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단월검제-34화 (34/141)

#034화.

저녁때가 되고 일을 나갔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돌아왔다.

백룡문으로 돌아온 그들의 반응은 마치 짠 것처럼 똑같았다. 여느 때처럼 피곤한 상태로 돌아와서 방 안으로 들어온 그들은 상천의 얼굴을 보며 화들짝 놀랐다.

그다음 단계가 바로 반가움에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이었다. 하나같이 똑같은 반응에 상천은 웃음을 참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가장 늦게 돌아온 병목을 마지막으로 모두 모인 그들은 상천만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백룡문을 떠나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듣고 싶은 것이다.

그런 그들의 시선에 어색한 웃음을 흘린 상천은 결론부터 이야기했다.

“일단… 돈은 못 벌어왔어.”

“그런 건 상관없어. 괜찮아.”

미안한 듯 말하는 상천에게 병목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그들에게 있어서 상천이 돈을 벌고 못 벌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무투대회에 나간다고 했으니 무투대회에 참가는 했는지, 참가했으면 어떻게 되었는지 등이 초미의 관심사였다.

“무투대회도 참가 못했어.”

“아…….”

배동삼이 아쉽다는 듯 탄성을 내뱉었다.

내심 상천이 무투대회에 나가서 직접 대결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것이다.

“대신 무투대회는 보고 왔어.”

“그래? 어땠어? 응?”

배동삼이 엉덩이를 상천 쪽으로 당겨 앉으며 눈을 초롱초롱 빛냈다.

“대단했지. 내가 익힌 무공과는 전혀 다른 무공을 익힌 사람들의 대결을 보는 것 자체가 엄청 신기했어.”

“오〜!”

배동삼이 탄성을 질렀다.

그것을 시작으로 무투대회를 보고 온 상천의 이야기가 계속되었다.

특히나 백룡문을 찾아왔던 막천풍과의 비무 이야기를 할 때에는 모두가 숨소리도 내지 않고 들었다.

밤이 깊어가고 있음에도, 피로가 쌓여 있음에도 이야기를 해주는 상천이나 듣는 사람들이나 전부 피곤한 것도 잊은 채 이야기꽃을 피웠다.

다음날.

전날 밤에 상천의 이야기를 듣느라 새벽이 되어서야 잠이 든 탓인지 일찍 일어나 일을 하러 가야 하는 사람들도 쉽게 일어나지 못했다.

뒤늦게 일어난 그들은 늦었다며 식사도 하지 못하고 부랴부랴 백룡문을 나섰다.

모두 출근을 시키고 백룡문에 남은 인원은 병목과 상천, 그리고 아직 꿈나라를 헤매고 있는 아이들이 전부였다.

병목과 대청마루에 나란히 앉은 상천이 말했다.

“수련은 다들 잘했어?”

“어. 아이들도 이제는 수련하는 게 재밌나 봐. 잘 따라오고 있어.”

“다행이네. 걱정 많이 했는데.”

상천의 말에 병목이 웃으며 덧붙였다.

“잡초도 열심히 뽑았다.”

“하하하! 그런 것 같은데?”

상천이 웃으며 말했다. 실제로 백룡문은 상천과 종삼 둘이 살 때보다 훨씬 더 잡초 없이 깔끔했다.

“이제 슬슬 애들도 깨워야겠다. 잠깐만.”

그렇게 말하며 병목이 아이들을 깨우러 들어갔다.

상천은 혼자 대청마루에 앉아 백룡문을 쓱 훑어보았다. 자기들끼리 나름 이곳저곳 보수를 했는지 곳곳에 손본 흔적들이 있었다.

전문 목수나 인부를 불러 한 것이 아닌지라 어설프기는 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노력하고 생각한 것이 보여 상천의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번졌다.

하지만 이내 상천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자신을 보고 엄청 반가워하고 이곳에서 지내는 것을 좋아하는 이들을 놔두고 장여진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 때문이었다.

처음에 백룡문으로 돌아올 때에는 이들과 이야기를 해보고 결정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막상 돌아오고 그들을 보니 차마 입 밖으로 내기가 어려웠다.

“하아…….”

한숨을 내쉰 상천은 얼른 표정을 바꾸었다. 병목이 아이들을 깨워 데리고 나온 것이다.

“잘들 잤니?”

상천이 웃으며 아이들에게 물었다. 하지만 아직 비몽사몽인 상태인지라 상천의 물음에 제대로 대답하는 아이들은 없었다.

“다들 대답해야지?”

병목이 대답 없는 아이들에게 부드럽게 말했다. 그러자 아이들이 마치 옹알이하듯이 잘 알아듣지 못할 말로 저마다 대답했다.

“일단 씻기고 밥부터 먹여야겠다. 그래야 제대로 수련이라도 좀 하지.”

“그래, 먹을 건 있어?”

“그럼! 우리도 돈 벌잖아. 그리고 일하러 간 애들이 얻어오는 음식들도 있어.”

“얻어와?”

상천의 물음에 병목이 웃으며 대답했다.

“얻어온다는 게 예전처럼 구걸을 한다는 게 아니고, 우리 사정 아는 분들이 먹을거리 조금씩 주시는 거야. 걱정 마.”

병목의 말에 상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자리를 비웠다는 사실 때문에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었던 상천이다.

병목은 아이들을 차례로 씻겼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혼자서도 알아서 씻을 수 있는 아이들이었지만 몇몇 아이들은 그렇지 않았다.

아이들을 다 씻긴 병목은 아이들을 방으로 들여보낸 뒤 서둘러 주방에 가서 아침 식사를 차려가지고 나왔다.

“엄마 같네.”

그 모습을 보며 상천이 불쑥 한마디를 내뱉었다. 그 말에 병목이 웃으면서 대꾸했다.

“별수 있겠어? 너도 같이 먹어. 아까 안 먹었잖아.”

“아냐. 괜찮아. 애들 먹여.”

“괜찮겠어?”

“어, 괜찮아.”

“알았어. 그럼.”

상천의 말에 병목은 서둘러 밥상을 들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병목과 아이들이 전쟁을 치르는 소리가 밖으로 들렸다.

“또 흘렸어?”

“얼른 씹어! 맨날 안 씹고 입에 물고 있지!”

“뱉지 마! 지저분하게 이게 뭐야!”

방 안에서 흘러나오는 병목의 목소리를 들으며 상천은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식사를 마친 아이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쪼르르 달려 연무장 위로 올라가 섰다.

그리고 밥상을 치운 병목이 연무장 위에 올라갔다.

“자! 다들 앉아야지?”

병목의 한마디에 아이들이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가부좌를 틀었다.

어린 몸집으로는 힘들 법도 한데 누구 하나 인상을 찌푸리는 법이 없었다. 그만큼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자〜 그럼 숨 크게 들이마시고! 눈 뜨지 말고!”

병목의 말에 아이들이 두 눈을 꼭 감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내뱉고〜”

라고 병목이 말하면 일제히 내뱉었고,

“다시 들이마시고〜”

라고 하면 다시 일제히 숨을 들이마셨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상천의 입가에 번진 미소가 사라질 줄을 몰랐다.

“자! 이제 아랫배 쪽에 따뜻한 걸 움직여 봐야지? 이젠 다들 혼자 할 수 있지? 해봐!”

병목의 말이 끝나고 잠시 후,

아이들의 숨소리 외에 다른 소리는 연무장 위에 들리지 않았다.

“잘 가르치는데?”

아이들이 운기에 몰입하자 상천이 병목에게 말했다. 그러자 병목이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하다 보니 되더라고.”

“처음에는 시범 보이는 것도 부담스러워했으면서.”

상천의 말에 병목이 능청스런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내가 그랬었나? 난 기억 안 나는데?”

“하하하!”

그런 병목의 대꾸에 상천이 기분 좋게 웃었다.

“형은? 형은 수련 잘돼가?”

“뭐, 그럭저럭.”

병목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그에 상천이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그런데 표정이 왜 그래?”

“아니, 뭐, 그냥……. 수련을 할 시간이 많지는 않으니까. 열심히 한다고는 했는데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고.”

병목의 말에 상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비슷한 경험을 했기 때문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그럼 이따가 확인 한번 해봐야겠네.”

“확인?”

병목의 물음에 상천은 씩 웃기만 할 뿐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런 상천의 반응에 병목은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다.

아이들의 규화공 수련이 모두 끝났다.

하나둘씩 눈을 뜨는 아이들에게 병목은 휴식 시간을 주었다. 연무장을 내려가 뛰노는 아이들을 한번 쳐다본 병목이 상천에게 물었다.

“확인해 보겠다는 말이 무슨 뜻이야? 지금까지 수련한 걸 앞에서 해보라는 거야?”

병목의 물음에 상천이 고개를 저었다.

“그럼?”

“일단 연무장으로 올라가자.”

그렇게 말한 상천이 먼저 연무장에 올랐다. 오랜만에 연무장에 오르니 감회가 새로웠다.

상천이 연무장에 오르고 병목도 연무장에 올랐다. 자신에게 다가오려는 병목을 상천이 막아 세웠다.

“잠깐만. 거기 서봐.”

“음? 여기?”

상천의 말에 병목이 우뚝 멈춰 섰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병목과 마주 보고 선 상천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덤벼봐.”

“뭐?”

상천의 말에 깜짝 놀란 병목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덤비라니? 지금 싸우자는 거야?”

“하하하!”

병목이 침까지 삼키며 긴장한 목소리로 묻자 상천이 크게 웃었다. 그런 상천을 병목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하하하! 싸우다니, 무슨 소리야?”

“덤비라면서?”

“이건 싸우는 게 아니라 대련이라고 하는 거야, 대련.”

“대련?”

대련이라는 말을 처음 들어본 병목이 상천에게 되물었다.

“어. 두 사람이 서로 무공을 주고받으면서 수련하는 걸 대련이라고 하는 거야.”

“그래? 몰랐네. 하하!”

상천의 설명을 듣고 나서 방금 전 자신이 보였던 행동을 떠올리고는 낯 뜨거운 듯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자, 얼른 덤벼봐.”

“후우…….”

상천의 말에 병목이 크게 심호흡을 한번 했다.

“긴장하지 말고. 치고받고 싸우는 거 아니니까. 난 형이 백룡권을 펼치면 막아내거나 피해내기만 할 거야.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알았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 병목이 주먹을 쥐고는 자세를 취했다.

긴장하기는 했지만 진지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병목을 보며 상천은 내심 감탄했다.

그때, 병목이 움직였다.

변초나 허초 이런 것 없이 그저 초식에 충실한 출수였다.

적당한 속도와 위력.

상천은 부드럽게 움직이며 병목의 주먹을 받아내었다.

탁! 탁! 타탁! 타탁! 탁! 탁!

상천의 손바닥이 날아드는 병목의 주먹을 가볍게 쳐내었다. 너무 심하게 쳐내면 다음 초식을 제대로 쳐내지 못할 것 같아 약하게 쳐냈다.

병목은 이를 악물고 최선을 다해 초식들을 펼쳐 내었다.

아직까지 초식의 순서를 섞을 생각은 하지 못했고 그저 백룡권 초식을 순서대로 펼쳐 내는 것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일초!”

상천의 외침에 병목은 얼떨결에 백룡권 첫 번째 초식을 펼쳤다.

“삼초!”

일초식이 끝나기가 무섭게 상천이 다시 한 번 외쳤다. 그제야 병목은 상천이 초식을 섞는 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 번도 해본 적은 없지만 상천의 말대로 백룡권 일초식 후에 삼초식을 연결했다.

“잘했어!”

상천의 칭찬이 이어졌다. 병목은 굉장히 기분이 좋아졌다.

두 사람 모두 멈춰 섰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지친 병목이 먼저 멈췄다.

“힘들어?”

“헉! 헉! 조금!”

병목이 거친 숨을 토해내며 말했다. 하지만 땀을 흘리는 것으로 보아 조금 힘든 정도가 아니었다.

“수련은 잘되어 있어. 단순히 몸으로만, 근력으로만 초식을 펼쳐 내서 힘든 거야. 내력을 운용하면 괜찮아질 문제니까 걱정 마.”

상천의 격려에 병목이 헥헥거리면서도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애들도 확인 작업을 거쳐야겠지?”

그렇게 말하며 상천이 다시 한 번 웃었다.

병목 역시 미소를 지었다.

그날 저녁.

일을 마치고 돌아온 아이들은 피곤함 속에서 상천의 확인 작업을 거쳐야 했다.

덕분에 전날에 비해 훨씬 더 일찍 잠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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