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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월검제-10화 (10/141)

#010화.

쉬익!

빡!

“악!”

상천은 자연스럽게 천유보를 밟으며 자신을 잡으려는 추명구의 손을 피한 뒤 단월검 초식대로 목검을 휘둘렀다.

‘된다!’

목검에 팔을 정통으로 맞은 추명구는 팔이 부러진 것 같은 엄청난 통증에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뒹굴었다.

그 모습을 본 하동 역시 쉽게 다가서지 못하고 있었다.

“멍청한 것들! 애 하나 가지고 뭐하는 거야? 비켜!”

그렇게 말하며 거칠게 하동을 밀쳐 낸 고봉이 직접 상천에게 달려들었다.

거대한 덩치를 가진 고봉이 자신에게 달려들자 조금은 긴장이 되었는지 침을 한 번 삼키기는 했지만 상천은 두려워하지 않았다.

방금 전 자신에게 달려들던 추명구와 하동이 뒤로 물러서지 않았는가.

붕!

고봉의 주먹이 상천을 향해 날아왔다.

확실히 덩치만큼이나 꽤나 큰 힘이 실린 주먹질이었다.

상천은 침착하게 천유보를 밟았다.

“어라?”

고봉의 주먹이 상천을 비켜갔다. 천유보의 위력이었다. 가볍게 고봉의 주먹을 피한 상천이 목검을 휘둘렀다.

쉬익!

빡!

“으악!”

목검에 옆구리를 맞은 고봉이 뒤로 한 발짝 물러섰다. 그러자 상천도 더 공격하지 않고 거리를 둔 채 목검을 겨누고 있었다.

“이래도 내가 거지새끼냐? 이래도 내가 만만하게 보여?”

상천의 말에 고봉은 씩씩거리며 그를 노려보았다.

“그래, 이 개새끼야!”

고봉이 다시 한 번 상천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자신이 익힌 천유보와 단월검이 통한다는 것을 확인한 상천은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그다음부터는 상천의 시간이었다.

고봉이 계속해서 달려들었지만 상천은 천유보를 이용해 요리조리 피하며 고봉의 거대한 몸을 목검으로 두들겼다.

자신의 주먹은 하나도 맞지 않고 계속 상천의 목검에 두들겨 맞기만 하자 고봉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처음에는 상천이 만만하게 보였으나 점차 시간이 지날수록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결국 고봉은 울면서 빌었다.

“엉엉! 잘못했어! 엉엉! 그만! 그만해!”

고봉이 울면서 잘못했다고 빌자 상천은 휘두르던 목검을 거두었다.

더 이상 목검이 날아들지 않자 고봉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더 큰 목소리로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

“엉엉!”

“시끄러!”

“엉엉!”

“조용히 안 해? 확!”

상천이 또 한 번 목검을 들어 올리자 고봉은 울음을 뚝 그쳤다. 그리고는 두려움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상천을 올려다보았다.

“한 번만 더!”

“흐익!”

상천의 목검이 코앞까지 다가오자 깜짝 놀란 고봉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여기서 애들 괴롭히면 혼난다!”

“…….”

“대답 안 해?”

고봉에게서 대답이 없자 상천이 두 눈을 부릅뜨며 다시 물었다.

“…럴게.”

“뭐? 안 들려!”

“아, 안 그럴게!”

“안 그런다고 했다! 응? 또 한 번 그러기만 해봐! 아주 확!”

상천이 다시 한 번 겁을 주자 고봉이 움찔하며 두 팔로 얼굴을 감싼 채 몸을 웅크렸다.

“사라져!”

상천의 말에 고봉 패거리는 서둘러 그 자리를 피해 도망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상천은 그들이 보이지 않자 웃음을 터뜨렸다.

당한 것을 돌려주었다는 통쾌함과 함께 자신이 지금까지 제대로 수련을 했다는 것에 큰 희열을 느꼈다.

***

시간은 더딘 듯하면서도 빠르게 흘러갔다.

제법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열여섯이 된 상천과 그만큼 더 늙은 종삼의 생활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많이 변한 겉모습만큼은 아니었지만 상천의 성격에도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 나이를 더 먹고 철이 들어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예전만큼 톡톡 튀기만 하지 않고 제법 차분해져 있었다.

하지만 딱 한 가지.

상천의 말투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종삼에게 반말을 하고 아저씨라고 불렀다. 그리고 상천을 대하는 종삼의 말투 역시 변한 것이 없었다.

성격은 변했을지 몰라도 서로에 대한 두 사람의 태도와 말투는 습관처럼 굳어져 있었다.

그리고 서로 그런 것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사실 그것은 상천이 나이가 들면서 어느 정도 철이 든 것도 일조를 했지만 진정한 원인은 규화공에 있었다.

상천은 신공이라 알고 있었지만 사실 규화공은 무공을 펼치는 데 있어서 위력을 더해주는 심법이라기보다는 심신의 조화에 좀 더 중점을 둔 심법이었다.

때문에 대성을 해도 쌓이는 내공은 그렇게 많지가 않았다.

그런 규화공이 어느덧 구성을 바라보고 있었으니 성격이 많이 차분해지는 것은 당연했다.

지난 시간 동안 상천은 단월검의 열 초식을 모두 익힌 상태였다.

제일초식 삭풍에서부터 마지막 초식인 역천(譯天)까지 무리없이 펼쳐 낼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상천은 더욱더 단월검에 매달리고 있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단월검을 순차적으로 펼치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무작위로 펼치려 하면 걸리는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특히나 삼초식인 겁화에서 육초식인 파석(破石)으로 넘어갈 때와 일초식인 삭풍에서 팔초식인 단월(斷月)로 연결되는 부분에서는 답이 없었다.

이미 수천 번 검을 휘두르며 익힌 초식임에도 도저히 팔이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막막했다.

이처럼 답답할 때가 없었다.

그동안 수련을 하면서 막히는 부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상천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상상력이 엄청난 도움이 되었다.

종삼이 딱히 큰 가르침을 주지 않고 있음에도 상천 혼자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아무리 눈앞에 환영을 만들어 수천 번 반복을 해봐도 해결이 되지 않았다.

상천이 만들어낸 환영도 딱히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다.

당연한 것이 환영이 하는 것을 눈으로 보면서 문제점을 찾아야 해결책도 나오는데, 상천은 그 원인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상천은 백룡신권을 가르쳐 주겠다는 종삼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지금 마주친 단월검의 문제부터 해결하고 넘어가야겠다는 그의 고집 때문이었다.

그렇게 상천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눈이 너무 피곤해서 시큰거릴 때까지 연무장에 앉아 환영이 펼쳐 보이는 단월검을 보고 있던 상천은 잠시 쉬기 위해 그대로 누워버렸다.

해가 중천에 떠 있을 시간이었지만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 것 같은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고 있어 그렇게 밝지도 뜨겁지도 않았다.

습도가 높기는 했지만 그래도 제법 선선하게 부는 바람에 살짝 미소를 짓고 있던 상천이 살짝 눈을 떴다.

“젠장.”

그렇게 중얼거린 상천이 훌쩍 자리에서 일어났다.

후두두둑!

얼굴에 떨어진 한줄기 빗방울에 눈을 뜨고 자리에서 일어선 상천이 서둘러 처마 밑으로 들어가고 나자 곧바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오는 비네.”

시원하게 쏟아지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상천이 중얼거렸다.

그렇게 상천은 간만에 쏟아지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멍하니 서 있었다.

“에효, 오늘은 왠지 아무것도 하기가 싫구나. 그냥 쉬자.”

이제껏 하루도 수련을 거른 적이 없는 상천이 그렇게 중얼거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온 상천은 계속해서 굵어지기만 하는 빗줄기 소리를 들으며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벽에 기대앉아 있는 상천은 아무런 생각도 없이 그저 멍하니 앉아 있었다. 눈에는 초점도 없었고, 머릿속은 백지처럼 하얗기만 했다.

“하암! 졸린데?”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기 때문인지 슬슬 졸음이 몰려오기 시작하자 상천은 바닥에 벌러덩 누워버렸다.

그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잠에 빠져들었다.

한번 내리기 시작한 비는 그칠 줄을 몰랐다.

굵어졌다가 약해지기를 반복하더니 한 식경 전부터는 폭우 수준의 비가 계속해서 쏟아지고 있었다.

바람도 제법 불어 비가 수직으로 내리는 것이 아니라 거의 수평으로 휘몰아치고 있었다.

자면서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던 상천은 어느새 한쪽 벽에 찰싹 붙어 있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벽에 있는 창문이 살짝 열려 있었다.

그 때문에 안쪽으로 조금씩 비가 들이치기 시작했고, 상천의 옷은 점점 젖어갔다.

자신의 옷이 젖어가는 것도 모르고 잠에 빠져 있던 상천은 점점 축축해져 가는 느낌에 조금씩 깨고 있었다.

휘이이잉!

갑자기 지금까지보다 더 강한 바람이 한차례 창문 쪽으로 불어왔고, 그 바람을 타고 빗방울이 안쪽으로 후두두 소리와 함께 들이쳤다.

“아! 뭐야!”

갑자기 얼굴 쪽으로 많은 양의 빗방울이 떨어지자 깜짝 놀라 소리치며 잠에서 깬 상천은 그제야 자신의 옷이 제법 많이 젖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 뭐야! 비!”

자신의 옷이 젖은 것이 창문으로 비가 들이쳤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상천은 자리에서 일어나 신경질적으로 창문을 닫았다.

탁!

“아〜 찝찝해. 얼마나 들이친 거야?”

인상을 찌푸린 채 축축하게 젖은 자신의 옷을 내려다보던 상천이 가장 많이 젖은 상의를 훌러덩 벗었다.

그러자 그동안 수없이 검을 휘두르고 보법을 연마하며 단련된 근육들이 물기를 머금고 꿈틀거렸다.

“에잇! 말려야겠네. 일단 좀 닦고.”

그렇게 말한 상천이 주변을 둘러보며 바닥에 흐른 물을 닦아낼 걸레를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딱히 닦을 것이 보이지 않자 손에 든 젖은 상의로 대충 한 번 슥 닦은 상천이 옷을 들고 주방 쪽으로 향했다.

주방으로 간 상천은 근처에 있는 화섭자로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그런 다음 적당한 길이의 나뭇가지에 옷을 걸고 그 앞에 가만히 들고 있었다.

“이걸 언제 말리고 있냐.”

그렇게 중얼거린 상천이 주방 안을 두리번거렸다.

계속해서 나무에 젖은 옷을 들고 있자니 팔이 아파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어디 보자…….”

그렇게 중얼거리며 젖은 옷을 든 채로 주방을 기웃거리던 상천이 한쪽 구석에 놓인 지게 비슷한 것을 찾아냈다.

“저기다가 걸쳐 놓으면 되겠다.”

그렇게 중얼거린 상천이 나뭇가지에 걸어놓은 옷을 든 채로 그쪽으로 걸어갔다.

“읏샤!”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제법 무게가 나가는 그것을 들어 올린 상천의 눈에 뭔가가 들어왔다.

“뭐지 이건?”

벽과 벽이 만나는 모서리 부분이 조금 부서져 있었는데 그 안에서 뭔가가 보인 것이다.

“아닌가? 잘못 본 건가?”

상천은 들고 있던 지게와 옷을 아궁이 앞에 내려놓고는 부서진 모서리 부분으로 바짝 다가갔다. 그리고는 손으로 그 부분을 살짝 뜯어내었다.

“뭐가 있는데?”

모서리 부분을 조금 더 뜯어내자 자그마한 상자 같은 것이 보였다.

“상자?”

확실히 뭔가가 있다는 것을 확인한 상천이 벽을 조금 더 뜯어냈다. 종삼이 그 모습을 보았다면 한소리 했겠지만 그런 것은 이미 상천의 머릿속에 없었다.

조금 더 벽을 뜯어내자 상자를 꺼낼 수 있을 정도의 구멍이 생겼고, 상자를 꺼낸 상천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뭘까?”

어른 손바닥 두 개를 나란히 모은 정도의 크기였다.

끼익!

낡은 경첩이 힘겨운 울음을 토해내며 상자가 열렸다.

“책?”

상자 안에 들어 있는 것은 책이었다.

보통 크기의 책보다 한참 작은 크기였지만 분명 책은 책이었다.

“이건 뭐야?”

안에서 책을 꺼내고 상자를 옆에 내려놓은 상천은 천천히 책을 펼쳐 보였다.

책이 작은 만큼 안쪽의 내용도 작은 글씨로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뭐가 이렇게 작아…….”

상천이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중얼거리고는 작은 글씨들을 읽기 시작했다.

“난 백룡문 사십대 문주 호천강이다. 이 책의 내용은 내가 살면서 있었던 일들을 적어놓은 일대기로써 이 책을 발견한 후인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 적는다. 호천강? 사십대 문주?”

종삼 외에 전대 문주들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없는 상천에게 호천강이라는 이름은 낯설 수밖에 없었다.

“대단한 사람인가? 이런 것도 쓰고?”

그렇게 중얼거리며 상천이 자리에서 일어나 책을 들고 방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미 아궁이 앞에 있는 젖은 옷은 안중에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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