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법왕-67화 (67/71)

제4장 재회

그는 항상 혼자였다. 밥도 혼자 먹었으며 잠도 혼자 잔다. 나이 육십이 넘었지만 아직 미혼이며 아직까지 동정지체, 즉 여자를 가까이 해 본 경험이 없었다.

그렇다고 그의 옆에 아무것도 없는 건 아니었다. 사람은 없지만 한 자루 검이 그의 곁을 지켰다.

그에게 있어 인생의 동반자는 그가 믿는 검뿐이었다. 사람은 배신을 하고 짐승도 배신을 한다. 하지만 검만큼은 배신을 하지 않고 자신이 의도한 바를 잘 알아듣고 움직인다.

그래서 그는 항상 틈만 나면 검을 닦았다. 검이야 말로 무사의 생명이고 삶이며 존재의 의미이기 때문에 항상 깨끗하게 보존해야 한다. 또한 언제 주인으로부터 출진 명령이 떨어질지 알 수 없으므로 항상 깨끗하게 잘 닦아 놓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었다.

삭삭!

오늘도 신룡단주 해무삼은 애검을 닦고 있었다.

결가부좌 하여 양 무릎 위에 검을 올렸다. 융(絨)을 두 손으로고 감싸듯 쥐고 닦는데 입에는 한 지가 물려 있다. 들숨과 날 숨에 의해 검신에 성에가 끼는 걸 막으려는 조치다. 성에가 묻거나 끼면 예리함이 떨어지고 신명성(神明性)이 떨어진다. 그래서 한지를 깨무는데 한 참을 닦던 해무삼의 동작이 멈추고 고개가 들려졌다.

언제 나타났는지 입구에 부하 동해가 서 있는데 왼 손에 조그만 봉서 한 개가 들려 있었다.

해무삼이 몇 번 더 검신을 닦고 조용히 검을 검집에 꽃아 넣었다.

철컥!

검을 옆에 가지런히 놓으며 물었다.

“뭐냐?”

“가주님께서 보낸 서신이옵니다.”

창송은 지금 남궁천이 패업천하를 이루었을 때 장악할 시장 분석에 나선 상태이다. 천상각의 경영 방침과 그들이 취급했던 물건은 물론 거래상들의 면면을 조사 중에 있는 것이다.

비록 망했지만 수백 년을 천하제일상가로 군림했다는 것은 그들만의 뭔가가 있다는 것이 창송의 생각이었고 필요 하다면 모방하고 시늉을 내어서라도 배우는 것이 이롭다

촥!

봉서를 찢어 내용을 읽던 해무삼이 나직이 신음을 흘렸다.

다시 한 번 서찰을 읽던 해무삼이 고개를 들어 입구에 서 있는 동해를 향해 물었다.

“주군의 명령이다. 당장 옥사평으로 집합하라. 시간은 내일 자시이다.”

“옥사평이라면 이곳에서 이십 리 떨어진.”

“단 한명도 빠져서는 안된다.”

“존명!”

동해가 사라졌고 다시 한 번 서찰을 살핀 해무삼이 중얼 거렸다. 창송세가의 정예들은 모두 지금 중원에 와 있다. 그런데 가주가 신룡단을 은밀히 불렀다는 것은 자신을 신뢰하고 있다는 뜻이다.

중원에 건너온 지 얼마되지 않았지만 동영과는 확실히 달랐다. 일단 땅이 넓었고 사람들도 달랐으며 시장 규모가 수십 수백 배를 넘어섰다. 야망있는 장부라면 한번쯤 뜻을 펼쳐 보고 싶을 만큼 넓고 웅대한 중원이었다. 한 개의 성이 동영 전체에 육박할 만큼 큰 곳도 있었다.

자고로 장부란 큰 물에서 놀아야 한다.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달도 없고 별도 없다. 짙은 먹구름이 하늘을 덮어 버려 옥사평의 화려한 모습을 구경할 수 없다는 것이 아쉬웠다. 달빛을 받아 푸르게 빛나는 옥사평을 이백은 또 하나의 바다라고 극찬했다.

삼백 명의 신룡단 무사들이 모여들었다. 빛이 없었고 걸친 옷까지 흑의인 탓에 마치 한 개의 거대한 먹구름덩어리가 옥사평에 내려 앉아 있는 것 같았다.

힐끔!

별을 볼 수가 없어서 때를 가늠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해무삼은 자꾸 하늘을 올려다보았고 오랜 육감으로 때를 헤아리기 시작했다. 자시가 되면 이슬이 본격적으로 내린다. 보통 사람들은 이슬이 내리는 것을 느끼지 못하지만 해무삼은 달랐다. 그는 이슬이 내리는 것을 몸이 느낀다.

동해가 아직 자시가 되려면 멀었냐는 듯 돌아보았다.

“일각은 더 기다려야 한다.”

서찰 말미에 절대 남궁천쪽으로 움직임이 누설되거나 눈치를 채서는 안된다고 신신당부했다. 그것은 남궁천 몰래 창송 독단적으로 어떤 일을 처리할 것이 있다는 뜻이다.

아무리 서로 손을 잡았다고 하지만 알려야 할 것이 있고 드러내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어차피 기회가 되면 남궁천도 제거 한다는 것이 창송의 생각이었다. 물론 아직은 아니다. 먼 훗날 때가 무르익었을 때의 일이다.

두웅!

멀리서 북소리가 들려왔다.

해무삼의 눈이 커졌다. 자신도 지금 막 자시가 되었다고 느꼈는데 북소리까지 들려오는 것을 보면 확실했다.

‘내린다!’

해무삼의 고개가 하늘로 올려졌다.

부하들은 모르고 있는 것 같았는데 자신은 알 수 있었다. 그 전부터 이슬이 내리기 시작했지만 아주 약했고 조금 전부터 이슬 줄기가 조금 굵어졌다. 물론 굵어 졌다고 해서 빗줄기처럼 사람 눈에 보이는 건 아니다.

홱!

해무삼의 고개가 좌측으로 돌아갔다.

어둠에 깊게 덮힌 옥사평에 발자국 소리가 들려기 시작했다. 아무리 안력을 돋우어도 너무 어두워 사람은 보이지 않고 발자국 소리만 들렸다.

저벅저벅!

느릿한 발자국 소리가 창송이다.

그는 아주 느리게 걷는다. 들여 오는 발자국 소리를 향해 모든 시선이 집중되었다.

어둠속에서 푸른 빛을 번득이는 신룡단 삼백 쌍의 눈길이 한곳으로 돌아갔다.

마침내 한 사람이 다가오고 있었다.

혼자라는 것만 알 수 있을 뿐 창송의 이목구비까지 보이지는 않았다. 하나 해무삼을 비롯한 모든 무사들의 허리가 숙여졌다.

“주군을 뵈옵니다.”

“뵈옵니다.”

나직했지만 힘찬 목소리들이다.

“흐헉!”

고개를 쳐든 해무삼이 경악했고 뒤이어 부하들이 웅성 거렸다.

“누구지?”

“주군이 아니다.”

그들 앞 에 나타난 흑의사내는 자신들이 믿고 따르는 창송이 아니었다.

노련한 해무삼의 눈빛이 흔들렸다. 직감적으로 뭔가 큰 실수를 저질렀음을 깨달은 것이다.

하지만 이내 눈살이 찌푸려졌다. 다른 건 다 속여도 서찰의 필체까지는 속이지 못한다. 서찰의 필체는 틀림없는 창송의 것인데 인물은 아니다.

“당신은?”

마음속으로 상대가 창송의 심부름을 왔다는 말을 해주길 간절히 바랬다.

하지만 해무삼의 기대는 허망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흑의사내가 입을 열었다.

“한 명도 빠지지 않았군.”

어느새 흑의사내는 삼백 명이란 숫자를 확인하고 있었다.

흑의사내가 해무삼을 보았다.

“아깝군. 죽이기에는?”

해무삼을 살피던 흑의사내가 입맛을 다셨다. 마음 같아서는 자신이 데려다 부하로 쓰고 싶은 얼굴이었다.

“어찌된 일이오? 우리가 모시는 주군은 어디 계시오?”

“너희 주군은 안와.”

“그게 무슨 말이오?”

“안온다면 안오는 줄 알아. 내가 그냥 너희들 모두 죽이려고 불러 낸거야.”

흑의사내가 태연스럽게 말했다.

삼백 명을 죽이는데 너무 아무런 일도 아니라는 식으로 말한다.

“단주님 저기?”

동해가 놀라 소리쳤고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둠속에 일단의 무리들이 옥사평을 에워쌓은 체 다가오고 있었다.

휙!

홰액!

앞뒤로 고개를 돌리며 부하들이 소란을 피웠다.

그제서야 해무삼은 함정에 완벽하게 빠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여전히 서찰이 들어 있었다. 절대 모방할 수도 위조 할 수도 없는 필체.

“주근의 필체였소?”

“그러니까 중원이지.”

해무삼이 흠칫 했다.

동영에서는 불가능하겠지만 중원에서는 어떤 것도 위조가 가능하다는 의미였다.

냇물과 바다는 다르다는 뜻으로도 들린다.

포위망을 구축해오던 흑의인들의 걸음이 멈췄다. 얼핏 보니 자신들 보다 숫적으로 열세이다. 포위망을 구축한 옆 사람과의 간격이 아주 넓었는데 부하들 얼굴이 굳어져 있었다.

간간히 서 있다고 할 만큼 엉성한 포위망인데도 눈에는 절대 그렇게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거대한 철벽이 자신들을 가두고 있는 강함 압박감이 숨을 삼키게 했다.

“목와북천에서 오셨소?”

해무삼이 물었다.

목와북천이 아니면 자신들을 공격할 중원의 무리가 없다고 생각 했다.

흑의사내가 씨익 웃었다.

“틀렸다.”

“그럼?”

“이제와서 그걸 알면 뭐하겠느냐?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데 질문할 힘 있으면 살아나기 위한 몸부림에 보태라.”

이쯤 되면 완전한 비아냥이었다.

아무리 승부에 임해서는 냉철한 해무삼이지만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고얀!”

“건투를 빈다. 동영 친구.”

흑의사내가 뒤로 물러났다.

그런데 단 한 번도 땅을 밟지 않고 뒤로 물러나 사라졌다.

발자국 하나 남기지 않았다. 눈은 없고 대신 모래이니 답사무흔이라고 해야 옳다.

해무삼이 놀란 것은 답설무흔이라는 신법 때문이 아니다. 뒤로 날아갔다는 것 때문이다.

아무리 강한 고수도 뒤로 날아가는 것과 앞으로 날아가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앞으로 답설무흔을 펼친 사람도 뒤로 날아가면 펼치라고 하면 못한다. 그 이유는 앞으로 날아갈 때와 뒤로 날아갈 때, 그것도 짧은 거리가 아닌 먼 거리를 이동할 때의 진기 운용에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었다.

조금 전까지 기세등등하던 부하들의 눈빛이 사그러든다.

뒤로 날아가는 답설무흔에 주눅이 들었다.

해무삼은 가만 내버려 뒀다가는 사기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것으로 판단하고 소리쳤다.

“죽을 기세로 싸워라. 그럼 우린 이길 수 있다. 중원의 무사들은 혼이 없다. 그들은 절대 우리의 적수가 되지 않는다.”

뒤로 도열한 부하들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나를 따르라. 위대한 동영 무사의 멋을 보이거라. 쳐랏.”

해무삼이 앞장섰고 일제히 뒤를 따랐다.

이어 포위망을 구축한 천룡구십구불을 향해 맞서갔다.

한편 뒤로 물러난 동천몽은 옥사평 언덕 꼭대기에 서 있었다. 언덕 꼭대기라고 해봤자 싸우고 있는 지역보다 약간 높을 뿐이었지만 훤히 내려다 보였다.

객관적으로는 분명 천룡구십구불이 불리해 보였다. 억지로 삼백명을 포위하다 보니 일단 간격이 넓었다. 숫적 열세인데다 간격까지 넓었으므로 누구도 천룡구십구불의 승산을 점치지 않을 것이었다. 그러나 동천몽의 얼굴에는 불안한 그림자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이미 천룡구십구불의 손에 의해 신룡단 무사들의 비명이 울리고 있었다.

크악!

아악!

잠시 십여초 팽팽하던 싸움은 금세 천룡구시구불에게 기울어져 갔다. 번쩍!

파아아!

이곳저곳에서 섬광이 터져나왔다.

은빛 광채는 밀종대수인의 특징이자 오성 이상이 되어야 나타난다. 그것은 천룡구십구불의 무사들이 지난 반년 동안 일종대수인을 오성가까이 터득했다는 뜻이었다.

으악!

컥!

비명은 갈수록 많아졌고 피비린내가 동천몽의 콧구멍까지 파고든다.

화악!

동천몽의 눈이 커졌다.

북쪽 맞은편으로 한 사내가 달려가고 있었다. 동천몽의 눈이 이채를 발한 것은 도주하는 사내의 방법이었다. 마치 게가 옆으로 이동하듯 옆으로 가고 있었다.

사사사사!

동천몽의 눈살이 더욱 찌푸려졌다. 중원은 물론이고 동영의 신법 또한 앞으로 날아간다. 그런데 사내는 계속 옆으로 이동했는데 그 속도가 앞으로 날아가는 것 이상으로 빨랐다.

팟!

동천몽의 눈이 커졌다.

사내의 모습이 사라졌다.

화악!

눈을 크게 뜨고 사내가 사라졌던 근처를 뒤졌다.

‘우웃!’

동천몽이 더욱 눈을 크게 떴다.

사내는 모래 바닥에 죽은척 엎드려 있었는데 그렇게 움직이고 있었다. 모래 바닥에 엎어져 옆으로 이동하다 주위에 천룡구십구불이 나타나면 죽은척 했다.

동천몽은 곧바로 몸을 날려 어둠속으로 사라지는 사내를 쫓았다. 필시 해무삼의 밀령을 받고 지원을 요청하거 가거나 아니면 오늘의 일을 알리기 위한 밀사일 것이다.

스스슥!

사내는 여전히 엎드려 이동했다.

워낙 귀신 같이 움직이고 있어 천룡구십구불의 눈에 띄지 않았다.

척!

동천몽이 모래밭에 날아 내렸다. 사내는 동천몽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빠르게 움직였는데 모래밭에 한 마리 두툼한 뱀이 지나간 것 같은 흔적을 남겼다.

“닌자술이더냐?”

거의 옥사평을 벗어났다고 안심하고 있는데 동천몽의 목소리가 들리자 바닥을 기던 사내가 기겁했다.

동천몽이 앞을 가로막고 우뚝 서 있었다.

파아아!

사내가 누운체 일어나더니 검을 휘둘렀다.

전광석화와 같았다. 동천몽이 뒤로 크게 한 걸음 물러나며 일검을 피하자 재차 찔러 들어왔다.

슉!

또다시 피하자 사내는 쉬지 않고 찔러왔는데 동영 검법답게 빨랐다. 십초가 지나도록 동천몽의 옷자락도 베지 못하자 사내의 얼굴이 흑색으로 변했다.

“왜 공격을 않소?”

“너의 재주가 하도 기이해서 그런다. 어느 정도 수련을 하면 그렇게 할 수 있느냐?”

“미친 놈.”

콰콰콰콰!

쏟아지는 검기가 격렬했다. 어지간한 무사 같으면 커다란 실력차이에 두려움을 느낄 법도 한데 사내는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옷자락도 베지 못하는데 혼신을 다해 공격했다.

동천몽의 입이 벌려지고 감탄이 흘러나왔다.

진지하고도 최선을 다한 공격에 자못 숙연해 지기까지 한다. 무려 삼십초를 넘겼는데도 사내는 계속 휘둘렀고 입에서 거친 숨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사십초, 오십초, 시간이 흘러가도 사내는 멈추지 않고 더욱 힘을 쏟아냈다.

멍청한 새끼라고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너무 열심히 검을 휘둘렀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하면 지나친 모독일 것 같았다. 아무리 강자라고 해도 약자를 모욕할 권한은 없다.

“그만 하지?”

“흥! 살아 있는 함 멈추지 않을 것이다.”

“날 이긴다고 생각 하느냐?”

“아니다.”

“그런데도.”

“살아 있기에 휘두르는 것 뿐이다. 그것이 무사 아니겠느냐?”

“아아!”

동천몽은 입을 벌려 감탄했다.

패배가 보이면 다른 방법으로 생존의 길을 즐겨 찾는 중원의 무사와 너무 틀려도 너무 틀리다.

동천몽이 오른손을 뻗었다. 상대가 안되지만 최선을 다해 죽이는 것이 산자로서의 예의가 아닌가 한 것이었다.

뻑!

동천몽의 오른손이 사내의 검기를 쳐냈고 파고들며 앞가슴을 찍었다.

“크윽!”

비틀거리는 사내의 옆구리에 다시 일장이 쑤셔박혔다.

으웩!

사내가 피를 토했는데 반짝이던 눈빛이 흐릿했다. 치명상을 입은 듯 했다. 그러나 사내는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재차 검을 찔러 왔고 동천몽이 빠르게 우장을 날렸다.

콰앙!

사내의 검기가 허무하게 깨져 나가고 장력은 정통으로 복부를 찍었다.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모래밭에 쓰러진 사내는 일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다.

하…하학!

사내는 헐떡이며 중얼거렸다.

“아…아니었소. 중원은 우리가 올 곳….이.”

사내가 조용히 얼굴을 모래밭에 묻었다.

동천몽은 우두커니 서서 죽은 사내를 내려다 보았다. 가까이서 보니 스무 살 전후로 어려 보인다.

아주 어린 나이지만 중원을 넘어 온 창송의 계획이 무모했음을 이미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중원은 다르지. 좁은 동영과는 크게.’

동천몽이 나직히 중얼거리며 돌아섰다.

싸움은 거의 막바지에 이르고 있었다. 천룡구십구불 중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은 역시 덕배선사와 일목이었다. 특히 일목의 활약은 대단했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해가며 닥치는대로 검을 휘둘렀는데 신룡단 무사들이 맥을 추지 못했다.

“건방진 놈들, 조용히 섬구석에 쳐박혀 살 일이지 뭐하러 왔느냐? 아무리 중원이 개판이라고 해도 그렇지 너희들까지 건너오면 말이 안되지.”

동천몽이 몸을 날렸다.

동쪽으로 도망치는 흑명을 발견 한 것이다. 단 두 번의 도약에 도망치는 사내의 앞을 가로막았고 일장에 사내가 고꾸라졌다.

싸움은 축시가 조금 지나서야 끝이 났다. 옥사평은 시산혈해라 하기에 부족하지 않을 만큼 참혹하게 변해 있었다. 채 목숨이 끊어지지 않고 신음을 흘리는 자들을 찾아 완전이 숨통을 끊었다.

동천몽 앞으로 일목이 해무삼의 시신을 가져왔다.

우두머리의 죽음을 확인하는 것이 전장의 예의 아니던가. 동천몽이 고개를 끄덕이자 일목이 시신을 한쪽으로 던졌다.

“우리 쪽은?”

덕배선가가 말했다.

“아홉 명이 죽고 이십여 명이 크게 다쳤사옵니다.”

“그게 정말이냐?”

동천몽의 눈이 커졌다. 아흔 아홉 명이서 삼백 명을 죽이는데 고작 아홉 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것은 놀라운 승전이었다. 철저한 계획에 따라 움직였다고는 해도 막다른 골목에 몰린 쥐의 심정으로 달려드는 신룡단 무사들의 힘은 평소의 두 배이다. 그런데도 피해가 크지 않았다는 것은 그 만큼 천룡구십구불의 무예가 성장했고 특히 지난 반 년간 연마한 밀종대수인이 큰 역할을 했다는 의미였다.

그것을 반증이라도 하듯 시신들 대부분이 밀종대수인의 상흔을 갖고 있었다.

“묻어라. 해무삼의 검만 빼고.”

동천몽이 명령을 내렸다.

천룡구십구불이 움직였다. 거센 장력을 날려 모래 구덩이를 만들고 시신들을 묻기 시작했다.

서류 마지막에 창송세가의 문장인 흑주(黑蛛)가 그려졌다. 창송은 자기 가문의 문장을 수결로 사용한다. 지금 호남제일 상가인 단계산장(段溪山莊)의 주인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단계산장은 호남에서 가장 큰 상가였다. 무림맹과 손을 뻗고 있었는데 목와천하가 되면서 호된 타격을 입었다. 껍질 밖에 남아 있지 않았고 장주와 식솔 대부분이 죽었으며 유일한 혈육인 단울식이 주인을 대신하여 창송과 거래를 성공 한 것이다. 그는 장주 단소산의 장자이자 유일한 혈육으로 장원을 넘기고 조용히 초야에 묻혀 일생을 마치겠다면서 곧바로 자리를 털고 일어나 사라졌다.

“축하드리오. 창 가주.”

남궁천이 기쁜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이로써 중원에서 활동할 거점을 만들었다.

잠시 후 남궁천이 떠나고 창송은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산장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약간 부숴진 곳이 있는데 수리하면 될 일이었다. 얼마 전까지 사람들이 북적대던 곳인 만큼 장원은 생각보다 깨끗했고 특히 그를 가장 기쁘게 만드는 건 단계산장의 기존 거래선을 그대로 넘겨 받았다는 것이었다.

“주군.”

아오의 부름에 뒤로 돌아섰다.

아오가 한 백의사내를 데리고 서 있었다.

“이년 전까지 단계산장의 총관을 맡았던 종규봉입니다.”

아오를 시켜 단계산장에 일한 경험이 있는 사람을 수소문 하도록 했다. 어디든 텃새라는 것이 있는데 자신이 직접 나서면 거부감이 심할 것이므로 우선 중원 사람을 내세우려는 것이었다.

“반갑소이다. 어서 오시오.”

창송이 다가가 크게 허리를 구부렸다.

그러자 종규봉의 눈이 커지며 후다닥 자신도 허리를 숙였다. 중원 사람은 윗 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잘 허리를 구부리지 않는데 창송이 크게 절하자 종규봉은 황송했고 감동했다.

“아이고, 이러지 마소서. 주인님!”

멈칫!

펴지던 창송의 허리가 도중에 멈췄다.

종규봉이 분명 자신더러 주인님이라고 호칭했다. 아직 중원의 상계를 장악한 건 아니지만 중원 사람의 입에서 주인님이라는 호칭이 나오자 감개가 무량했고 가슴이 떨렸다.

“자자! 들어가십시다. 가서 차 준비 하라 이르라.”

“예 주군.”

아오가 사라졌고 창송이 종규몽을 데리고 천천히 거처로 걸어갔다.

방으로 들어서자 아오의 지시를 받은 듯 시녀가 곧바로 차를 꺼내왔다.

비록 차에 관한 중원이 한발 앞서 있지만 다도만을 따진다면은 동영 또한 꿀릴 것이 없었다. 자신이 가장 아끼는 북해도산 용명차를 꺼내놓았는데 예상대로 종규봉이 감탄을 금치 못했다.

“중원에도 용정을 비롯해 철관음등 내 노라 하는 차가 있지만 이것에 비하면 고개가 숙여 집니다.”

“천황께서 드시는 차이오. 아오, 이따 종 총관에게 돌아갈 때 용명을 조금 싸드리거라.”

종규봉의 눈이 커졌다. 용명을 선물로 준다는 얘기도 놀랍지만 자신을 총관이라고 불렀다.

“지금 소인을 뭐라고?”

“총관이라고 했소이다. 종 총관, 마음에 안 드시오?”

종규봉이 찻잔을 내려 놓고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주…주인님 목숨을 바치겠사옵니다.”

창송의 입가에 미소가 넘쳤다.

완전히 굴복시켰다.

창송이 품에 손을 넣었다가 뺐는데 한 개의 자색 주머니가 들려 있었다.

탁!

차 상 위에 소리나게 올렸다.

“받으시오.”

“이…이게 무엇인지요?”

종규봉이 조심스럽게 주머니를 열어 안을 확인 하더니 또다시 엎어졌다.

“주…주인님.”

“요즘 생활이 그다지 넉넉하지는 않는 것 같더구려. 단계산장의 총관이 돈 몇 푼에 허우적대어서야 쓰겠소이까?”

퍼억!

종규봉이 급기야 이마를 방바닥에 찍었다.

이마를 방바닥에 찍는 것과 허리만 숙이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그때 문이 열리더니 아오가 들어섰다. 그런데 아오의 표정이 조금 전과는 틀리다.

“왜 그러느냐?”

“신룡단주가 도착하지 않고 있사옵니다.”

오늘 밤 중원진출의 기념으로 휘하 단주들을 불러다 술을 한 잔 하기로 했다.

“조금 늦을 수 있겠지.”

아오가 조용히 물러났다.

창송은 계속 차를 권했고 종규봉은 무려 열두 잔을 마셨다. 차로 배를 채운 것인데 돌아 갈 때 용명차 세 봉지를 선물로 받았다.

너무 기분이 좋아 구름을 타듯 걸어가는 종규봉을 바라본 창송의 입가에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이 정도면 목숨을 바칠 것이다.

창송이 흐뭇한 표정을 거두고 방으로 돌아오자 다시 아오가 기다리고 있었다. 다른 단주들은 모두 왔는데 여전히 신룡단주 해무삼 만이 도착하지 않았다고 했다.

다시 전서구를 보내 보거라.

이곳에서 이백여 리 밖에 떨어지지 않은 황학루에 있으니 지금이라도 금방 연락을 받으면 올 것이다.

전서구가 네 번째로 날아올랐지만 해무삼으로부터는 소식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다른 단주들을 불러놓았으므로 창송은 잔치를 베풀었다.

수하들이 건네는 술을 마시고 낮에 인근 도부를 불러와 잡은 돼지 다리를 뜯으며 창송은 대취했다.

다음 날도 해무삼과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결국 창송은 분노하였고 아오를 앞장세우고 해무삼이 있는 황학루를 향했다. 때마침 황학루에 도착할 때는 석양이었다. 하지만 구름이 끼어 황홀한 석양을 볼 수는 없었다.

해무삼이 묵고 있는 조그만 목조건물을 찾았지만 그의 흔적은 없었다. 방안은 여전히 깨끗했고 옷가지들도 잘 정돈 되어 벽에 걸려 있었다.

꿈틀!

창송의 눈썹이 오므라졌다.

분노에서 점차 불길함으로 마음이 옮겨 가고 있었다. 그런데 신룡단 무사들을 찾아 나선 아오가 돌아와 놀라운 보고를 했다. 아무리 황학루 근처를 이 잡듯 뒤지고 다녔지만 단 한 명의 신룡단 무사들도 보이지 않는 다는 것이었다.

급기야 창송은 수하들을 불러 신룡단 행방추적에 착수했다. 황학루를 비롯해 인근 이십 리를 이 잡듯 뒤졌지만 신룡단 무사들은 흔적도 없었다. 몇몇 눈썰미 좋은 상인들이 동영무사 같은 복장의 사내들을 몇 일 전까지 보았지만 요즘에는 거의 못 봤다고 했다.

“몇 일 전이라고 했는데 정확한 날짜를 말해보겠소?”

상인이 눈을 깜박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닷새 전이오.”

“닷새 전이면 자신이 단계산장을 인수받기 하루 전 날이었다.”

“찾아봐라. 반드시 어딘가 있을 것이다.”

다시 부하들을 독려했다.

그러나 이레가 지나고 열흘이 지나도 해무삼은 물론이고 신룡단 무사들의 그림자는 발견되지 않았다.

처음 몇 일은 단순히 자신의 명령에 충실하다보니 너무 완벽하게 은신한 탓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상인을 만난 이후 불길한 느낌이 들기 시작하더니 살해 되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한 두 명도 아닌 삼백 명이 연락 한 통 없이 죽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더구나 죽었다면 시신이라도 발견되어야 하는데 어디서도 그런 얘기는 없었다.

급기야 남궁천까지 날아와 근심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죽었을 리는 절대 없다고 호언했다. 창송을 위로하면서 큰일 없을 것이라는 위로를 해주고 볼일을 위해 떠났다.

추적 보름째.

어찌나 샅샅이 뒤졌던지 이제 항학루는 물론이고 동정호 인근 지역의 지리를 훤히 꿰뚫고 있었다. 조사지역을 멱라수까지 넓혀 보았지만 여전히 단서 하나 잡히지 않았다.

포위망은 더욱 넓어져 추적 이십일 때 되는 날 창송은 무릉까지 내려왔다.

동영에 살지만 중원에 대해서 아는 곳이 몇 있다. 그중 한 곳이 바로 이곳 무릉이었다. 그렇다고 와 본 것은 아니고 책과 소문을 통해서였다. 신선들이 살아 무릉도원으로 불린다는 유명한 무릉산이 있는 곳이다.

하루종일 무릉을 뒤지고 다닌 탓에 창송은 지쳤다.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신시가 조금 지나 무릉에서 가장 큰 주루인 호광루에 들어섰다.

창송이 데리고 들어간 인원은 자신과 아오를 비롯해 친위대 열 명이었다. 들어오자마자 가장 고가인 해착(海錯)요리를 시키자 주방은 바빠졌고 사람들은 쳐다보았다.

무려 황금 열낭 어치의 해착요리를 먹어치우고 일행은 다시 신룡단의 흔적을 찾아 객점을 나섰다.

척!

자저거리를 벗어나던 창송의 발걸음이 멈췄다.

창송이 멈춰서자 아오의 시선이 곧바로 주시한다. 호위무사들은 이미 허공에 모습을 감춘 지 오래였다.

“도대체 이 검은 왜 그렇게 비싼 것이오?”

길가 한쪽에 검을 만들어 가지고 나온 장인 한 명이 눈에 띄었다. 옷차림은 비교적 허름했는데 이십여 자루의 검을 진열해 놓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상대로 팔고 있었다.

“명검이기 때문이오?”

검을 파는 장인이 한 자루 검신이 좁은 검을 든 행인에게 무뚝뚝하게 말했다.

검신이 좁은 검을 든 행인이 앞 뒤로 살피며 눈살을 찌푸렸다.

“괜찮아 보이긴 하는데 은자 열 냥은 너무 비싸오. 여덟 냥에 안되겠소?”

장인이 머뜩잖은 표정을 짓더니 선심을 쓰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특별히 여덟 냥에 넘길테니 가져가시오.”

“고맙소이다.”

행인이 여덟 냥을 지불하고 검을 보따리에 쑤셔 넣을 때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잠깐. 기다리시오.”

창송이 다가섰다.

등의 봇짐에 반쯤 검을 찔러 넣던 행인이 이마를 찡그렸다.

“왜 그러시오?”

“그 검 좀 봅시다.”

창송이 다짜고짜 반쯤 봇짐에 감춰진 검을 집 채 뽑아 들었다.

“아니 이 검은 해 단주의 애검 아닙니까?”

아오가 놀라 말했다.

굳은 표정으로 검을 살핀 창송의 시선이 이번에는 장사꾼에게 향했다.

“이 검, 어디서 놨소?”

창송의 눈이 이글거렸다. 여차하면 목을 벨 기세였으므로 장인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뭐가 잘못되었소?”

“묻는 말에 대답만 하시오? 어디서 구했소?”

“주…주웠는데.”

더 이상 말이 이어지지 못했다.

아오의 검이 장인의 턱밑에 바짝 들이대어져 있었다.

“다시 말하겠다. 이 검이 어디서 놨는지 물었다. 사실대로 말하지 않으면 너의 목을 잘라버리겠다.”

창송이 표독스럽게 말했다.

장인의 얼굴에 두려움이 떠올랐다.

“사실은.”

“그래.”

“한 사람에게 샀습니다.”

“그가 누구냐?”

“모…모릅니다. 소주에서 왔는데 집에 갈 여비가 떨어졌다면서 갖고 있던 검을 저에게 은자 두 냥에 사라고 했습니다. 한 눈에 괜찮아 보여 샀지요.”

“저…정말이냐?”

“소…소인이 왜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생김새는 어떻더냐? 기억나는데로 말해보아라.”

“머리는 스님처럼 짧았습니다. 스물 두 셋 쯤 되어 보였는데 아주 준수한 공자님이셨습니다. 말투도 점잖았고.”

혹시나 했는데 아니었다.

해무삼은 준수하지 않았다. 나이 또한 마흔 하나이다. 말투 또한 까마귀 소리를 낸다.

“네놈이 죽고 싶나 보구나. 감히 우리에게 거짓말을 하다니.”

아오가 검을 들어 올렸다.

장인이 벌벌 떨며 빌었다.

“하…하늘에 맹세하지만 사실입니다. 거짓이면 소인은 천벌을 받습니다.”

“네 놈이 끝까지.”

아오가 검을 내려치려 할 때 창송이 말렸다.

“참아라.”

“주군 이놈은 보나마나.”

창송은 검을 만지며 살폈다.

검은 무사에게 제 이의 생명이라고 한다. 그러나 해무삼에게는 제 일의 생명이었다. 어찌나 검을 아끼는지 자신은 죽어도 검 만큼은 품에서 떨어 뜨려 놓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런 그가 자신의 애검을 팔았을 리는 절대 없었다.

창송의 입술이 강하게 물렸다. 해무삼은 죽었다. 그를 죽인자가 이 검을 팔아 치운 것이다.

문제는 해무삼을 죽인 자였다.

검 한 자루 욕심이 나서 그를 죽였을 리 없었다. 해무삼 정도를 죽일 정도면 중원에서도 절정의 고수로 통한다. 그런 절정의 인물이 돈 몇 푼 만들기 위해 살인을 했다는 것은 도무지 말이 안된다. 더구나 지금까지 흘러온 상황을 보면 흉수는 해무삼뿐만 아니라 신룡단 전체의 실종과 깊은 연관이 있었다.

‘신룡단 모두 죽었다!’

창송의 안색이 싸늘하다 못해 잿빛이 되었다.

지금까지 신룡단의 죽음을 짐작은 했지만 혹시나 했다. 그런데 이제와서 보면 해무삼을 비롯한 신룡단은 완전히 죽었다. 또한 자신에게 도움 요청이 전혀 없는 것을 보면 흉수는 신룡단을 불러내어 한 장소에서 몰살했음이 분명했다.

중원에서 신룡단 삼백 명을 흔적없이 죽일 수 있는 인물은 누굴까.

부르르!

창송이 벼락을 맞은 듯 몸을 떨었다.

강한 세력을 이끌고 있는 사람이라면 죽이지 못할 것도 없었다. 그러나 삼백 명을 죽일 만큼의 강한 힘을 갖고 있는 집단은 현재 없었다. 더구나 흔적도 없이, 지난 이십일을 고생하게 만들 만큼 완벽한 살인을 구사 할 인물은 더욱 없었다.

그런데 눈앞의 현실은 있는 것이다.

‘무…무서운!’

등에 식은땀이 흐른다.

한 두 명도 아니고 무려 삼백 명을 감쪽같이 없애 버리다니 실로 공포스런 일이었다.

아오 또한 믿을 수 없다는 듯 자신을 쳐다보았다.

단순한 그도 충격을 받은 듯 아뭇소리 못했다. 지금까지 겪어온 자신의 경험과 상식에 비춰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삼백!

어마어마한 숫자이다. 더구나 하나같이 일류 고수들이었다.

“아닐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아니다!”

창송이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창송은 한참동안 해무삼의 검을 바라보더니 조용히 돌아섰다.

돈을 지불하지도 않고 돌아서 가는데 행인이 크게 안도의 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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