한 냥이면 이 자리에 있는 문파 한 곳이 넉 달 동안 지출하는 평균 예산과 비슷한 액수였다.

태어나서 금자를 처음 본 상천은 살짝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좌중의 반응에 미소를 지은 나군천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여기서 제안을 한 가지 하려 하오!”

그러자 연회장에 모인 문주들이 짜기라도 한 듯 동시에 조용해졌다.

“만약 여기 계신 문주님들 중 백룡문주와 비무를 해 승리 한다면 또 다른 선물을 드리겠소. 이 금자 두 냥은 백룡문주가 이기든 지든 지불할 것이며, 또 다른 선물 역시 백룡문주가 이길 경우 차지할 수 있을 것이오!”

웅성웅성!

나군천의 파격적인 제안에 연회장이 다시 한 번 소란스러워졌다.

상천에게 금자 두 냥이 돌아간다.

그리고 그를 이기면 또 다른 선물이 주어진다. 형평성을 고려했을 때 금자 두 냥의 값어치와 비슷한 수준이거나 그 이상일 수 있었다.

솔깃한 제안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조건이 붙었다.

천변색마를 단신으로 무찌른 상천과 비무를 벌여 이겨야 한다는 조건이.

만약 진다면 문파의 자존심에 상처가 날 수도 있었다.

문주들이 복잡하게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금자 두 냥 이상의 값어치를 가진 선물이라면 위험을 감수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에 대한 답이 나오는 순간 너도나도 비무를 하려 할 것이 분명했다.

이렇게 되자 난감해지는 쪽은 상천이었다.

물론 거절할 이유가 없기는 하지만 자신의 의사가 전혀 반영되지 않은 비무이기 때문이었다.

그때였다.

“여권문주 막천풍이오!”

막천풍이 손을 번쩍 들었다. 그에 상천은 놀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막천풍이 선수를 치자 다른 문주들은 허탈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하하하! 좋소이다! 올라오시오.”

나군천이 기분 좋게 웃으며 막천풍을 중앙으로 불러 올렸다. 서로를 마주 보고 선 상천과 막천풍은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두 분의 무기를 가져와라!”

권사인 막천풍은 무기가 필요없었고, 상천의 검만 전달이 되었다.

“두 분, 재미있는 대결 부탁드리오.”

그렇게 당부한 나군천이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그리고는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두 사람의 대결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주 보고 선 두 사람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남녕에서의 첫 번째 대결 이후 참으로 오랜만의 대결이었다.

“좋은 기회로군. 무슨 선물인지는 모르겠지만 선물도 받고 지난날의 패배도 설욕하고.”

“후후.”

막천풍의 말에 상천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에 막천풍이 소매를 걷어 올리며 말했다.

“나도 그동안 놀고먹지만은 않았으니 조심하는 게 좋을 걸세.”

“나도 마찬가지요.”

상천이 검집에서 검을 뽑고는 뒤로 물러섰다.

“준비됐나?”

막천풍이 물었다. 하지만 상천은 대답 대신 손을 들어 까딱였다. 덤비라는 뜻이었다.

“그렇게 나온다면야. 사양치 않겠네.”

파악!

막천풍이 지면을 박차고 빠르게 앞으로 치고 나갔다. 하지만 상천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막천풍이 주먹을 뻗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상천이 움직이지 않았다.

파파파팡!

하지만 그의 주먹은 역시나 허공을 때렸다. 어느새 상천은 뒤로 물러서 있었다.

팍!

막천풍이 주먹을 회수하는 사이 상천이 앞으로 치고 나갔다. 그리고 검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흡!”

막천풍은 처음 보는 초식에 당황했지만 차분하게 보법을 밟으며 상천의 공격을 피해내려 하였다.

하지만 상천은 틈을 주지 않았다.

슈슈슈슈슉!

상천의 검이 집요하게 막천풍을 따라다녔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의 옷깃 하나 스치지 못했다. 서로를 상하지 않게 하려는 대결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일전에 상천에게 패한 이후로 막천풍도 피나는 노력을 해왔기 때문이기도 했다.

막천풍이 신들린 듯 보법을 펼치며 상천의 공세를 벗어났다. 잠시 숨을 고른 막천풍은 또다시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검과 권이 맞붙는 대결의 특성상 거리를 좁히지 못하면 자신이 패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앞선 대결과 달리 두 사람의 대결은 박진감 넘치게 진행되었다.

특히나 상천의 공격은 사람들의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들고 있었다. 생각보다 위력적인 검격에 깜짝 놀라는 사람들도 있었고, 그로 인해 백룡문의 이름 석 자를 뇌리에 새기는 사람들도 있었다.

막천풍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아직 이렇다 할 공세를 취하지는 못하고 있었지만 위력 있는 상천의 공격에 당하지 않고 기세를 넘겨주지 않은 것만으로도 사람들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파앙!

막천풍의 주먹이 상천의 가슴팍 앞쪽을 때렸다.

비록 적중시키지는 못했지만 상천이 가슴을 쓸어내리게 만드는 아찔한 공격이었다.

가까스로 막천풍의 공격을 피해낸 상천은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지금까지 자신이 수련했던 무공을 다른 사람을 상대로 마음껏 펼쳐 볼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었다.

반면 공격에 실패한 막천풍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힘겹게 상천의 검을 뚫고 날린 회심의 일격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쉬워할 틈은 없었다.

상천의 공격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쒜에엑!

상천의 공격이 단조로워졌다. 하지만 더 빨라졌고, 더 위력이 실려 있었다.

만만하게 대처했다가는 큰 코 다칠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상황이었다.

‘이런 망할!’

막천풍이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앞으로 밀고 나오는 상천의 공세는 거침이 없었다.

보법을 밟으며 상천의 공세를 피하려 해봤지만 역부족이었다. 그에 이를 악문 막천풍이 뒤로 물러서던 발걸음을 멈추고 오히려 앞으로 쇄도했다.

그러자 당황한 것은 오히려 상천이었다.

검을 향해 달려드는데 순간적으로 적절한 대응이 생각나질 않았다.

수욱!

막천풍이 보폭을 넓히며 상체를 최대한 숙였다.

상천의 검이 그의 머리 위로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오오〜!”

바로 앞에서 펼쳐진 아찔한 순간에 좌중이 탄성을 질렀다.

아슬아슬하게 상천의 일격을 피한 막천풍이 주먹을 쥐고 힘있게 앞으로 내질렀다.

‘됐다!’

막천풍은 자신의 승리를 확신했다.

지난번에 이어 두 번이나 패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자신의 자존심도 자존심이지만 이번에도 패한다면 여권문의 수치와도 같았다.

막천풍이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을 때, 상천의 다리가 움직였다.

부드럽게 바닥을 쓴 그의 다리가 움직이자, 절대 피할 수 없을 것 같았던 막천풍의 일격은 무위로 돌아갔다.

막천풍의 진격이 당황스러운 행동이긴 했지만 짧은 순간 몇 가지 예상을 했고, 막천풍은 충분히 그 반경 안에서의 움직임을 보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척!

상천의 검이 막천풍의 목 언저리에 닿았다.

자신의 목에 와 닿는 차가운 감촉에 막천풍은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이미 자신의 공격을 상천이 피한 순간부터 패배를 직감한 그였다.

“하……. 또 졌군.”

막천풍이 한숨과 함께 말했다. 그러자 상천이 미소와 함께 검을 거두고는 말했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소. 쉽지 않았어.”

상천과 막천풍이 서로를 마주 보고 섰다.

짝짝짝짝!

그러자 연회장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우레와 같은 박수를 쳐주었다.

비록 연비산 같은 절정 고수들 간의 대결은 아니었지만 그 이상으로 박진감 넘치는 대결을 보여주었기 때문이었다.

나군천 역시 만족스런 표정으로 박수를 치고 있었다.

“자! 이번 대결의 승자는 백룡문주로 결정되었소!”

나군천이 상천에게 다가가며 외쳤다. 그러자 연회장에 모인 문주들은 입을 다물었다.

과연 깜짝 놀랄 만한 선물이 무엇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문주들을 보며 미소를 지어 보인 나군천이 상천의 옆에 섰다.

그리고는 그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입을 열었다.

“일단 이 금자 두 냥을 백룡문에 지급하겠소.”

그렇게 말한 나군천이 상천에게 금자가 들어 있는 목함을 건네주었다.

“그리고 우리 반월도문은 앞으로 일 년간!”

웅성웅성!

앞으로 일 년간이라는 나군천의 발언에 문주들이 다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주고 끝나는 선물이 아니라는 뜻이기 때문이었다.

나군천의 이야기를 바로 옆에서 듣고 있는 상천도 놀란 표정을 짓기는 마찬가지였다.

“백룡문에 물심양면의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오!”

나군천의 선포에 장내가 조용해졌다.

물심양면의 지원.

다른 것을 다 떠나서 일 년 동안 금전적인 지원만 받을 수 있어도 문파를 꾸려 나가는 데 엄청난 도움이 될 것이 분명했다.

“축하하네.”

“고맙소.”

막천풍이 웃는 낯으로 상천에게 축하를 건넸다. 상천 역시 환한 표정으로 그의 축하를 받았다.

그렇게 그날 있었던 연회에서 상천은 나군천은 물론이고 그 자리에 모인 귀주성에 있는 모든 문파의 문주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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