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9화.
쩌엉!
“크흑!”
상천의 검과 맞부딪친 천변색마의 손에 번개가 내리쳤다.
쩌엉!
“크악!”
또 한 번의 부딪침에 방금 전 내리친 번개가 불이 되어 타올랐고,
쩌엉!
그 불길은 뜨겁게 치솟아 하늘에 있는 구름을 흩어버렸다.
뇌우와 겁화, 그리고 네 번째 초식인 운산(雲散)과 연달아 부딪친 천변색마의 양손은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지독한 고통에 천변색마의 얼굴은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하앗!”
상천의 검이 다시 한 번 천변색마를 향해 쏘아졌다. 그리고 이내 단단한 돌을 깨뜨리듯 그를 허물어 버렸다.
“크헉!”
짧은 비명과 함께 천변색마가 무릎을 꿇었다.
무리하게 진기를 끌어 올렸기 때문인지 아니면 상천의 공격에 심한 부상을 입었기 때문인지 그의 입가로 한 줄기 선혈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상천의 상태도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과도하게 진기를 운용하며 무리를 한 까닭에 약간의 내상을 입은 상태였다.
하지만 얼굴이 조금 창백해졌을 뿐,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했다.
척!
상천이 검끝을 그의 목 언저리에 가져갔다.
그리고는 사나운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았다.
“누구냐, 넌!”
하지만 천변색마는 지금 대답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본래 지니고 있던 마공으로 그간 흡수한 음기를 다스리고 있었는데, 내상과 함께 마공이 약해지자 몸 안에서 음기가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그 때문에 내상이 점차 심해지고 있었다.
“그자는 천변색마라 하오.”
그때, 뒤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상천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칼부림이 벌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 정진목이 서 있었다.
“누구시오?”
상천이 경계심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정진목이 포권을 하며 대답했다.
“본인은 반월도문 옹안지부 지부장인 정진목이라 하오.”
정진목의 인사에 상천은 경계심을 조금 누그러뜨렸다.
“저도 예의를 갖춰 인사를 드려야 하지만 이자 때문에 그러지 못하는 점 양해 바랍니다. 저는 백룡문의 문주 상천이라 합니다.”
상천의 말에 정진목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기껏해야 이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청년이 스스로를 문주라 칭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백룡문이라는 들어보지 못한 문파의 문주가 일류 수준의 무위를 지닌 천변색마와 홀로 싸워 이길 정도의 무위를 가졌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랐다.
“그자는 마음 놓으셔도 됩니다. 지금은 말도 걷지도 못할 상태이니.”
어쨌든 상천이 일문의 문주라는 것을 알게 된 정진목이 문주에 대한 예우를 하며 존대로 상천에게 말했다.
그의 말에 상천이 천변색마를 쳐다보았다. 과연 그의 말대로 눈동자가 풀려 있었고 얼굴색이 수시로 변하는 것이 상태가 좋지 않은 듯했다.
그때, 공혜가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상태로 상천에게 다가갔다.
“괜찮아? 어디 다친 데는 없고?”
끄덕끄덕.
상천의 물음에 공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자신의 입을 가리키더니 고개를 저었다.
“목소리가 안 나와?”
끄덕끄덕.
상천이 단번에 알아듣자 공혜가 기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점혈을 당한 모양이오.”
정진목의 말에 상천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점혈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아직까지 해본 적도 없었고, 그러다 보니 해혈(解血)은 더더욱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상천이 해혈을 할 줄 모른다는 사실을 눈치챈 정진목이 조심스레 물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본인이 좀 봐도 되겠습니까?”
그의 물음에 공혜를 한 번 쳐다본 상천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상천의 대답에 공혜에게 다가간 정진목이 공혜의 목덜미 어느 한 곳을 살짝 눌렀다.
“하아…….”
그러자 공혜가 깊은 숨을 토해내었다.
“이제 됐어?”
“응!”
그렇게 대답한 공혜가 상천에게 와락 안겼다. 그리고는 훌쩍이며 말했다.
“너무… 너무 무서웠어.”
“괜찮아, 이젠 다 괜찮아.”
상천이 그녀를 토닥이며 말했다. 그러자 공혜가 지금까지 꾹 참아왔던 눈물을 터뜨렸다.
“으앙!”
방금 전까지 느꼈던 공포를 모두 벗어버리려는 듯 공혜는 계속해서 소리 내어 울었다.
그런 그녀를 상천은 말없이 다독여 주었다.
공혜가 어느 정도 진정이 되자 상천은 그녀를 데리고 정진목과 함께 넓은 곳으로 나왔다. 천변색마는 이미 정진목에게 넘긴 상태였다.
좀 더 넓은 곳으로 나오자 정진목이 데려온 수하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에게 천변색마를 인계한 정진목이 다시 한 번 상천에게 포권을 했다.
“이자는 천변색마라는 마인으로 그간 귀주성 곳곳에서 문제를 일으켜 왔습니다. 그 때문에 이자를 잡기 위해 고심을 하고 있었는데 문주님 덕분에 이렇게 잡게 되었습니다. 저희 문주님을 대신하여 감사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아닙니다. 동생이 위험에 빠져 구하기 위해 한 일일 뿐입니다.”
정진목의 인사에 상천도 포권을 하며 말했다.
“그럼 저흰 이만 가보겠습니다.”
“예.”
상천이 먼저 인사를 하고는 공혜를 데리고 발걸음을 옮겼다. 멀어지는 두 사람을 보며 정진목이 중얼거렸다.
“백룡문이라…….”
***
집무실에서 할 일 없이 창밖을 내다보고 있던 나군천은 자신을 찾은 하신을 보며 자리에 앉았다.
“그래, 무슨 일인가?”
“천변색마를 잡았습니다.”
“그런가? 잘됐군. 골치 아팠는데. 어느 지부에서 잡았다던가?”
“지부에서 잡은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강구에 있는 옹안지부장이 인계를 받았지만 잡은 것은 그곳에 있는 백룡문의 문주라고 합니다.”
“백룡문?”
하신의 보고에 나군천이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백룡문이라는 이름이 도통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은 까닭이었다.
“강구에 있는 작은 문파라고 합니다.”
“그런가? 그런 곳에서… 의외로군.”
“문주가 직접 잡았다는데 나이가 이십대 초반이라고 합니다.”
“이십대 초반? 그런데 문주란 말인가?”
“예.”
하신의 보고에 나군천은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이십대 초반의 문주에… 천변색마를 잡을 정도의 무위라. 혼자 잡았다던가?”
“예.”
“궁금하군.”
나군천의 말에 하신이 웃으며 말했다.
“곧 있을 연회에 초대하도록 하겠습니다.”
***
상천은 곧장 공혜에게 일을 그만두게 했다.
이번 일로 상천은 세상이 무서운 곳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왜 장여진이 항상 여소정과 함께 다니는지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큰일을 당할 뻔한 공혜는 한동안 충격에 멍한 표정을 지으며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했다.
그 때문에 다들 진심으로 걱정하며 공혜를 돌보았다.
그런 정성 때문인지 열흘 정도 지나서는 조금씩 웃기도 하면서 점차 원래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었다.
안 좋은 일을 겪기는 했지만 그만큼 얻은 것도 있었다.
상천이 천변색마를 잡았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마을 사람들이 천변색마가 누구인지, 얼마나 악한 사람인지 알 턱이 없었다. 하지만 색마라는 별호만으로도 그를 잡은 상천을 대단하게 보았다.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그냥 잡았다면 모르겠지만 반월도문 옹안지부장이 있었기 때문에 강호 무림에도 이름을 각인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그것이 중요한 것이었다.
정문과 현판이 바뀌었다.
말끔하고 멋진 정문과 현판이 무너진 담벼락 때문에 어색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지만 그것을 보는 상천은 마냥 좋았다.
이제는 바람이 심하게 불 때마다 혹여 문 떨어지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 같은 것은 하지 않아도 됐다.
새로운 정문과 현판 덕분에 기뻐하던 마음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 다른 일이 생겼다.
주기적으로 마을의 몇몇 사람들이 먹을 것을 가져다주기도 하고 어린아이들을 돌봐주기도 하는 일이 생긴 것이다.
모두가 현판과 정문을 해준 목수 덕분이었다.
현판과 정문을 새로 만들어 교체를 하면서 백룡문에 사람은 몇 없지만 대부분이 젊은 사람들뿐이고, 여자도 한 명밖에 없어 많이 힘들어 보인다는 이야기를 하고 다닌 까닭이었다.
처음에는 한 끼 정도 먹을 여러 가지 반찬거리들을 가져다주더니 나중에는 나물에 심지어 고기까지 가져다주는 사람들도 생겼다.
그러더니 이제는 아주 사나흘에 한 번씩 마을의 아주머니들이 찾아와 아이들을 봐주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상황이 그렇게 흘러가다 보니 상천은 가슴이 벅차올랐다.
아직 원하는 만큼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문파 이름도 알린 것 같고, 도움의 손길도 받을 수 있어 좀 더 발전할 수 있는 자그마한 발판은 마련한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도움을 줄 때마다 상천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는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을 종삼에게 속으로 한마디씩 했다.
‘보고 있어, 사부?’
현판과 정문을 싼 값에 새로 교체하고 마을 사람들의 도움도 받고 있으며, 지금까지 받은 현상금과 장여진이 가져온 돈으로 어느 정도 비축 자금이 만들어지자 상천은 순차적으로 다른 사람들이 하고 있는 일을 그만두게 했다.
가장 먼저 일을 그만둔 사람은 병목과 배동삼이었다.
아무래도 두 사람이 백룡문 내에서 가장 무공 수준이 높았기 때문에 그들을 우선적으로 집중 훈련시키면 나중에 문도가 늘거나 아이들이 조금 더 자랐을 때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일을 나가지 않게 되자 많이 어색해하던 두 사람이었지만 이내 적응을 하고 맡은 일을 훌륭하게 소화해 내기 시작했다.
배동삼과 병목은 무공에만 매진할 여건이 조성되자 실력이 빠르게 늘고 있었다.
서기종의 지도 아래 필요한 부분에 대한 조언을 듣고 그전보다 훨씬 더 오랜 시간 수련을 하니 실력이 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백룡문은 조금씩 기틀을 잡아가고 있었다.
“조금 더 힘을 줘야지. 안 그러면 끝까지 뻗을 수가 없다. 진검은 목검보다 훨씬 더 무거워.”
날카로운 눈빛으로 배동삼이 수련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서기종이 낮은 목소리로 한마디 던졌다.
그러자 배동삼은 진지한 표정으로 방금 전에 펼쳤던 초식을 다시 반복하기 시작했다.
“아니지. 방금 힘을 싣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전에 지적한 부분이 다시 안 되고 있잖아. 팔을 더 올리고. 반동은 팔과 어깨만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상체 전부를 쓰는 거다. 다시.”
또 한 번 이어진 서기종의 지적에 배동삼은 한숨과 함께 자신의 머리를 두드리고는 집중해서 다시 검을 휘둘렀다.
다른 한쪽에서는 병목이 연신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배동삼이 먼저 시작하기는 했지만 병목도 단월검을 배워도 모자라지 않는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조금 늦은 만큼 병목의 배우려고 하는 의욕은 대단했다.
한 번에 많은 것을 배우려는 욕심은 없었지만 한 번 배운 것은 제대로 익히고 넘어가겠다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상천이 우려하는 부분이 한 가지 있었다.
어쨌든 배동삼과 병목이 지금 단월검을 배우고는 있지만 상천 스스로가 아직 단월검에 대해 제대로 정립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계속해서 단월검을 발전시켜 나가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얼마나 변할지 알 수 없었다.
만약 지금 배동삼과 병목이 익히고 있는 단월검과 나중에 상천이 되었다고 느낄 단월검이 많이 다르다면 혼란을 가져 올 수 있다.
단월검을 익히는 배동삼과 병목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아이들과 놀아주는 녹엽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놈들〜”
“으악!”
“꺄르르르르!”
녹엽이 건물 뒤쪽에서 뛰어나오는 아이들의 뒤를 쫓고 있었다.
가장 어린아이가 다섯 살이고 대부분이 여섯, 일곱 살이라 말을 잘 안 들을 때도 있긴 하지만 평소 병목이 교육을 잘 시켜놨기 때문인지 그런 경우가 많지는 않았다.
그는 힘들지도 않은지 백룡문 안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아이들과 놀아주고 있었다.
그 덕에 아이들은 연신 웃음꽃을 피우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녹엽과 아이들을 보며 상천은 흐뭇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문주님! 안에 계신가?”
열려 있는 정문으로 누군가가 상천을 찾으며 들어섰다.
다름 아닌 현판과 정문을 해준 목수였다. 그때의 인연으로 상천과 많은 친분을 쌓은 그였다.
“아, 오셨습니까?”
“여기 있었구먼. 들어오십시오!”
상천을 발견한 목수가 밖을 쳐다보며 누군가에게 소리쳤다.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백색 무복에 장포를 걸친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다름 아닌 지난번 천변색마를 잡았을 때 보았던 옹안지부장 정진목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정진목이 살갑게 웃으며 상천에게 인사했다.
상천 역시 낯익은 얼굴이라 미소를 지으며 그를 맞이했다.
“반갑습니다. 그런데 여기는 어쩐 일로…….”
“저희 반월도문의 문주님께서 보내신 초대장입니다.”
그렇게 말하며 정진목이 품에서 서찰 하나를 꺼내 상천에게 건넸다.
초대장이라는 말에 상천이 의아해하며 그에게서 서찰을 받아 들었다.
“자세한 내용은 그 안에 모두 적혀 있을 겁니다. 그럼 전 이만.”
상천에게 서찰을 건넨 정진목이 다시 포권을 하고는 백룡문을 나섰다.
정진목이 떠나고 상천은 잠시 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아, 뭐하시는가? 얼른 펼쳐 보지 않고.”
옆에 서 있던 목수가 상천을 부추겼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상천이 정진목으로부터 건네받은 서찰을 펼쳐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