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단월검제-19화 (19/141)

#019화.

몇 번이고 미끄러질 뻔했지만 혹여나 종삼이 다치게 될까 봐 안간힘을 쓰며 버텨냈다.

최대한으로 달려 저잣거리에 도착한 상천은 사람들을 찾았다.

눈이 많이 내렸기 때문인지 저잣거리를 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그나마 있는 사람들도 최대한 움츠린 채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저기요. 길 좀 물을게요! 의원이 어디에 있죠?”

상천이 지나가는 사람 한 명을 붙들고 물었다.

하지만 그 사람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상천의 팔을 뿌리친 채 가던 길을 재촉했다.

무정한 그 사람의 태도에 화가 난 상천은 뭐라 한마디 하려고 했지만 종삼의 상태가 위중했기에 꾹 참고 다른 사람을 붙들고 길을 물었다.

그렇게 겨우겨우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 의원을 찾아간 상천은 굳게 닫힌 문을 주먹으로 두드렸다.

쾅쾅쾅!

“환자예요! 문 좀 열어봐요!”

문을 두드리고 소리를 질러봐도 문은 열리지 않았다.

인기척이 느껴지는 것으로 보아 안에 사람이 있기는 한데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이봐요! 문 좀 열어보라고요!”

쾅쾅쾅!

상천이 다시 한 번 문을 두드리며 재촉했다. 그 와중에도 그의 등에 업혀 있는 종삼은 계속해서 기침을 하고 피를 토하고 있었다.

“이런 씨발! 사람이 죽어간다고! 의원이라면서! 사람 죽게 놔두는 곳도 의원이냐! 젠장! 이 개새끼들아!”

쾅!

상천이 악에 받쳐 문을 거칠게 걷어차며 욕을 퍼부었다.

그러자 안에서 가까이 다가오는 인기척이 느껴졌고,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살짝 열렸다.

“누구요?”

태연하게 묻는 사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에 상천은 더욱 화가 났다. 지금까지 두드리고 욕하고 소리를 질러댔음에도 귀찮다는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로 묻는 것을 보며 화를 참을 수가 없었다.

“문 열어! 환자라고!”

상천이 화가 잔뜩 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러자 문이 조금 더 열리고 목소리의 주인공이 눈으로 상천과 등에 업힌 종삼의 모습을 위아래로 훑었다.

“잠시만 기다리시오.”

그렇게 말한 사내가 다시 문을 닫았다. 안쪽에 걸어 잠가놓은 고리를 푸는 것 같았다.

이윽고 문이 열렸고, 다급하게 안으로 들어선 상천은 문을 열어준 사내를 노려보았다.

“의원이 어딨지?”

“어린놈이 반말은!”

“의원 어딨냐고!”

상천이 서늘한 눈초리로 살기를 담아 말했다. 그러자 슬쩍 눈을 피한 사내가 손가락으로 한쪽을 가리켰다.

퍽!

“으악!”

의원이 있는 곳을 알아낸 상천은 다급한 나머지 어깨로 사내를 밀치고 지나갔다. 물론 방금 전에 있었던 일에 대한 악감정도 어느 정도 담겨 있는 행동이었다.

그 때문에 바닥에 넘어진 사내가 그를 노려보았지만 상천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의원이 있다는 방 쪽으로 다가갔다.

“당신이 의원이요?”

“무슨 일이오?”

상천이 거칠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졸다가 사내의 비명 소리에 눈을 떠 비몽사몽한 상태의 의원이 겁에 질린 목소리로 물었다.

“환자요.”

아직 화가 덜 풀린 목소리로 대답한 상천이 업고 있는 종삼을 조심스럽게 바닥에 눕혔다.

“몇 달 전부터 계속 기침을 하더니 오늘은 피까지 토했으니 봐주시오.”

상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의원이 서둘러 종삼의 맥을 잡아보았다.

잠시 맥을 잡아보던 의원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상태가 아주 심각합니다. 이제까지 안 찾아오고…….”

“일단 치료부터 해주시오.”

상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의원은 서둘러 침을 가져와 종삼의 몸 곳곳에 꽂았다.

종삼의 몸에 침을 다 꽂은 후 의원이 작게 한숨을 내쉬자 상천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떻소?”

“일단은 조금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의원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의원의 표정이 어두운 것을 본 상천은 뛰는 심장을 멈출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으며 잡념을 떨친 상천은 창백해져 있는 종삼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눈발은 며칠째 계속되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은 세상의 모든 어둠과 더러운 것들을 덮어버리려는 듯 새하얗게 쌓여갔다.

계속해서 눈이 내리고 쌓이다 보니 사람들은 눈을 치울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밖으로 나다니는 사람도 없었다.

그런 길을 상천은 매일같이 오갔다.

종삼을 다시 백룡문으로 데려올 생각은 아예 할 수 없었고, 상천이 백룡문에서 의원까지 왔다 갔다 하면서 종삼을 간호했다.

치료를 받기 시작한 지 나흘째 되던 날.

종삼이 의식을 찾았다.

하지만 기력이 많이 쇠한 상태였고, 몸도 많이 야위어 있었다.

그것을 보는 상천은 가슴이 아팠다.

정정하여 자신과 장난도 치고 자신에게 호통도 치고 자신만만해하던 종삼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했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병석에 힘없이 누워 있는 모습은 아직도 믿기 어려웠다.

상천은 그런 종삼을 보며 손을 꼭 잡아주었다.

많이 떨어진 그의 체온을 느끼며 자신의 온기가 종삼으로 하여금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을 담아서.

그런 상천의 정성을 바로 옆에서 느끼고 있는 의원도 성심성의껏 종삼을 치료했다.

그 때문에 상천 역시 첫날의 일 때문에 가지고 있던 안 좋은 생각들이 많이 사라진 상태였다.

그날은 눈도 많이 오고 날도 추워 의원에서 일하는 하인이 귀찮은 마음에 그렇게 행동한 것이고, 그것을 알게 된 의원이 그 하인을 크게 혼냈다는 것을 들었다.

게다가 그 하인도 나중에 상천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했기에 지금은 화가 다 풀린 상태였다.

“좀 어떻습니까?”

자고 있는 종삼의 맥을 짚어보는 의원에게 상천이 조심스레 물었다. 첫날에는 자신보다 나이 많은 의원에게 안 좋은 감정이 있어 평대를 했지만 지금은 존대를 하고 있었다.

“후우…….”

깊은 한숨을 내쉰 의원이 작게 고개를 저었다. 그 모습에 상천의 표정도 많이 어두워졌다.

“한기(寒氣)가 몸속 깊은 곳까지 침투해 있는 상황이라 쉽게 치료하기가 어렵군요. 일단 화기를 돋우는 약을 통해 버티고는 있지만 오래가진 못할 것 같습니다.”

의원의 말에 상천은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치료할 방법이 없겠습니까?”

“지금으로서는… 몇 달 버티는 게 고작입니다.”

의원의 말에 상천은 고개를 떨구었다.

눈물이 나오려고 했지만 애써 꾹 참았다. 언제 종삼이 깨어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안타까움이 진하게 묻어나는 의원의 말에 상천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럼…….”

종삼이 편히 쉴 수 있게 의원이 자리를 피하자 상천은 종삼의 손을 꽉 쥐며 말했다.

“아저씨, 이런 모습은 아저씨답지 않잖아. 나한테 잔소리도 하고 그래야지. 나한테 더 가르쳐 줄 거 없어? 다 가르쳐 줘야지. 응?”

상천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두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지만 이를 악물고 참았다.

“천아…….”

“음? 아저씨, 깼어?”

종삼의 목소리에 상천이 종삼에게 바짝 다가앉으며 물었다.

“이제 그만 돌아가자.”

종삼이 힘없는 목소리로 상천에게 말했다. 그 말에 상천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그의 손을 더욱 힘주어 잡았다.

종삼은 자신의 상태가 쉽게 낫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상천에게는 고뿔이라고 했지만 단순한 고뿔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상천은 몇 달이 지나서야 자신이 피 토하는 것을 보았지만 이미 그전부터 피를 토한 자신인데 그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돌아가자꾸나.”

종삼의 말에 상천이 애써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여기서 좀 더 치료받으면 괜찮아진대. 그러니까 조금 더 있다가 가자. 그리고 지금은 밖에 눈도 많이 내려서 걷기 힘들어. 그러니까… 그러니까… 여기에 좀 더 있다가 가자. 응?”

상천의 말에 종삼이 있는 힘을 다해 입가에 미소를 만들어내었다. 그리고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땅을 파봐라. 돈이 나오나.”

작게 흘러나오는 종삼의 목소리를 들은 상천은 피식 미소를 지었다.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지만 얼굴은 최대한 밝게 미소를 지었다. 기력이 많이 쇠하고 오래 살기 힘든 종삼이었지만 변한 것은 그것뿐이었다.

지금 자신의 눈앞에 있는 종삼은 지금까지 자신이 알고 있던 종삼이다.

“좀 더 있다가 가자. 좀 더. 지금까지 아저씨가 내 고집 꺾은 적 없잖아? 그러니까 이번에는 고집 꺾으려고 힘 빼지 말고 내 말 들어.”

상천의 말에 종삼이 천천히 다시 눈을 감으며 힘겹게 중얼거렸다.

“못 꺾긴… 지금까지… 다… 져준 거다, 이 녀석아.”

종삼의 병세는 오락가락을 반복했다.

호전되는 듯싶다가도 악화되었고, 악화되어 오늘내일 하다가도 다음날에는 많이 호전되기도 했다.

그런 종삼의 변화에 일희일비하던 상천은 그럼에도 종삼의 병세에 큰 차도가 보이지 않자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동안 종삼이 벌어놓은 돈은 의원에 거의 다 쏟아부은 상태였다.

이제는 돈도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었고, 더 이상 의원에 오래 있을 수가 없었다.

그나마 의원이 인심을 베풀어 싼값에 계속 치료를 해주었기에 지금까지 있을 수 있지 그렇지 않았다면 엄동설한에 종삼은 비명횡사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유달리 추웠던 겨울이 지나가고 조금씩 날이 따뜻해지고 있었다.

꽃샘추위 때문에 간혹 눈이 오기도 했지만 양이 얼마 되지 않았고, 그나마도 다음날이면 전부 다 녹아 없어질 정도로 많이 따뜻해져 있었다.

세상천지에 온기가 돌기 시작해서일까?

오락가락하던 종삼의 병세는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차도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호전되었다가 악화되기를 반복하지는 않았다.

그 때문에 그런 종삼을 보며 고통스러워하던 상천도 조금이나마 마음고생을 덜 수 있었다.

스스로도 몸 상태가 조금 나아졌다는 것을 느꼈는지 날이 따뜻해지기 시작하면서 종삼은 계속해서 돌아가자고 고집을 부렸다.

상천의 마음 같아서는 조금 더 의원에 머무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었지만 이번만큼은 종삼의 고집을 꺾기 어려웠다.

종삼의 고집도 고집이었지만 상천이 백룡문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은 결정적인 이유는 의원의 말 때문이었다.

“보아하니 백룡문이 사문인 모양인데, 생의 마지막을 고향 같은 곳에서 보내고 싶은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니 뜻대로 해주는 게 좋을 것 같군요.”

의원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 말이 맞는 것 같아 상천은 자신의 뜻을 접고 종삼의 뜻에 따르기로 마음먹었다.

백룡문으로 돌아온 종삼의 표정은 한결 밝아져 있었다.

마치 모든 병이 다 나은 사람처럼 혈색도 좋아졌고, 예전보다 기침을 하는 횟수도 많이 줄어 있었다.

그런 종삼의 모습을 보니 상천은 돌아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날은 점점 따뜻해지고 종삼의 병세도 안정세에 접어들었다.

물론 아직까지 기력은 쇠한 상태였고 아침저녁으로 기침도 계속하고는 있었지만 적어도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예전보다 많이 안정되어 있었다.

스무 살이 된 상천은 완전히 어른의 모습이었다.

풍기는 분위기 역시 어린 시절과는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그동안 무공 수련을 거의 홀로 해오면서 여러 가지를 느끼고 깨달은 덕분에 또래의 청년에 비해 확실히 사고가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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