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단월검제-28화 (28/141)

#028화.

막천풍과 상천은 사흘 만에 다시 만났다.

물론 막천풍은 그동안에도 상천의 주변을 기웃거리며 관찰을 하곤 했지만 상천은 그런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지난 대결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들을 계속해서 뇌리에 그리는데 정신이 팔려있었기 때문이었다.

워낙 집중하고 있다 보니 주변에서 무슨 소리가 나도 잘 알아차리지 못했다.

“왔군. 잘 지냈소?”

먼저 와 있던 막천풍이 자신 쪽으로 다가오는 상천을 반갑게 맞았다.

살짝 상기된 표정을 지은 채 다가오는 상천을 보자 막천풍은 자신도 모르게 미소가 번졌다.

이번에는 비무를 보며 또 어떤 표정을 지을지 벌써부터 궁금했기 때문이다.

“예, 잘 지냈습니다.”

상천이 그의 곁에 앉으며 대답했다.

“오늘도 사람이 많군요.”

상천이 꽉 들어찬 관객석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러자 막천풍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아무래도 그렇겠지. 이제 점점 흥미진진한 대결들이 많아질 텐데 이왕 보는 거 재밌는 걸 보는 게 좋지 않소?”

그 말에 상천도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첫 번째 대결은 곡언무와 노각이군. 둘 다 낭인들 사이에서는 검공으로 꽤나 이름이 있는 사람들이오.”

막천풍이 비무대 위로 올라오는 사람들을 보며 상천에게 설명했다.

그에 상천은 대결을 펼칠 두 사람에게 시선을 고정시킨 채 고개만 끄덕였다.

그런 상천을 보며 막천풍은 미소를 지은 채 살짝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짧은 시간 동안 본 것이 전부지만, 상천이 이런 반응을 보인다면 더 이상 말을 걸어도 대답을 들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비무대에 올라와 마주 선 곡언무와 노각은 짧은 목례 후 서로에게 검을 겨누었다.

조금 전과 달리 상대를 죽이겠다는 듯한 각오와 살기가 주변을 한차례 휩쓸고 지나갔다.

상천은 더욱더 두 사람의 대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과연 곡언무가 노각의 공세를 막아낼 수 있을까? 내가 본 초식이 전부가 아닐 수도 있지만 그게 전부라면…….’

이미 두 사람의 대결을 한 번씩 본 상천은 머릿속으로 결과를 예측해 보았다.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었지만 상천은 곡언무가 어려운 대결을 펼칠 것이라고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누가 이길 것 같습니까?”

두 사람의 대결이 시작되는 찰나.

상천이 막천풍에게 조심스럽게 결과에 대해 물었다.

상천의 질문에 막천풍은 놀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집중하면 말도 안 하고 듣지도 못하는 줄 알았는데.”

“두 사람의 무공은 이미 한 번씩 봤으니까요.”

상천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반대로 내가 묻지. 그럼 그대가 보기에는 누가 이길 것 같소?”

막천풍의 질문에 상천이 잠시 동안 입을 다물고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노각. 분명 노각이 이깁니다.”

“노각이라고?”

막천풍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가 알기로 이름값이나 들려오는 실력으로는 당연히 곡언무가 반 수 정도 우위에 있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는가?”

막천풍의 물음에 상천이 자신의 생각을 술술 풀어놓기 시작했다.

“노각과 곡언무의 검공은 그 위력이 상당합니다. 노각의 검공은 좀 더 날카롭고 공세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곡언무는 공격과 방어가 적절히 조화된 검공을 구사합니다.”

“그렇다면 곡언무의 검공이 더 안정적이라는 뜻 아니겠소?”

그 물음에 상천은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언뜻 그렇게 보일 수 있지만 곡언무의 검공에는 허점이 많습니다. 자세히 말을 하자면 검공 자체에 결함이 있거나 아니면 곡언무의 해후가 부족하다는 뜻이죠.”

상천의 대답을 들은 막천풍이 비무대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비무대 위에서는 노각이 위력적인 검공으로 곡언무를 압박하고 있었다.

하지만 밀리는 듯 보이는 곡언무는 침착하게 노각의 공세에 대응하고 있었다.

“지금 흐름은 그렇지가 않은데…….”

“곧 바뀔 겁니다. 곡언무는 검공을 오래 펼치는 데 부담을 느끼고 있습니다. 내력의 깊이가 얕거나 다른 문제가 있을 겁니다.”

“다른 문제?”

“네. 검공은 주(主)가 되는 초식과 보(保)가 초식으로 구성되어 있게 마련입니다.”

“그렇지.”

“그런데 곡언무가 펼치는 검공은 주초식을 보초식이 따라가지 못합니다. 말 그대로 무공 자체에 구멍이 많거나 검공에 대한 해후가 얕기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곡언무의 검공이 밀릴 것이라고 예측하는 건 조금 비약 아니오?”

막천풍의 물음에 상천이 고개를 저었다.

“주초식끼리의 맞대결에서는 곡언무가 노각에게 밀릴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보초식으로 시선을 옮기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곡언무의 보초식이 노각의 보초식보다 못하다?”

“그렇습니다.”

“음…….”

상천의 분석에 막천풍이 턱을 매만지며 비무대를 바라보았다.

아직까지도 곡언무와 노각의 대결은 대등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게다가 흐름이 쉽게 바뀔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그럴싸한 분석이지만…….”

와아아아!

막천풍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하려던 그 순간, 관중들의 함성이 커졌다.

단순히 즐겁고 신나서 내지르는 함성이 아니었다.

경악, 놀람이 가득 담겨 있는 함성이었다.

상천과 막천풍이 입을 다물고 두 사람의 대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함성은 노각의 공세 때문이었다.

지독하게 방어는 배제하고 오로지 공격을 추구하는 노각의 검공이 공수를 겸비한 곡언무의 검공을 깨뜨리기 시작한 것이다.

곡언무가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고, 반격은 생각도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점차 인상이 찌푸려지기 시작했으며, 노각의 공세를 막기 위해 열심히 휘두르는 검은 점차 스스로의 길을 잃어가고 있었다.

“음…….”

막천풍은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비무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말 그대로 순식간에 비무의 흐름이 바뀌었기 때문이었다.

반면 상천은 그저 덤덤한 시선으로 두 사람의 검을 쫓을 뿐이었다.

‘이 정도로 무공에 대한 해후가 깊단 말인가?’

막천풍은 슬쩍 상천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상천은 그의 시선을 느끼지 못한 듯 대결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아니면 다른 무언가가 있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노각과 곡언무의 대결은 끝이 났다.

끈질긴 공세로 곡언무의 검공을 깨뜨린 노각이 결국에는 그의 허벅지에 자상을 만들어내었다.

그렇게 되자 곡언무는 결국 항복을 선언했고, 두 사람의 대결은 그렇게 노각의 승리로 끝났다.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어.”

상천의 중얼거림이 막천풍의 귀를 파고들었다.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무엇이? 설마 결과 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흐름까지도 예측했단 말인가?’

상천에 대한 막천풍의 호기심과 궁금증이 증폭되었다.

오늘의 대결이 모두 끝났다.

정오가 다 될 무렵 시작된 대회는 몇몇 시합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어둑해질 무렵이 되어서야 끝났다.

석양 노을을 받으며 대회장을 나선 상천은 예전의 상기된 표정이 아닌 진지하게 무언가를 고민하고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이보시오!”

그런 상천에게 다가간 막천풍이 그를 붙잡았다. 상천이 그런 자신을 돌아보자 그가 씩 웃으며 말했다.

“이것도 인연인데, 오늘은 나랑 술 한잔하지 않겠소?”

그렇게 말하는 막천풍을 상천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어지간한 주점은 자리가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으로 꽉 들어차 있었다.

겨우겨우 빈자리가 있는 주점을 찾아 들어간 상천과 막천풍은 자리 고를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눈에 보이는 빈자리에 가서 앉았다.

“술은 좀 하시오?”

“한 번도 안 먹어봤습니다.”

“그렇소?”

막천풍은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어른이라 부를 수 있는 이십 세 정도가 되면 다들 술 한 모금 정도는 해보기 때문이다.

‘여러모로 흥미롭다니까.’

그렇게 생각한 막천풍이 손을 들어 점소이를 불렀다.

“예, 뭘 드릴까요?”

“여기 죽엽청 한 병이랑 닭 요리 아무거나 있으면 좀 가져오너라.”

“옙! 그런데 닭 요리도 제일 빨리 되는 건 이 각 정도 기다리셔야 되는데……. 죽엽청은 요리 나올 때 함께 가져다 드릴까요, 아니면 먼저 드릴까요?”

“어떻게 하겠는가?”

점소이의 물음에 막천풍이 상천을 보며 물었다.

“뭐, 아무렇게나…….”

“그럼 술부터 하지. 먼저 가져오너라.”

“알겠습니다!”

주문을 받은 점소이가 부리나케 주방 쪽으로 달려갔다.

“그러고 보니 우리 통성명 전 아니오? 반갑소. 난 귀주성 여권문의 막천풍이오.”

막천풍이 상천에게 먼저 이름을 밝혔다.

“귀주성에서 오셨습니까? 저도 귀주성에서 왔습니다. 백룡문 상천입니다.”

상천이 웃으며 자신을 밝혔다. 하지만 상천의 말을 듣는 순간 막천풍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었다.

“지금… 백룡문이라고 했소?”

되묻는 막천풍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막천풍의 그런 반응에 상천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렇습니다만? 왜 그러십니까?”

“하하하하!”

막천풍이 허탈하게 웃었다.

그렇게 찾아 헤맨 상천이 눈앞에 있다.

그것도 오늘 만난 것이 아닌 대회 첫날부터 마주쳤다. 또한 그에게 호감도 가지게 되지 않았는가?

그런데 정작 자신은 등잔 밑이 어두운 줄도 모르고 헛물만 켜고 있었으니 이처럼 허탈할 수가 없었다.

“백룡문의 문주 상천이 맞단 말이오?”

“제가 문주인 건 어떻게 아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맞습니다.”

계속해서 자신에 대해 묻는 막천풍을 상천은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렇군.”

막천풍이 그렇게 중얼거릴 때 점소이가 죽엽청을 한 병 가지고 왔다.

“일단 한잔 받으시오.”

막천풍이 술병을 들고 상천의 잔에 술을 채워주었다. 그리고는 상천에게 술병을 건네주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술잔에 술을 채웠다.

“마십시다.”

그렇게 말한 막천풍은 상천과 술잔도 마주치지 않고 단숨에 술을 들이켰다.

술을 처음 마셔보는 상천도 그가 하는 것처럼 술을 단박에 들이켰다.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쓴맛에 상천은 잔뜩 인상을 찌푸렸다.

상천이 술을 마시고 잔을 내려놓는 것까지 보고 있던 막천풍이 별안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그를 상천은 ‘왜 이러는 거야?’라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일어서서 잠시 크게 심호흡을 한 막천풍이 갑자기 상천에게 포권을 지어 보였다.

“무, 무슨……?”

그에 당황한 상천이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서며 물었다.

하지만 막천풍은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하지 않고 주점에 있는 사람들에게 다 들릴 정도로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귀주성 여권문의 문주 막천풍이 백룡문의 문주님께 비무를 청하오!”

갑작스레 벌어진 일에 상천은 너무나 당황한 나머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주점 전체가 순간적으로 정적에 휩싸였다.

그 속에서 상천을 바라보는 막천풍의 눈빛에는 진지함을 넘어 결연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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