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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월검제-6화 (6/141)

#006화.

백룡문을 나선 상천은 자연스럽게 종삼과 처음 만났던 옆 마을로 발걸음을 옮겼다.

놀러 가려고 나오기는 했지만 딱히 갈 곳이라고는 그곳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멀었나?”

처음 종삼을 따라 백룡문에 올 때는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따라오기만 해서 몰랐는데 막상 오랜만에 가려 하니 생각보다 멀게 느껴졌다.

하지만 상천은 그 먼 거리를 가는 것이 전혀 지겹거나 지루하지 않았다.

삭풍을 익힌 이후로 상천에게 세상은 그저 행복하게만 비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그저 좋게만 보였다.

그렇게 한 시진 정도 지나자 상천의 눈에 옆 마을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직 반 각 정도 더 걸어야 하지만 멀리서도 옆 마을의 활기찬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백룡문이 있는 마을보다는 조금 작지만 오가는 사람들이 많아 제법 활발한 상권이 형성되어 있는 마을이었다.

마을에 들어선 상천은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깊숙한 곳까지, 특히나 자신이 주로 뛰어다니던 저잣거리까지 들어가지 않았지만, 벌써부터 낯익은 모습들이 눈에 들어오고 있기 때문이었다.

여유롭게 마을을 구경하며 저잣거리로 들어선 상천의 입가에 번져 있던 미소가 훨씬 더 짙어졌다.

여전히 우렁찬 목소리로 양꼬치를 파는 아저씨,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차근차근 따져 물어 한 푼이라도 더 깎아보려는 아주머니.

시원한 욕으로 맛을 더하는 국밥집 할머니까지.

모두가 그대로였다.

속속 떠오르는 예전 생각 덕분에 상천은 신이 나서 저잣거리를 구경하며 걸어 다녔다.

고봉은 마을에서 그나마 제법 산다는 집의 자식이었다.

열다섯 살밖에 되지는 않았지만, 상대적으로 잘 먹고 자랐기 때문인지 또래 아이에 비해서 머리 하나는 더 컸다.

비단 키만 큰 것이 아니라 덩치도 제법 있어서 앳된 얼굴을 하고 있음에도 열다섯의 나이로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게다가 그의 부모님이 외동아들이라고 원하는 것은 어지간해선 다 들어주며 키웠기 때문인지 안하무인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덩치도 크고 성격도 모질어서 또래 아이 사이에서 골목대장 노릇을 하고 다녔다.

고봉은 여느 날처럼 양옆에 또래 아이들을 한 명씩 끼고 다녔다.

그의 양옆에 있는 두 명의 소년도 제법 강단 있고 고봉과 여러모로 잘 맞는 성격이라 오른팔과 왼팔 노릇을 하고 있었다.

“어라? 저놈?”

한 걸음 정도 앞서 걷던 고봉이 문득 걸음을 멈추며 중얼거렸다.

“왜 그래, 대장?”

그러자 고봉의 오른쪽에 서 있던 추명구가 물었다.

“저놈 보이지? 미친놈처럼 실실 쪼개고 있는 놈.”

고봉의 손가락이 가리키고 있는 사람은 미소를 지은 채 저잣거리를 활보하고 있는 상천이었다.

“어. 그런데 왜?”

“저놈 저거 가끔 우리 집에 와서 구걸해 가던 거지새끼거든. 몇 번 나한테 엉덩이 걷어차이고 울면서 도망가곤 그랬지. 하하하!”

“하하하! 생각만 해도 웃긴데?”

고봉의 말에 추명구와 다른 소년인 하동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한동안 안 보이더란 말이지. 어디 가서 뭐하나 싶었는데 여기서 보네? 심심한데 잘됐다. 저놈 좀 끌고 와봐.”

고봉의 말에 즉각 추명구가 상천에게 다가갔다.

“야!”

대뜸 앞에 나타나 반말을 하는 추명구를 상천은 지나가는 개 쳐다보듯 힐끗 쳐다보고는 그냥 지나쳐 갔다.

“어라? 하하! 이 거지새끼가!”

깔끔하게 자신을 무시하고 지나가는 상천의 모습에 화가 오른 추명구가 목을 좌우로 비틀더니 돌아서며 소리쳤다.

“야! 거지새끼! 너 이리 와봐!”

추명구의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상천은 계속해서 저잣거리를 구경하기에 바빴다.

그 모습에 더욱더 화가 치밀어 오른 추명구가 성큼성큼 상천에게 다가가 그의 팔을 확 잡아챘다.

“이 거지새끼가 돌았나! 사람 말을 씹어? 누가 거지새끼 아니랄까 봐 먹을 게 없어서 사람 말까지 처먹고 있어!”

갑자기 팔을 잡히고 욕을 한 바가지 얻어먹은 상천은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지금 그 거지새끼가 나 말하는 거냐?”

“하하! 이 새끼는 혀도 짧네? 쪼그만 놈이 어디서 주둥아리를 그따위로 놀려?”

“너도 짧네, 뭐. 그리고 나 거지 아니다. 그러니까 이거 놔라.”

그렇게 말하며 상천이 자신의 팔을 확 잡아당겨 추명구의 손을 뿌리치고는 가던 길을 갔다.

“이 새끼가!”

“됐어!”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주먹질을 하려는 추명구를 말린 것은 다름 아닌 고봉이었다.

그러고는 ‘애 한 명 데려오는 것도 못하냐?’는 시선으로 그를 한 번 쳐다보았다.

고봉으로부터 질책의 시선을 받은 추명구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고스란히 담아 상천에게 쏘아 보냈다.

“얌마, 사람이 오라면 올 것이지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

고봉의 말에 상천은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누구냐, 넌?”

상천의 물음에 고봉은 일순간 벙찐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그의 얼굴이 사납게 구겨졌다.

“야, 우리 집에서 구걸하다가 나한테 처맞고 울던 새끼가 많이 컸다?”

고봉이 검지로 상천의 이마를 가볍게 몇 차례 툭툭 밀치며 말했다.

“뭐? 난 기억 안 나는데? 너 누구냐니까?”

고봉의 태도에 화가 났는지 상천의 목소리가 조금 커졌다. 살짝 악에 받친 듯했다.

“기억 안 난다고? 그래? 그럼 기억나게 해줘야지.”

퍽!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고봉이 상천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불의의 일격을 당한 상천이 볼썽사납게 바닥에 쓰러졌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주변 사람들이 그들을 힐끗거렸지만, 그렇다고 선뜻 나서는 사람도 없었다.

오히려 괜히 휘말릴까봐 서둘러 그 자리를 벗어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뭐야!”

바닥에 엎어졌다가 곧바로 일어난 상천이 고봉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그 모습에 가소롭다는 듯이 웃은 고봉이 말을 이었다.

“이래도 기억 안 나?”

“그래! 안 난다!”

상천이 악에 받쳐 소리쳤다.

그러자 고봉은 추명구와 하동을 번갈아 바라보며 웃더니 다시 발길질을 시작했다.

퍽! 퍽! 퍽!

“이래도 기억 안 나? 안 나?”

고봉이 사정없이 발길질하며 소리쳤다.

상천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져 몸을 웅크린 채 세 소년의 발길질을 당하고 있었다.

저잣거리 한가운데에서 소년 셋이 상천 한 명을 짓밟고 있었다.

그렇게 일각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들을 뜯어말렸다.

발길질을 멈춘 세 소년은 각각 상천에게 욕을 한 바가지 더 해주고는 낄낄거리면서 그 자리를 떴다.

한동안 바닥에 쓰러져 웅크리고 있던 상천이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최대한 웅크리고 있었기 때문에 피가 나거나 부러지거나 한 곳은 없었지만, 온몸이 흙먼지로 뒤덮여 있었다.

상천을 부축해서 일으켜 세운 어른들이 그의 옷에 묻은 흙을 털어주며 괜찮으냐고 물었지만, 상천은 대답도 하지 않고 발걸음을 옮겼다.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상천을 바라보던 사람들도 하나둘씩 그 자리에서 흩어졌다.

다시 백룡문으로 돌아가는 그의 얼굴에서는 아까까지 있었던 웃음기가 싹 사라져 있었다.

상천의 두 눈에는 오로지 독기만 가득할 뿐이었다.

나올 때의 두 배의 시간이 걸려 백룡문에 도착한 상천은 쓰러지듯 연무장 바닥에 몸을 눕혔다.

맞은 곳이 욱신거리며 심한 통증을 일으켰다.

거칠게 숨을 쉬던 상천은 다시 힘겹게 몸을 일으키고는 한쪽에 세워둔 목검을 가지고 쩔뚝거리며 돌아왔다.

목검을 가지고 온 상천은 서 있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다리가 후들거려서 오래 서 있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그렇게 잠시 동안 앉아 있던 상천이 목검에 의지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후우, 후우…….”

두어 차례 심호흡을 한 상천이 목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아니었음에도 상천은 몸 곳곳에서 올라오는 통증에 인상을 찌푸렸다.

그렇게 단월검 두 번째 초식인 뇌우(雷雨)의 수련이 시작되었다.

종삼은 저녁 시간 때가 넘어서야 돌아왔다.

여느 날보다 늦은 귀가에 서둘러 돌아온 종삼은 연무장에서 들리는 인기척에 조심스레 그쪽으로 다가갔다.

가까이 다가가자 어둠을 뚫고 목검을 휘두르고 있는 상천의 모습이 보였다.

평소와 다르게 진지한 표정으로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그를 보니 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너무 늦은 시간까지 무리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어쩐 일로 이 시간까지 수련이냐?”

종삼이 지나가는 말로 물었다.

하지만 집중을 하고 있기 때문인지 상천은 대답은 하지 않고 묵묵히 검을 휘두를 뿐이었다.

“귀 먹었냐!”

종삼이 다시 한 번 목소리를 높여 물었다.

하지만 역시나 상천에게서는 대답이 없었다.

그것을 보며 작게 한숨을 쉰 종삼이 안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너무 무리하지 마라. 그러다 탈 난다. 먼저 들어간다.”

상천의 수련은 그 이후로 반 시진 가량이 더 지나고 나서야 끝이 났다.

다음날.

규화공 수련을 해야 할 시간임에도 상천은 일어나지 못했다.

전날 고봉에게 두들겨 맞은 상태에서 늦은 시간까지 수련을 한 탓에 몸살이 난 것이다.

상천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는 종삼은 늦은 시간까지 자고 있는 상천을 보며 혀를 찼다.

“쯧쯧쯧! 그러니까 무리하지 말라고 그렇게 일렀거늘. 뭐, 하루 정도는 푹 쉬는 것도 좋겠지. 아니지. 그동안 수련 안 하고 논 날이 며칠인데. 일어나라, 천아! 해가 중천이다!”

나갈 준비를 하며 깨웠지만, 상천은 일어나지 못했다. 살짝 인상을 찌푸린 채 여전히 잠에 빠져 있었다.

“일어나라니까!”

종삼이 조금 더 큰 목소리로 상천을 깨웠다. 하지만 이번에도 똑같았다.

“죽었냐?”

콕! 콕!

그렇게 말하며 종삼이 발끝으로 상천을 톡톡 건드렸다. 그 때문인지 상천이 힘겹게 옆으로 돌아누웠다.

“얘가 왜 이래?”

그렇게 중얼거린 종삼이 돌아누워 있는 상천의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

‘음?’

가까이에서 상천을 본 종삼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불을 덮고 있어 몸을 전부 다 볼 수는 없었지만 눈에 보이는 곳에 상처가 몇 개 보였기 때문이다.

‘대체 어제 무슨 일이 있었길래.’

문파에 후원이 있는 것이 아닌지라 어떻게든 벌어 먹고 살아야해 밖으로 돌아다닐 수밖에 없었다.

그 시간 동안에는 상천에게 신경 쓸 수 없는 것도 당연했다.

내심 그런 것이 마음에 걸렸는데, 결국 어제 무슨 사달이 난 모양이었다.

하지만 상천 성격에 캐묻는다고 해서 말할 것도 아니라는 걸 잘 알기에 한숨만 푹 내쉴 수밖에 없었다.

잠시 그렇게 있던 종삼이 아무 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한마디 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오늘까지는 봐준다. 적당히 쉬다가 일어나라.”

그 말을 남기고 종삼이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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