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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월검제-18화 (18/141)

#018화.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여름이 다 지나갔다.

가을 날씨에 접어들었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낮 기온이 여름 못지않게 올라갔다.

아침, 저녁은 서늘하고 낮에는 푹푹 찌는 더위가 기승을 부리니 고뿔에 걸려 기침을 하는 사람들이 제법 늘어나고 있었다.

백룡문에도 고뿔 바람이 불었다.

젊은 상천이야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처음 봤을 때보다 많이 늙은 종삼이 고뿔에 걸렸는지 연일 콜록거리고 있었다.

심할 때는 마치 폐병에 거린 사람처럼 심하게 기침을 하는데 옆에서 보는 상천이 다 폐가 찢어지는 것 같은 통증을 느낄 정도였다.

“콜록! 콜록!”

며칠 상간에 기침이 심해져 일하러 나가지 못하고 백룡문에 남아 있던 종삼이 또 한 번 가벼운 기침을 했다.

수련을 하던 상천은 종삼의 기침 소리에 잠시 쉴 겸 그에게 다가갔다.

“아저씨, 괜찮아?”

“콜록! 콜록! 괜찮아. 하던 거 마저 해도 돼.”

“나도 조금 쉬려고.”

종삼의 말에 대답한 상천이 그 옆에 앉았다.

“콜록! 콜록!”

종삼이 또 한 번 기침을 했다. 숨을 쉴 때마다 바람 빠지는 소리가 섞여 나왔다.

“약이라도 지어다가 먹어야 되는 거 아니야?”

“약은 무슨. 고뿔 같은 건 약 안 먹고도 나아야지.”

그렇게 대답한 종삼은 호흡이 힘든지 눈에 보이게 어깨를 들썩였다.

“등 돌려봐.”

상천의 말에 종삼은 다른 말 하지 않고 등을 보이고 돌아앉았다.

토닥토닥.

조금이라도 기침이 줄어들까 싶어서 손바닥으로 가볍게 등을 쓸어내렸다.

그 때문인지 종삼의 호흡도 조금 편안해졌고, 기침도 가벼워졌다.

“고맙구나.”

기침이 줄어들고 호흡이 안정되자 다시 등을 돌려 바로 앉은 종삼이 상천에게 말했다.

그 모습을 보는 상천은 마음이 별로 좋지 않았다.

예전에는 자신과 티격태격할 정도로 기운이 넘치는 종삼이었지만 십 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에는 기운이 많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들어가서 좀 누워 있어.”

“누워 있는 것도 힘들다. 허리 아파. 그냥 이렇게 앉아 있는 게 좋아.”

상천의 말에 종삼이 가만히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래, 그럼 여기 앉아서 쉬고 있어.”

그렇게 말한 상천은 다시 연무장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곧 다시 무공 수련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종삼은 이내 대청마루 기둥에 기대어 앉아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수련을 하다가 꾸벅꾸벅 조는 종삼을 본 상천은 조심스럽게 그를 안고 안으로 들어가 눕혔다.

그리고는 심란한 마음을 안고 백룡문을 나서서 병목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찾아온 상천을 본 병목과 아이들은 굉장히 반가워했다. 하지만 상천의 얼굴에서 어두운 그림자를 본 병목은 다른 아이들을 물리고 그와 나란히 앉았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얼굴이 어두운데.”

“아저씨가 아프셔.”

“아프시다고? 어떻게?”

상천의 말에 병목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모르겠어. 고뿔이라는데 낫질 않네.”

“의원에는 가본 거야?”

병목의 물음에 상천이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병목이 놀라 말했다.

“의원도 안 가봤어? 얼른 모시고 다녀와야지!”

“후우……. 내가 가자고 안 해봤겠어? 고뿔 정도는 약 안 먹고도 낫는 거라면서 고집이니 그렇지.”

한숨 섞인 상천의 대답에 병목이 중얼거렸다.

“그동안 고생이 많긴 하셨지…….”

“고생은 무슨.”

병목의 말에 상천이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고생하셨지. 너 데려다가 먹이고 가르치고……. 애 키우는 게 쉬운 게 아니잖아.”

“허! 누가 들으면 나한테 일평생 헌신한 줄 알겠다.”

상천이 병목에게 핀잔을 주었다. 그러자 오히려 병목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너야말로 이상한 거 아냐? 그건 예의가 아니지. 너 데려가서는 갖은 고생 해가면서 돈 벌어서 입히고 먹이고 재우고 무공 가르치고 그랬는데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병목의 말에 이번에는 상천이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일? 대낮에 기루 가고 도박장 가는 게 일이야?”

“뭐야? 너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어?”

상천의 대답에 병목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쯤 되니 상천도 뭔가 이상한 것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너 몰랐어? 네 사부님, 이 동네에서 온갖 고생 다 해가면서 일하셨어. 기루나 도박장 같은 데에서 푼돈 받고 경비무사 같은 거 하면서 험한 꼴도 꽤 보셨을걸. 그뿐이 아니야. 남들 하기 꺼리는 힘든 일도 안 가리고 하시더라. 그게 누구 때문이겠어?”

처음 듣는 병목의 말에 상천은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일? 일을 했다고? 기루 가고 도박장 간 게 다 일 때문이었어? 돈 벌려고? 나 때문에?’

그제야 상천은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

돌아와서는 허리 아프다고 했던 것, 아침에 나가 저녁 때 들어온 것, 제대로 무공을 가르쳐 주지 않았던 것.

전부 다 일을 했기 때문이다.

일을 하니 여기저기 아프고, 백룡문에 붙어 있을 시간이 없고, 그러다 보니 무공을 가르쳐 줄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괜찮아?”

멍한 표정의 상천을 본 병목이 슬쩍 물었다.

상천은 대답 대신 자리에서 일어나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그곳을 떠났다.

어떻게 걸어왔는지 모르게 백룡문으로 돌아온 상천은 곧장 방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서는 종삼이 여전히 잠을 자고 있었다.

잠에 빠져 기침은 하지 않고 있었지만 숨을 쉴 때마다 몸 안쪽에서 가래 끓는 소리가 조그맣게 들렸다.

“아저씨…….”

잠이 든 종삼의 옆에 앉은 상천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많이 야윈 그의 손을 꼭 잡았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그렇게 중얼거린 상천이 고개를 푹 숙였다.

***

종삼의 상태는 좀처럼 낫지 않았다.

단순한 고뿔로 생각했던 상천의 근심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의원에 가서 진료 좀 받아보자는 상천의 말을 종삼은 한사코 거절했다. 자신의 몸은 자신이 가장 잘 안다면서.

그렇게 계절이 바뀌고 서늘한 바람이 아닌 칼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종삼의 상태는 더욱 심해졌다.

기침이 워낙 심해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할 정도였고, 숨이 차서 말을 하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찬 기운이 더욱 심한 저녁부터 새벽까지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니 낮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잠을 자며 보냈다. 그나마도 중간에 깨면 한동안 심한 기침을 계속해서 토해냈다.

그것을 옆에서 지켜보는 상천은 가슴이 아팠다.

이러다가 진짜 피 토하고 죽는 것은 아닌지 하는 걱정에 무공 수련도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였다.

마음 같아서는 강제로 둘러업고 의원에 데려가고 싶었지만 밤에 못 자는 잠을 낮에 몰아서 자는 종삼을 보면 그러기도 쉽지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함박눈이 내리던 어느 날.

결국 사단이 터졌다.

사박사박.

슥! 슥! 슥!

상천은 간밤에 내린 정강이까지 쌓인 눈을 이른 아침부터 쓸고 있었다.

적당히 내린 것도 아닌, 그것도 함박눈인지라 쓸어내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발이 얼어붙을 것 같았지만 그래도 상천은 중간 중간에 아궁이에 가서 언 발과 손을 녹여가며 눈을 쓸었다.

“콜록! 콜록!”

안에서 또다시 종삼의 기침 소리가 들렸다.

반 시진쯤 전에 잠이 들었는데 그새 또 잠에서 깬 것이다. 요즘 들어 입맛도 없다 하며 식사도 제대로 못하여 기력이 많이 쇠한 터라 증세가 더 심해지는 것 같았다.

“하…….”

상천이 한숨을 내쉬었다.

“콜록! 콜록!”

또다시 종삼의 기침 소리가 들렸다. 조금 전에 흘러나온 소리보다 더 큰 것이 아무래도 많이 안 좋은 모양이다.

빗자루를 아무렇게나 던져 놓은 상천이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다.

하늘에서는 또다시 함박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괜찮아?”

“괜찮다. 하아, 하아.”

괜찮다는 짧은 한마디를 내뱉은 종삼이 거칠게 숨을 쉬었다. 누워 있는 것이 불편했는지 힘겹게 몸을 일으키는 그를 상천이 부축했다.

“자, 이거 놓고 기대.”

두꺼운 솜을 넣어 만든 베개를 종삼의 등과 벽 사이에 끼워 넣은 상천이 앞에 앉아 가만히 그를 바라보았다.

“조금 춥구나.”

“추워?”

춥다는 종삼의 말에 상천이 방바닥을 만져 보았다.

아궁이에 불을 세게 지펴놓아 방바닥은 뜨끈뜨끈한 상태였다. 밖에 있다가 들어왔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신도 조금 덥다는 느낌이 들었다.

“외풍이 있나?”

그렇게 중얼거린 상천은 종삼이 기대고 있는 벽 쪽으로 손바닥을 가져가 보았다.

딱히 바람이 새어들어 온다는 느낌은 없었다.

“자, 이거라도 덮고 있어.”

상천이 이불을 끌어다가 종삼에게 덮어주었다. 그럼에도 종삼은 미약하게 몸을 떨고 있었다.

“진짜 의원에 안 가봐도 돼?”

“괜찮대두. 콜록! 콜록!”

종삼이 또다시 기침을 했다.

이번에는 제법 심해 얼굴까지 시뻘게지고 헛구역질까지 했다.

“안 되겠다. 진짜 의원에 가자.”

“이런 고뿔 때문에…….”

“아, 쫌!”

계속해서 고뿔타령을 하는 종삼을 보며 결국 상천이 큰 소리를 냈다.

“고뿔 타령한 지 벌써 몇 달째야! 계속 기침을 하고 야위어가고! 낫기는커녕 심해지기만 하잖아!”

상천이 속상한 마음에 버럭 화를 내었다.

그런 상천을 한번 바라본 종삼은 대꾸할 기력도 없는 듯 지그시 눈을 감았다.

“가자. 응?”

미안한 마음에 상천이 화를 누그러뜨리고 종삼에게 다가가 앉으며 부드러운 어조로 물었다.

하지만 종삼은 힘겹게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하…….”

상천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이어진 침묵을 깨고 어느새 잠이 든 종삼의 미약한 숨소리가 나직이 흘러나왔다.

다시 내리기 시작한 함박눈 때문에 상천도 방 안에서 쉬고 있었다.

방바닥이 뜨거워 두꺼운 이불을 접어서 깔고 앉은 상천은 가부좌를 틀고 규화공을 운용하고 있었다.

꾸준히 규화공을 익혀온 상천은 어느새 십성 끝자락에 있었다.

비록 규화공이 상승의 무학은 아니라 하지만 어느새 상천의 단전에는 일 갑자에 육박하는 진기가 쌓여 있었다.

물론 명문 무파에서 가르치는 상승의 심법이라면 십성 끝자락에 다다랐을 즈음에는 일 갑자를 훌쩍 뛰어넘는 진기를 가질 수 있었겠지만 아쉽게도 규화공은 그 정도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

무아지경에 빠져 규화공을 운용하던 상천은 한 시진가량의 운기를 끝마치고 천천히 현실로 돌아왔다.

현실로 돌아온 상천이 눈을 뜨기도 전에 가장 먼저 들린 것은 종삼의 기침 소리였다.

소리만 들었을 뿐임에도 종삼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을 단박에 알 수 있을 정도로 심했다.

“아저씨, 괜찮아?”

눈을 뜨고 종삼에게로 고개를 돌리며 물은 상천은 깜짝 놀랐다.

종삼은 입을 막고 기침을 하며 앉아 있었고, 그가 덮고 있던 이불이 빨갛게 물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아저씨!”

깜짝 놀란 상천이 급히 그의 앞으로 다가앉았다.

그의 손과 입은 기침을 하며 토해낸 피로 흥건했고, 이불 역시 제법 많은 양의 피 때문에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아저씨, 업혀!”

상천이 서둘러 종삼을 둘러업었다.

아직도 종삼은 기침을 하고 있었고, 그의 입에서는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기에 상천은 조급한 마음이 들었다.

종삼을 업고 추위에 대비해 이불로 꽁꽁 싸맨 상천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어느새 눈은 그쳐 있었지만 살을 에는 듯한 차가운 바람이 제법 강하게 불고 있었다.

이를 악물고 종삼을 업은 채 밖으로 나온 상천은 제대로 걷기 힘들 정도로 쌓인 눈길을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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