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6화.
날이 밝았다.
자고 일어난 상천은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어차피 참가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면 이대로 돌아가서 다른 길을 찾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조급한 마음이 사라지고 표정도 부드러워졌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구경이나 하다 가자.’
그렇게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편해진 상천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무투대회가 열리는 곳이라 객잔들마다 사람들이 꽉 차 있었다.
상천이 묵고 있는 객잔도 마찬가지였다.
외곽에 위치해 있고 조금은 허름해 보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사람이 많이 찾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빈방 하나 없이 꽉 차 있는 상태였다.
식사를 위해 식당으로 내려온 상천은 한참을 두리번거린 다음에야 자리를 잡고 앉을 수 있었다.
누군가 식사를 마치고 방금 일어난 듯 식탁 위에는 다 먹은 그릇들이 놓여 있었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상천이 자리를 잡고 앉자 잠시 후, 점소이가 후다닥 달려왔다.
“죄송합니다. 얼른 치워 드리겠습니다. 식사는… 오늘도 같은 것으로 하시겠습니까?”
“그렇게 해줘요.”
“예, 알겠습니다!”
씩씩하게 대답한 점소이가 서둘러 그릇을 포개어 들고는 주방 쪽으로 달려갔다.
그러자 곧바로 다른 점소이가 와서는 젖은 수건으로 식탁을 깨끗이 닦았다.
그들이 하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상천은 다른 사람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사람들 대부분의 얼굴에는 들뜬 기색이 역력했다.
도대체 무투대회를 가지고 무슨 할 말들이 그렇게 많은지 대화 주제의 구 할 이상이 무투대회와 관련된 것이었다.
사실 상천은 무투대회에 대해서 거의 아는 것이 없었다.
그저 참가자들끼리 서로의 무공으로 자웅을 겨뤄 우승자를 배출하는 대회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또한, 무투대회에 참가해서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상천이 알고 있는 것은 그것뿐이었다.
참가자들에게, 그리고 관람객들에게 무투대회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무림 내에서 얼마나 큰 의미를 지니는지 알지 못했다.
그래도 이곳에 와서 준비하는 것, 그리고 사람들의 반응 등을 통해 어렴풋이나마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그래, 잘 보고 돌아가서 얘기해 주자. 좋아할 거야, 다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상천의 앞에 식사가 나왔고, 간단히 요기를 한 그는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객잔을 나섰다.
별로 할 것이 없었음에도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아직’이라고 생각했던 대회 시작이 ‘벌써?’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빠르게 다가왔다.
대회 준비가 막바지에 이르고, 시작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인지 남녕 전체에 활기가 넘쳤다.
여기에 대회에 참가하는 무인들의 묘한 긴장감이 뒤섞여 묘하게 설레는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그런 분위기 때문인지 상천 역시 자신도 모르게 어딘가 들뜬 모습이었다.
괜히 설레고 궁금하고 기대에 부풀어 가슴이 뛰었다.
상천을 비롯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껏 들떠 있는 남녕에 말을 타고 방갓을 쓴 남자가 입성했다.
“큰 도시에 오니 좋구만!”
남녕에 도착하자마자 숨을 한차례 크게 들이마신 그는 호기롭게 외쳤다.
방갓을 쓴 탓에 얼굴의 태반이 가려져 있었지만 조금 드러난 입가에는 미소가 번져 있었다.
“자, 이제 찾아볼까?”
그렇게 중얼거린 그가 천천히 말을 몰았다.
방갓의 사내가 향한 곳은 대회가 열릴 대회장 앞이었다.
그곳에는 이미 이번 무투대회와 관련된 여러 가지를 알려줄 안내원이 배치되어 있었다.
방갓 사내는 그들 중 한 명에게 다가갔다.
“저기, 뭐 좀 물어보겠소.”
“네, 말씀하십시오.”
안내원이 친절하게 대답했다.
“혹시 이번 대회 참가자 중 백룡문의 문주가 있소?”
사내의 물음에 안내원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확인해 드릴 수는 있지만… 무엇 때문에 그러시는지요?”
“이유도 알아야 하오?”
사내의 목소리에 약간의 짜증이 묻어났다.
“혹시나 대회 시작 전에 참가자들에게 변고가 생기는 것을 최대한으로 방지하기 위함입니다.”
“참가자에게 변고가 생겨도 대기자들이 있지 않소?”
“참가자들이 자발적으로 벌인 일에 의해 생긴 변고에 한해서는 그렇습니다.”
“음…….”
안내원의 말을 정리해 보면, 참가자가 스스로 일을 벌여 생기는 변고는 어쩔 수 없지만 주최 측과 연관된 변고는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뜻이었다.
무림인이라면 크고 작은 원한 한두 가지 가지고 있는 건 예삿일이 아닌지라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대목이었다.
“혹 그자가 이번 대회에 참가했다면 돈을 한번 걸어볼까 해서 묻는 것이오.”
“판돈 때문이십니까?”
“그렇소만.”
사내의 대답에 안내원은 이번에도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백룡문이라는 흔한 이름의 문파는 수없이 많았다.
하지만 그 많은 백룡문 중에서 이름난 무인은 들어본 적이 없다.
대회에 참가한 이름난 무인도 많을 텐데 왜 하필 들어보지도 못한 무인에게 돈을 걸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냥 명단에 있는지 없는지만 확인해 주시오.”
방갓 사내의 말에 마뜩치 않은 표정으로 잠시 그를 보던 안내원이 말했다.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그리고는 잠시 참가자 명단을 쭉 훑어본 안내원이 고개를 한번 갸웃하고는 방갓 사내에게 말했다.
“명단에 백룡문주는 없습니다.”
“그렇소? 상천이라는 이름이 없단 말이오?”
“예, 없습니다.”
안내원의 대답에 방갓 사내가 턱을 만지며 잠시 뭔가를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았소. 고맙소.”
“예.”
안내원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방갓 사내는 곧장 몸을 돌려 발걸음을 옮겼다.
“어디 가서 찾는다?”
사내가 방갓을 살짝 들어 올리며 중얼거렸다.
그 뒤로 드러난 막천풍의 얼굴은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
막막한 상황 속에서도 막천풍의 두 눈은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대회장 근처를 돌아다니며 도검을 지닌 사람들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그가 찾는 상천은 도검을 지니지 않고 있는 상황.
그것을 알 리 없는 막천풍의 모든 신경은 그들에게 쏠려 있었다.
‘누구냐? 어디 있는 것이냐?’
막천풍의 눈빛이 더욱 날카로워졌다.
상천은 여유롭게 마을을 거닐고 있었다.
대회에 참가할 수 없게 된 상황이니 그저 즐기다 가자는 생각으로 마음을 고쳐먹으니 자연스럽게 여유로운 모습이 표출되었다.
‘음?’
한가롭게 마을을 거닐던 상천의 눈에 방갓을 쓴 사내가 들어왔다.
방갓을 쓴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누군가를 찾는 것 같은 모습이 눈에 띄었던 것이다.
‘뭘 찾기에 저렇게 눈을…….’
상천이 방갓의 사내, 막천풍의 부리부리한 눈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뭐, 내가 신경 쓸 건 아니고.’
남녕이 광서성의 성도인데다가 이번 무투대회로 엄청난 인파가 모여 있는 상황이었다.
그 때문에 상천에게 있어서 이렇게나 많은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보는 것은 또 하나의 즐거움이자 신기한 점이었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막천풍 역시 상천에게는 그런 사람 중 한 명에 불과했다.
그러다 보니 그가 자신을 애타게 찾고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상천과 막천풍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그러자 막천풍의 시선이 상천에게 닿았다.
하지만 그가 도검을 지니고 있지 않기 때문인지 상천에게 닿았던 막천풍의 시선은 금세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
상천 역시 막천풍에게 가졌던 약간의 호기심을 거두고 다른 곳을 향해 시선을 돌린 상태였다.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를 알아보지 못한 채 지나쳐 갔다.
시간이 흘러 무투대회가 시작하는 날이 되었다.
그때까지도 상천을 찾지 못한 막천풍은 답답한 마음을 어떻게 털어낼 길이 없었다.
혹시나 그냥 돌아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지만 그러다가도 고개를 저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무공을 익힌 무인이 대회에 참가하지는 못한다고 하여도 이런 기회를 그냥 지나칠 리 없다는 확신이 있었다.
스스로 무공을 깨치고 익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비무를 보고 느낌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 또한 굉장히 많기 때문이었다.
그런 자리를 무인 된 자가 안 보고 그냥 돌아간다?
막천풍의 상식선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상천은 분명 대회가 끝날 때까지 이곳에 남아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렇게 답답함을 안은 채 막천풍은 대회장으로 들어서서 잘 보이는 곳으로 자리를 잡고 앉았다.
모든 생각이 상천을 찾는 데 쏠려 있던 막천풍의 신경이 점차 무투대회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조금 늦게 일어난 상천은 아침 식사도 거르고 부랴부랴 대회장으로 달려갔다.
혹시나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려 들어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전날 들은 터라 서둘러 대회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우려와 달리 생각보다 줄이 길지는 않았다.
‘벌써 안에 꽉 찬 거 아니야?’
그런 걱정을 하며 줄을 선 상천은 안에 들어가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다. 많지는 않구나.’
그렇게 생각한 상천은 다음 순간 고개를 갸웃거렸다.
‘규모도 큰 대회 같은데 왜 사람이 별로 없지? 미어터져야 정상 아닌가?’
충분히 의아해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합산도문이 후원하는 거대한 무투대회이건만 생각보다 사람이 별로 없었다.
얼핏 많이 들어찬 듯 보였지만 군데군데 빈자리가 보일 정도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첫날 대결을 펼치는 이들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이름값이 적은 사람들의 대결이 먼저 펼쳐지고 사람들의 기대치를 충족시킬 만한 대결은 둘째 날부터 펼쳐질 예정이었다.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구경하려는 사람들의 숫자가 적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연유를 알지 못하는 상천은 두리번거리며 앉을 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어라?’
자리를 찾던 상천의 눈에 민머리사내가 눈에 띄었다.
처음 이곳 남녕에 도착해서 자신에게 이것저것 알려주었던 그 민머리사내가 아닌, 며칠 전 보았던 방갓을 쓴 사내였다.
방갓을 쓰지 않은 상태에서 민머리이기까지 해 못 알아볼 수도 있었지만 눈빛만큼은 똑같았다.
상천은 성큼성큼 그 옆으로 걸어가 앉았다.
그가 옆에 와 앉자 상천을 한번 힐끗 쳐다본 막천풍은 다시 비무대로 시선을 돌렸다.
상천 역시 막천풍을 한번 힐끗 쳐다보고는 비무대로 시선을 돌렸다.
그사이 첫 대결을 펼칠 두 사람이 비무대 위로 올라왔다.
둘 다 주먹을 쓰는 권사인지 아무런 무기도 들고 있지 않았다.
상천은 그 두 사람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백룡문의 대표적인 무공이 단월검이기는 했지만 백룡권 역시 그 못지않은 무공이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권법들은 어떨까?’
백룡권 외에, 아니, 정확히 말하면 백룡문의 무공 외에 다른 무공을 보는 것이 처음인 만큼 상천의 두 눈이 반짝 빛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