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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월검제-17화 (17/141)

#017화.

아이들의 수련을 병목 등 세 명에게 맡긴 상천은 곧장 백룡문으로 돌아왔다.

해가 저물기 전에 상천이 돌아오자 먼저 와 있던 종삼이 의아한 듯 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뭔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그의 표정에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백룡문에 돌아온 상천은 종삼을 보았는지 못 보았는지 별말 없이 곧장 연무장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해가 뉘엿뉘엿 기울면서 주저앉은 상천의 뒤로 그림자가 기다랗게 늘어지고 있었다.

‘바보 같았어. 그걸 생각 못하다니. 검법과 권법, 보법을 따로따로 생각하다니…….’

문득 떠오른 생각을 바탕으로 상천이 알게 된 것은 며칠간 계속해서 눈앞에 보인 환영들의 비무는 단순히 단월검과 백룡권의 새로운 면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서로 다른 무공이라고 해서 꼭 다르다는 법은 없지. 유사점이 있을 수도 있고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부분도 있을 거야. 그걸 몰랐다니…….’

상천은 연무장을 바라보며 환영을 하나 만들어내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백룡권을 펼쳐 보일 흐릿한 환영이었다.

스멀스멀.

그러자 그 맞은편에 또 다른 환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단월검을 펼칠 환영이었다.

연무장 위에 모습을 드러낸 두 환영은 이윽고 비무를 시작했고, 상천은 그것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기본적으로 검법과 권법은 보법과 조화를 이뤄야 해. 그리고 단월검의 저 초식은… 그래, 지금 보이는 백룡권의 저 초식과는 상극이야.’

상천의 눈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단월검을 펼쳐 내는 환영의 움직임과 백룡권을 펼쳐 내는 환영의 움직임을 좇고 각각의 초식들을 비교하고 분석하기 시작했다.

상천의 눈만큼이나 머리가 바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무려 나흘의 시간이었다.

상천은 먹지도 자지도 싸지도 않고 연무장 바닥에 주저앉은 채 일어날 생각도 하지 않았다.

앉아 있는 자세 역시 크게 변하지 않았다.

한 자세로 오래 앉아 있으면 몸이 찌뿌듯해서 기지개라도 한 번씩 켤 법도 한데 상천은 그 자세 그대로 앉아 있었다.

“저대로 돌이 되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그렇게 중얼거리는 종삼의 목소리에는 크게 걱정하는 기색이 없었다.

상천이 그만큼 중요한 것에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언제까지 앉아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일어나면 고생깨나 할 거다.”

그렇게 중얼거린 종삼이 일을 하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종삼이 나가고 반 시진 정도의 시간이 흘러 상천이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나흘 동안 두 환영의 비무를 지켜보면서 많은 것을 알게 된 상천이었다.

완전히 새로운 것만을 찾으려 했던 상천은 이번 기회를 통해 기존의 것에서도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으악!”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상천은 굳은 뼈에서부터 느껴지는 지독한 통증에 비명을 지르며 다시 털썩 주저앉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거야? 아이고 아파라!”

그렇게 중얼거린 상천이 다시금 힘겹게 가부좌를 틀고는 규화공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단전에 있던 청명한 기운이 상천의 몸 구석구석을 돌며 통증이 올라오는 곳들을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상천에게 있어서 병목을 비롯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새로운 동기 부여를 가져다주었다.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이 부담되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 부담감은 보람과 뿌듯함, 즐거움으로 변해갔다.

상천에게서 백룡권을 배우기 시작한 아이들의 건강도 좋아지고 있었고 실력도 제법 많이 늘어가고 있었다.

워낙 배우려는 의지가 강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상천이 지금까지 수련하면서 느꼈던 것들을 아낌없이 전해주었기 때문이다.

실력들이 많이 늘기는 했지만 상천은 단순히 백룡권만 익혀서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요즘 들어 고민하고 있는 것이 규화공의 전수였다.

지금까지 상천이 수련을 해오면서 느낀 것은 규화공이 무공의 위력을 높이는 데 효능이 있지 않다는 점이다.

물론 심법이고 단전에 내공이 쌓이고 있기 때문에 초식을 펼치는 데 있어서 위력이 없지는 않았다. 다만 초식의 위력을 극대화하기에는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무인이 아닌 호신용으로 익히는 권법이라면 규화공으로도 충분히 자신의 몸 하나는 지킬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 섰다.

다만 상천이 고민하는 것은 백룡권과 달리 규화공은 백룡문 무공의 근간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종삼이 상천에게 알아서 하라고 하기는 했지만 규화공을 외인에게 가르치는 것은 조금 상황이 달랐다. 그들 전부를 백룡문의 문도로 받아들인다면야 상관이 없겠지만 상황상 그럴 수 없어 더욱 고민이 되었다.

상천은 열심히 수련하고 있는 아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다들 굉장히 진지한 표정으로 병목 등이 시범을 보이는 동작들을 따라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상천이 일일이 돌아다니면서 자세를 바로잡아 주고 자신이 아는 것들을 말해주었지만 이제는 병목 등이 알아서 잘하고 있었다.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다른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에 굉장한 부담을 느끼던 그들도 이제는 익숙해져 나름 잘해내고 있었다.

‘가르칠까?’

상천의 고민이 깊어졌다.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아이들에게 규화공을 가르칠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한 결정을 내리기까지 보름의 시간이 걸렸다.

장고 끝에 상천이 내린 결정은 ‘가르치자’였다.

호신용이기는 하지만 이왕 무공을 가르치기 시작한 것, 제대로 가르쳐 보자는 생각이었다.

그러는 와중에 어느덧 상천의 나이 열아홉이 되었다.

규화공을 가르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아무리 하급의 것이라 하여도 심법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깨달음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다.

권법이나 검법처럼 형이 있는 것이 아니기에 설명과 해석으로만 가르쳐야 했다.

제각각 이해하는 수준이 다르고 무공에 대한 자질이 달랐기 때문에 성취 속도 또한 제각각이었다.

그러다 보니 단체로 세워놓고 가르칠 수 있는 백룡권과 달리 규화공은 한 사람, 한 사람을 직접 가르쳐야만 했다.

시간은 백룡권을 가르칠 때보다 배로 들었고, 더 힘이 들기도 했지만 상천은 보람과 즐거움을 느끼고 있었다.

특히나 아랫배 쪽이 따뜻하고 묵직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막내들을 보면 자신이 처음 규화공을 익히고 단전에 내공이 쌓이기 시작할 때를 떠올리며 입가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상천의 나이 열아홉이 되던 해의 늦봄.

점점 날이 더워지기 시작하자 어린아이들은 가만히 앉아서 하는 규화공 수련을 힘들어했다.

특히나 한창 뛰어놀 나이에 한 시진 이상 가부좌를 틀고 가만히 앉아 있어야 하니 좀이 쑤셔하기 일쑤였다.

그런 아이들을 어르고 달래며 수련을 시킨 결과 여름 초입에 들어설 때쯤에는 모두가 단전에 내공을 조금이나마 쌓을 수 있었다.

“이제 끝인가?”

일 년 이상 백룡권을 가르치고 규화공을 가르친 상천이 지난날을 돌아보며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자신의 앞쪽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규화공을 운용하고 있는 아이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뜯어보았다.

그동안 참 정이 많이 든 얼굴들이다.

잠시 후,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은 채 규화공을 운용하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눈을 떴다.

모두의 입가에는 만족스런 미소가 번져 있었다.

“자, 다들 모여봐.”

모두가 운공을 마치고 눈을 뜨자 상천이 그들을 불러 모았다.

“이제 내가 가르쳐 줄 건 다 가르쳐 줬어.”

상천의 말에 아이들의 얼굴에서는 희열이 묻어났다. 다만 어려서부터 상천과 함께 지냈던 병목 등의 얼굴은 살짝 어두워졌다.

상천에게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는 것은 이제 앞으로 그의 얼굴을 매일 볼 수 없다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내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무공을 익혔다는 것을 절대 함부로 얘기하고 다니지 말라는 거야.”

“왜요?”

상천의 말에 어린아이 한 명이 손을 번쩍 들며 물었다.

질문을 하는 아이의 얼굴에는 어디 가서 자랑하고 싶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더 힘 센 아저씨들한테 혼날 수도 있거든.”

“형아도 못 이겨요?”

“글쎄? 내가 이길 수 있는 사람도 있고 없는 사람도 있겠지?”

상천의 말에 아이가 슬그머니 손을 내렸다.

“그리고 또 하나는 절대로 무공을 익혔다고 해서 자기보다 약한 사람을 괴롭히지 말라는 거야.”

이번 상천의 말에는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힘이 없고 구걸을 하고 다니는 처량한 신세라서 당한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 일을 당하면 나중에 힘이 생겼을 때 똑같이 해주겠다는 마음을 먹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적어도 이 자리에 있는 사람 중 그런 마음을 먹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평소 병목이 자신들은 절대 그렇게 살지 말자는 이야기를 자주 했기 때문이다.

“자, 다들 고생 많았어. 수련은 하루도 빼놓지 말고 매일 해야 되는 거 알지?”

상천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수련 끝!”

그들을 보며 미소를 지은 상천이 그들을 해산시켰다.

모두 자리를 뜨고 상천의 옆에 병목 혼자 남아 있었다.

“이제 안 올 거지?”

“음? 왜 안 와? 오지. 지금처럼 매일 오지는 못하겠지만.”

병목의 물음에 상천이 웃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병목의 표정에는 아쉬움이 진하게 묻어 있었다.

“표정이 왜 그래? 그러지 마. 안 올 것도 아닌데. 자주 올게.”

“그래, 자주 와. 그리고 고맙다.”

“고맙긴.”

병목의 말에 상천이 그의 어깨를 가볍게 툭 치며 말했다.

상천의 손끝에 제법 탄탄하게 발달한 병목의 어깨 근육이 느껴졌다.

상천은 수련이 끝났음에도 여기저기서 주먹을 휘두르는 아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나도 저 아이들처럼 옆에서 성심성의껏 가르쳐 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았을걸.”

그 아이들을 보며 상천이 중얼거렸다.

“음? 무슨 소리야?”

“아니야, 아무것도. 갈게. 앞으로 꾸준히 하는 게 중요해. 알지?”

“그래, 알았다. 조심해서 가라. 멀리는 안 나가마.”

그렇게 말하는 병목에게 가볍게 손을 한번 들어 보인 상천이 그곳을 벗어났다.

멀리 안 나가겠다던 병목은 상천의 모습이 저잣거리로 스며들 때까지 서 있다가 발걸음을 돌렸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끝난 후, 상천은 며칠 동안 허전함을 달래야 했다.

아침에 눈을 떠서 자신도 모르게 백룡문을 나서려다가 ‘아!’ 하고 멈춰 선 것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매일같이 그러다가 열흘이 지나서야 조금 적응할 수 있었다.

그렇게 적응 기간(?)을 거치고 나서야 상천은 마음 편하게 집중해서 무공 수련에 임할 수 있었다.

그동안 아이들을 가르치며 느꼈던 것들을 틈나는 대로 정리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고 노력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지만 시간적으로 부족한 것이 사실이었다.

때문에 상천은 최대한 지금까지 느꼈던 것들을 되새기면서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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