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단월검제-51화 (51/141)

#051화.

다음날.

장우량으로부터 은자 다섯 냥을 받아낸 장여진은 곧장 짐을 쌌다.

그녀의 명에 떠날 채비를 하고 장여진의 처소에 온 여소정이 그녀에게 물었다.

“어디로 가실 겁니까?”

“백룡문으로 갈 거야.”

여소정의 물음에 장여진이 간단히 대답했다. 그리고는 챙긴 짐을 들고 처소를 나섰다.

“굳이 직접 가셔야겠습니까? 위험한데 저 혼자 다녀오겠습니다.”

뒤따르던 여소정의 물음에 장여진이 발걸음을 멈추고는 그녀를 보며 물었다.

“무슨 뜻이야?”

“그곳은 반월도문의 영역입니다. 섣불리 움직였다가는 괜한 오해를 살 수도 있습니다. 문주인 나군천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아시지 않습니까?”

“오해 살 만한 행동 안 할 거잖아? 그리고 직접 안 가면?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 사람한테는 당연히 내가 직접 가야지. 그게 도리잖아.”

“그렇긴 하지만…….”

여소정이 말끝을 흐리자 장여진이 다시 발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그러니까 더 이상 아무런 말 말아. 안 따라오면 나 혼자서라도 갈 거야.”

장여진의 단호한 말에 여소정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

장여진과 여소정이 말을 타고 정문으로 향하고 있을 때 그 앞에 말을 타고 있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보였다.

“뇌격대인 모양입니다.”

“그래? 오늘 운남으로 떠나시는 모양이구나.”

그렇게 말한 장여진이 말을 타고 선두에 서 있는 뇌격대주 장세진을 불렀다.

“오라버니!”

자신을 부르는 장여진의 목소리에 부대주와 이야기를 나누던 장세진이 고개를 돌렸다.

동생의 모습을 본 장세진이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장여진 역시 환하게 웃으며 말을 몰아 장세진에게 다가갔다.

뇌격대 부대주와 대원들이 그녀를 보고 고개를 숙였다.

“오라버니, 운남에 가신다더니 지금 출발하시는 거예요?”

“그래. 원래 어제 출발하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조금 늦었구나. 너도 외출하는 거냐?”

“네. 어디 좀 다녀올 곳이 있어서요.”

장여진의 말에 장세진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이제는 괜찮은 거지?”

“그럼요.”

장여진이 걱정하지 말라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장세진은 여소정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자네도 마음고생이 심했겠군. 고맙네.”

“아닙니다.”

감사의 말을 건네는 장세진에게 여소정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런데 뇌격대만 가요? 질풍대도 간다고 들은 것 같은데.”

“아, 형님은 반 시진 전에 먼저 출발하셨다. 뇌격대하고는 경로가 다르거든. 더 멀리 돌아가야 하는 경로라 서둘러 출발하셨다.”

그 말에 장여진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말했다.

“큰 오라버니 얼굴 본 지도 오래됐는데…….”

“하하! 형님이 워낙 바쁘시지 않더냐? 게다가 살가운 성격도 못 되시니 먼저 동생 찾아가는 것도 잘 못하시고. 다녀오시거든 네가 먼저 찾아가 보려무나.”

“그럴게요. 이러다가 얼굴 잊어버리겠어요.”

장세진의 말에 장여진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그럼, 이제 출발해야겠구나. 사고치지 말고 잘 지내고 있어야 한다. 알았지?”

“사고는요. 제가 무슨 어린애인가요? 걱정하지 말고 오라버니나 몸조심해서 다녀오세요.”

“그래. 이만 가 보마.”

웃으며 다시 한번 장여진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장세진이 대원들을 향해 힘차게 외쳤다.

“가자!”

“예!”

우렁차게 대답한 대원들이 장세진의 뒤를 따라 말을 몰아 우르르 합산도문을 빠져나갔다.

본의 아니게 그들을 배웅한 장여진과 여소정은 잠시 그 자리에 서서 그들이 멀어지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확실히 뇌격대주님은 아가씨를 대하실 때와 대원들을 대하실 때가 다른 것 같습니다.”

“그래? 어떻게 다른 것 같은데?”

“좀 더 위압감있고…….”

여소정의 말이 끝나기 전에 장여진이 불쑥 말을 자르고 들어왔다.

“멋있지?”

“…네.”

그녀의 말에 장여진이 눈을 가늘게 뜨고 여소정을 바라보며 말했다.

“반했구나? 내 오라버니지만 멋있긴 하지. 호호호!”

“아가씨!”

여소정이 당황해 소리쳤다. 그 모습이 재미있는지 장여진이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앞으로 나한테 잘 보여봐. 또 알아? 내가 오라버니랑 연결시켜 줄지? 호호호!”

“아가씨! 그런 거 아닙니다!”

여소정이 손사래까지 치며 부정했지만 장여진은 웃으며 말을 몰아 정문을 나서고 있었다.

“하아…….”

여소정이 한숨을 쉬며 장여진의 뒤를 따랐다. 하지만 이내 그녀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다.

처음 만났을 때 자신에게 장난을 치던 장여진의 그 모습을 오랜만에 봤기 때문이다.

조금이나마 예전보다 마음이 편해졌다는 증거였다.

그에 여소정도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장여진의 뒤를 따라 합산도문을 나섰다.

장우량은 뒷짐을 진 채 자신의 집무실이 있는 전각 앞에 있는 정원을 거닐고 있었다.

화려하고 크게 만들어놓은 것은 아니었지만 답답할 때 한 번씩 나와 보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아담한 크기의 정원이었다.

정원을 거닐고 있는 장우량에게 갈위가 다가왔다.

“뇌격대와 질풍대는 떠났는가?”

“예. 반 시진 전에 질풍대가 출발했고, 조금 전에 뇌격대도 떠났습니다.”

“그렇군.”

장우량이 정원에 피어 있는 꽃들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그리고…….”

“그리고?”

“아가씨께서도 본산을 떠났다는 소식입니다.”

갈위의 말에 장우량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물었다.

“그래? 어디로 가는지 행적은 파악했나?”

“따로 어디로 간다는 말은 없었다고 합니다.”

갈위의 대답에 잠시 동안 말이 없던 장우량이 나직이 입을 열었다.

“어디로 가는지 파악해 두게. 혹시라도 지난번 같은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니.”

“알겠습니다. 그리하겠습니다.”

갈위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런 그를 뒤로하고 계속해서 정원의 꽃들을 바라보는 장우량의 표정은 싸늘했다.

***

반월도문의 문주인 나군천(懦君天)은 굉장히 고강한 무공을 지닌 자였다.

사도련을 지탱하는 한 축인 반월도문의 문주이니 그것은 당연한 것이겠지만 수많은 강호인은 그의 무공을 열 손가락 안에 꼽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사도련의 련주 자리를 차지하지 못했다.

무공으로 따지자면 련주인 은남도문의 가백현보다 반수에서 한 수 정도 앞서고 있지만 결정적인 부분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이었다.

바로 인품이었다.

가백현은 많은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을 가짐과 동시에 그런 사람들을 자신의 품에 품을 수 있는 포용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정치력도 가지고 있어, 은남도문뿐만 아니라 사도련 전체를 끌고 가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하지만 그에 비해 나군천은 사람들이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인상과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나군천은 차가운 인상을 가진 사람이었다.

얼굴에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있으면 화가 난 사람처럼 오해할 정도의 인상인지라 일단 사람들이 쉽게 말을 붙이지 못했다.

거기에 성격 역시 이해심이 부족했다.

어떻게 보면 좋게 생각하고 넘길 수 있는 부분도 그는 그러지 못했다.

화를 내고 다그쳤다.

반월도문의 문도들이야 나군천의 그런 모습이 전부 다 문파를 위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견딜 수 있다고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를 어려워했고, 무서워했으며, 심지어 어떤 이는 싫어했다.

나군천 스스로도 그런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모습이 싫었다.

하지만 오십 평생을 그렇게 살아온 사람이 그런 것을 하루아침에 바꿀 수가 있겠는가?

부단히도 노력을 해봤지만 쉽게 바뀌지 않았다.

물론 예전보다 덜하기는 했지만 화내고 다그치는 성격은 그대로였다.

그렇게 사도련의 이인자로 살아오는 나군천이 절대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 한 가지 있었다.

바로 일인자 자리에 대한 욕망.

가백현의 제안으로 만들어진 사도련이지만 련주의 자리는 다수결로 결정이 되었다.

네 개의 도문을 제외한 사도련에 적을 둔 기타 군소문파의 문주들 백여 명이 모여 종이에 이름을 적는 방식이었다.

그 결과 합산도문의 장우량과 천중도문의 종무헌은 거의 득표하지 못하고 가백현과 나군천의 각축으로 진행이 되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나군천은 가백현에게 압도적인 차이로 졌다.

패한다 하여도 근소한 차이를 예상했던 나군천에게는 충격이었고, 그것은 고스란히 련주의 자리에 대한 욕심으로 발전했다.

그리고 그것은 현재 진행형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나군천은 자신의 집무실에 앉아 턱을 괴고 손가락으로 책상을 톡톡 치고 있었다.

뭔가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보이는 특징이었다.

“질풍대와 뇌격대라…….”

나군천이 중얼거렸다.

“대외 활동의 시작이다? 그런데 그 시작이 질풍대와 뇌격대라니…….”

명목은 세력 강화였다.

합산도문이 세력을 강하게 쥐고 있는 광서성과 달리 운남 일부 지역은 상대적으로 합산도문의 힘이 약하게 뻗어 있는 상태였다.

지부가 있기는 하지만 본산이 근처에 있는 것과는 차이가 있었다.

그 때문에 두 명의 아들을 보내 운남 지역의 세력을 좀 더 강화하고 내실을 다지겠다는 의도였다.

하지만 나군천은 그것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군사를 불러와라!”

나군천이 밖을 향해 소리쳤다.

반월도문의 군사인 하신(夏莘)은 육십대 중반이었다.

하나 백발이 성성하고 주름이 가득한 그의 외모는 칠십 이상이라 해도 믿을 만큼 노안이었다.

그러나 가지고 있는 혜학이 뛰어나 이십 년 이상 반월도문의 군사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하신.”

“예, 문주님.”

나군천의 부름에 하신이 공손히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합산도문 쪽 소식은 들었겠지? 어떻게 생각하나?”

“이상합니다.”

하신의 대답에 나군천이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화를 내지는 않았다.

이곳 반월도문 내에서 그가 유일하게 화를 내지 않는 대상이 있으니, 그가 바로 하신이었다.

“내가 그 이상의 대답을 원한다는 것, 잘 알고 있을 텐데?”

나군천의 말에 하신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제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문주님께서도 생각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대의 의견을 묻는 것이다. 내가 내린 결론과 다른지 같은지.”

“같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정보가 부족한 지금 상황에서 내릴 수 있는 결론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하신의 대답에 나군천은 입을 다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정보 좀 더 캐내도록. 세작이라도 심을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신이 허리를 굽히며 공손히 대답했다.

“그리고.”

“예. 은남도문 역시 주시하도록 하겠습니다. 저희가 생각한 것을 가백현이 모를 리 없으니 말입니다. 후후.”

하신의 대답에 나군천은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그의 이런 점 때문에 하신을 신뢰할 수 있었다.

“우리가 빨라야 한다, 그들보다.”

나군천이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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