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단월검제-1화 (1/141)

#001화.

무더운 여름날.

얼굴에 깊은 주름이 가득하고 검은 머리 사이로 흰 머리가 힐끗힐끗 보이는, 너끈히 쉰 살은 되어 보이는 중년인 한 명이 나무 그늘 밑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늘에 들어왔음에도 꽤 더웠는지 연신 손부채질을 하는 그의 얼굴에는 수심이 그득했다.

“제자 놈 구하기가 이렇게 어려워서야…….”

그렇게 중얼거린 중년인이 깊은 한숨을 한차례 푹 내쉬었다.

“스승님, 아무래도 문파의 명맥은 저에서 끊어질 모양입니다.”

중년인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아저씨.”

그런 중년인에게 앳된 목소리 하나가 들려왔다.

슬쩍 고개를 들자 눈에 들어온 사람은 거지꼴을 한 열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년이었다.

동그란 눈에 오뚝한 콧등, 그리고 젖살이 그대로 남아 있는 얼굴은 비록 거지꼴을 하고 있어도 귀엽게 보였다.

그 모습에 주섬주섬 품을 뒤진 중년인이 동전 몇 개를 꺼내 소년에게 내밀었다.

“이것밖에 없으니 가봐라.”

하지만 소년은 중년인이 내민 동전을 바라보기만 할 뿐 받지 않았다.

“이것밖에 없다 하지 않았느냐? 그러니 얼른 받고 가거라.”

중년인이 재차 소년에게 동전을 내밀었다. 하지만 소년은 동전을 받아드는 대신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아저씨, 싸움 잘해?”

소년의 물음에 중년인은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 멀뚱히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러자 소년이 다시 한 번 물었다.

“아저씨 무림인이야?”

“무공을 익혔으니 무림인이라 할 수 있겠지.”

그렇게 대답한 중년인이 씁쓸한 표정을 한번 지어 보이고는 물었다.

“그런데 왜 그러느냐?”

그렇게 물은 중년인은 이어진 소년의 대답에 황당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나 좀 도와주면 내가 제자가 돼줄게.”

소년의 부탁은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어디서 흘러들어 왔는지 모를 삼류무사 중에서도 하급에 속하는 자가 어린 거지들 위에 앉아 왕 노릇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성격이 포악해서 욕지거리를 내뱉는 것은 부지기수였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때리는 것도 서슴지 않는 자였다. 그 밑에서 용케 버티고 있던 소년이 참다못해 중년인에게 부탁을 한 것이다.

일은 싱겁게 끝났다.

소년을 따라간 중년인은 그 사내 앞에서 약간의 공력을 실어 주먹질 몇 번을 보여주었다.

아무리 자신의 실력이 떨어져도 하급 삼류무사 한 명 기 죽이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그다음부터는 소년의 몫이었다.

포악하기는 했지만 왕초를 잃은 아이들의 얼굴에는 두려움과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런 아이들을 다독이고 다른 왕초를 내세워 안정을 시킨 것이 바로 소년이었다.

평소 소년에 대한 신망이 두터웠는지 아이들은 빠르게 안정을 찾아갔다.

소년을 쫓아오려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자주 오겠다는 약조를 한 후에야 그 아이들을 떨어뜨려 놓은 소년은 그곳을 떠나 지금 이 순간 중년인을 따라 길을 걷고 있었다.

말 한마디 없이.

‘신경이 쓰였던 게지.’

짐짓 이성적이면서도 어른스러운 척하지만 아이는 아이였다.

게다가 냉정한 척 굴었지만 정이 많은 아이였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아무런 말도 없이 무거운 표정으로 자신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길을 걸어 두 사람은 사위가 어두워졌을 때쯤 어느 한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기다.”

중년인의 말에 소년이 고개를 들어 정문을 바라보았다.

금방이라도 넘어질 것만 같은 허름한 문과 톡 건드리기만 해도 떨어져 내릴 것만 같은 현판, 그리고 곳곳이 무너져 내린 담벼락까지.

도저히 사람이 살기 어려워 보이는 곳이었다.

“들어가자꾸나.”

중년인이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잔뜩 녹이 슨 경첩이 힘겹게 끼이익 하는 비명을 질렀다.

안으로 들어간 소년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다.

연무장처럼 보이는 곳은 잡초가 무성했고,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흔적이 곳곳에 있었다.

그나마 멀쩡한 건물 한 채는 이젠 많이 헐어 있어 비가 새는 것을 걱정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정도다.

“근 한 달 만에 왔더니 꼴이 말이 아니구나.”

중년인이 무안한 듯 그렇게 말을 하고는 서둘러 건물 쪽으로 걸어갔다.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이곳저곳을 둘러보던 소년이 그의 뒤를 따랐다.

“악!”

얼마 안 가 소년이 비명을 지르며 휘청거렸다. 발끝에 뭔가 걸려 넘어질 뻔한 것이다.

“발 밑 조심하거라. 걸리는 게 많을 게야.”

하지만 중년인은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듯 슬쩍 뒤를 돌아보며 일러주었다.

“진작 좀 말해주지!”

그렇게 소리치며 입을 빼쭉 내민 소년이 뚫어져라 발밑을 쳐다보며 중년인을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날 밤은 별일 없이 지나갔다.

겉은 곧 쓰러질 것처럼 보였지만 건물 안은 제법 아늑하게 꾸며져 있었다.

도착하여 몇 시진 동안 묵은 때를 벗겨낸 소년은 나른함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져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해가 제법 높게 떠오른 후에야 잠에서 깬 소년 상천은 제대로 떠지지 않는 눈을 비비면서 밖으로 나갔다.

아직 정오가 되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한여름인지라 제법 날씨가 후덥지근했다.

“하암〜!”

하품을 하며 한껏 기지개를 켠 상천의 눈에 쭈그려 앉아 뭔가를 하는 중년인의 모습이 보였다.

“아저씨, 뭐해?”

“잡초 뽑는다. 오랜만에 왔더니 뽑을 게 산더미처럼 쌓였구나.”

그렇게 말하며 중년인이 구슬땀을 흘리며 잡초를 뽑았다. 낫으로 베기도 하고 힘주어 뽑기도 하는 모습이 왠지 안쓰럽게 보였다.

“그런데 여기는 아저씨 혼자밖에 없어? 문파라면서?”

상천의 물음에 중년인이 잡초 뽑던 것을 멈추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윽! 이제 늙은 모양이구나. 겨우 반 시진 쪼그려 앉아 있었다고 허리가 아픈 것을 보니까.”

그렇게 중얼거리며 허리를 몇 번 두드린 중년인이 한쪽에 놓아둔 천을 들어 얼굴에 흐른 땀을 닦아내었다. 몇 번을 닦았는지 하얀 천이 누렇게 변해 있었다.

땀을 닦아낸 중년인이 천천히 상천의 옆으로 걸어왔다.

“여기 좀 앉아보려무나.”

그렇게 말하며 중년인이 건물 기둥에 기대앉았다. 그러자 상천도 그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우리 문파에 대해 듣고 싶으냐?”

“어!”

중년인의 물음에 상천의 두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났다.

그런 상천을 바라보던 중년인은 자신도 모르게 회상에 잠겼다.

방 안에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누워 있다.

많이 야위고 창백한 것이 딱 봐도 병세가 깊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 청년 한 명이 무릎을 꿇고 있다.

그 청년은 젊은 날의 중년인이었다.

“쿨럭! 쿨럭! 이제 나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구나.”

“그런 말씀 마십시오, 사부님! 다시 예전처럼 정정한 모습으로 돌아오실 수 있을 겁니다!”

“아니다. 쿨럭! 내 몸은 내가 제일 잘 안다. 이젠 힘들어.”

“사부님! 크흑!”

노인의 말에 청년이 결국 눈물을 보였다.

“울지 말거라. 사람은 누구나 다 죽는 법이니라. 당연한 자연의 섭리인데 그것이 어찌 슬퍼할 일이겠느냐?”

“사부님…….”

청년은 말을 잇지 못하고 사부님이라는 말만 되뇔 뿐이었다.

“많던 문도도 다 빠져나가고 남은 사람은 너와 나 둘뿐이구나. 내가 지금 이 순간 가장 슬픈 것은 우리 문파의 모든 것을 네게 짊어지워야 한다는 것이란다. 그것이 가장 미안하고 슬프구나.”

회광반조인 듯 노인의 목소리에 조금은 힘이 돌아오는 것 같았다. 게다가 수시로 하던 기침도 지금은 전혀 하지 않고 있다.

그 모습을 보며 스승의 마지막을 직감한 청년의 눈에 굵은 눈물방울이 맺히고 있었다.

“네게 마지막 부탁이 있다면, 절대로 우리 문파의 맥이 끊어지지 않게 해달라는 것이다.”

“사부님…….”

청년은 ‘제가 할 수 있겠습니까?’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고 있었다.

스스로의 자질이 부족해 문파의 무학을 제대로 익히지 못했고 삼류를 겨우 넘어서는 수준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가 감히 누군가를 가르칠 능력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지막 가는 길에 더 큰 걱정을 지울 수 없어 그저 울먹이며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고맙구나. 고마워……. 그리고… 미안하구나…….”

노인의 목소리에 점점 힘이 빠지더니 마지막에는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더 이상 노인은 숨을 쉬지 않았다.

“사부님! 으아아아! 사부님! 사부님! 엉엉!”

청년은 그렇게 한참을 목 놓아 울었다.

“…저씨! 아저씨!”

상천의 목소리가 그를 현실로 되돌려 놓았다.

“아저씨 울어? 눈이 빨간데?”

“음? 아니다, 아니야.”

상천의 물음에 눈을 깜빡이며 눈물을 참은 중년인이 애써 미소를 지어 보였다.

“왜 말을 하다 말아?”

“잠깐 다른 생각을 좀 했다.”

그렇게 말한 중년인이 잠시 동안 조용히 있다가 말을 이었다.

“그럼 이건 너만 알고 있어야 한다.”

상천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한 중년인이 주변을 한번 힐끗힐끗 쳐다보고는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비인부전 일인전승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이 없으면 전할 수 없는, 오직 한 사람에게만 전승된다는 말이지. 우리 문파 역시 그렇다. 오직 한 사람에게만 모든 무학을 전달하는 문파지.”

그렇게 말한 중년인이 자부심이 넘쳐 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상천은 두 눈을 가늘게 뜨고는 의심 가득한 눈빛으로 그에게 물었다.

“진짜야?”

“그, 그럼!”

상천의 물음에 중년인이 조금 당황한 나머지 살짝 말을 더듬었다.

“확실해?”

“아〜 덥다!”

상천의 추궁에 중년인이 손부채질을 하며 시선을 회피했다. 그 모습에 상천의 두 눈이 더욱 가늘어졌다.

의심이 가기는 했지만 상천은 그것에 대해 더 묻지 않고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그럼 난 무공 언제 배워?”

“무공? 아, 무공! 그래, 가르쳐 줘야지. 우리 백룡문(白龍門) 제사십오대 장문인이 될 사람인데.”

그렇게 말하며 중년인이 상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우리 문파 이름이 백룡문이야?”

상천의 물음에 중년인이 잠시 당황스런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인상을 찌푸리며 자신의 이마를 손바닥으로 한 번 탁 쳤다.

“아하〜! 내 정신머리 좀 봐라. 어제 말 안 해줬나?”

“안 해줬는데?”

“이거 참, 나란 남자……. 그래, 우리 문파 이름은 백룡문이다. 멋있지?”

그 물음에 상천이 어색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저씨 이름은?”

“내 이름도 안 가르쳐 줬어?”

이어진 물음에 중년인이 이번에는 진짜로 놀란 듯 두 눈을 크게 뜨고 상천을 바라보았다.

“내 이름은 종삼(宗三)이다.”

“풉!”

종삼이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상천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종삼이 도리어 상천에게 물었다.

“왜 웃어? 그러는 넌 이름이 뭐냐?”

종삼의 물음에 상천이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어제 가르쳐 줬는데?”

“뭐? 언제?”

“어제 그 나쁜 놈 혼내주러 가면서.”

“아!”

상천의 말에 그제야 기억이 난 듯 종삼이 자신의 이마를 또 한 번 탁 쳤다.

“맞아. 그랬지! 상… 상…….”

상천의 이름이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았는지 종삼이 계속해서 성(姓)만 말하며 상천의 눈치를 보았다.

그 모습을 보며 절레절레 고개를 저은 상천이 다시 한 번 또박또박 자신의 이름을 말해주었다.

“상천(常天)! 상! 천!”

“아! 천! 맞아. 그랬지. 하하하!”

상천이 다시 한 번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자 종삼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무공은 언제 가르쳐 줄 거야?”

재차 묻는 상천을 보며 종삼이 웃음을 멈추고는 짐짓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무공은 며칠 지나고 나서부터 가르쳐 주마.”

“왜?”

“그동안 너무 못 먹어서 몸이 많이 허약해져 있어서 안 된다. 지금 무공을 배우면 몸이 버티질 못해.”

종삼의 그럴싸한 대답에 상천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백룡문의 무공은 쉽게 익힐 수 있는 무공이 아니야. 그만큼 최적의 몸 상태를 유지하며 익혀야 하지.”

“그래?”

이번에는 상천이 조금 기대감에 찬 눈빛으로 종삼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종삼의 목소리가 조금 커졌다.

“그러엄! 당연하지!”

“오호〜!”

자신있게 대답하는 종삼을 보며 상천이 탄성을 터뜨렸다.

“대단한 무공인 모양이네?”

“…….”

기대감에 찬 상천의 말에 종삼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자, 그럼 밥부터 먹자꾸나. 잘 먹어야 빨리 회복하지 않겠느냐?”

“그래!”

상천을 뒤로하고 식사 준비를 하러 주방으로 향하는 종삼의 얼굴은 어딘지 모르게 어두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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