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화.
종삼이 나가고 해가 중천에 뜬 후에야 상천은 눈을 떴다.
잠이 덜 깨 비몽사몽 상태에서 두들겨 맞은 곳이 욱신거려 절로 신음 소리가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한참을 앉은 채로 가만히 있던 상천이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차가운 물에 세수를 하고 정신을 차린 상천은 종삼이 차려놓고 간 간단한 음식으로 요기를 하고는 연무장으로 갔다.
목검을 집어 들고 수련을 시작하기 전에 몸을 움직여 뻐근함을 풀었다.
가볍게 움직였음에도 온몸이 비명을 지르는 것처럼 아팠다.
그렇지만 상천은 인상만 조금 찌푸릴 뿐 계속해서 연무장 위에 서 있었다.
몸을 풀고 난 후 상천은 본격적으로 뇌우의 수련을 시작했다.
아직은 몸이 불편해 제대로 된 초식을 펼치기 어려웠지만 상천은 절대 포기 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더 집중력을 발휘하여 느리더라도 완벽한 초식을 익히기 위해 노력했다.
수련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상천의 이마에서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할 무렵.
상천은 잠시 수련을 멈추고 연무장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래도 두 시진 정도 수련을 하며 계속해서 몸을 움직였기 때문인지 통증은 조금 있었지만 움직이는 데 불편한 것은 많이 줄어든 상태였다.
생각보다 몸이 빨리 낫는 것 같아 상천의 표정도 마냥 어둡지는 않았다.
대신 두 눈에 담겨 있는 독기는 여전했다.
‘두고 봐라. 혼쭐을 내주마.’
고봉과 추명구, 하동에게 맞으면서 상천은 오로지 그 생각만 했다.
그러면서 만약 자신이 삭풍뿐만 아니라 다른 초식까지도 익혔더라면 이렇게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후회도 들었다.
그 때문에 마음을 다잡고 시작한 수련이다.
“그런데 쉽지가 않네.”
삭풍을 익혔을 때의 희열과 이어지는 두 번째 초식인 뇌우의 수련에 대한 자신감은 이제 많이 옅어져 있었다.
쉽게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이미 사라진 상태였고, 수련을 하면 할수록 어렵다는 생각만 들었다.
“나 왔다!”
그때, 외출했던 종삼이 한 손에 뭔가를 들고 돌아왔다.
전날에는 어두워지고 나서야 돌아왔는데 오늘은 아직 날이 밝았다.
“왔어?”
상천이 앉은 채로 종삼을 맞았다. 그 모습에 종삼이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넌 어른이 밖에 나갔다가 들어오는데 엉덩이 붙이고 앉아 있냐? 버르장머리없는 놈.”
두 사람이 백룡문에서 함께 지낸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상천은 여전히 종삼에게 사부라는 호칭도, 존대도 쓰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이젠 그것이 익숙해 오히려 상천이 사부 대접을 하면 더 어색할 것 같았다.
“힘들어서 그래, 힘들어서! 지금까지 수련하고 쉰 지 얼마 안 됐단 말이야!”
“그래도 일어나는 시늉이라도 좀 해봐라!”
상천의 대꾸에 종삼이 연무장으로 올라오며 말했다. 그 말에 상천은 입을 빼쭉 내밀 뿐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어제 그렇게 무리하더니만 늦잠까지 자고. 잘 되냐?”
종삼이 상천의 옆에 털썩 주저앉으며 물었다. 그러자 그를 한번 힐끗 쳐다본 상천이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제대로 가르쳐 주지도 않으면서 물어보기는.”
“원래 다 그렇게 하는 거다. 나도 지금 네 나이 때 그렇게 했어.”
“아저씨가 그렇게 했다고 나도 그렇게 하라는 법 있나?”
“있지.”
“쳇!”
상천이 다시 한 번 입을 빼쭉 내밀었다.
“어떠냐고. 잘돼가?”
“아니.”
“어렵지?”
“응.”
“열심히 해라.”
“응.”
짧은 대화가 끝나고 나란히 앉은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백룡문 담벼락 바깥으로 보이는 하늘이 노을 때문에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그런데 아저씨.”
“왜?”
“단월신검 다 익히면 세져?”
뜬금없는 상천의 물음에 종삼이 그를 힐끗 쳐다보았다.
“그건 왜? 뭔 일 있었냐?”
그렇게 물은 종삼은 아침에 보았던 상천의 몸에 나 있던 상처들을 떠올렸다.
종삼의 물음에 상천이 고개를 젓고는 다시 물었다.
“세져?”
“당연하지. 무공을 익히는데 안 세지겠냐?”
“그래?”
그렇게 중얼거린 상천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려고?”
“가긴 어딜 가, 수련하려고 그러지.”
“아, 그래?”
상천의 말에 종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적당히 해라. 또 어제처럼 무리했다가 퍼지지 말고.”
“그럴 일 없거든요?”
상천의 대꾸에 피식 웃은 종삼이 엉덩이에 묻은 흙을 털어내고는 주방 쪽으로 걸어갔다.
“적당히 하고 들어와. 간만에 고기 먹자.”
“고기?”
고기라는 말에 상천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그러자 종삼이 자신의 손에 들려 있는 종이로 싼 무언가를 들고 살살 흔들어 보였다.
“아싸!”
“그렇게 좋냐?”
“그럼! 고기가 얼마나 맛있는데!”
“맛은 있지. 하하!”
종삼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히히! 고기다, 고기! 맛도 좋고 소화 잘되는 고기!”
“그러니까 적당히 하고 들어와! 알았지?”
“응!”
갑자기 없던 힘이 생긴 듯 상천이 힘차게 대답했다. 그리고는 목검을 들고 작게 심호흡을 했다.
그 모습을 보고 흐뭇한 미소를 지은 종삼이 주방으로 들어가려다가 발걸음을 멈추고 말했다.
“들어올 때 씻고 들어와! 땀 냄새 때문에 고기 맛 떨어지게 하지 말고!”
“아, 쫌! 수련하는데! 알았어!”
상천의 투덜거림을 들으며 종삼은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연무장에 서 있던 상천이 목검을 휘두르며 소리쳤다.
“다 죽었어!”
저잣거리에서의 일이 있고 나흘이 지나자 몸은 완벽하게 회복되었다.
통증이 사라지자 상천은 더욱더 뇌우의 수련에 박차를 가했다. 완벽히 동기 부여가 된 상천의 집중력은 무서우리만치 높아졌다.
한번 집중해서 검을 휘두르기 시작하면 옆에서 누가 불러도 못 들을 정도였고, 정신을 차려보면 한두 시진은 훌쩍 지나간 상태였다.
그럼에도 크게 힘들다는 생각보다는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상천에게 종삼은 항상 적당히 하라는 말만 했다.
과유불급이라며 너무 무리하면 꼭 탈이 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 정도였다.
처음에는 수련은 많이 하면 할수록 좋다고 생각하던 상천이었지만 계속된 종삼의 말에 세뇌를 당한 것인지 점차 수련과 휴식을 적절히 배분하기 시작했다.
한 시진 정도 쉬지 않고 검을 휘두른 상천은 연무장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즉각 가부좌를 틀고 운기에 들어갔다.
평소에는 정해진 시간 외에 운기를 하는 일이 없었지만 최근 들어서는 단월검 수련을 하는 와중에도 틈틈이 운기를 계속했다.
지친 몸을 회복하는 데 운기만 한 것이 없다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운기를 마치고 눈을 뜬 상천은 한층 개운해진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금 더 쉴까?”
그렇게 중얼거린 상천이 자리에서 일어나 대청마루로 다가가 앉았다.
대청마루에 앉은 상천은 땀을 식히며 수련으로 힘들어하는 팔을 주무르고 있었다.
“근데 이렇게 휘둘러서 제대로 써먹을 수나 있으려나?”
그렇게 중얼거린 상천은 연무장 쪽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이렇게 근력으로만 검을 휘둘러서는 한계가 있을 것 같은데? 내가 아직 어려서 그러나?’
그렇게 생각한 상천은 머릿속으로 초식을 그려보았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지금보다 더 크고 근력이 좋아진다고 해서 크게 위력이 생길 것 같지는 않았다.
‘어떻게 해야 되지? 여기저기서 들어보면 무공을 익히면 하늘을 날고 검으로 바위도 쪼갠다던데. 이렇게 해서는 전혀 그럴 수 없을 것 같은데?’
상천이 손으로 턱을 매만졌다. 그러더니 뭔가 생각난 듯 손뼉을 쳤다.
‘규화신공을 이용해 볼까?’
상천은 단전을 채우고 있는 진기를 떠올렸다.
평소 규화공 수련을 할 때와 운기할 때를 제외하고는 단전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냥 그런 것이겠거니 하고 말았는데 초식을 펼칠 때 진기를 이용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퍼뜩 뇌리를 스친 것이다.
사실 이런 것은 심법을 배우고 초식을 익히면서 자연스럽게 배우게 되는 운용법이건만 상천은 아직 그런 것을 알지 못했다.
아직 단월검의 형도 제대로 다 익히지 않은 상태였기에 종삼이 알려줄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디 보자…….’
상천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머릿속으로 단월검을 펼치는 자신의 모습을 가만히 그려보았다.
‘진기는 단전에 있고… 초식은 이렇게 펼치고…….’
상천의 머릿속에 그려진 또 다른 자신은 목검을 들고 확실히 익힌 삭풍과 아직은 미숙한 뇌우를 펼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상천은 초식이 아닌 단전에 똬리를 틀고 있는 진기에 집중했다.
그리고는 머릿속으로 진기를 움직여 보았다.
‘초식이 시작될 때 단전에서 끌어올려서… 이 경로로 움직인 다음에… 이 순간에 여기로 집중시키면……!’
그러자 머릿속에서 단월검을 펼치던 자신이 몸을 부르르 떨더니 픽 쓰러졌다.
‘이게 아닌가? 그럼…….’
그렇게 생각한 상천이 다른 경로로 진기를 움직여 보았다.
그렇게 몇 차례 진기를 움직였을 때였다.
“뭐하고 있냐?”
외출을 하고 돌아온 종삼이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상천을 보며 물었다.
“어? 아저씨 왔네? 오늘은 왜 이렇게 일찍 들어왔어?”
“일찍 들어오면 안 되냐? 에고, 허리 아프다.”
종삼이 앓는 소리를 하며 상천의 옆에 앉았다. 그러자 상천이 주먹으로 가볍게 그의 허리를 두드려 주었다.
“얼라리? 무슨 바람이 불어서 이러냐?”
“쳇! 허리 아프다고 해서 순수한 마음으로 안마해 주는데 무슨 말이야?”
종삼의 말에 상천이 툴툴거렸다. 그러면서도 계속해서 그의 허리를 두드려 주었다.
“안 하던 짓을 하니까 그렇지. 됐다. 이제 좀 낫네.”
종삼의 말에 상천이 허리 두드리던 것을 멈췄다.
“뭐하고 있었는데 그렇게 심각해?”
“아, 그게 말이지…….”
종삼의 물음에 상천이 방금 전에 생각한 것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상천의 이야기를 들은 종삼은 놀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왜? 뭐가 잘못됐어?”
종삼의 표정을 본 상천이 슬그머니 그와의 거리를 벌리며 물었다.
“아니, 잘못된 것 없다. 맞아. 진기는 그렇게 쓰는 거다. 그걸 운용이라고 하지.”
이어진 종삼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뜬 상천이 종삼에게 몸을 바짝 붙여 앉았다.
“진짜?”
“그래.”
“정말로?”
“그렇다니까.”
“거짓말 아니지?”
“진짜라니까!”
계속된 상천의 물음에 짜증이 난 종삼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상천은 마냥 기분 좋은 모습이었다.
“상상력 하나는 풍부하구나. 그 상상력을 다른 수련 하는 데에도 써봐라, 이 녀석아.”
종삼의 말에 상천이 잔뜩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또 잔소리!”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얘기다.”
“에효! 내가 말을 말아야지. 수련이나 하자!”
그러면서 상천이 옆에 세워둔 목검을 들고 일어서 연무장 쪽으로 걸어갔다.
“얼른 익혀라! 단월신검 오 초식까지 익히면 보법도 가르쳐 주마.”
“진짜?”
보법을 가르쳐 주겠다는 종삼의 말에 상천이 눈을 빛내며 돌아보았다.
“그래. 내가 지금까지 가르쳐 준다고 하고 안 가르쳐 준 적 있냐?”
“알았어! 이히히! 얼른 수련해야지〜!”
그렇게 말한 상천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연무장으로 걸어갔다.
그 모습을 보며 종삼은 보일 듯 말 듯 미소를 지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