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8화.
감찰단에 끌려온 청운대원들은 각각 독방에 감금되었다.
혹시나 서로 말을 맞출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에 감찰단주가 직접 지시한 사항이었다.
독방에 갇힌 청운대원 몇몇은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가며 욕을 해댔다.
억울한 마음을 어디에다가 하소연할 수도 없으니 나오는 것이라고는 욕밖에 없었다.
목이 쉬어도 그들은 욕하는 걸 멈추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들을 감시하는 감찰단원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상천은 겨우 몸을 틀 수 있는 정도밖에 안 되는 좁은 공간에 앉아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이런 곳이 무림?’
상천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물론 백룡문을 떠나 남녕에 오고, 거기서 장여진을 만나 청운대에 들어와 이렇게 독방에 갇혀 있는 지금까지의 모든 것이 무림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무림이 이런 곳이라면 실망이다.
상천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장여진이 자신을 설득할 때 했던 말을 떠올렸다.
‘더 큰 무림? 웃기지 마. 더 큰 무림이 고작 이 정도야? 이거밖에 안 돼?’
상천은 자신도 모르게 피식 코웃음을 쳤다.
덜컹! 끼이익!
밖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드디어 조사가 시작된 것이다.
문이 열리고 조사를 받기 위해 끌려가면서 까지도 욕을 멈추지 않는 대원 한 명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지다가 어느 순간 들리지 않게 되었다.
상천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첫날은 다섯 명의 대원이 조사를 받았다.
조사를 했다면 혐의가 있는지 없는지 알게 되었을 터. 그럼에도 대원들은 다시 독방에 갇혔다.
창문도 없는 독방.
빛이라고는 복도에 있는 횃불이 전부였기에 밤인지 낮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독방에 갇힌 지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 없는 그때,
장여진이 찾아왔다.
“괜찮은가요?”
상천이 갇힌 독방의 창살 앞에 선 장여진이 걱정스런 목소리로 물었다.
상천은 대답 대신 싸늘한 표정으로 고개만 한 번 끄덕였다.
그런 그의 냉랭한 분위기를 느꼈기 때문일까? 장여진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해요.”
“괜찮소.”
상천의 대답은 짧았다. 언제나 그랬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런 그의 대답이 장여진의 가슴을 찔렀다.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소.”
상천의 물음에 그녀가 창살 쪽으로 한 걸음 더 다가갔다.
“물어보세요.”
“이런 곳이 더 큰 무림이오?”
상천의 물음에 장여진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자신이 그에게 했던 말을 두고 하는 질문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더 큰 무림.
상천에게 작은 무림에 만족하냐며 더 큰 무림을 원하지 않느냐고 했다.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상천이 지금까지 봐온 더 큰 무림은 충분히 실망할 수 있을 법했다.
“미안해요.”
그녀가 상천에게 할 수 있는 말은 그것 하나뿐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보다 그녀가 상천에게 가지는 미안함은 더 컸다.
억지로 끌어들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상천은 더 이상 말이 없었다.
한동안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던 장여진이 고개를 숙인 채 발걸음을 옮겼다.
다음날.
상천이 갇힌 독방이 열렸다.
이제 그가 조사를 받을 차례.
상천은 조용히 자신을 데리러 온 감찰단원들을 따라나섰다.
조사실에는 기다란 탁자와 두 개의 의자만 놓여 있었다.
어두침침한 조사실에 들어가 앉아 일각 정도 기다리자 조사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짜증이 가득 담긴 얼굴이었다.
“그래도 네놈은 좀 얌전하군. 다른 놈들은 미친 듯이 욕지거리를 내뱉어서 짜증났었는데.”
조사관이 가지고 들어온 서류 뭉치를 탁자에 아무렇게나 던져놓고는 상천의 맞은편에 앉으며 말했다.
“이름 상천. 나이는 약관. 어디 보자……. 귀주성 백룡문 출신?”
“그렇소.”
조사관의 물음에 상천이 짧게 대답했다.
“귀주성 사람이 뭐하러 합산도문까지 왔지? 귀주성엔 반월도문도 있는데.”
“무투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왔었소.”
“무투대회 참가 기록은 없는데?”
조사관이 가져온 서류를 뒤져 보며 물었다.
“참가하지 못했소. 참가 신청 기간이 지나서.”
“그런데 어떻게 청운대에 들어오게 됐지? 청운대 인원 선발 기준은 무투대회 참가자로 알고 있는데.”
“그건 몰랐소. 다만 장 소저의 제안으로 들어오게 되었소.”
상천의 말에 조사관이 얼굴을 찌푸렸다.
“어떤 제안이지?”
“돈, 그리고 더 큰 무림.”
“더 큰 무림?”
조사관의 물음에 상천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럼 아가씨는 어떻게 만났지?”
“우연히.”
“우연?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일부러 접근한 건 아니고?”
“아니오.”
“그러지 말고 얼른 불어봐. 왜 그랬지?”
조사관의 물음에 상천이 무덤덤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이미 자신을 이 사건의 배후로 생각하고 하는 질문이기 때문이었다.
“빨리 불어! 왜 그랬어!”
“무슨 말이오?”
“하아…….”
상천의 대답에 조사관이 짜증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머리를 몇 번 긁더니 상천을 보며 조곤조곤 말했다.
“시간 끌지 말자고. 다른 놈들 전부 다 혐의가 없어. 아니, 혐의가 있어도 불지 않았어. 네놈이 마지막이다. 네놈한테서 혐의가 나와야 빨리 끝내고 쉴 거 아냐?”
상천은 화가 났다.
자신이 편하고자 죄없는 자신에게 죄를 덮어씌우려는 것인가?
‘이게 더 큰 무림이오?’
상천의 실망은 더 커져만 갔다.
다른 대원들의 조사 시간보다 상천의 조사 시간은 배 이상 걸렸다.
죄가 없는 자에게서 없는 죄를 캐내려 하다 보니 시간이 더 걸릴 수밖에 없었다.
독방으로 돌아온 상천은 나가기 전과 마찬가지로 가만히 앉아 있었다.
다만 그의 두 눈에는 독기가 조금 서려 있었다.
***
“조사는 어떻게 됐지?”
“모두 혐의를 부인하고 있습니다.”
갈위의 대답에 집무실에서 업무를 보던 장우량이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곧 표정을 풀고 말을 이었다.
“당연하겠지. 곧바로 실토할 자가 어디 있겠는가.”
“더 심문하라고 하겠습니다.”
“고문이 필요하다면 그렇게 하라고 해.”
장우량의 말에 갈위가 놀라 그를 바라보았다.
“고문… 말입니까?”
“그래, 고문. 두 번 말하게 하지 말게.”
장우량의 날 선 한마디에 갈위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집무실을 나섰다.
***
장여진은 하루가 멀다 하고 대원들을 찾았다.
찾아가 봤자 원망 섞인 말밖에는 없었지만 그래도 그녀는 꿋꿋하게 그들을 찾았다.
대원들이 감금된 지 삼 일째 되는 날.
그녀는 보고 말았다.
고문을 받아 녹초가 되어 다시 감금되는 대원들의 모습을.
그녀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다시 장우량을 찾아갔다.
쾅!
장여진이 거칠게 장우량의 집무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처음 있는 일이었지만 장우량의 표정에는 조금의 변화도 없었다.
“고문이라뇨!”
“필요하다면 해야지.”
“아버지!”
장여진이 크게 소리쳤다.
지금까지 알고 있던 아버지의 모습과는 다른 차갑고 잔인한 모습에 실망도 했고 너무 화가 나기도 했기 때문이다.
“우리 문파의 명예가 걸린 일이다. 본산 내에서 발생한 일이라면 어떻게 해서든 밖으로 흘러나가지 않게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번 사건이 본산이 아닌 지부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점이다. 다른 문파에서 모를 것 같더냐? 천만에! 이미 다 알고 있을 게다. 그러면서 겉으로 티내지 않고 뒤에서 조롱하고 있겠지. 우리 합산도문을! 그것밖에 안 된다고. 그러니 흉수를 색출해 내야만 한다. 흉수를 찾아내서 본때를 보여주고 공표해야 한다. 합산도문을 건드리면 이렇게 된다고. 아무리 숨어서 일을 벌이려고 해도 다 찾아낼 수 있다고! 그래야 우리의 위상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어. 그러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죄없는 사람에게 고문이라뇨!”
“그렇게 해서라도 찾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장우량의 말에 장여진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잠시 가만히 있던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고문에 못 이겨서… 죄없는 사람이 죄를 인정하면… 그래서 죽으면… 그래도 괜찮으신가요?”
장여진의 물음에 장우량은 침묵했다.
긍정의 뜻이리라.
“…알았어요, 아버지의 뜻.”
그렇게 말한 장여진이 몸을 돌려 집무실을 나가려 할 때, 갈위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장여진은 그에게서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낭인들 중 한 명이 자백했습니다.”
장여진은 곧장 감찰단으로 달려갔다.
‘그럴 리 없어, 그럴 리가. 고문에 못 이겨서 그랬을 거야.’
감찰단으로 곧장 들어가려던 장여진은 자신을 붙잡는 여소정을 보며 말했다.
“놔.”
“대주님.”
“놓으라고!”
장여진이 거칠게 그녀의 팔을 뿌리쳤다.
“못 들어가게 합니다.”
“그래서?”
여소정의 말에 장여진이 감찰단 입구를 바라보았다.
굳게 닫힌 문.
그리고 그 앞을 차가운 표정으로 지키고 서 있는 무사들. 장여진은 그들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래도 들어가야겠어.”
“대주님.”
여소정이 장여진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녀의 마음을 왜 모르겠는가. 자신도 이렇게 가슴이 아픈데.
자신보다 더 대원들을 생각했던 장여진이니 그 아픔은 훨씬 더할 것이다.
“이건 아니잖아…….”
장여진이 고개를 숙이고 울먹이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대원 중 한 명이 자백했대. 들었어?”
“예.”
“고문을 했대, 고문을. 얼마나 힘들었겠어? 참다못해 거짓으로 말했겠지.”
끼이익!
감찰단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녹초가 된 청운대원들이 밖으로 나왔다.
한 명, 두 명, 세 명… 아홉 명.
단 한 사람, 가릉을 제외한 나머지 아홉 명이 서로가 서로를 부축하며 밖으로 나왔다.
절뚝이는 사람, 피가 흐르는 사람, 잔뜩 인상을 찌푸린 사람.
그들의 얼굴 하나하나가 장여진의 가슴을 찔렀다.
장여진이 그들에게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꾹 참으며 말했다.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대원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잠시 그녀를 보고 가만히 서 있던 그들은 아무런 질책도 하지 않고 그냥 장여진을 지나쳐 갔다.
“치료라도… 치료라도 하고 가세요!”
장여진이 자신을 지나쳐 가는 대원들을 향해 외쳤다. 하지만 그들은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고 걸었다.
털썩.
장여진이 주저앉았다.
그녀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감찰단을 나온 청운대원들은 자신들의 짐을 챙기기 위해 숙소로 향했다.
숙소로 돌아온 그들은 자신들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또 한 번 좌절감을 맛볼 수밖에 없었다.
난장판도 이런 난장판이 없었다.
아마도 자신들이 조사를 받는 동안 짐을 뒤진 모양이었다.
넋이 빠진 표정으로 난장판이 된 숙소 안으로 터벅터벅 걸어 들어간 그들은 침상 위에 쓰러지듯 몸을 뉘었다.
여기저기서 고통에 찬 신음이 터져 나왔다.
“크크크크크!”
누군가가 웃었다. 그리고 그 웃음이 전염되기라도 한 듯 순식간에 숙소 전체로 퍼져 나갔다.
“크크크크!”
“크크크크!”
허탈, 허무가 고스란히 담긴 웃음.
그 웃음 사이에 누군가의 중얼거림이 섞여들었다.
“크크크크! 힘이 없으면 죽어야지. 그게 무림이지. 크크크크! 암! 그렇고말고! 크크크크!”
그들의 눈에서는 어느새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