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법왕-62화 (62/71)

제8장 외세

방안은 대낮처럼 환했다. 그러나 불빛이 새어나가지 못하도록 창문에는 검은 천막이 두껍게 쳐져 있었다.

구레나룻과 흑의노인이 마주 섰다. 두 사람 사이에는 탁자가 있었고 그 위에는 술과 간단한 안주가 있었는데 한 명의 여인이 중간에 앉아 두 사람 앞에 잔을 놓고 술을 채웠다.

“듭시다!”

남궁천이 먼저 술잔을 들어 올렸고 구레나룻이 잔을 들었다.

쨍!

두 사람은 가볍게 잔을 부딪힌 뒤 한 번에 비웠다.

“환영하오. 창 가주

“불러주어 고맙소. 남궁맹주.”

남궁천이 손을 내저었다.

“이제 그 맹주란 호칭은 떼시오. 난 맹주가 아니오. 보다시피 쪽박 차고 도망다니는 늙은이에 불과 할 뿐이오.”

“하지만 맹주.”

“괜찮소. 날 위로하려 들지도 마시오. 난 엄연한 패장이고 쫓기는 자요. 이제 내게 과거는 없소. 오로지 미래만 있을 뿐이오.”

말을 뱉는 남궁천의 눈에서 살기가 쏟아졌다.

솟구치는 분노를 억지로 짓누를 때 볼 수 있는 울화였고 폭발할 것 같은 열기였다.

“과거는 잊었소. 미래만 생각하기로 했소. 하지만 이것 한 가지는 분명히 말씀 드릴 수 있소이다. 나 남궁천은 절대 이대로 쓰러지지 않는 다는 것이오.”

“물론입니다. 반드시 예전의 영광을 되찾을 것을 믿어 의심치 않소이다. 내가 돕겠소. 나와 손을 잡고 남궁 맹주를 비통하게 만든 자들을 처단합시다. 내가 앞장선단 말이오.”

“고맙소. 고맙소. 창 가주.”

두 사람의 잔에 다시 여인이 술을 채웠다.

남궁천이 말했다.

“동영에서 마저 해결하지 못한 내용을 마무리 합시다. 날 도와주면 창가주에게 중원의 절반을 경영할 수 있는 권한을 주겠소.”

“맹주 잠깐.”

창송이 오른손을 들어 남궁천의 말을 잘랐다.

창송이 빛나는 눈으로 입을 열었다.

“지급 중원의 절반을 준다고 했소?”

“드리지요. 반드시.”

“고맙소. 그러나 난 중원의 절반은 필요 없소. 중원의 전부를 내게 주시오.”

남궁천이 흠칫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창송이 야릇한 웃음을 지었소.

“물론 땅덩이 따위는 필요 없소. 내가 달라는 중원의 전부는 상권이오.”

남궁천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오면서 생각해보니 땅은 내게 맞지를 않소. 이곳 주인인 남궁맹주께서 강호는 지배하시오. 대신 나에게는 상권을 주시오.”

“돈을 벌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구려?”

“알겠지만 동영은 섬나라이오. 좁지요. 그래서 상권의 규모도 보잘 것 없소이다. 강호와 거래를 하고 싶지만 워낙 뱃길이 멀고 파도가 심하면 출항이 불가하여 곤란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오.”

“그러니까 중원에 본거지를 마련하여 본격적으로 이곳에서 장사를 하겠다는 것 아니오?”

“그러면 안되겠소?”

남궁천이 잔을 들어 올렸다.

“왜 안 되겠소? 얼마든지 가능하오. 아예 좁은 섬에서 살지 말고 중원으로 이주를 해오는 게 어떻겠소? 그래서 이곳 중원에서 마음껏 꿈을 펼쳐보는 것이오. 조그만 섬나라인 동영과는 비교가 되지 않지요. 잘만 하면 중원을 벗어나 멀리 새외 천축 그 이상의 지역까지 끝없이 뻗어 갈 수가 있소이다.”

“그래서 내가 남궁맹주와 손을 잡은 것 아니겠소? 끝없이 세상 끝으로 뻗어 나가기 위해서 말이오.”

“핫핫핫!”

“허허허!”

두 사람이 크게 웃으며 잔을 부딪혔다.

두 사람은 다시 잔을 비웠다.

“아오 있느냐?”

창송이 밖을 향해 불렀다.

문이 열리고 작달막한 체구에 삿갓을 깊숙이 눌러쓴 사내가 들어섰는데 목혜를 신었다.

“인사 올리거라. 남궁맹주님이시다. 본가의 가장 뛰어난 충신이며 생사결을 가장 잘 펼치는 아이이오.”

“생사결이라고 하면 동영제일의 검법아니오?”

“제일이라고는 할 수는 없소. 왜냐하면 생사결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한 가지 검법이 더 있기 때문이오. 물론 그 가문과 본가는 지난 삼백년 동안 동영을 양분해 왔지만 말이오.”

아오란 사내가 허릴 넙죽 구부렸다.

“인사 올립니다. 아오입니다.”

남궁천이 웃으며 말했다.

“나 좀 도와주시오. 기대가 크오.”

“목숨을 바쳐 뜻을 이루도록 도우라는 말씀이 주군으로부터 계셨사옵니다.”

남궁천이 창송을 보며 눈을 크게 떴다.

“고맙소이다. 정말 고맙소이다.”

창송이 웃으며 말했다.

“우린 친구요. 중원에서는 몰라도 동영에서는 친구란 목숨을 같이 나누는 사람을 말하오. 난 남궁맹주를 위해 하나뿐인 목숨을 던질 것이오. 아오.”

“명을 주십시오.”

“이곳은 중원이다. 동영과는 크기가 다르다. 그야말로 천하라고 할 수 있다. 어떠냐? 우릴 불러준 남궁맹주의 뜻에 감사하는 뜻에서 한 가지 선물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 맹주, 말씀하시오. 맹주께 우리 아오가 선물을 한 가지 드리고 싶다는데 받고 싶은 것 있으면 주저 말고 말이오?”

“마음이라도 고맙소. 오늘은 피곤할테니 푹 쉬라고 해주시오. 앞으로 시간은 많소이다.”

“아니오이다. 반드시 선물을 주고 두 다리를 뻗을 것이오? 그렇지 않느냐? 아오?”

“그러하옵니다. 맹주님 받고 싶은 선물을 하나 말씀해주시면 실망시켜드리지 않겠사옵니다.”

“말하시오. 우린 친구 이오.”

창송이 거듭 말하자 남궁천이 들었던 술잔을 내려 놓았다.

“꼭 주시겠다면 받아야겠지요. 좋소이다. 여기서 오십 리쯤 가면 금화라고 있소이다. 육로보다는 강을 이용한 뱃길이 빠르지요. 금화에 가면 여의보라는 무림가문이 있소.”

“여의보(如意堡)?”

“흑과 백을 넘나들며 생존해 왔던 곳인데 목와북천 시대가 열리자 백쾌섬에게 충성을 맹세했소. 부하들 보고에 의하면 그동안 가세를 은밀히 확장하여 잘 하면 머잖아 절강의 패주로 군림할 가능성이 높다 하오.”

“들었느냐? 아오. 가서 여의보 보주의 목을 맹주께 가져와라. 지금 당장 가라.”

“주군의 명을 따르옵니다.”

아오라는 사내가 허리를 구부리고 돌아섰다.

남궁천이 말했다.

“천천히 받아도 괜찮다는데도 자꾸 그러시오이까?”

“그렇잖아도 마땅한 선물을 준비하지 못해 미안하던 참이었소. 늦어도 내일 아침까지면 아오가 여의보주의 목을 가져 올것이오. 그 정도면 그다지 섭섭할 선물은 되지 않겠구려?”

“창가주, 진심으로 고맙소이다. 이 남궁모 평생을 잊지 않을 것이오이다.”

“별말씀을.”

두 사람은 다시 잔을 부딪혔고 술을 마셨다.

어느덧 두 사람이 마신 술병이 늘어나 하나 둘 탁자 위로 쌓이기 시작했다.

여의보는 사백년 전 관초옥이란 사내가 개문했다. 관초옥은 사막을 횡단하던 비단 장사꾼이었는데 어느 날 옥문과 밖 백룡퇴에서 유사에 빠졌다. 백룡퇴는 죽음의 사막으로 불리는 지옥의 땅으로 서역을 왕래하는 상인들은 물론이고 무림인들도 접근을 기피하는 곳이었다.

상인에게 있어 신용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있으니 바로 시간이었다. 천축에서 최고급 비단 홍화금을 가져오던 관초옥은 시간에 쫓기자 과감히 백룡퇴를 가로 질렀다. 하지만 백룡퇴는 소문만 무성한 지옥의 땅이 아니었다. 관초옥의 유사에 빠졌고 비몽사몽간에 지하의 어느 동굴로 휩쓸렸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의 운명을 바꾸는 인연을 만났으니 바로 한 개의 검법이었다.

‘경천삼검’

극성에 이르면 하늘이 놀랄 만한 위력을 뿜어내는 상고시대의 절정검수가 남긴 검법을 얻은 것이다. 지하 동굴에서 삼년을 지내며 검을 익힌 관초옥은 곧바로 무인의 길로 들어섰고 그렇게 여의보를 창건했다.

경천삼검은 강했지만 중원에는 예전부터 명성을 날리는 구파일방을 비롯한 명문들이 수두룩 했다. 그들 틈에서 군림하기란 위험했다. 관초옥은 그때부터 흑백 어느 곳으로도 정확한 자신의 검로를 정하지 않았다. 나름대로 생존의 승부수였고 오늘날까지 여의보는 정사가 모호한 집단으로 내려왔는데 얼마전 흑도천하가 이뤄지면서 제 색깔을 낸 것이다.

여의보 정문 성곽에서 근무 교대가 이뤄지고 있었다.

정문 근무는 이인 일개조로 이뤄지고 통상 한 시진씩 서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암호.”

교대할 조가 다가오자 근무를 서고 있던 두 사내 중 한 사내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다가오던 교대자들 쪽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장강!”

“통과!”

오늘밤 장강이라는 암호를 대자 근무를 서고 있던 자들이 옆구리에 달린 검 자루에서 손을 떼고 안심의 표정을 지었다.

평소에도 근무 교대만큼은 냉정하리만치 원칙에 입각하지만 요즘은 더욱 심했다. 목와북천이 천하를 일통했지만 아직은 세력의 정리가 되지 않아 크고 작은 사건 사고가 잦기 때문이었다.

“수고들 하게.”

근무를 교대한 두 무사가 망루를 내려가 사라졌다.

근무자들이 사라지자 지금 막 교대한 두 무사의 눈이 예광을 발했다.

부욱!

인피면구를 찢자 아오의 얼굴이 나타났고 동료는 오십 가량의 사내였다.

두 사람은 잽싸게 계단을 이용해 아래로 내려가 굳게 잠긴 거대한 정문의 기관장치를 작동했다.

그그그긍!

세치 두께의 무쇠로 만들어진 정문이 열리자 흑의사내들이 쏟아져 들어왔는데 삿갓 차림이었다.

“빨리!”

“서두르거라!”

대략 삼백여명 될 것 같은 무사들이 들어갔다.

아오가 자신과 같이 문을 열어준 오십가량의 사내를 향해 말했다.

“수고했느니라. 너도 어서 들어가 살인에 가담해라.”

“에!”

오십 가량의 사내가 사라졌다.

전쟁이란 이겨야 하지만 어떻게 이기느냐는 아주 중요하다. 창송의 명령을 받고 금화에 들어선 아오는 우선 여의보 건물과 근처 지형을 살폈다.

여의보 주위에 함정 따위는 없었다. 그러나 삼장 높이의 외벽과 십장마다 세워진 높은 망루는 완벽한 방어 체계였다. 아무리 무공이 뛰어난 자일지라도 감시병의 시선을 피해 몰래 잠입하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더구나 수백 명이 들키지 않고 습격 한다는 것은 꿈일 뿐이라는 게 아오의 결론이었다.

특히 정문은 안에서 열어주기 전에는 경비 무사들 눈을 피해 뚫고 들어가기란 어려웠다. 그래서 아오 자신이 직접 침투하여 정문 근무 교대를 위해 나온 자들을 죽이고 변장 한 것이다.

“크악!”

“적이다. 컥!”

사방으로부터 비명이 들렸고 곧바로 어둠속에 잠긴 여의보 곳곳에 불이 켜졌다.

아오는 천천히 들어갔다. 이미 곳곳에 시체가 나뒹굴고 있었고 잠자리에 막 일어난 듯 속옷차림의 여의보 무사들이 자신의 수하들과 싸우고 있었다.

“도대체 네놈들은 누구냐?”

“어디서 왔느냐?”

침묵 속에 검만 휘두르는 부하들을 보며 여의보 무사들이 답답하다는 듯 소리쳤다.

촥!

아오의 검이 광채를 뿜었다.

정원 바위 뒤에 숨어 있던 무사가 달려들었고 일 검에 허리를 양단했다.

하지만 아오의 검에는 피 한 방울 묻지 않았다.

“크악!”

비명을 지르며 한 명의 여의보 무사가 아오를 향해 날아왔다.

번쩍!

아오의 검이 다시 번뜩였으며 날아오던 여의보 무사의 목이 땅바닥에 떨어졌다.

데구르르!

잘린 사내의 두 눈이 경악으로 이그러졌다. 뭐라고 한 마디 하고 싶은 듯 목이 잘렸는데도 입술이 퍼득 거렸다.

따가각!

따각!

아오가 걸음을 걸을 때마다 나무 신이 지면과 마찰하며 섬칫한 소리를 냈다. 무사가, 그것도 전쟁터에서 큰 발자국소리는 적에게 이쪽의 존재를 알리는 아주 불리한 경우였다. 하지만 아오는 전혀 개의치 않는 듯 오솔길을 따라 여의보 안쪽을 향해 들어갔다.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비명을 들으며 걸어가던 아오의 발걸음이 멈췄다. 언뜻 흑룡 두 마리가 지키고 있는 것 같은 구부러진 노송 두그루를 경계무사처럼 거느린 한 채의 전각이 눈 앞에 있었다.

어두운데다 거리가 있어 전각의 현판을 읽을 수는 없지만 상당히 지체 높은 사람의 거처임을 알 아 볼 수가 있었다.

잠시 찌푸린 시선으로 전각을 보던 아오가 입구를 향해 걸어갔다.

두 그루 소나무 사이를 막 벗어나려는데 툭 하는 소리와 더불어 두 명의 무사가 앞을 막았다.

사실 이미 두 사람의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아오는 모른체 했다. 막으면 베고 가만있으면 살려준다는 것이 동영에서의 아보의 규칙이었다.

멈칫!

아오를 살피던 두 무사가 긴장의 표정을 띄었다.

본능적으로 뭔가 틀리다는 것을 간파한 것이었다.

“침입자들의 우두머리인가.”

“응.”

무겁게 묻는데 오는 대답은 너무 가볍다.

신발을 보던 두 무사의 눈이 기광을 발했다.

“혹시?”

“그래.”

두 무사가 다시 침음을 흘렸다.

자신들이 묻고자 하는 질문을 알고 대답했음이 분명했다.

“이상하군. 우린 당신들과는 일체 어떤 은원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데.”

“무사가 은원이 있어야 싸우는가?”

두 무사는 입을 다물었다.

무사는 은원이 없어도 싸운다. 그냥 심심해서 싸우는 무사도 있고 괜히 기분 나쁘게 생겼다는 이유로 싸우기도 한다. 그러나 가장 큰 싸움은 야망을 위한 것이었다. 자신들의 질문이 무척 어리석다는 것을 느끼자 챙피함을 넘어 은근히 화가 솟구치기 시작했다.

“들어갈 수 없다.”

“하는 수 없군. 내 주인께 모가지를 잘라가겠다고 큰 소리쳤는데.”

번쩍!

아오의 검이 빠져나왔다.

그것은 섬광이었는데 두 무사의 몸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쾌검을 봐왔지만 지금의 것은 인간의 것이라고 할 수가 없었다.

“어… 어떻게 이런 일이.”

“우이씨.”

두 사람의 검은 한 뼘쯤 뽑힌 상태였다.

만약을 대비해 오른손을 슬며시 왼쪽옆구리에 가져다 놓았는데도 뽑아보지 못할 만큼 아오의 검은 빨랐다.

쿠쿵!

두 무사가 쓰러졌고 주위는 다시 고요해졌다.

하지만 아오는 걸음을 옮기지 않았다. 그의 고개는 좌측으로 돌아가 있었는데 언제부터인지 어둠속에 한 사내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사내는 경비무사 두 명이 죽어가는데도 전혀 손을 보태거나 가로막을 생각이 없는 듯 했다. 그렇다고 아오측 무사는 아니었다. 어둡고 거리가 제법 있지만 본능으로 피아를 구별하는 아오이다. 사내는 이쪽이 아니라 저쪽이었다.

“……”

아오의 눈이 가라앉았다.

당당한 기세가 느껴진다.

“생사결이로군.”

아오가 흠칫 했다.

자신의 검법을 상대가 단번에 알아차렸다. 생사결은 동영에서는 유명하지만 아직 중원에서는 그다지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런데 상대는 한 번에 생사결을 알바 본 것이었다.

“팔년 만이로군. 생사결을 본지가 어느 덧.”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는데 말을 음미해보면 팔 년 전에 생사결을 구경했다는 얘기였다.

“동영의 창송세가에서 왔나?”

아오의 눈이 더욱 커졌다.

어둠속 사내가 웃었다.

“훗훗! 아무리 중원의 형세가 안정되지 않았다지만 동영에서까지 건너와 피바람을 일으킬 만큼 허술하지 않다?”

어둠속 사내의 말뜻은 중원의 누구와 거래를 하고 있느냐는 질문이었다. 아오의 입은 굳게 닫혔다. 자신의 입으로 선뜻 대답해 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훗훗! 둘 중 한 곳이겠지. 동천비쪽 아니면 남궁천쪽! 목와북천은 당연히 아닐 테고 포달랍궁은, 특히 대법왕의 품성을 봤을 때 차라리 얻어맞아 죽고 말지 바다건너 섬놈들 따위와 손잡을 위인은 더욱 아니고.”

동천몽에 대해 훤히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존함을 말씀해주겠소?”

“관태산이다.”

“여의보주.”

어둠속 사내가 천천히 다가왔다.

한자루 검을 가슴에 끌어 안고 있었는데 오십 중반쯤 보였다. 무척 잘생겼다. 적당한 수염과 불거진 광대뼈, 특히 위기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삼각형의 눈이 무척 보기 좋다.

“맞소이다. 동영의 창송세가에서 왔소이다. 삼가 인사 올리오이다. 관태산 가주.”

“팔년 전 동영에 볼일이 있어 갔다가 창송세가의 다섯 호법과 붙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도망이라는 것을 쳤지.”

관태산의 입가에 자조적인 웃음이 떠올랐다.

“살고자 했다. 섬 놈들 따위에게 나 관태산이 죽을 수는 없었다. 그때 일을 단 한 번도 잊지 않고 있었는데 오늘 이렇게 복수의 기회가 오는 구나.”

“복수라고 했소?”

“왜? 가당치 않은 소리라고 하고 싶어서 그러나?”

“그렇소이다. 아무래도 복수는 물 건너 간 것 같소.”

십여 명의 사내들이 다가오고 있었는데 모두가 창송세가의 무사들이다. 온 몸에 피가 범벅 된 것이 여의보 무사들을 도륙하고 이쪽으로 몰려 온 듯 했다.

자신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데도 관태산은 표정변화가 전혀 없었다.

“사람들은 나 관태산을 보고 시세를 잘 읽는다고 한다. 또한 어떤 사람은 교활하다고도 말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살아가는데 무척 능숙하다고도 하지. 어느 말을 들어도 난 개의치 않는다. 사람마다 살아가는 방법이 다르다. 다만 죄를 짓느냐 안 짓느냐 차이일 뿐.

“당신은 죄를 안 짓고 산다는 말 같구려.”

“천만에, 인간이 어찌 죄를 짓지 않고 살 수 있겠느냐? 다만 지어서는 안 될 죄는 절대 지지 않고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지어서는 안될 죄?”

“물론이다. 힘없는 노인이나 가난한 사람의 등을 치는 건 죄이지만 강한 사람의 힘을 이용해 먹고 사는 것은 죄가 아니다. 난 살기 위해 강한 자에 붙었을 뿐 힘없는 사람을 조롱하거나 그들의 행복을 빼앗지는 않았다.”

아오의 눈썹이 꾸물거렸다.

관태산이 말했다.

“나 뿐만 아니라 내 부하들도 그렇게 살아왔다. 그 증거가 보고 싶지 않느냐?”

“보고 싶소?”

진정으로 보고 싶었다. 과연 죄를 짓지 않고 살아왔다고 당당하게 호언할 사람이 천하에 몇 명이나 되겠는가. 그런데 관태산은 거리낌 없이 죄를 짓지 않고 살아왔다고 했다. 더구나 자신 뿐만 아니라 부하들까지.

이런데 어찌 그 증거를 보고 싶지 않겠는가.

“도망치지 않은 것이다. 내 부하들은 도망치지 않았다. 내 예상이 맞다면 오늘밤 누구도 도망치지 않았을 것이다.”

아오가 뒤를 돌아보았다.

자신의 그림자와 같은 사내들 열 명이 서 있었는데 하나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관태산의 말이 맞다는 의미였다. 여의보 무사 중 단 한명도 도망치지 않은 것이었다.

무사가 전쟁에서 도망치지 않았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 있는 삶을 살아왔다는 반증이다.

관태산이 한걸음 더 다가왔다.

“어쨌든 오늘 밤 복수는 틀렸소.”

“복수란 꼭 죽여 앙갚음 하는 것만이 아니다. 도망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 검을 뽑는 것 또한 복수이지.”

“음!”

아오가 신음을 흘렸다.

어쩌면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도망은 타의에 의해 일어나지만 맞서는 것은 순순히 자신의 의지가 작용한 때문이니 복수라고 할 수 있었다.

살아오면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주인 창송이었다. 그런데 여기 어쩌면 창송보다 더 멋있을지도 모르는 사내가 있다. 같은 사내로서 자신도 모르게 멋지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마디로 추접스럽게 살려고 하지 않는 인물이다.

한발만 빨리 만났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관태산을 살렸을 것이다. 그러나 늦었다. 주인은 관태산의 목을 중원 진출기념으로 남궁천에게 건네려 하고 있었다.

스윽!

아오가 한걸음 다가섰다.

두 사람의 거리는 사장 가까이 되었다. 통상 삼장의 거리를 격전의 거리라고 한다. 그러나 동영에서는 이장을 격전의 거리라고 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사장은 조금 멀었으므로 한 걸음 다가간 것이다.

그런데 관태산이 뒤로 물러났다.

이미 팔 년 전 한 번 부딪혀 본 탓에 생사결의 장단점을 어느 정도 알고 있음이 분명했다.

스윽!

척!

다가가자 다시 물러난다.

물론 거리가 조금 멀어도 문제될 것은 없지만 정점의 위력은 이장일 때 나타난다.

보다 못해 수하들이 물러서지 못하도록 퇴로를 차단하려고 하자 아오가 손을 들어 제지했다. 관태산의 목을 베는데 절대 누구의 도움도 받고 싶지 않았다.

오자마자 멋진 인물을 죽여야 하다니 아무래도 이번 중원행은 득보다는 흉이 많을 듯 싶다.

어느새 두 사람은 전각 마당 한 가운데까지 이동해 왔었다.

‘여의각(如意宮)’

어두워서 보이지 않던 현판이 보인다.

관태산이 먼저 움직였다. 계속 물러나면 언젠가는 뭔가에 가로막힐 것이라는 것을 인지한 선공이었다.

촥!

명치와 배꼽 중간 부위를 노리고 찔러왔다.

아주 간단하면서도 빠르다. 찌르는 동작에 아주 익숙하지 않으면 보여줄 수 없는 경쾌함이었다.

째챙!

아오의 검 역시 뻗어나가 쳐냈다.

빙글!

관태산의 검이 검 끝이 밀리자 재빨리 회수하여 원을 만들었다. 왼쪽으로 한 바퀴 돌리며 아오의 오른쪽 어깨를 밑으로 베었다. 튕겨나간 검을 회수하며 곧바로 검을 돌려 오른쪽 어깨를 내려치는 동작이 간결하다.

딱!

아오가 뒤로 한걸음 물러나며 떨어지는 검을 막았다.

쉬이익!

떨어지던 관태산의 검이 충격으로 멈칫 거리는 사이 아오의 검이 곧바로 뻗어갔다. 훤히 드러난 관태산의 왼쪽 심장부위를 찔러 간 것이다.

막고 찔러가는 연결동작이 중원에서도 좀체 구경하기 힘들 만큼 완숙했다.

“훕!”

관태산이 헛바람을 삼켰다. 단순히 막고 찌르는 동작의 완전한 연결성도 놀랍지만 수세에서 공세로 가볍게 전환해버리는 능력이었다. 무공이 아무리 뛰어난 사람들도 선공에서 오는 공격적 우위는 최소한 십여 초 가는 것이 정석이었다. 그런데 아오는 불과 삼초만에 전세를 뒤집어 버린 것이다.

‘예상보다 훨씬 높구나!’

관태산의 아오의 무공이 겉보기보다 더욱 높다는 것을 깨달았다.

빙글!

번개처럼 몸을 옆으로 틀어 찔러오는 검을 피했다.

“으헙!”

그런데 관태산이 다시 비명을 터뜨렸다. 피했다고 여기는 순간 검이 베어 온 것이다.

싸악!

관태산이 잽싸게 뒤로 상태를 젖혔다. 하지만 앞 가슴이 벌레에 물린 듯 뜨끔했다. 보지 않아도 살갗이 약간 베어졌음을 알 수 있었다.

촤촤촤!

검이 떨어졌다. 그것은 검이라기보다는 낙뢰였다. 팔 년 전 창송세가의 무사들이 자신의 목을 뺏고자 펼쳤던 생사결 제 팔식 운수낙추의 식보다 훨씬 빨랐다.

쨍---째쟁!

불꽃이 사방으로 퍼져나갔고 강한 힘에 관태산이 휘청거리며 뒤로 한걸음 물러났다.

슈유유!

무서운 속도로 덮쳐간다.

먹이를 덮치는 늑대의 도약이었다. 몸과 일체를 이루어 찔러오는 아오의 검을 관태산이 옆으로 쳤다.

까캉!

“엇!”

쳐냈는데 아오의 검보다 자신의 검이 더 많이 비켜나갔다. 그것은 자신이 힘에서 크게 떨어진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손아귀가 찌르르 하고 통증까지 느껴진다.

콰아아!

관태산의 검이 크게 뻗었다.

“경천자린!”

경천삼검 중 두 번째 식이었다.

매섭게 파고드는 검에 아오의 눈이 커졌다. 미간을 노린 폭발적인 자공이다.

따악!

거침없이 쳐냈지만 놀랍게도 두 개의 검은 붙었다. 경천자린은 흡의 식이다. 즉 충돌 순간 강한 힘을 폭발시켜 상대를 떨어뜨리거나 충격을 주는 일반검식과 달리 강함 힘이 자력처럼 작용해 상대의 검과 거기에 담긴 기를 잡아 끌어당기는 것이다.

“어엇!”

당연히 검이 튕겨 나올줄 알고 있었던 아오는 자신의 검이 떨어지지 않고 관태산의 검에 달라 붙자 본능적으로 다급성을 터뜨리며 힘을 주어 떼어냈다.

“경천초형.”

파아!

관태산의 검이 다시 바뀌었다.

누구든 강함 흡인력에 병기가 붙으면 떼어내려고 한다. 문제는 경천삼검의 마지막 식 경천 초형이었다. 경천초형은 경천자린과 달리 찌르는 식이었다.

경천자린에 의해 잡아당기자 아오는 당연히 붙어버린 검을 떼어내려 했다. 아오가 온 힘을 다해 잡아당기므로 이쪽 검이 끌려갔고 그 순간 경천초형, 찌르는 것으로 바꾸어버린 것이다.

빠르게 끌려가는 상황에서 찌르는 힘까지 더해지니 그 속도는 원래 갖고 있는 경천초형의 속도를 능가했다. 이것이 경천삼검이 갖고 있는 위력이었다.

상대의 본능적인 동작을 이용하는 식이 경천삼검이었다. 이 식에 걸려들면 대부분 피하지 못했다. 경천자린에 의해 끌려가는 자신의 검을 떼어내려 하는 그 동작이 오히려 상대를 돕는 행위가 된다는 것을 어찌 알겠는가. 한마디로 강한 바람에 날아가는 새가 세찬 날개 짓까지 한 꼴이었다.

쉬이익!

끌려가는 데에다 내기까지 주입해 찌르자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가 나온다.

“크헙!”

아오가 기겁하며 상체를 틀었다. 그러나 관태산의 검을 피하기란 불가능했고 왼쪽 어깨 부위가 따끔했다. 뜨거운 물이 끼얹어 지는 것 같은 열기가 어깨를 시작으로 순식간에 온 몸으로 퍼졌다. 대번에 부상이 크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는데 아오의 눈이 푸르게 번득였다.

운이 좋아 어깨였다. 자신의 피하는 동작이 반 호흡만 늦었어도 목이 달아 날 뻔했다.

사실 아오의 검이 낮아서 당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경천삼검이 어마어마해서 당한 것은 더욱 아니다. 아오의 왼쪽 팔이 잘려 나간 것은 방심 때문이었다.

동영에서 아오의 위치는 독보적이라 할 수 있었다.

창송을 제외하고 아오의 적수는 손가락으로 꼽을 만 했다. 그래서 관태산 쯤은 그다지 위협적인 인물로 보지 않았다. 더구나 선물 차원의 상대이기 때문에 엄청난 위험을 겪으면서 사로잡을 만큼의 거물이라고는 생각하지도 않았다.

결국 오만이 화를 불러왔다.

취리릿!

아오의 본색이 드러났다. 푸른 불꽃이 번뜩이더니 무섭게 뻗어간다.

‘거…검강!’

동영이나 중원이나 검강은 똑같다. 즉 그만큼 많은 수련을 거쳐야 얻을 수 있는 꿈의 경지이다.

따악!

툭!

검을 세워 찔러오는 검을 막았는데 놀랍게도 부러졌다. 술(術)과 경(勁)과 강(?)의 차이가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아오의 검술과 검경에는 끄덕도 않던 검이 검강 앞에서는 부러지고 만 것이었다.

취이이!

관태산은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뒤로 훌쩍 물러났다. 일단 안전거리를 확도 한 다음 경천삼검을 장으로 바꿔 대적하려는 계산이었다. 하지만 이미 왼팔이 잘린 치욕을 당한 아오는 그럴 틈을 주지 않았다.

그때로 따라붙으며 찔러왔는데 속도가 더 빨랐다.

관태산의 눈이 커지며 좌장을 뻗었다. 임기응변의 식이었다. 임기응변이라면 당연이 당면한 위기를 잠시 피하기 위하 응급조치에 가깝다. 그러므로 전력이 담길 수 없고 아오의 검은 관태산의 장력을 간단히 뚫으며 파고들었다.

푹!

관태산의 복부에 검이 박혔다.

찌지익!

복부에 박힌 검이 한 바퀴 회전을 했는데 관태산의 눈이 커졌다.

중원에서는 좀체 볼 수 없는 행동이었기 때문이었다. 중원에서는 그냥 죽이면 간단히 숨만 끊을 뿐 잔인하게 회를 치지는 않는다. 그런데 아오는 그렇지 않았다. 검을 돌려 몸속 내장을 완전히 산산히 끊고 있었다.

“그….그만 해라.”

“패자는 승자의 어떤 행동에도 이의를 달지 않는 것이 동영의 법이다.”

“주…중원은 목숨을 뺏는 것으로 끝낸다.”

“닥쳐, 이긴 사람은 나다. 그러니 내 맘대로 하는데 감히 누가 뭐라고 한단 말인가.”

우드드득!

뼈가 끊어지는 소리가 주위를 울렸다.

툭!

관태산의 손에 들린 토막 난 검이 지면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몸은 휘청거릴 뿐 쓰러지지 않았는데 복부에 박힌 검 때문이었다. 아오가 검을 세차게 쥐고 있기 때문에 걸려 쓰러지지 않은 것이었다.

“조… 좁구나. 섬 놈이어…서.”

관태산의 고개가 떨궈졌는데 표정은 환했다.

아오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관태산은 분명이 죽었는데 입가에는 약간의 미소가 담겨 있었다. 죽은 사람이 웃음을 짓다니 이해 할 수가 없었다. 동영에서는 단 한 번도 볼 수 없는 얼굴이었다.

동영의 무사들은 모두가 죽으면서 고통스런 얼굴을 하거나 저주를 퍼붓듯 노려본다. 자신을 죽인 상대에게 한과 증오를 쏟아 내는 것이었다.

아오 뿐만이 아니라 지켜보던 수하들까지 이해 할 수 없다는 표정들이었다.

“일부러 그런 거 아냐? 대단한 척 해 보이려고 말이야?”

누군가 외치듯 말했다.

그러자 주위 동료들이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어떻게 사람이 그냥 죽은 것도 아니고 싸움에 져 죽었는데 저렇게 웃을 수가 있어. 이건 말이 안돼.”

“나도 공감이다.”

“죽어서 웃으면 뭐해. 살아 웃어야지 안 그래.”

촥!

아오가 검을 뽑자 육중한 관태산의 몸이 엎어졌다. 지면으로 붉은 피가 흘러 내렸다.

아오가 명령을 내렸다.

“놈의 목을 베어 가자.”

수하들이 달려들어 관태산의 목을 베었다.

아오는 옷을 찢어 잘린 왼쪽 어깨부위를 동여맸다. 워낙 상처가 깊어 지혈을 했는데도 피가 완전히 멈추지를 않았다. 상처에 옷을 찢어 감는 아오의 얼굴은 무섭도록 굳어 있었다. 중원에서의 첫날밤이 피로 얼룩졌고 신체 훼손까지 당했다. 확실히 길보다는 흉이 많은 것 같은 예감이었다.

한쪽 팔을 잃고 들어선 아오를 바라보는 창송의 눈이 달아올랐다. 이미 술 기운에 불그스레해 있었는데다 충격을 받은 듯 더욱 새빨개졌다.

“다녀왔습니다.”

아오는 두 말도 않고 관태산의 목을 담은 나무 상자를 남궁천 앞에 내 밀었다.

“자네 팔이?”

아오는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원래부터 없었사옵니다.”

멈칫!

남궁천의 눈이 이채를 뿌렸다. 그러더니 한 순간 집안이 떠내려가라고 커다란 웃음을 지었다.

“핫핫핫!”

남궁천한 한참을 웃더니 웃음을 그치고 말했다.

“좋은 말일세. 무사란 바로 그래야 하는 법일세. 원래부터 없었으니 다친 것도 없고 아무일도 없다는 얘기로군.”

“수고했느니라. 돌아가 쉬어라.”

창송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아오가 돌아가고 남궁천이 상자를 열었다.

안에는 관태산의 목이 들어 있는데 마침 뉘어 있어서 자신을 보고 웃고 있었다.

“이…이런 패죽일 놈이.”

마치 자신을 비웃는 것 같았다.

남궁천이 그대로 우장을 뻗었고 관태산의 머리를 산산조각이 되어 방안 곳곳으로 파편이 되어 사라졌다.

남궁천은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은 듯 조각난 나무상자를 향해 거듭 장력을 날렸다.

퍽!

퍼어억!

창송의 얼굴이 납덩이처럼 굳어졌다.

뭔가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자신의 계획은 지금과 아주 틀렸다. 관태산의 목을 선물하여 더욱 둘의 우의를 쌓고 중원에서의 푸른 꿈을 이루기 위한 멋진 밤이 되어야 했다. 그런데 아오의 팔이 잘렸고 관태산이 남궁천을 조롱한 것이다.

물론 죽은 사람이 조롱을 할리는 없었다. 중요한 것은 남궁천이 그렇게 받아 들였다는데에 약간의 문제가 있었다.

“개자식.”

다시 한번 상자 조각 한 개를 박살낸 남궁천이 술잔을 들어 올렸다.

“자 기분만 잡쳤소. 우리 새로운 기분으로 마십시다.”

자신도 취했지만 남궁천도 취했다. 술에 취하면 천하 없는 장사라도 평소 행동과 다른 면을 보인다. 그러나 아무리 취했다고 할지라도 보일 추태가 있고 보여서는 안 될 행동이 있었다. 마음 한구석으로 가시 같은 것이 걸린 기분이었다. 중원의 첫 밤을 아주 불편하게 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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