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단월검제-41화 (41/141)

#041화.

날이 상당히 추워졌다.

그 때문인지 연무장에서 수련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점점 줄어갔다.

장여진 역시 날 추운데 밖에서 수련하는 대원들을 생각해 다른 문도들이 거의 사용하지 않는 남아 있는 지하 연무장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아내었다.

그 때문에 대부분의 대원들은 장여진이 마련해 준 지하 연무장에서 수련을 했다.

한 달의 시간 동안 제법 맹호도법에 익숙해진 대원들은 좀 더 제대로 된 위력을 발휘하고 싶은 욕심에 자신들의 원래 무공이 아닌 맹호도법의 수련에 더욱 열을 올렸다.

그렇게 대원들이 지하 연무장에서 수련을 하고 있을 때, 상천만은 야외에 있는 기존의 연무장에서 수련을 했다.

녹엽 등이 함께 지하 연무장에서 수련을 하자고 했지만 상천은 고집을 부리며 야외에서 수련을 했다.

상천이 지하 연무장에 가보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지하에 있다 보니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숨이 막힐 정도로 답답했다.

그 이후부터 상천은 야외에서 수련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물론 그 이유 뿐만은 아니었다.

혼자 조용히 집중해서 수련을 하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은 맹호도법의 수련에만 매진했지만 상천은 어디까지나 단월검을 발전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맹호도법을 수련했다.

그렇게 상천의 단월검은 점점 발전하고 있었다.

맹호도법을 배우고 정확히 한 달 보름이 지난 날.

전날 내린 비 때문에 날이 갑자기 추워져 세상이 꽁꽁 얼어붙었다.

입김이 허공으로 날아오르는 추운 날임에도 상천은 연무장으로 나갔다.

“역시 젊은 것이 좋구만! 난 이런 날엔 뼈마디가 시리던데.”

숙소를 나서는 그를 보며 뒤에서 금년 서른다섯 살의 녹엽이 중얼거렸다.

그러자 다른 쪽에 있던 가릉이 중얼거렸다.

“서른다섯이 벌써 그러면……. 난 서른여덟인데.”

물론 크게 중얼거리지는 못했다. 녹엽의 눈치를 보며 아주 작은 목소리로, 자신만 들릴 정도의 크기로 투덜거린 그였다.

연무장에 선 상천은 가만히 서있었다. 그의 손에는 박도가 아닌 검이 들려 있었다.

‘맹호도법의 직선적이고 파괴적인 부분을 단월검에 융화시킬 수만 있다면…….’

상천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지금 갑자기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맹호도법의 전반 사 초식과 후반 삼 초식을 모두 배운 이후에 떠올린 생각이었고, 그동안 환영을 만들어내어 수없이 펼쳐 보았다.

물론 그러면서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정도 소기의 성과를 달성한 상태였다.

이제 문제는 그것을 실제로 펼쳐 보는 것만 남은 상태였다.

“후우…….”

상천이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는 검을 세워 기수식을 취했다.

그런데 기수식부터 그전까지와는 달랐다.

그동안 단월검을 발전시켜 오면서 그에 맞게 기수식도 변한 것이다.

“흐읍!”

쒜엑!

상천이 숨을 크게 들이마심과 동시에 검을 휘둘렀다.

제일초식 삭풍이 그의 손에서 펼쳐졌다.

처음 배웠을 때에는 사선으로 내리긋는 동작 하나였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그 하나의 동작에 그동안 상천이 보고 느낀 것을 바탕으로 한 몇 가지의 식이 붙어 복잡하면서도 위력을 배가시킨 새로운 초식으로 재탄생한 상태였다.

상천의 검은 멈추지 않았다.

두 번째 초식 뇌우, 세 번째 초식 겁화를 거쳐 마지막 초식인 역천(逆天)까지 쉬지 않고 펼쳐졌다.

모든 초식이 처음 그가 익힐 때와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그전에는 뼈에 가죽이 붙어 있는 상태였다면, 지금은 근육과 살이 붙어 보기 좋은 모습이 되어 있었다.

“저 녀석, 날 추운데 용쓰는구먼.”

“…….”

상천이 연무장으로 나간 후 조용히 숙소를 나와 지붕 위로 올라간 녹엽과 서기종은 연무장에서 상천이 수련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날 낭호와 싸웠을 때 보여줬던 검법하고는 조금 다른 것 같지 않아?”

상천이 펼치는 단월검을 지켜보던 녹엽이 서기종에게 물었다. 그에 서기종은 말없이 고개만 한 번 끄덕였다.

“그때 제대로 안 보여준 건가, 아니면 그사이에 달라진 건가?”

“전자에 좀 더 무게를 두고 싶군.”

“아무래도 그렇겠지?”

지금까지 상천이 계속해서 단월검을 발전시켜 왔다는 것을 모르는 녹엽과 서기종은 낭호와의 싸움에서 모든 것을 보여주지 않았다는 쪽으로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생각보다 더 대단한 놈이잖아? 이젠 나도 몸 좀 사려야겠는데?”

녹엽이 약한 소리를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의 표정과 목소리에는 여유가 있었다. 대단하긴 하지만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었다.

“얕보지 않는 게 좋을 거다.”

서기종이 녹엽의 생각을 꿰뚫어 보고 말했다. 그에 발끈한 녹엽이 한마디 했다.

“내가 말은 이렇게 해도 실전에선 얼마나 진지하고 신중한지 알아?”

“그래서 결승에서 그런 실수를 했나?”

“…….”

서기종의 한마디에 녹엽은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날 한 실수는 지금까지 살면서 평생 한 실수 중 최악이었다.

“어쨌든 저놈, 나한테는 안 돼.”

“…….”

녹엽의 말에 대꾸할 필요도 느끼지 못했는지 서기종은 입을 꾹 다문 채 상천이 수련하는 모습을 계속해서 지켜보았다.

‘후우……. 아직 부족해.’

상천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숙소 건물 지붕 위에 있는 녹엽과 서기종이 들었으면 어이없어할 이야기였지만 그것이 상천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지금 펼친 단월검에는 비단 맹호도법의 직선적이고 파괴적인 부분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낭호가 보여주었던 연검의 부드러우면서도 날카로움까지 담아내었다.

하지만 한 번에 두 가지를 접목시켜 펼쳐 내려니 환영이 펼치는 것을 수천 번 보며 관찰하는 것과는 또 다른 어려움이 있었다.

지금은 그저 그전의 단월검에 두 가지 색깔을 겉핥기식으로 살짝 입힌 것에 불과했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지. 제대로 녹여내기만 하면 한 계단 올라설 수 있을 거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은 상천이 숙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상천이 숙소로 들어가고 난 후.

낭호가 연무장에 나타났다.

연무장에 올라선 그의 표정은 잔뜩 구겨져 있었다. 손에는 연검이 으스러지도록 꽉 쥐고 있었다.

“전력을 다한 것이 아니었던가?”

낭호가 분노에 몸을 떨었다.

“저거 저놈도 다 보고 있었던 모양일세.”

녹엽이 연무장에 나타난 낭호를 보며 중얼거렸다. 서기종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하긴, 어지간히 분하기도 하겠지. 방금 본 검법이면 낭호는 상대도 안 될 테니.”

“어쩌면…….”

녹엽의 말에 서기종이 입을 열었다.

“어쩌면이 아니라 확실한 거지. 방금 봤잖아?”

“낭호 얘기를 하는 게 아니다.”

“음?”

서기종의 말에 녹엽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지금 우리도 질 수 있다는 얘기를 하려는 거야? 그런 거야?”

녹엽의 질문에 서기종이 그를 힐끗 쳐다보았다.

“방금 보지 않았나?”

“봤지. 봤는데……. 젠장!”

녹엽이 짜증을 냈다.

그도 모르지 않았다. 상천이 단월검을 펼치는 것을 보며 자신도 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이제 고작 스무 살밖에 안 된 어린놈이고 자신은 그보다 열다섯 살이나 더 많았다.

십오 년의 경험 차이는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있었다.

하지만 서기종은 냉정하게 질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더럽구만.”

녹엽이 중얼거렸다.

그에 동의한다는 듯 서기종도 작게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상천이 청운대에 합류한 지 정확히 두 달째 되는 날.

청운대에 첫 번째 임무가 떨어졌다.

임무를 받고 대원들을 찾아온 장여진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다.

“임무예요.”

장여진의 한마디에 앞에 도열해 있는 대원들의 표정도 딱딱하게 굳었다.

어떻게 보면 이곳 합산도문에 와서 그동안 편하게 먹고 잤다. 지금까지 이런 호사를 누려본 것이 언제였나 싶을 정도로 편한 생활이었다.

처음에는 마냥 좋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눈치가 보이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먹고 자고 하려니 다른 문도들이 자신들을 우습게 보는 것도 같았다.

그런데 임무가 내려졌단다.

지금까지 먹은 밥값 전부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의 밥값은 할 기회가 온 것이다.

대원들의 얼굴에 기대감이 드러났다.

“이번 임무는 어렵지 않은 거예요. 전양(田陽)현에서 무력 충돌이 벌어졌다고 하더군요. 근처에 있는 지부에서 조사를 했지만 아무래도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 모양이에요. 우리가 가서 조사를 할 거예요.”

장여진의 말에 대원들의 표정에 약간 실망한 기색이 드러났다.

임무라고 해서 시원하게 칼부림 한번 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단순 조사라고 하니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멀다.

전양현은 광서성과 운남성의 경계와 가까운 곳이었다.

이곳 합산에서 가는 데에만 족히 보름은 잡아야 할 거리다.

그런 곳까지 가서 따분하게 조사나 하고 있어야 하다니.

대원들의 얼굴에서 실망감이 묻어나는 것은 당연했다.

그런 기색을 읽은 장여진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너무 실망할 것 없어요. 이번 무력충돌은 단순한 충돌이 아닌 것 같아요. 일단 흔적이 많지 않고 목격자가 없어요. 우연히 본 사람이 없을 수도 있지만 죽은 것일 수도 있고요.”

“그것만 가지고는 단순한 일이 아니라고 단정 지을 수 없지 않습니까?”

녹엽이었다. 그의 물음에 몇몇 대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광서성은 물론이고 운남성 일부는 합산도문의 영역이에요. 그런데 그곳에서 무력충돌이 벌어졌어요. 단순한 일이면 지부에서 처리하고 결과 보고만 올라왔겠지만 지원 요청이 들어왔다는 건 다른 무언가가 있다는 뜻 아니겠어요? 자세한 건 가봐야 정확해지겠지만 단순한 무력충돌은 아닌 것 같네요.”

장여진의 말은 설득력이 있었다. 그 때문인지 대원들의 얼굴에 드러났던 실망감이 조금은 사라진 상태였다.

“언제 출발합니까?”

“내일 출발할 거예요. 그러니 오늘은 푹 쉬어두도록 하세요. 이상입니다.”

장여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대원들이 숙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상천, 잠시만요.”

숙소로 발걸음을 옮기던 상천이 장여진의 부름에 발걸음을 멈췄다.

“무슨 일이십니까?”

“따라오세요. 전해줄 것이 있어요.”

“알겠습니다.”

장여진의 말에 상천이 그녀의 뒤를 따랐다. 숙소에 들어가려다가 그 광경을 본 녹엽이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역시… 대주랑 저 녀석이랑 뭐가 있다니까? 수상해.”

상천을 데리고 자신의 집무실로 온 장여진은 그에게 자리를 권했다.

“앉아요.”

그녀가 권하는 자리에 앉은 상천은 그녀가 따라주는 찻잔을 받아 들었다.

“생활은 할 만한가요?”

“그렇소.”

집무실에 단둘이 있는 상황이기에 상천은 그전처럼 평대를 했다.

“도법은요? 어렵지는 않은가요?”

“그럭저럭 익힐 만하오.”

“다행이네요. 잘 적응하고 있어서.”

그렇게 말한 장여진이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줄 것이 무엇이오?”

“아, 잠시만요.”

상천의 말에 손바닥으로 자신의 이마를 살짝 친 장여진이 책상으로 가서 서찰 하나를 들고 왔다.

“백룡문에서 온 거예요.”

백룡문에서 온 서찰이라는 장여진의 말에 상천은 서둘러 그것을 받아 펼쳤다.

그 안에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짧은 내용의 글이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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