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단월검제-60화 (60/141)

#060화.

백룡문주 전(前).

반월도문이 이곳 귀주성에 자리를 잡고 세력을 키우고 사도련의 일익이 된 지 오랜 시간이 흘렀소.

그동안 세력을 키우고 본문의 내실을 다지는 데 주력을 하느라 귀주성에 있는 여러 문파에 신경을 쓰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 많은 아쉬움과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소.

그래서 이번 기회에 많은 분들을 모시고 다음 달 초하루에 조촐하게 식사나 하는 자리를 마련하고자 하오.

물론 공사가 다망하신 분들께 갑작스럽게 이런 초대장을 보내 당황스러워하실 수도 있겠으나 가급적 많은 분들이 참석하셔서 자리를 빛내주셨으면 하오.

앞으로도 귀 문파의 앞날에 무궁한 영광이 함께 하길 바라겠소.

반월도문 문주 나군천.

나군천으로부터 온 초대장을 모두 읽은 상천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서 있었다.

오히려 호들갑은 옆에서 힐끗힐끗 서찰을 본 목수가 더 떨었다.

“어이구〜 우리 백룡문주 이름이 저 높은 데 있는 반월도문까지 흘러들어 간 모양이구만? 하하하! 암! 그럼 그렇지. 우리 상천 문주 같은 사람을 모르면 안 되지! 이거 우리 마을의 경사네, 경사야!”

목수의 말에 아이들과 놀아주던 녹엽이 슬쩍 옆으로 다가왔다.

“뭐라고 적혀 있는데?”

“함께 식사나 하잡니다.”

“진짜?”

상천의 말에 녹엽이 깜짝 놀라며 그의 손에 들린 서찰을 뺏고는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오호〜! 소문이 좋게 퍼져 나가더니 반월도문에까지 뻗어나갔네?”

그러면서 싱글벙글하던 녹엽이 갑자기 웃음기를 거두고 물었다.

“그런데 혼자 가나?”

그의 물음에 상천과 녹엽, 그리고 목수가 서로를 쳐다보았지만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보통 그런 자리는 문주와 호위 두 명 정도가 함께 가는 법이지. 많게는 문도 열 명까지도 데려가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어느새 다가온 서기종이 말했다. 그러자 녹엽이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낭인 생활 하던 사람이 그런 건 또 잘 아네?”

녹엽의 말에 서기종은 그냥 웃고 말았다.

“아무튼 축하드립니다, 상천 문주. 갈 때 멋진 옷도 입고 가세요!”

축하인사를 건넨 목수가 손을 흔들고는 백룡문을 나섰다. 그가 가고 상천이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멋진 옷이라…….”

상천은 이미 마을에서 유명 인사였다.

작은 마을 강구에서 백룡문은, 그리고 상천은 어느 거대 문파 부럽지 않은 인지도를 가지고 있었다.

상천이 반월도문의 초대장을 받아 문주와 식사를 하러 가게 되었다는 소문이 퍼져 나갔다. 역시나 소문의 진원지는 목수였다.

자신이 직접 반월도문 옹안지부장이 백룡문을 찾은 것을 봤다면서 서찰의 내용까지 줄줄 읊고 다녔다.

처음에는 믿지 않았던 마을 사람들도 계속되는 목수의 말에 점차 사실임을 알게 되면서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백룡문이 물질적으로 큰 도움을 주고 있지는 않았다.

오히려 마을 사람들이 소소한 도움을 주고 있는 형편이었다.

하지만 강구의 사람들은 백룡문이 자신들의 마을에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안전한 곳에 살고 있다는 든든함을 느끼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에게 큰 위협을 주었던 몇몇 현상범들을 처리해 준 것이 백룡문과 상천에게 생각 이상으로 많은 것들을 가져다주고 있었다.

초대장에 적힌 날짜까지 이십 일이 남았다.

슬슬 떠날 채비를 해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었다.

일단 상천은 함께 갈 두 사람으로 서기종과 낭호를 선택했다. 녹엽도 내심 함께 가고 싶어 했지만 결국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했다.

상천이 두 사람을 선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일단 서기종의 경우 자신이 모르는 것을 많이 알고 있는 만큼 필요할 때 여러 가지 조언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리고 낭호의 경우는 인상 때문이었다.

반월도문을 찾는 문파의 문주들이 아무리 어려도 상천만큼 어린 사람이 있지는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된다면 알게 모르게 자신이 무시를 당하는 경우도 생길 수도 있고, 괜한 시비를 당할 수도 일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낭호와 같이 차가운 인상을 가진 사람이 곁에 있다면 그런 일을 덜 당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녹엽보다는 말수가 적다는 것도 한몫했다.

함께 갈 사람들을 결정한 상천은 또 다른 고민에 빠졌다.

바로 옷이었다.

초대받아 오는 문주들은 다들 멋진 옷을 입고 참석할 텐데 상천에게 그런 옷이 있을 리 만무했다.

가지고 있는 옷이라고는 그저 평범한 무복 몇 벌이 고작이었다.

외출복 같은 것은 꿈도 꾸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 상천을 보다 못해 공혜가 나섰다. 반월도문에 갈 상천과 서기종, 낭호를 데리고 저잣거리로 나간 것이다.

“남들한테 꿇리면 안 되니까 좋은 옷 입고 가야 돼요.”

앞서 걸으며 공혜가 말했다. 이제는 거의 예전의 모습을 찾은 그녀였다.

“꼭 고급이 아니어도 괜찮은데……. 그냥 깔끔한 옷이면 되지 않을까?”

“안 돼요!”

상천의 말에 공혜가 뾰족하게 대답했다. 그에 상천의 말이 쏙 들어갔다.

공혜는 세 사람을 포목점으로 데려갔다.

포목점 주인 아주머니는 점포로 들어오는 상천을 보고는 버선발로 뛰어나와 그를 맞았다.

“아이고〜 이게 누구야? 문주님 아니세요? 옷 맞추시려고?”

“네. 최고급으로 해주세요. 이번에 반월도문 가게 된 거 아시죠? 다른 문파 사람들도 올 텐데 제대로 된 옷이 없어서요.”

포목점 주인의 물음에 대답은 공혜가 했다.

그러자 포목점 주인이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어? 진작 오지. 난 또 외출복은 있을 것 같아서 이것만 준비하고 있었지 뭐야?”

그러면서 방금 전까지 바느질을 하고 있던 장포를 들고 왔다.

“아직 다 못 만들기는 했는데…….”

“우와〜!”

공혜가 장포를 보고 탄성을 질렀다.

전체적으로 너무 밝지 않고 진한 황금색의 장포에 화려한 무늬가 수놓아져 있었다.

“아직 여기가 미완이야. 뭔지 알겠어?”

포목점 주인이 장포의 등 쪽을 보여주며 물었다. 장포의 뒤쪽에는 아직 다 완성되지 못한 백룡이 수놓아져 있었다.

“너무 멋있어요!”

공혜가 손뼉까지 치며 자신의 옷인 것처럼 좋아했다. 반면 상천은 이렇게나 화려하고 멋진 옷은 처음 봤기 때문에 얼떨떨한 표정만 짓고 있었다.

상천이나 공혜에 비해 표정의 변화가 크지는 않았지만 서기종과 낭호도 감탄할 정도였다.

“몇 명 가는 거야? 언제 가는데?”

“나흘 후에 출발이고요, 세 명 가요.”

“뭐? 나흘 후?”

나흘 후라는 공혜의 말에 깜짝 놀란 포목점 주인이 갑자기 분주해졌다.

“아이고〜 그럼 느긋하게 있으면 안 되겠네. 일단 다들 치수부터 재야겠어. 얼른 한 분씩 와보세요!”

포목점 주인의 호들갑에 상천과 서기종, 낭호가 차례로 치수를 쟀다.

“좋아. 치수는 다 쟀고.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해도 되겠지?”

“네. 잘 부탁드려요, 아주머니.”

“그럼〜 우리 문주님이 반월도문에 초대받아 간다는데. 걱정 말아! 나흘이라……. 주변에 삯바느질 잘하는 사람들 싹 불러다가 서둘러야겠네. 알겠어. 다들 가 있어. 다 만들면 가져다줄 테니까.”

“네.”

포목점 주인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상천과 공혜, 서기종과 낭호는 또 한 번 마을 사람들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나 거칠고 살벌한 낭인 세계에서 살아왔던 서기종과 낭호가 느끼는 따뜻함은 더욱 특별한 것이었다.

사흘의 시간이 흘러 출발 전날이 되었다.

옷을 맞추고 사흘 동안 상천은 서기종으로부터 공식적인 자리에서 갖춰야 할 여러 가지 것들을 배웠다.

여권문의 막천풍이나 합산도문의 장여진, 여소정 등과 시간을 보낸 적이 있긴 하지만 이처럼 문파를 대표하는 문주 자격으로 공식 석상에 나가 타 문파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이 처음인만큼 알아야 할 것도 많았다.

“후우…….”

서기종에게 여러 가지를 들으면 들을수록 한숨만 나오는 상천이었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방 안에서 지금까지 서기종으로부터 배운 것들을 다시 복기하고 있을 때, 공혜가 부산스럽게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오라버니! 왔어요, 왔어!”

공혜의 말에 상천이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뭔데 이렇게 호들갑이야? 열여덟 살씩이나 된 다 큰 처녀가.”

상천의 핀잔에도 공혜는 아랑곳하지 않고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옷 왔어, 옷! 얼른 나와봐!”

“그래?”

포목점에 맡겨둔 옷이 왔다는 말에 상천도 한껏 들뜬 표정으로 밖으로 나갔다.

밖에서는 포목점 주인이 서기종과 낭호를 앉혀놓은 채 옷을 건네주고 있었다.

“문주님! 얼른 오세요. 옷 만들어 왔어요, 옷. 마음에 드실지 모르겠네.”

포목점 주인이 웃으며 말했다.

목소리에는 활기가 넘쳤지만 얼굴 표정을 보아하니 짧은 시간에 만드느라 많이 피곤한 듯 보였다.

그런 포목점 주인의 얼굴을 보니 상천은 고마우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자, 이제 문주님 옷이에요.”

포목점 주인이 전에 보았던 장포와 함께 외출복을 꺼내 보였다.

딱 봐도 좋아 보이는 하얀 천에 많지는 않았지만 몇 가지 문양이 수놓아져 깔끔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었다.

“자, 얼른 들어가서 입고들 나와 보세요. 봐서 여기저기 수선해야 될 부분이 있으면 후딱 가서 해 가지고 오게.”

그렇게 말하며 포목점 주인이 세 사람을 억지로 방 안으로 밀어 넣었다.

자신들의 옷을 들고 떠밀리듯 방 안으로 들어간 세 사람은 잠시 후,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왔다.

“와〜!”

가장 먼저 서기종이 걸어나왔고, 그다음에 낭호가 나왔다.

평범한 무복을 입고 있을 때는 몰랐는데 멋진 옷을 입고 있으니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옷이 날개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옷을 만들어 온 포목점 주인도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오라버니, 아직 멀었어?”

두 사람은 나왔는데 아직 상천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공혜가 답답한 듯 안쪽에 대고 소리쳤다.

그리고 잠시 후.

옷을 갈아입은 상천이 밖으로 나왔다.

상천이 나오자 포목점 주인은 물론이고 공혜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놀란 표정만 짓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하나둘씩 모여들어 구경하고 있던 모두가 놀라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상하지 않아?”

이런 옷을 처음 입어보는 상천은 자신의 모습이 영 어색한지 머리를 긁적였다.

그래도 싫지는 않은지 입가에는 계속 웃음이 번져 있었다.

“멋있다…….”

누군가가 넋을 잃고 중얼거렸다. 그러자 상천은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오라버니, 진짜 멋있어!”

공혜가 엄지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녀의 말에 모두가 공감하듯 환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려서부터 귀여운 외모를 가지고 있던 상천은 나이 스물이 넘어서도 어느 정도 그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남자답고 멋있게 생긴 얼굴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지나다니면 사람들이, 특히 여자들이 한두 번 정도는 더 쳐다볼 법한 외모였다.

거기에 제대로 된 옷을 입었으니 그동안 빛을 보지 못했던 외모가 이제야 제대로 빛을 발한 것이다.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칭찬과 탄성에 상천은 몸 둘 바를 몰랐다.

냉정하게 봤을 때 하얀색 외출복만 입었다면 이 정도까지 반응이 나오지는 않았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겉에 입은 금빛 장포가 상천의 옷매무새를 완성시켰다.

화려한 장포는 생각보다 색이 강하지 않았다.

기본 바탕인 황금색이 너무 밝거나 어둡지 않았고, 그 위에 여러 문양을 수놓고 있는 붉은색, 녹색 등 여러 가지 색깔의 실 역시 원색적이지 않아 조화를 잘 이루고 있었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등 쪽에 원형으로 수놓아진 백룡이었다.

검은색 실로 용의 형상을 수놓은 다음 그 안을 흰색 실로 채운, 꽤 오랜 시간이 소요된 듯한 문양이었다.

“우리 문주님 이렇게 차려입으니 근사하네요. 호호! 만든 보람이 있는데요?”

“고맙습니다.”

포목점 주인의 칭찬에 상천이 웃으며 화답했다. 그런 그에게 마주 미소를 지어 보인 포목점 주인이 서기종와 낭호를 보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두 분께는 미안해요. 더 멋지게 만들어 드리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그런 자리는 문주님이 가장 돋보여야 되는 자리 같아서 조금 약하게 했어요.”

그녀의 말에 서기종이 웃으며 대답했다.

“맞는 말씀이십니다. 그리고 이 옷도 정말 훌륭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하며 서기종이 허리를 숙이자 낭호도 함께 허리를 숙이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아이고, 아니에요. 감사는요.”

그렇게 말하며 포목점 주인도 일어서서 허리를 숙였다.

한참을 더 그렇게 모여 세 사람의 옷차림을 보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포목점 주인이 돌아가며 말했다.

“잘 다녀오세요!”

그녀의 말에 상천은 미소로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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