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5화.
“그래서, 무투대회에 나갈 수 있는 방법은 찾았대?”
“못 찾은 것 같습니다. 이미 참가 신청도 끝났고, 신청하지 못한 사람이 나갈 수 있는 길은 기존 참가자 중 누군가가 빠져야만 가능합니다. 그마저도 대기자들이 꽤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여소정의 대답에 장여진이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 어쩌겠어. 규정이 그렇다면야. 아, 참가자들은 좀 살펴봤어?”
“네. 생각보다 별 볼 일 없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래?”
장여진이 인상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수하가 될 사람들이 별 볼 일 없다는데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건질 만한 사람은 몇 명이나 되는 것 같아?”
“제가 아직 사람 보는 눈이 모자라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대략 열 명 남짓입니다.”
“열 명이라…….”
열 명이면 대(隊)를 구성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인원이다. 겨우 일 개 조를 만들 정도의 인원밖에 되지 않았다.
“좀 더 찾아봐. 눈높이를 낮춰서라도 스무 명은 골라야지.”
“무투대회 참가 인원이 대략 육십 명이 조금 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여기서 눈높이를 더 낮춰 인원을 선발하면 격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하…….”
여소정의 대답에 장여진이 한숨을 쉬었다.
그렇다고 고작 열 명을 가지고 시작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 일단 그 아이는 어때? 무투대회에 나가려고 하는 걸 보면 어느 정도 무공은 익혔겠지?”
“그런 듯 보입니다만 실력이 대단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어느 정도인데? 이류?”
“네. 이류를 갓 벗어난 정도로 보입니다. 같은 일류급이라고 해도 절정에 가까운 무인과 일류에 갓 접어든 무인은 격이 다릅니다.”
“그건 나도 알지. 그런데 그 실력으로 어떻게 무투대회에 참가할 생각을 했을까?”
장여진이 다시금 상천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관심이 가십니까?”
“뭐?”
여소정의 물음에 장여진이 무슨 소리냐는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요 며칠 계속해서 대주님의 입에 그자가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그런가? 관심이라기보다는… 못해도 나보다 네다섯은 어려 보이는데 무투대회에 나가려고 하는 걸 보니 호기심이 생긴 거지.”
그렇게 말한 장여진이 피식 웃으며 여소정을 바라보았다.
“왜, 내가 그 아이한테 관심이라도 있는 것 같아?”
“솔직히 말씀드리면 조금 그렇습니다.”
“요 며칠 자주 얘기한 것 때문에?”
“예, 그렇기도 하고…….”
“그리고 또 뭐?”
여소정이 말끝을 흐리자 장여진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생긴 것도 귀엽게 생기지 않았습니까?”
“오호〜 귀엽게 생겼단 말이지? 나보다 부대주가 그 아이한테 더 관심이 있는 거 아냐?”
“아, 아닙니다!”
장난기 섞인 장여진의 물음에 얼굴에 홍조가 피어오른 여소정이 말까지 더듬으며 부정했다.
“호호! 얼굴은 빨개지고 말은 더듬고. 진짜 아니야?”
“아닙니다.”
장여진이 웃으며 다시 한번 묻자 여소정이 다시 무표정한 얼굴로 진지하게 대답했다.
“칫! 재미없게. 뭐 어때? 여자가 남자를 보고 관심 있어 할 수도 있는 거고, 한눈에 반할 수도 있는 거고. 자연스러운 건데.”
“그런 것 절대 아닙니다.”
“알았어, 알았다고. 암튼 수고했어. 나가봐.”
“예.”
여소정이 허리를 굽힌 뒤 방을 나서자 장여진은 하던 단장을 마저 하기 시작했다.
잠시 단장을 하던 장여진이 다시금 손을 멈추고는 여소정이 나간 문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진짜 관심 있는 거 아냐?”
***
객잔으로 돌아온 상천은 거의 포기 상태였다.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확률은 굉장히 희박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알아본 결과 ‘피치 못할 사정으로 참가자 중 누군가가 이탈할 경우에 대기자 중 순차적으로 투입된다.’는 조항에 따라 대기자들이 투입된 경우가 지금껏 한 번도 없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까닭이다.
일단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오기는 했지만 순번이 너무 뒤쪽이었다.
상천의 손에는 팔십오라고 적힌 종이 하나가 들려 있었다. 그의 앞으로 대기자가 여든네 명이나 있다는 뜻이었다.
대회 참가자의 숫자가 예순네 명임을 감안했을 때 기존 참가자들 전체가 이탈하고 그만큼이 더 이탈을 해도 상천은 참가를 할 수가 없었다.
“하……. 그냥 돌아가야겠구나.”
그렇게 중얼거린 상천이 방 창문으로 다가가 어둑해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다들 잘 있으려나?”
상천이 백룡문에 있는 병목 등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
“이쯤 어디일 텐데…….”
깔끔한 무복을 입고 등에는 가벼운 봇짐을 진 사내 한 명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길을 걷고 있었다.
코는 납작하고 얼굴은 넓적했으며 살집이 조금 있는 모습이었다. 주름 하나 없이 탱탱한 피부였지만 머리가 살짝 벗겨져서 그런지 나이가 꽤 들어 보였다.
“뭐야? 여기야?”
사내가 허름한 장원 앞에 서서는 깜짝 놀란 듯 정문과 담벼락을 바라보았다.
“누구세요?”
그때, 누군가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사내가 고개를 돌렸다. 키가 큰 사내와 달리 자신에게 말을 건 사람은 키가 그의 가슴팍에 닿을 정도로 작았다.
“여기가 백룡문이 맞소?”
“그런데요?”
사내의 물음에 대답한 사람은 다름 아닌 배동삼이었다. 일하던 객잔에서 휴가를 받아 일찍 귀가하던 차에 백룡문 앞에서 서성이고 있는 사내를 만난 것이다.
“진짜 여기가 백룡문이오?”
“그렇다니까요?”
사내가 같은 질문을 다시 한 번 하자 배동삼이 답답하다는 듯 대답했다.
“근데 문파 꼬라지가 왜 이 모양이오?”
사내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그 물음에 배동삼이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는 욱하여 되물었다.
“뭐요? 여기가 뭐 어때서요?! 좋기만 한데!”
배동삼이 버럭 화를 내자 사내가 미안했는지 실실 웃으며 말했다.
“아, 내 말은 그게 아니라……. 언짢았다면 사과하리다. 혹시 백룡문도요?”
“그런데요? 왜요?”
이미 기분이 상한 배동삼이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의 대답에 사내가 ‘그러냐?’ 하는 표정으로 허름한 백룡문의 정문을 힐끗 쳐다보았다.
잠시 동안 그러고 있는 사내를 배동삼이 빤히 바라보고 있는데 사내가 다시 그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그럼 문주께 가서 여권문(余拳門)의 막천풍(莫天風)이 비무를 청한다고 전해주시겠소?”
막천풍의 말에 배동삼은 잠시 동안 멍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런 배동삼을 보며 막천풍은 하얀 이를 드러내며 미소를 보였다.
***
곳곳이 무너진 담벼락.
위태롭게 매달린 경첩이 힘겹게 잡아두고 있는 허름한 정문.
그 위에 톡 건들면 금방이라도 떨어져 버릴 것 같은 현판.
바로 백룡문이었다.
막천풍은 백룡문의 대청마루에 삐딱하게 누워 병목 등을 바라보고 있었다.
누워 있는 자세만 보면 수하들 부려먹는 악덕 대장이라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다.
‘쯧쯧쯧!’
잠시 동안 그들을 바라보고 있던 막천풍이 속으로 혀를 찼다.
‘이런 녀석들도 꼴에 문도라고…….’
막천풍의 눈앞에서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몇몇은 백룡문 안에 있는 잡초를 뽑고 있었고, 몇몇은 한쪽에서 무공 수련을 하는 듯 팔다리를 열심히 흐느적거리고 있었으며, 열 살도 안 되어 보이는 아이들은 백룡문 전체를 뛰어다니며 놀고 있었다.
말 그대로…….
‘개판이군.’
막천풍이 인상을 찌푸렸다.
‘도대체 문주라는 작자는 왜 이런 녀석들을 문도로 받아들였지?’
막천풍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겉으로 보아하니 문파가 주저앉은 것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런 상황이라 더욱 이해가 가질 않았다.
문파가 무너졌고, 다시 일으켜 세울 요량이면 제자 한 명 고르는 것도 신중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지금 눈앞에 보이는 문도들은 그냥 길거리 오가다가 눈에 보이는 사람 아무나 데려다 놓은 것 같았다.
도무지 규율도 없는 것 같고, 그렇다고 제대로 된 수련을 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문도라기보다는 갈 곳 없는 사람들이 그냥 텅 빈 백룡문에 와서 지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런 문도들을 놔두고 돈 벌러 갔다? 하하! 이게 뭐야! 백룡문이라면서! 백룡문!’
답답한 듯 속으로 외치던 막천풍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런 삼류 문파가 어떻게…….”
여권문은 귀주성에서 중경으로 이어지는 관도와 연결된 정안(正安)에 위치한 문파였다.
이백 년 가까이 된 역사를 가진 문파로, 독문 무공인 풍절권(風絶拳)을 바탕으로 인근에서 명성을 떨쳤던 문파다.
사도련이 등장하고 그 세를 불리는 과정에서 풍절권 역시 어느 정도 타격을 입기는 했지만 백룡문에 비하면 거뜬히 명맥을 이어오는 중이었다.
막천풍은 올해 나이 딱 서른이 되었다.
문주였던 사부가 세상을 떠나고 사숙, 사백들이 모두 일선에서 물러남에 따라 문주 직을 물려받았다.
그때가 그의 나이 스물여덟.
나이 서른이 된 올해까지 삼 년 동안 내부를 추스르고는 곧장 문파를 떠나왔다.
그 이유는 단 하나.
백룡문의 무공을 꺾기 위해서였다.
과거 여권문의 문주였던 매거풍이 백룡문의 문주였던 호천강에게 패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려서 여권문에 입문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부터 숱하게 그 이야기를 들어오면서 나중에 자신이 실력을 쌓으면 반드시 백룡문과 다시 한 번 붙어 명예 회복을 하겠노라고 다짐했다.
물론 매거풍과 호천강이 비무를 벌였던 때와 다르게 지금은 사도련이 득세하여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고만고만한 사람들끼리의 싸움으로 비춰질 수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막천풍에게만은 그렇지 않았다.
져서 되로 받았으니 이겨서 말로 갚아준다.
그것이 막천풍의 생각이었다.
반 시진의 시간이 지났다.
편하게 있으라는 말에 비스듬히 누워 있던 막천풍은 어느새 몸을 일으켜 앉아 있었다.
그렇게 반 시진 동안 문도들이 하는 것을 지켜보던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시려고요?”
그러자 병목이 다가와 물었다.
문주인 상천을 찾아온 손님이고 나이도 많아 보여 그에게 깍듯이 대하고 있었다.
“있어봤자 뭐하겠소? 언제 올지도 모른다는데. 왔었다고만 전해주시오.”
그렇게 말한 막천풍이 정문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병목이 그를 배웅하기 위해 뒤를 따랐다.
“아!”
정문 밖으로 발걸음을 옮기던 막천풍이 불현듯 뭔가 생각이 난 듯 병목에게 물었다.
“혹시 돈 벌러 어디로 갔는지, 아니면 뭘 하러 갔는지 알고 있소?”
“무투대회에 나간다고 했습니다.”
“무투대회?”
병목의 대답에 막천풍은 인상을 찌푸리고 생각했다.
‘무투대회라……. 귀주에선 무투대회가 끝난 걸로 알고 있는데? 가만있어 보자……. 마지막 남은 무투대회가… 남녕! 광서성!’
곧 광서성 남녕에서 벌어질 무투대회를 떠올린 막천풍은 손가락으로 날짜를 꼽아보기 시작했다.
최대한 빨리 말을 몰아 달려도 대회가 끝나기 전에 도착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려웠다.
“알겠소. 고맙소.”
짧게 대답한 막천풍이 서둘러 그곳을 떠났다.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병목은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백룡문 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