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0화.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상천은 연무장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십 년 동안 수없이 반복하고 익혀온 백룡문의 무학은 자신이 생각하기에 완성되지 않은 상태였다.
부족한 부분이 많았고 채워 넣은 부분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 당장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고, 스스로도 한계를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조금도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지금 당장 방법이 없다고 해서, 막힌다고 해서 손을 놔버리면 그만큼 퇴보한다는 것을 스스로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시야에 닿은 곳에 종삼을 앉혀놓고 수련을 하던 상천은 어느새 날이 어둑해진 것을 깨닫고는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주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한 달 가까이 요리를 하다 보니 처음에는 막막하기만 하고 뭐가 뭔지 잘 몰랐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익숙해져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맛을 내는 간단한 음식들을 만들 수 있을 정도가 되어 있었다.
물론 종삼은 음식을 씹어 넘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그가 먹을 수 있는 죽은 따로 만들고 있었다.
식사 준비를 끝낸 상천은 밥상을 준비하고는 종삼에게 다가갔다.
많이 따뜻해졌다고는 하지만 해가 저물면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기 때문에 서둘러 종삼을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대청마루 기둥 쪽에 기대어 앉아 있는 종삼을 번쩍 안아 들고는 방 안으로 들어간 상천은 벽 쪽에 그를 조심스럽게 앉혔다.
일어서서 걷고 움직이는 것조차 힘겨워하는 그의 모습을 볼 때면 아직까지도 마음 한구석이 찡했다.
“잠깐만 기다려, 아저씨. 밥 가져올게.”
그렇게 말한 상천은 후다닥 주방으로 달려가 밥상을 들고 돌아왔다.
조촐한 밥상이었지만 종삼은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자, 아〜 해.”
상천의 말에 종삼이 입을 조금 벌렸다.
그러자 숟가락으로 죽을 조금 뜬 상천이 그의 입안으로 천천히 죽을 흘려 넣었다.
“괜찮아? 안 뜨거워?”
“괜찮네.”
종삼이 짧게 한마디 하고는 천천히 죽을 씹어 목구멍으로 넘겼다.
죽 한 그릇을 다 먹는 데 시간이 꽤 걸렸다.
많은 양을 먹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한 숟가락 먹는 데에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예전의 상천 같았으면 못 참고 답답해했겠지만 지금은 종삼이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그렇게 종삼의 식사가 다 끝나고 나서야 상천이 식사를 했고, 그러다 보니 식사 시간만 한 시진 가까이 걸렸다.
식사가 끝나고 정리까지 끝마치고 나자 이미 밖은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다.
해가 길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사위가 이 정도로 어두워졌다는 것은 제법 밤이 깊어가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방 안에 이부자리를 편 상천은 피곤해하는 종삼을 자리에 눕혔다. 그러자 종삼은 베개에 머리를 대자마자 잠에 빠져들었다.
“하〜 암!”
종삼을 재운 상천 역시 몰려오는 피로감에 길게 하품을 하고는 불을 끄고 자리에 누워 잠을 청했다.
어둠이 물러가고 어렴풋이 날이 밝아올 무렵.
종삼은 상천보다 먼저 눈을 떴다. 잠시 동안 천장을 바라보며 눈을 껌뻑이던 종삼은 자리에서 일어서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기력이 많이 약해져 혼자 일어서는 것도 힘들어하는 종삼이지만 상천을 깨우지 않고 혼자 상체를 일으키기 위해 땀을 흘렸다.
그렇게 일각 정도의 시간이 흘러서야 종삼은 겨우 상체를 일으키고 앉을 수 있었다. 일어나 앉는 데 얼마나 많은 힘을 쏟았는지 그의 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하아… 하아… 하아…….”
힘겹게 일어나 앉은 종삼은 숨을 몰아쉬었다.
잠시 동안 그렇게 앉아 있던 종삼은 호흡이 조금 진정되자 이번에는 책상 쪽으로 몸을 끌었다.
근력이 많이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 축 처지는 몸을 끌고 나아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또 한 차례 온몸을 땀으로 흠뻑 적신 후에야 종삼은 책상 앞에 앉을 수 있었다.
그렇게 또 한동안 호흡을 진정시킨 종삼은 호롱불을 켜지도 않은 채 앞에 놓인 종이에 붓으로 무언가를 쓰기 시작했다.
붓도 제대로 잡을 수 없고 팔을 장시간 들고 있기도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종삼은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을 들여 적어나갔다.
오랜 시간에 걸쳐 무언가를 적어 내려간 종삼은 내용을 다 적은 뒤 붓을 내려놓고 잠시 동안 먹이 마르기를 기다렸다가 종이를 두 번 접은 뒤 그것을 한쪽에 있는 이불장 밑에 툭 밀어 넣었다.
그리고는 다시 힘겹게 몸을 끌어 자던 자리로 돌아가 눕고는 눈을 감았다.
종삼이 다시 잠들고 반 시진도 되지 않아 상천이 눈을 떴다. 평소 규화공을 수련하는 시간에 맞춰 일어난 그는 옆에 누워 있는 종삼을 한번 본 뒤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상쾌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규화공 수련을 시작한 상천이 다시 눈을 뜬 때는 이미 해가 온 세상을 밝히고 있는 시간이었다.
“후우, 돈을 벌긴 벌어야 될 텐데……. 아저씨가 저러고 있으니 밖에 나가 있을 수도 없고……. 어떻게 하지?
규화공 수련을 끝내고 잠시 그대로 앉아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린 상천은 잠시 후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아침 식사 준비를 위해 주방으로 향하던 상천은 깜짝 놀랐다.
어떻게 나왔는지 종삼이 대청마루까지 나와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아저씨, 어떻게 나왔어? 괜찮아?”
황급히 그에게 다가간 상천이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그러자 종삼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구나. 왠지 오늘은 몸이 좀 가벼워.”
그렇게 말하는 종삼의 목소리에도 어제보다는 힘이 느껴졌지만 상천은 왠지 모르게 불안했다.
“여기에 잠깐만 있어. 금방 밥상 차려올게.”
“아니야. 괜찮아. 그보다 여기에 좀 앉아봐라.”
주방으로 향하는 상천을 만류한 종삼이 그를 자신의 옆에 앉혔다.
“벌써 십 년인가, 여기에 온 게?”
“그러네. 벌써 십 년이네. 시간 참 빨리 간다.”
종삼의 말에 상천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긴 시간인데 왠지 모르게 지난날들이 굉장히 짧게 느껴졌다.
“보고 싶구나.”
“뭘?”
“그간 네가 익힌 것들을.”
“지금까지 다 봐놓고서는.”
갑작스런 종삼의 말에 왠지 모를 쑥스러움을 느낀 상천이 주저하자 종삼이 다시 한 번 말했다.
“그래도. 십 년 동안 얼마나 많이 늘었고, 얼마나 달라졌는지 보고 싶구나.”
그렇게 말하는 종삼의 목소리에서 간절함을 느낀 상천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연무장 쪽으로 데려가 주겠느냐? 가까이에서 보고 싶어서 그런다.”
“햇볕이 뜨거워. 그냥 여기서 봐. 몸도 안 좋은데.”
하지만 종삼은 고개를 저으며 고집을 부렸다. 그 모습에 작게 한숨을 내쉰 상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잠깐만 기다려 봐. 편한 의자 가져올게.”
그렇게 말한 상천이 방 안으로 들어가더니 등받이와 팔걸이가 있는 의자를 가지고 나와 연무장 쪽으로 가져갔다.
잠시 의자를 들고 좋은 자리를 찾던 상천은 태양이 움직이는 방향을 고려해 그늘진 적당한 곳에 의자를 내려놓고는 종삼에게 다가왔다.
“자, 가자.”
그렇게 말한 상천이 종삼을 번쩍 안아 들었다.
괜한 기분 탓인지 상천은 평소보다 종삼이 더 가볍게 느껴진다는 생각을 했다.
“조심하고…….”
조심스럽게 종삼을 의자에 앉힌 상천은 낡은 목검을 들고 연무장 한가운데에 섰다.
“후우…….”
지금껏 자신이 수련하는 모습을 종삼이 본 적이 없었던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다른 때보다 더 긴장이 되었다. 그 때문에 크게 한숨을 한 번 내쉰 상천이 검을 들어 올렸다.
“너무 긴장하지 말고.”
종삼이 작은 목소리로 한마디 했다.
하지만 그 작은 목소리는 너무나도 또렷하게 상천의 귀를 파고들었다.
그 덕분에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킨 상천은 천천히 지금까지 자신이 갈고닦은 단월검을 펼쳐 보이기 시작했다.
첫 번째 초식인 겁화부터 마지막 초식인 역천까지.
상천의 목검은 아름답게 허공을 수놓았고, 종삼은 마치 마지막이라도 되는 것처럼 눈도 깜빡이지 않은 채 그 모든 것을 담았다.
단월검을 펼친 상천은 목검을 내려놓고 천유보와 함께 백룡권의 초식을 펼쳐 보였다.
어느새 종삼이 보고 있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은 채 자신이 펼치고 있는 무공에 몰입하고 있었다.
상천이 펼쳐 내는 무공을 보는 종삼은 자신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지고 있었다.
눈에 담고 있는 무공들은 자신이 가르친 무공이 아니었다.
종삼 자신이 가르친 무공이 조금도 가공하지 않은 원석이었다면, 지금 상천이 펼쳐 내고 있는 무공은 그 원석을 조금이나마 가공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 모든 것을 상천 혼자의 힘으로 해낸 것이다.
상천이 펼쳐 내는 무공을 보면서 종삼은 여느 사부들처럼 제대로 된 가르침을 주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미안함과 혼자서도 이렇게나 무공을 익히고 발전시켰다는 것에 대한 고마움, 그리고 대견함이 물밀 듯 밀려와 저절로 두 눈에 눈물이 맺혔다.
그러나 종삼은 상천의 무공이 모두 끝날 때까지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눈앞이 흐려지면 제대로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있는 힘을 다해 어금니를 깨물며 눈물을 참아내었다.
종삼이 그러고 있는 것도 모른 채 상천은 처음부터 끝까지 단월검과 천유보, 백룡권을 전부 다 펼쳐 보였다.
모든 초식을 끝마친 상천은 자세를 바로 하며 심호흡을 통해 호흡을 조절했다.
그렇게 잠시 동안 서 있던 상천이 종삼에게로 다가왔다.
“어땠어?”
상천이 긴장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종삼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주 좋았다. 멋있었어. 박수 쳐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힘이 없어서 그게 잘 안 되는구나.”
종삼의 말에 상천이 환하게 웃었다.
“방 안에 들어가면 이불장 밑에 뭐가 있을 게다. 그것 좀 가져오너라.”
“알았어. 잠깐만 기다려.”
종삼의 목소리에는 힘든 기색이 역력했다. 그의 말에 대답한 상천은 서둘러 방 안으로 들어갔다.
“이불장 밑에…….”
그렇게 중얼거린 상천은 바닥에 납작하게 엎드린 채 이불장 밑을 바라보았다.
그 밑에는 새벽에 종삼이 힘들게 무언가를 적은 종이 하나가 들어 있었다.
“뭐지?”
그러면서 종이를 꺼낸 상천은 펼쳐 볼 생각도 하지 않고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알 수 없는 불길함이 그의 전신을 휘감았기 때문이다.
밖으로 나온 상천은 곧장 종삼에게 다가갔다.
의자에 앉아 있는 종삼은 지그시 눈을 감고 있었다.
그 앞에 서서 잠시 동안 멍하니 종삼을 바라보던 상천의 몸이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호흡이 점점 가빠오기 시작했고, 눈에는 괜히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뭐야, 이거. 왜 이래? 아저씨, 이거 읽어봐도 되지? 읽는다?”
상천은 괜히 더 밝게, 더 큰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종삼에게서는 아무런 대답도 없었고, 상천은 떨리는 손으로 종이를 펼쳐 보았다.
종이에는 딱 봐도 힘겹게 적은 티가 나는 삐뚤빼뚤한 글씨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