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단월검제-24화 (24/141)

#024화.

상천이 남녕에 도착한 것은 객잔을 출발한 지 이십 일이 지난 후였다.

보통 상천이 출발한 남단현에서 남녕까지 말을 타고 보름이 걸리는 거리였다. 그런 거리를 걸어서 이십 일 만에 도착했으니 상천이 얼마나 쉬지 않고 걸었는지 알 수 있었다.

상천이 남녕에 도착한 것은 해가 완전히 저문 시각이었다.

시내 곳곳의 건물에서 새어 나오는 빛이 아니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늦은 시각이 되어서야 상천은 겨우 남녕에 도착할 수 있었다.

완전히 녹초가 된 상천은 객잔을 찾았다.

남단현에서 너무 지친 나머지 아무 곳이나 들어갔다가 가진 돈의 반을 날렸던 상천은 힘들기는 했지만 객잔들을 돌아다니면서 신중하게 골랐다.

결국 상천은 시내 외곽 쪽에 있는 허름하고 값싼 객잔을 잡고는 식사도 하지 않은 채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날.

상천은 늦은 시간에 일어났다.

대회 시작까지는 여유가 있었고, 어차피 참가 신청 날짜도 지났기 때문이다.

부득이한 상황 때문에 결원이 발생할 경우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남녕까지 왔지만 사실 상천도 큰 기대는 하지 않고 있었다.

이렇게 된 이상 무투대회에 참가하는 것은 하늘의 뜻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

눈을 뜬 상천은 곧장 침상 위에서 가부좌를 틀고는 운기를 시작했다.

숙면으로도 풀리지 않은 피로가 운기를 통해 말끔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운기를 마친 상천은 간단히 식사를 마치고 점소이에게 무투대회에 관한 것을 이것저것 물은 뒤 밖으로 나갔다.

객잔을 나서고 번화가에 나가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투대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초미의 관심사는 누가 우승을 할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광서성뿐만 아니라 인근 다른 성의 고수들도 참가를 했다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참가를 해도 문제구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걷던 상천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물론 과장된 부분이 있겠지만 사람들의 이야기만 들으면 참가하는 사람들 중 우승 후보로 꼽히는 자들은 전부 엄청난 실력을 가진 사람들인 듯했다.

아직 정확하게 자신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도 모르고, 그렇다고 해서 제대로 된 비무나 실전 경험이 있는 것도 아닌 상천에게는 한숨만 나오는 이야기뿐이었다.

‘멋모르고 덤벼든 것 같구나.’

상천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

장우량의 앞에서 장여진은 방방 뛰었다.

자신에게 붙여줄 수하들을 무투대회에서 뽑는다는 것을 나중에 들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문의 무사들을 붙여줄 것이라 생각했던 장여진은 장우량의 앞에서 화도 냈다가 애교도 부렸다가 하면서 극구 반대를 했다.

하지만 결국 그녀는 승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자들을 데려다가 그럴싸한 무인으로 만드는 것 또한 능력이다. 한번 만들어봐.”

물론 장우량이 장여진에게 그런 것까지 기대할 리가 없었다. 그저 그 순간의 상황을 모면하고자 내뱉은 말이었다.

하지만 임기응변식의 말 한마디가 엄청난 효과를 가져왔다.

장여진은 장우량이 자신을 믿고 좀 더 제대로 된 능력을 보여주기를 바라고 있다는 식으로 제멋대로 해석을 해버린 것이다.

어쨌든 기분이 좋아진 장여진은 부대주가 될 여소정과 함께 남녕 시내에 나와 있었다.

누가 자신이 대주가 될 청운대(靑雲隊)의 대원이 될지는 모르지만 그 후보 군을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앞서 걷는 장여진으로부터 두 걸음 떨어져 여소정이 따랐다.

그저 즐겁기만 한 장여진과 달리 여소정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변을 살피며 그녀를 수행했다.

“이번 대회 개최 장소가 어느 쪽이었지?”

한껏 들뜬 마음으로 시내를 돌아다니던 장여진이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뒤에 따라오는 여소정에게 물었다.

“반대쪽입니다.”

“음? 반대쪽?”

“네.”

“아하하, 그래? 그럼 가자!”

무안해진 장여진이 어색한 표정으로 여소정을 지나쳐 반대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고, 여소정은 감정을 읽을 수 없는 무표정한 얼굴로 다시금 그녀의 뒤를 따랐다.

“여기구나.”

상천은 대회 준비가 한창인 곳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거대한 연무장 주변에 관중석이 있었고, 연무장을 중심으로 서로 반대편에는 대전자들이 대기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대회가 얼마 남지 않은지라 준비는 막바지에 이른 상태였다.

“거기 그쪽! 지저분하게 삐져나온 거 정리하고! 얌마! 그쪽은 줄이 안 맞잖아! 똑바로 못해?!”

작업반장처럼 보이는 덩치 큰 민머리 사내가 우렁찬 목소리로 여기저기 소리를 지르며 지시를 하고 있었다.

부릅뜬 눈으로 대회장 곳곳을 날카롭게 살피며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고 있었다.

그의 지시에 따라 사람들이 부지런히 움직이고는 있었지만 아무래도 힘에 부치는 모양이었다.

“저기요.”

상천은 그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아무래도 지금 이곳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은 민머리사내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에게 가서 부탁을 하면 혹시나 참가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주 작은 바람을 가지고 있었다.

“뭐야? 일 하러 왔나? 그럼 빠릿빠릿하게 움직여야지! 저기 저쪽으로 가서 좀 도와! 젊은 사람이니 힘 좀 써보라고!”

“저기, 그게 아니고 전…….”

퍼억!

“윽!”

자신이 찾아온 의도를 잘못 알고 있는 사내에게 정확한 의도를 전달하려 했지만 사내는 상천의 말을 막고는 커다란 손바닥으로 등짝을 한 대 후려쳤다.

“사내자식이 무슨 말이 이렇게 많아! 빨리 못 움직여! 대회가 코앞이란 말이다!”

“아, 진짜! 그게 아니라니까!”

울컥한 상천이 잔뜩 인상을 쓰고 사내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덩치도 자신보다 작고 생긴 것도 남자답다기보다는 곱상한 편인 상천이 자신을 노려보며 소리를 지르자 사내가 의외라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난 여기 일하러 온 게 아니라고!”

“그럼 왜 왔나?”

일하러 온 것이 아니라는 상천의 말에 사내가 멋쩍은 듯 반질반질한 머리를 살살 긁으며 물었다.

“뭐 좀 물어보려고요.”

사내의 태도에 상천도 한층 누그러진 어투로 말했다.

“꼭 지금 물어야겠나? 보시다시피 지금 너무 바빠서 말이지. 거기! 일 안 하고 뭐해! 이것들을 확!”

상천에게 부드럽게 말을 하던 사내가 그 틈을 타 딴짓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또 한 번 버럭 화를 냈다.

가까운 거리에서 귀를 파고드는 엄청난 목청에 상천은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물어볼 게 뭔가? 바쁘니까 요점만 간단히 하게.”

“참가자 모집 끝났나요?”

“끝났네. 질문 끝! 난 바쁘니 이만 가겠네. 이눔 시키들!”

“저, 저기!”

상천의 물음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간단히 대답한 사내가 또다시 버럭버럭 고함을 질러가며 대회장 곳곳을 누비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한숨을 푹 내쉰 상천은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봤니?”

“예, 봤습니다.”

장여진의 물음에 여소정이 무뚝뚝한 어투로 대답했다. 그런 그녀를 못마땅한 표정으로 힐끗 쳐다본 장여진은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의 시선이 닿은 곳에는 아쉬운 듯 대회장을 바라보다가 발걸음을 옮기는 상천이 있었다.

“나이도 어려 보이고 곱상하게 생겼는데 왜 무투대회 같은 데에 나가려고 할까? 죽을지도 모르는데.”

“저마다 어떤 사연을 가졌는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건 그렇지.”

여소정의 대답은 제대로 듣지 않고 장여진의 눈동자는 계속해서 상천을 좇고 있었다.

“소정아.”

“부대주라 불러주십시오.”

여소정의 대답에 장여진이 다시 한 번 그녀를 힐끗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알겠다는 듯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말을 고쳤다.

“부대주.”

“예.”

“궁금하지 않아?”

“알아올까요?”

“아니야. 됐어. 가자.”

“예.”

여소정과 함께 발걸음을 옮기던 장여진이 멀어지는 상천을 마지막으로 한 번 힐끗 쳐다보고는 대회장으로 시선을 옮겼다.

다음날.

상천은 또다시 대회장을 찾았다.

지금으로서는 대회에 참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다시 그곳을 찾은 상천의 눈에 어제의 민머리사내가 보였다.

오늘은 어제보다는 바쁘지 않은 듯 그저 인부들이 일하는 모습만 팔짱을 낀 채 바라보고 있었다.

어제와 같은 황당한 일을 겪지는 않을 것 같다는 판단이 선 상천은 그 민머리사내에게 다가갔다.

“저기요.”

“음? 누구지?”

상천의 부름에 민머리사내가 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워낙 경황이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인지 상천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어제 무투대회에 대해서 물었던…….”

“아! 어제 내가 실수를 했지? 미안하네. 하하하! 워낙 정신이 없어서 말이야. 그런데 무슨 일인가?”

민머리사내가 호탕하게 웃으며 사과를 하고는 용건을 물었다.

“무투대회 때문에 물어볼 것이 있습니다.”

“그거라면 어제 얘기한 것 같은데? 참가 신청은 다 끝났다고.”

사내의 대답에 상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혹시나 참가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궁금해서 찾아왔습니다.”

“흠…….”

상천의 말에 사내가 손으로 민머리를 살살 긁으며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듣기로는 기존 참가자에게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겨 그 사람이 나가지 못하게 된 경우에 한해서로 알고 있는데, 이런 규정도 모르고 있었나?”

민머리사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무투대회에 나가고자 하는 것도, 대회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된 지 얼마 안 됐습니다.”

“흠……. 그러고 보니 나이도 어린 것 같은데 무투대회 같은 데에는 왜 나가려고 하는가? 죽을지도 모르는데.”

“돈을 벌려고 합니다.”

“돈?”

상천의 대답에 민머리사내는 더더욱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예. 큰돈이 필요합니다.”

“흠…….”

민머리사내가 그래도 이해 못하겠다는 듯 말을 이었다.

“뭐, 어떤 사정이 있고 왜 큰돈이 필요한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 난 건 아니라네. 아직 젊으니 부지런히 일해서 버는 게 제일이야.”

사내의 말에 상천이 옅은 미소를 지은 채 인사했다.

“아무튼 감사합니다. 가보겠습니다.”

“그러게.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한 얘기는 잘 생각해 보게!”

“예.”

마지막까지 웃는 낯으로 대답한 상천은 그 자리를 떴다. 잠시 그런 상천을 바라보고 있던 사내가 다시 준비가 한창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건 거기가 아니잖아! 이 닭대가리 같은 놈아!”

“돈?”

합산도문 내 자신의 처소에서 단장을 하고 있던 장여진이 여소정의 말에 잠시 하던 것을 멈추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예. 대회장 준비를 하는 용역반장과 나누는 대화를 들었는데 돈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돈이 필요하다고 어린 나이에 죽을지도 모르는 무투대회에 나간다고?”

“그렇다고 합니다.”

여소정의 대답에 장여진 역시 민머리사내와 같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일 때문이지?”

장여진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에 대한 대답은 여소정도 해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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