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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월검제-61화 (61/141)

#061화.

다음날 아침.

상천과 서기종, 낭호는 반월도문으로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여행 떠나기 편한 무복을 입고 있었는데, 이번에 새로 만든 옷은 도착해서 갈아입을 요량으로 고이 접어 짐 속에 넣어두었다.

공혜가 나서서 이것저것 챙겨주었고, 아침 시간임에도 동네 사람들 몇 명이 그들을 배웅하기 위해 백룡문 앞에 와 있었다.

채비를 모두 마치고 나서는 세 사람을 배웅하기 위해 어린아이들을 제외한 모든 백룡문도들이 정문까지 따라 나왔다.

“나올 필요 없어. 다들 들어가.”

뒤따르는 문도들에게 그렇게 말한 상천은 정문 밖으로 나와서는 더욱 놀랐다.

모여 있는 마을 사람들 때문이었다.

“지금 떠나시는 건가?”

현판과 정문을 만들어 준 목수가 상천에게 다가오며 물었다.

“예. 그런데 다들 어쩐 일로…….”

“그거야 당연히 문주님 배웅하러 왔지요.”

이번에는 포목점 주인이었다.

모두가 하나같이 밝은 표정으로 상천 일행을 배웅하고 있었다.

“별 것 아닌 일에 이렇게까지……. 감사합니다.”

“별 것 아니긴! 잘하고 오시게!”

사람들의 말에 상천은 가슴이 뭉클해졌다.

“이제 갈게. 가 보겠습니다.”

“잘 다녀와! 못 가는 내 몫까지 잘들 놀고 오라고!”

녹엽이 아쉬운 듯 오히려 더 밝고 큰 목소리로 말했다. 서기종이 그런 그의 어깨를 툭툭 치고 상천의 뒤를 따랐다.

“문주님!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가서 기죽지 말고 잘하고 오세요!”

백룡문을 떠나는 상천 일행의 뒤로 마을 사람들의 목소리가 크게 들렸다.

그리고 멀어지는 상천을 보며 공혜는 말없이 두 손을 가슴에 모았다.

‘잘 다녀와, 오라버니!’

가슴에 모은 두 손에 힘이 들어갔다.

***

합산도문에 있는 문도 대부분이 본산 내에서 정문까지 이어지는 대로변에 도열해 서 있었다.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정자세로 서 있는 그들의 표정에서는 비장함마저 감돌고 있었다.

얼마의 시간 동안 서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누구 하나 자세가 흐트러진다거나 시선이 다른 곳으로 옮겨간다거나 하지 않고 있었다.

뿌우우우!

그때, 정문 바깥에서 뿔나팔 소리가 길게 울렸다.

그러자 도열하고 서 있는 무사들의 몸이 더욱 팽팽하게 당겨지며 긴장하기 시작했다.

또각또각! 또각또각!

정문 밖 멀지 않은 곳에서부터 천천히 올라오는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잠시 후.

선두에 말 두 필이 나란히 보이기 시작했고 그 뒤로 압도적인 기도를 풍기는 무인들의 모습이 보였다.

두 필의 말 위에 앉아 있는 장무진과 장세진은 상당한 위압감을 풍기고 있었다.

이것이 합산도문의 뇌격대와 질풍대를 맡고 있는 두 사람의 존재감이었다.

상천 일행이 백룡문을 떠나 반월도문으로 출발하던 시각.

운남으로 떠났던 합산도문의 질풍대와 뇌격대가 귀환했다.

***

상천 일행은 마을을 벗어나 옹안까지는 걸어갔다.

부지런히 걸어도 사흘은 걸리는 거리였지만 그들은 느긋하게 걸었다.

백룡문을 떠나오면서 여비를 넉넉하게 가지고 왔기 때문에 옹안에 도착해서 말을 구입해 타고 갈 생각이었다.

큰 관도는 아니지만 옹안은 다섯 개의 관도가 모이는 곳에 위치한, 귀주성에 존재하는 현(縣) 중에서는 꽤 큰 편에 속했다.

여러 개의 관도가 모이는 곳이다 보니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것은 당연했고 그 때문에 숙박업과 상업이 상당히 발달한 마을이었다.

옹안에서 말을 구하기로 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그만큼 좋은 말을 쉽게 구할 수 있었으니까.

노을이 질 무렵이 돼서야 옹안에 도착한 세 사람은 일단 하루 쉬어가기로 했다.

객잔을 하나 잡고 점소이에게 부탁을 하면 말은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오가는 사람들이 많은 만큼 빈방이 있는 객잔을 찾기도 어려웠다.

몇 군데 객잔에서는 벌써 문밖에 ‘방 없음’이라고 적인 푯말을 세워놓은 상태였다.

그렇게 몇 곳 돌아다닌 세 사람은 겨우 빈방이 있는 객잔을 찾을 수가 있었다.

“어서 오십셔!”

세 사람이 객잔으로 들어가자 점소이 한 명이 부리나케 달려왔다.

“방 세 개 있나?”

“물론입죠! 일단 짐부터 푸시죠. 이리 주십셔〜!”

서기종의 물음에 열다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점소이가 연신 허리를 굽실거리며 세 사람의 짐을 받아 들었다.

개개인의 짐이 큰 것은 아니지만 혼자 세 개를 들면 제법 무거울 텐데도 점소이는 거뜬히 들고 계단을 올랐다.

“이 층에 있는 방으로 드릴까요, 아니면 삼 층에 있는 방으로 드릴까요?”

“삼 층에 있는 방으로 주게.”

점소이의 물음에 서기종이 답했다.

보통 이 층에 있는 방은 일반 투숙객을 위한 방이고, 삼 층 이상은 돈 많은 사람이나 조용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 그리고 무인들이 많이 이용했다.

“이쪽 복도 끝 좌측에 있는 방 세 개입니다!”

점소이가 앞장서 걸으며 말했다. 그리고는 방 하나, 하나에 짐을 내려놓았다.

“삼 층에 있는 방 중에 이쪽에 있는 방 세 개가 전망이 참 좋습죠. 헤헤.”

짐을 모두 내려놓은 점소이가 내려가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무언가 바라는 듯한 점소이의 모습에 피식 웃은 서기종이 품에서 동전 열 문을 꺼내 점소이에게 쥐여 주었다.

“감사합니다! 머무시는 동안 제대로 모시겠습니다! 식사는 바로 하시겠습니까?”

“반 시진 후까지 준비되겠나?”

“예! 물론입니다! 후딱 준비하겠슴다!”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한 점소이가 얼른 일 층으로 내려갔다.

점소이가 뛰어 내려가면서 만들어내는 ‘두다다다’ 소리가 크게 들렸다.

“그럼 다들 식사 준비될 때까지 쉬시죠.”

상천의 말에 서기종과 낭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상천 역시 두 팔을 위로 뻗어 기지개를 한 번 켜고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반 시진 동안 세 사람은 꿀맛 같은 휴식을 취했다.

여유롭게 걷기는 했지만 노숙을 두 번이나 하면서 피로가 많이 쌓였던 까닭이었다.

짧은 잠을 잔 세 사람은 식사 준비가 다 되었다는 점소이의 말에 방을 나서 그를 따라 일 층으로 내려갔다.

점소이는 일 층에 마련된 여러 개의 식탁 중 갖가지 음식이 차려진 식탁으로 안내했다.

비싼 음식들은 아니었지만 적당한 수준의 음식들로 준비되어 있었다.

“맛있게 드십셔〜!”

“잠깐만.”

그들을 안내하고 돌아가려던 점소이는 서기종의 부름에 눈을 반짝이며 돌아섰다.

“또 필요하신 것 있으십니까? 말씀만 하십시오!”

“말 세 필을 좀 구하고 싶은데.”

“암요! 구할 수 있습죠. 어떤 말로 구하시겠습니까?”

“귀양(貴陽)까지만 가면 되니 적당한 말로 구해주면 된다.”

“알겠습니다. 그리합죠.”

점소이가 꾸벅 고개를 숙이며 대답하자 서기종이 품에서 은자 한 냥과 동전 열 문을 꺼냈다.

“이건 말 값이고, 이건 네 몫이다.”

“감사합니다!”

말 값에 뒷돈까지 챙긴 점소이가 기분 좋게 인사를 하고는 서둘러 객잔 밖으로 향했다.

유동인구가 많은 만큼 말을 사려는 수요도 많아 서둘러야 하기 때문이었다.

서기종이 말을 주문하는 사이, 상천과 낭호는 식사를 시작한 상태였다.

음식들을 몇 젓가락 맛본 상천이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맛있는데?”

그렇게 중얼거린 상천의 젓가락질이 조금 빨라졌다.

노숙을 하는 동안 제대로 된 음식은 먹지 못하고 미리 준비해 온 건량으로만 끼니를 때웠기에 상당히 배가 고팠기 때문이다.

낭호 역시 음식 맛이 마음에 들었는지 젓가락질이 빨라지기 시작했고, 잠깐 동안 음식 줄어드는 속도를 본 서기종 역시 서둘러 식사를 시작했다.

그날 밤은 세 사람 모두 식사를 마치고 방에 올라가 금방 곯아떨어졌다.

점소이가 준비한 말은 생각보다 훌륭했다.

떠날 시간에 맞춰 점소이가 미리 객잔 앞에 끌어다 놓은 말을 보고 낭호가 중얼거렸다.

“좋은 말이군.”

“말도 볼 줄 아나?”

상천의 물음에 낭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좌우 대칭이 균형을 이루고 가슴이 두꺼우며 등이 짧고 엉덩이가 둥그스름하면 좋은 말이라고 하더군. 세 마리 다 비교적 좋은 말이다.”

낭호의 말에 상천이 대단하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나도 어디서 들은 내용이다.”

상천의 시선에 민망했는지, 낭호가 짧게 한 마디 던지고는 시선을 돌렸다.

서기종과 낭호, 그리고 녹엽과 함께 지내면서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여러 가지를 듣고 배우는 상천이었다.

“자, 얼른 출발하지. 반월도문에 들어가기 전에 미리 귀양에서 며칠 쉬다 가는 게 좋을 테니.”

서기종의 말에 모두 말에 올랐다.

안장을 얹기는 했지만 확실히 좋은 말이라서 그런지 딱딱하다는 느낌을 받지는 않았다.

세 사람이 하룻밤 묵었던 객잔을 떠나 말을 몰았다.

그들이 멀리 사라질 때까지 세 사람을 도와준 점소이가 허리를 굽히고 있었다.

***

귀양은 귀주성의 성도이다.

성도이기 때문에, 그리고 살기 좋은 기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찾는 도시이다.

그뿐만 아니라 온갖 축제들이 즐비하게 열리기 때문에 구경하려는 사람들의 발길도 거의 일 년 내내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귀양이 유명해진 또 하나의 이유가 있었다.

바로 반월도문의 존재였다.

귀주성의 패자로 우뚝 선 것을 넘어 사도련의 일익인 반월도문.

과거 구파일방으로 대변되던 시절, 귀양 사람들은 각 문파가 있는 지역 사람들을 부러워했다.

우리 지역에는 이 문파가 있다! 라고 자신 있게 외치는 이들의 모습에서 자부심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들도 자신 있게, 자부심을 한껏 담아 외칠 수 있었다.

우리 귀양에는 반월도문이 있다고.

옹안에서 말을 산 세 사람은 서두르지 않았다.

어차피 날짜도 아직 많이 남았고 말까지 있겠다, 서두를 이유가 없었다.

반월도문까지 천천히 이동하는 동안 세 사람은 경치 구경도 하고 반월도문에 가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오랜만에 마음 편한 여정을 하는 상천과 서기종, 낭호의 표정은 밝았다.

녹엽이나 상천만큼은 아니지만 그나마 서기종은 평소 표정 변화가 어느 정도 있는 편이었다.

하지만 낭호의 경우에는 무표정이거나 살짝 인상을 찌푸리는 정도가 다였다.

그런 낭호도 여정을 하는 동안 계속 옅은 미소를 머금고 있으니 그들이 얼마나 마음이 편한지 알 수 있었다.

귀양은 워낙 큰 도시다 보니 모든 것이 많았다.

같은 품목을 파는 상점들의 개수도 많았고, 국밥집이나 술집도 많았다.

또한, 홍등가도 다른 지역보다 훨씬 넓고 길었으며, 도박장도 다른 곳에 비해 훨씬 많았다.

그리고 그만큼 객잔의 개수도 많았다.

객잔의 수가 충분하다 보니 아무리 귀양의 유동인구가 많다고 해도 방이 없거나 하는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다.

때문에 초하루까지 사흘 앞둔 점심때 즈음 귀양에 들어 선 세 사람은 옹안에서보다 쉽게 객잔을 잡을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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