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법왕-42화 (42/71)

제6장 인질극

순식간에 남전을 벗어나 이십여리 달리던 동천몽이 산길로 접어 들었다. 산길인데도 관도처럼 길은 넓고 잘 정리 되어 있었고 마른 땅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마차바퀴 자국이 찍혀 있었다. 그것은 마차가 아주 무거운 짐을 실고 다녔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두개의 봉우리를 넘어선 일목의 눈이 커졌다. 길 좌우로 아름드리 소나무를 묻었고 천지광옥(天地鑛玉)이란 거대한 간판을 길게 매달아 두었으며 그 아래로 두 명의 검을 비켜 맨 무사들이 옥을 실고 들어오고 나가는 마차들을 일일이 점검하고 있었다.

“옥광산 아니옵니까?”

옥을 실고 나가는 마차는 보통 삼두에서 오두마차였다. 그만큼 옥의 무게가 있기 때문인데 잠깐 지켜보는 데도 이십 여대의 마차가 옥을 가득실고 광산을 떠나갔다.

잠시 후 한 개의 조그만 봉우리에 올라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던 두 사람은 눈을 크게 떴다.

산 아래로 거대한 분지가 생겼고 그곳에서 채 실어내지 못한 푸른 옥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또한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개미집처럼 뚫린 수많은 갱도를 통해 옥을 캐어 밖으로 운반하고 있었다.

“캐 놓은 옥만 해도 황금 백만관 어치는 넘겠사옵니다.”

“이곳 주인이 누군지 아느냐? 동오룡이라는 분이다.”

헉!

일목이 놀라 돌아보았다.

“아…아버지 아닙니까?”

“하지만 지금은 바뀌었다.”

무슨 말이냐는 듯 일목이 눈알을 굴렸고 동천몽이 가볍게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천득만이란 자의 소유이지. 하지만 그는 아무런 힘도 없는 허수아비다. 그 뒤에는 한 사람이 있다. 바로 얼마 전 내려진 무통령으로 정도 무림을 자신의 발아래 둔 남궁천이다.”

일목이 눈을 찌푸렸다.

동천몽의 말이 언뜻 이해가 되지 않은 것이었다.

“소…소승은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도무지 모르겠나이다. 좀 쉽게 말씀해 주시옵소서.”

“간단하다. 우리 아버지가 얼마 전 잘난 큰아들 목숨을 살려달라고 이곳 소유권을 무림맹에 바쳤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남궁천의 것이 되어 있구나.”

“도무지 소승은 뭐가 뭔지 더욱 모르겠나이다. 그러니까 대공자를 살려달라고 바쳤으면 무림맹 소유가 되어야지 어떻게 개인의 것이 될 수 있단 말이옵니까?”

동천몽이 가볍게 웃었다.

하지만 동천몽의 웃음을 바라본 일목은 흠칫 했다. 웃음 속에 무서운 살기가 감춰져 있음을 알아차렸다.,

“이곳 뿐 만이 아니지. 그는 본가에서 나간 돈으로 엄청난 축재를 했고 강호 곳곳에 막대한 재산을 소유하고 있다. 명목은 흑도로부터 강호를 지키기 위한 군비충당에 사용한다고 해놓고 실재로는 뒷구멍으로 챙긴 것이다.”

“그런 쳐죽일 놈이, 완전히 양의 탈을 쓴 늑대 아니옵니까?

“원래 권력을 쥔 놈들은 거의가 그렇느니라. 그들이 권력을 탐하는 것 또한 돈을 챙기기 위해서이지 결코 강호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다는 말은 거짓이다. 그래서 무림맹주 한 번씩 하고나면 재산이 수 십 배 수 백배 불어난다는 것이 정석이니라. 전 전대 맹주를 보거라. 한 자루 칼로 천하를 거머쥔 놈이 어디서 돈이 나 그토록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귓불에 피도 안 마른 자식 놈들이 그렇게 큰 장사를 하겠느냐. 모두 재임 중 우리 아버지를 비롯한 대상가들의 후리고 협박하여 뜯은 돈으로 호의호식 하는 거지.”

그때였다. 등 뒤로부터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일목이 번개처럼 돌아섰다.

“서…선사님!”

어느새 등 뒤로 무미선사가 나타나 있었다.

무미선사는 동천몽을 향해 합장을 하며 허리를 구부려 예를 취했다.

“사복서생(寫複書生)의 위치를 찾았사옵니다.”

동천몽이 빙글 돌아섰다.

“그래 어디 있더냐?”

“그…그것이.”

“왜 그러느냐? 어서 말해보거라.”

“불귀도에 갇혀 있사옵니다.”

동천몽의 안색이 가볍게 변했다.

불귀도는 섬 전체가 감옥이었다. 가장 악질적인 죄인들만 가두어 놓은 관부제일옥으로 돌아오지 않는 지옥이라고도 불린다.

무미선사가 안절부절 못했다. 좋은 소식을 전하지 못한 것이 자신의 책임인 것 같았다.

“선사님 불귀도는 또 무엇이고 사복서생은 어떤 놈입니까?”

무미선사가 눈을 깜박하며 잠자코 있으라는 신호를 보냈다. 일목도 그제 서야 뭔가를 눈치를 챈 듯 가만 서 있었다.

“무림맹은 어찌 흘러가고 있느냐?”

“남궁천이 소림의 백팔나한과 무당의 삼십육검등 구파일방의 최정예들을 소집했사옵니다.”

구파일방의 정예는 다르다.

수백 년 갈고 닦아진 무사들이다 특별이 엄선하여 계획적으로 키워진 그들은 그 문을 대표하고 유사시에는 가장 앞서 위험을 제거한다. 사실 어느 문파 등 숫자로 명성을 잇지는 않는다. 명문의 조건중 하나는 얼마만큼 강한 정예를 두었느냐인데 그 대표적인 곳이 소림의 백팔나한이었다.

백팔나한(百八羅漢), 그들은 곧 소림이다.

소림의 대들보이자 전통이며 자긍심이었다. 무당 삼십육검 또한 그런 존재들이다. 절대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고 오직 단 한번 무당의 위기를 대비해 끊임없이 검을 갈고 닦는 검귀들이다. 단 한 번도 배운 검을 휘둘러보지 못하고 죽는 수가 허다하다. 하지만 그들은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다.

‘일단은 그래야겠지!’

동천몽의 입술이 얇아지며 웃음이 머금어졌다.

일단은 무통령이 내려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음을 만천하에 각인시키기 위해서라도 각파의 정예를 끌어 모을 것이다. 그리고 곧바로 목와북천에 의해 점령당한 지역을 회복하고 공격에 나설 것이다. 강호제일이라는 각 문파의 정예라면 아무리 목와북천이 준비를 철저히 했더라도 밀릴 수 밖에 없다. 일단 상당한 피를 흘리게 한 다음 그 다음 차례는 뭘까.

“훗훗훗!”

동천몽이 이번에는 소리를 내어 웃었다. 그 다음 차례는 뻔했고 공식과 같은 절차를 밟을 것이다. 공식적인 절차는 바로 눈엣 가시를 잘라 내는 것이다.

섬서성 도독 막경군 목사룡은 늦은 아침을 먹고 있었다. 올해 나이 예순 다섯으로 평생을 관에 몸을 담았는데 나름대로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성공한 인생이었다. 몇 번 황실 근무를 요청 받았지만 성격이 어딘가에 갇혀 메어 있지를 못해 한사코 밖으로 돌았다.

워낙 강직하고 올곧아 그가 부임한 성마다 그에 대한 칭송이 끊이지 않는다. 오늘 아침이 늦은 것도 어제 밤 늦게까지 지역에 출몰하는 산적소탕을 나갔다 새벽에 들어온 때문이었다.

흉년으로 인해 근래에 이르러 산적 떼는 더욱 기승을 부렸고 곳곳에서 양민들을 괴롭히고 목숨을 위협했다.

툭!

숟가락을 놓자 부인 홍씨가 염려스런 표정으로 쳐다본다.

“왜 그만 드세요. 어제 저녁도 드시지 않았으면서, 조금만 더 드세요.”

“됐소. 물이나 주구려.”

목사룡이 뒤로 물러났다.

밤새 산적들과 전투를 벌인 탓인지 입맛이 없었다. 홍씨가 건네준 냉수로 입안을 행군 목사룡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침소로 가 한숨 자고 다시 산적 소탕에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한숨 푹 주무세요.”

홍씨의 인사를 받으며 처소로 향하던 목사룡의 발걸음이 멈췄다. 복도 입구에서 부하 제능촌의 다급한 보고 때문이었다.

“사고소식이옵니다. 용안산장에 도둑이 들었사옵니다.”

용안 산장이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한데 장주 용망곤과 가족들을 붙잡고 있습니다. 다각도로 손을 써보려고 했지만 워낙 악질들인지라 섣불리 어떻게 처리를 못하겠사옵니다.”

“인질극이란 말인가?”

제능촌은 첨후대의 대장이었다. 첨후대는 산적 소탕을 나가면 가장 앞서 공격하고 뒤늦게 철수한다. 공격도 그들로 시작되지만 모든 부대가 떠나면 마무리까지 그들 몫이다. 산적들이 탈취하여 숨겨 놓은 재물들이 있는지 조사를 해야 하는데 대부분 재물 곁에는 함정과 위험이 가득했기 때문에 뛰어난 그들이 처리한다.

오늘도 제일 늦게 산적 소굴에서 빠져나와 용안산장 앞을 지나다 도둑 침입 사실을 보고 받고 곧바로 출동했다. 한데 물건을 훔쳐 나오던 두 명의 도둑이 관부무사들이 들이닥치자 가족을 인질로 삼아 버린 것이다.

불끈!

목사룡의 주먹이 굳게 말렸다. 어제밤 한숨도 자지 못해 피곤하긴 했지만 백성의 삶을 위협하는 자들은 절대 용서 할 수가 없었다.

“기다리거라.”

자신의 방으로 들어간 목사룡이 잠시 후 경장 차림에 한 자루 칼을 차고 나왔다.

부인 홍씨가 염려스런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칠십을 코 앞에 둔 노인이기에 너무 안쓰럽다. 그렇다고 쉬엄쉬엄 하라는 말은 더욱 할 수가 없었다. 남편이 힘들수록 백성들의 삶이 편해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남편의 건강이 염려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여보 조심해요.”

무뚝뚝하게 아무런 대답 없는 건 여전했다.

목사룡은 순식간에 말을 타고 홍씨의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용안산장 앞에는 구름같은 인파가 몰려 있었다. 산장을 에워쌓은 관부무사들과 구경나온 주민들까지 합쳐져 북새통이를 이루고 있었다. 구경꾼들을 밀어내느라 몇몇 무사들은 진땀을 뺐다.

사람들이 좌우로 길을 트고 제능촌의 안내를 받으며 목사룡이 모습을 드러냈다.

곧바로 산장 안으로 들어선 제능촌은 장주 용망곤의 거처 존당 앞에 도착했다. 날쌘 무사 이십 여명이 존당을 에워 싸은 채 곳곳에 은신해 있었다.

“인질범이 두 놈이라고 했나?”

“악질들입니다. 아무리 설득을 하고 자수를 권유해도 대꾸도 하지 않습니다.”

창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내 말 들리나? 난 도독 목사룡이다.”

“들린다.”

안으로부터 악에 바친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너희들 입장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인질극은 바람직하지 않다. 가급적 요구조건을 들어줄테니 인질을 풀어주거라.”

“시끄럽다. 풀어줄 인질이면 애초부터 시작도 하지 않았느니라.”

예상보다 인질들의 감정이 흥분되어 있다. 이럴 때는 시간을 끌며 그들의 감정이 가라앉길 기다려야 한다.

“방법은 하나뿐이다.”

인질범들 쪽에서 외침이 터졌다.

“뭔가?”

“건방진 부하들을 모두 철수 시키고 우리가 타고 갈 마차를 준비해라. 그리고 절대 우리를 쫒지 마라. 그러면 인질을 풀어주겠다.”

목사룡의 얼굴에 난감한 표정이 떠올랐다.

가장 골치 아픈 사건이 이런 종류이다. 인질범들은 목숨을 걸어놓고 사건을 벌이기 때문에 어지간한 협상력 갖고서는 온전히 해결하기란 불가능했다.

지금까지 이십 여 번에 걸친 인질사건이 있었지만 거의 절반이 비극으로 끝났다. 인질도 죽고 인질범도 자살로 막을 내린 것이었다.

“아무튼 여자와 아이들은 풀어주는게 어떤가? 그들은 약자들 아닌가?”

“우린 그런 것 모른다. 진정한 약자는 우리다.”

“그게 무슨 말인가?”

“힘없고 가난한 우리가 약자지 이렇게 돈만은 용가놈 가족이 어떻게 약자란 말이냐? 내말이 틀렸나?”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인질들의 말이 전혀 틀린 건 아니었다.

“내가 말하는 약자란 재물적인 것이 아니라 신체적인 조건을 말하는 것이다. 여자와 아이들은 힘이 없지 않는가. 그러니 일단 풀어주는게 인간적이지 않는가.”

“뭐가 인간적이야. 풀어주면 우리만 손해지. 아까도 말했지만 풀어 줄 것 같았으면 이 따위 사건 시작도 안했다고, 잔소리 말고 빨리 마차를 준비해라. 만약 백을 셀동안 마차를 준비하지 않으면 인질 한명을 죽이겠다.”

보통놈들이 아니다.

어지간한 인질들일지라도 대부분 여자와 아이들은 풀어준다. 그런데 전혀 씨알이 먹히지 않는다.

뿌드득!

이를 갈았다. 잡히기만 하면 가만 두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목소리를 부드럽게 하여 말했다.

“진정해라. 난 무력보다는 대화를 즐겨하는 사람이다. 진정하고 처음부터 다시 얘길 해보자.”

“싫어, 우린 아무말하고 싶지 않다. 어서 마차나 대령하라고.”

“좋다. 마차를 대령할테니까 우선 시간을 좀 달라.”

“그건 어렵지 않지. 넉넉하게 줄테니까 좋은 것으로 대령해라. 괜히 달리다 바퀴가 빠지거나 고장나면 데리고 가는 인질을 죽여 버리겠다.”

“염려마라. 우린 그런 비겁한 수단은 쓰지 않는다. 그건 그렇고 이름을 말해줄 수 있나?”

“인질범 이름 알아서 뭐하려고? 좋아 까지것 이판 사판인데 가르쳐 주지. 난 목일이라고 한다.”

“난 몽천이다.”

“좋은 이름들이구나. 난 목사룡이라고 부른다. 그러고보니 한 사람과 난 성씨가 같지 않는가.”

“당신은 어디 목씨인가?”

“난 설산 목씨다.”

“엇, 나도 설산이 고향인데.”

“그럼 우리 친척 뻘 아닌가.”

“더 이상 대답하지 않겠다. 이상.”

상대가 입을 다물었다. 아마 필시 마음이 약해질 것을 우려한 조치이리라.

목사룡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일단 대화가 이루어졌고 길이 보였다. 지금부터가 중요했다.

“혼인들을 했는가?”

“안했다.”

“부모님은 계신가?”

“안 계신다.”

“난 계신다.”

“부모님이 몹시 보고 싶겠군. 부모님은 지금 어디에 계시는가?”

“멀리 계신다는 것만 말하겠다. 그럼 지금부터 백까지 세겠다. 다시 말하지만 그때까지 마차를 대령하지 않으면 인질 한명을 가슴아프지만 죽이겠다.”

잠시 뜸을 들이더니 큰 목소리로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흠칫!

목사룡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일질들 대부분은 숫자를 셀 때 아주 느리고 천천히 센다. 이쪽의 반응을 살피기 위함인데 이들은 그게 아니었다. 엄청난 속도로 세어가고 있었다. 지금까지 다뤄본 어떤 인질범들과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목사룡이 황급히 외쳤다.

“잠까안, 뭐가 그렇게 급해 빨리 세는가? 대화도 나누면서 천천히 세도록 하는게 좋지 않겠나?”

“우린 성질이 급해 빨리 세야한다. 스물 다섯, 스물 여섯, 스물 일곱.”

그때 제능촌이 다가왔다.

조용히 귓속말로 속삭였다. 특급 고수 두 명이 후원을 통해 안방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질범들과 계속 대화를 나누어 신경을 이쪽으로 쏟게 만들라는 것이었다.

“인생은 그다지 길지 않다. 지금이라도 마음을 고쳐 먹으면 본도독이 최대한 선처 하겠다.”

“선처라 하면 무슨 뜻인가? 인질을 풀어주면 그냥 없었던 일로 해준다는 얘긴가?

꿈틀!

목사룡이 눈썹이 모아졌다. 이 상황이면 누구일지라도 선처가 갖고 있는 의미를 알 것이다. 말 그대로 자수했음을 감안하여 좀더 가볍게 처벌한다는 뜻인데 인질범들은 아예 없었던 일로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미친놈 새끼들!’

기어코 붙잡아 관부 뇌옥 중 가장 무섭다는 불귀도로 보내버리겠다고 마음먹었다.

“없었던 것으로는 곤란하지만 최대한 돕겠다.”

“그러니까 구체적으로 말하란 말…크악…컥!”

두 마디 비명이 들려왔고 잠시 후 두 무사에 의해 마혈이 제압당한 인질범 두 명이 끌려나왔다.

두 무사는 어깨에 둘러메고 나온 일질들을 사정없이 땅바닥에 쳐박았다.

“아이고!”

“커억!”

두 인질이 비명을 질렀다.

“여보.”

“부인.”

“엄마 이제 우리 살아난거야. 으아앙.”

네 명의 가족들이 서로를 부축하며 감격의 눈물을 흘리면서 걸어나왔다.

목사룡이 인질들에게 다가가 위로했다.

“괜찮으시오. 다친 곳은 없소.”

용망곤이 눈물을 질질 짜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도독님, 도독님께서 우리 가족을 살려주셨습니다. 감사하옵고 감사하옵나이다.”

“제대장, 용장주와 가족들을 어서 모셔.”

“가시지요. 저를 따라 오십시오.”

“어헝!”

“저놈들은 찢어 죽여야 해요. 저 나쁜놈들을 가만 둬서는 안됩니다.”

용망곤의 부인이 버럭 소릴 지르며 사라졌다.

땅바닥에 누워 있는 동천몽과 일목을 향해 목사룡이 다가갔다.

멈칫!

일목의 발견하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눈이 하나뿐인 사람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독목아니냐?”

일목이 냉랭하게 대꾸했다.

“우릴 죽여라. 구차하게 살고 싶지 않다.”

기다렸다는 듯 동천몽이 외쳤다.

“당장 목을 잘라다오. 사내 대장부답게 당당히 죽고 싶다.”

빠악!

퍽!

목사룡이 두 사람의 옆구리를 사정 없이 걷어찼다.

“크악!”

“어거걱!”

저 멀리 날아간 두 사람이 땅바닥에 나동그라졌다.

목사룡이 다가와 고통에 인상을 쓰고 있는 두 사람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죽여달라고 했더냐?”

“예!”

“죽고 싶소.”

“너흰 죽이기에도 아까운 놈들이다. 지옥으로 보내주마. 평생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그 저주의 섬으로.”

무사들이 우르르 다가와 두 사람을 포박하여 돼지처럼 몽둥이에 매달고 사라졌다. 동천몽과 일목은 더욱 악을 쓰며 죽여라고 외쳤고 너무 시끄럽게 떠들자 아혈을 제압해 버렸다.

선체가 먹물처럼 검다. 돛도 검고 뱃전도 검고 뱃머리도 검었다. 움직이는 사람들까지도 흑의를 걸치고 있었다.

사옥선(死獄船)이라고 부른다. 사옥선을 타면 누구든 돌아오지 못한다. 시체가 되어도 돌아올 수 없다. 한번 실려가면 돌아오지 못한다고 하여 사망선이라고도 부르는 배가 부두를 막 떠나고 있었다.

사옥선은 큰 죄를 지은 죄수들을 태우고 가는 배였다. 사옥선에 태워지는 죄인들은 미령도라는 섬으로 잡혀 가는 것이었다. 그곳에서 평생 강제 노역에 시달리다 죽는다.

배는 삼층으로 되어 있었는데 가장 밑바닥인 일층에 십여명의 죄수들이 쇠사슬에 전신을 결박 당한 체 여기저기 쳐박혀 있었다. 천장에서 비추는 조그만 야광주만이 유일한 빛이었는데 죄수들 눈에서는 푸른 귀기가 번쩍였다.

배가 파도에 흔들릴 때마다 죄수들은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며 서로 부딪혔다. 사지만 결박한 것이 아니라 어깨와 발을 상하로 묶어 공처럼 둥근 형태가 되어 쭈그리고 있었다.

퍼억!

한쪽에 쇠사슬에 묶인 채 쭈그리고 앉아 있는 일목에게 한 명의 죄수가 굴러와 부딪혔다.

“뭐야?”

일목이 인상을 썼다.

부딪힌 죄수가 마주 인상을 쓰면서 말했다.

“뭐긴 뭐야? 누군 부딪히고 싶어서 부딪히나. 배가 흔들리니까 어쩔수 없잖소.”

일목이 하나 뿐인 눈에 힘을 주자 죄수가 슬며시 고개를 돌렸는데 때마침 배가 또다시 출렁거리며 다른쪽으로 굴렀다.

“니기미 씨벌.”

쿵!

콰앙!

사람끼리 부딪히는 것 조금 나았다. 사정없이 굴러 불쑥 튀어나온 곳이나 철판으로 된 뱃전에 부딪히면 엄청난 통증이 밀려왔다. 신음소리가 가득했고 마구 욕설을 퍼붓는 이도 있었다.

그러다보니 어쩔수 없이 멀미는 피할 수가 없었고 여기저기서 구역질을 해댔다.

밀폐된 공간이어서 지독한 악취가 진동을 했다.

그런데 멀미가 가중되면서 배변을 하는 죄수가 발생했다. 토설물과 변 위로 죄수들은 나뒹굴었고 배안은 시궁창이 되었다.

멈칫!

일목에게 부딪혔던 죄수가 온 몸에 변과 토설물로 범벅이 되어 두 눈을 빛냈다. 모두가 흔들리는 배에서 나뒹굴고 있는데 오직 두 사람만 석상처럼 중심을 잡고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꿀꺽!

죄수가 마른침을 삼켰다.

아무리 중심을 잘 잡는 사람일지라도 이정도 흔들리면 별수 없다. 더구나 쇠사슬로 온몸이 결박되어 일어 설 수도 없고 오로지 쭈그리고 앉아 있어야 하는 상태라면 더욱 흔들림에 따라 구를 수밖에 없는데도 두 사람은 고정된 물체처럼 있었다.

‘설마!’

죄수는 마른침을 삼켰다.

자신도 한 때 알아주는 고수였다. 지금은 무공이 폐지되어 힘을 쓰지 못하고 있지만 두 사람의 몸 상태를 보면 무공이 폐지된 사람 같아 보이지 않는다.

죄수는 이내 고개를 내 저었다.

자신이 생각 하는 그런 경지에까지 이른 인물일리 없었다. 그런 경지에 올라섰다면 잡히지도 않았을 것이다.

쿠쿵!

거센 파도가 배를 치는지 배의 앞 부분이 거기 서다 시피 했고 와르르 소리를 내며 죄수들은 뒤로 나뒹굴었다.

“아이고?”

“헉! 허리가 나갔다.”

구석에 몰려 아우성을 피우는데도 두 사람은 여전히 그자리를 지키고 있다.

‘페…폐경이혈(廢經移穴)이다.’

죄수는 확신했다. 여기 있는 모든 죄수들은 한 때 제법 잘 나가는 고수들이었다. 하지만 모두가 무공이 폐지되어 힘을 전혀 쓰지 못하는데 두 사람은 여전히 힘을 쓰고 있었다. 즉 폐경이혈로 관부에서 제압할 때 혈도를 옮겨 버린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돌부처같은 모습을 보일 수가 없었다.

‘맙소사!’

폐경이혈은 아무나 시전할 수 있는 기예가 아니었기 때문에 죄수의 두 눈이 떨림을 보였는데 사실 그가 진짜로 놀란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폐경이혈을 시전할 정도의 고수라면 잡힐 이유가 없었다. 최소한 몇천 명이 포위망을 구축하기 전에는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그건 곧 두 사람이 귀불도에 잡혀 가는 것이 아니라 볼일이 있어 죄수가 되어 일부로 끌려가는 것이라고 봐야 했다.

촥!

이번에는 배가 좌우로 거칠게 출렁거렸고 죄수는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다시 바닥을 굴러 일목의 몸에 부딪혔다.

뻑!

기우뚱 거리며 가까스로 바로 앉은 죄수를 향해 일목이 노려보았다.

“너, 자꾸 부딪힐래.”

조금 전까지는 맞장을 놓을 만큼 마구 욕설을 뱉었다. 하지만 나름대로 일목과 동천몽에 대한 파악이 끝난 지금 죄수는 절도있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죄…죄송합니다. 너그러이 이해해주소서.”

일목의 눈이 잦아들었다. 죄수가 진정으로 미안해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심해라. 응?”

“네.”

죄수는 조심스럽게 몸을 옆으로 굴러 일목에게서 떨어졌다. 그리고 다시 일목을 쳐다보다 곁에 눈을 감고 앉아 있는 동천몽에게 멎었다.

동천몽은 처음부터 끝까지 눈을 감고 앉아 있었다.

일목과는 또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일목에게서는 냉혹하고 사이한 느낌이 풍기는 반면 동천몽에게서는 위엄이 있었다.

죄수는 두 사람이 주종관계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또한 불귀도에 일부러 끌려간다는 것을 확신했다.

불끈!

쇠사슬에 묶인 오른손이 쥐어졌다. 죄수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오른 것이다.

죄수 이풍식의 얼굴에 비장한 기운이 감돌았다. 이대로 끌려가 불귀도에서 일생을 마감할 수는 절대 없었다. 유일한 생존 방법이라고는 동천몽과 일목뿐이었다. 두 사람이야 말로 마지막 생존의 동아줄이라고 자신했다.

“모…몹시 실례되는 질문인줄 알지만 선배님께서는 무슨 죄를 지으셨습니까?”

일목이 힐끔 쳐다보았다.

자신보다 최소한 십년은 더 들어 보이는데 선배님이란 호칭을 서슴치 않자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이내 표정을 엄숙히 고쳤다. 어차피 세상살이가 나이로 대접받는 건 아니지 않는가.

“넌?”

이왕식이 계면쩍은 표정을 지었다.

“저는 강간을 했거든요.”

번쩍!

강간이라는 말에 일목의 게슴츠레하던 눈이 빛을 발했다.

“강간이라고 하면 여자를 강제로 고통속에 빠뜨리는 것 아니냐?”

이왕식이 정색을 하며 말했다.

“아닙니다. 선배님께서는 뭘 잘 모르시는군요. 처음에는 고통스러워 하거나 거부의사를 표현하지만 나중에는 대개가 좋아하는것이 강간입니다.”

일목이 인상을 썼다.

“이 쳐 죽일 놈아 그것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는 것 아니냐?”

“어쨌든요?”

일목이 어이가 없다는 듯 이왕식을 노려보더니 물었다.

“몇 명이나 고통속에 빠뜨렸느냐?”

“보통 사흘에 한 명꼴로 처리합니다.”

“사…사흘에 한 명꼴이면 한 달이면 가만… 삼일은 삼, 삼이 육이고, 삼삼이면…열 명?”

“그것은 평균이고요. 날씨가 좋은 날은 하루에 두 명을 처리할 때도 있거든요.”

“날씨가 좋은 날이라면 햇빛이 쨍쨍하고 그런 날 말이냐?”

이왕식이 눈을 부라렸다.

“아니지요. 그런 날은 별로 생각이 안납니다. 여기서 말하는 날씨가 좋다는 건 비가 오고 바람부는 음침한 날을 말합니다. 그런 날이 되면 마구 여인이 그리워지거든요.”

일목의 눈에 호기심이 떠올랐고 어느새 동천몽도 눈을 뜨고 슬며시 이왕식의 얘길 들었으며 다른 죄수들도 굴러와 있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보겠느냐? 여인이라고 아무나 고통을 주는 건 아니지 않을 것 아니냐?”

이왕식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아주 좋은 질문입니다. 무인에게도 자신만의 규칙 있어 아무에게나 검을 휘두르지 않은 것처럼 간어에도 규칙이 있죠.”

“간어?”

“검의 최고 경지를 어검술이라 하듯 강간에 일가를 이룬 사람을 우리 바닥에서는 간어(姦馭) 또는 간왕(姦王)이라고 부릅니다.”

주위 죄수들 눈이 별빛처럼 반짝 거렸다.

분위기에 고무된 듯 이왕식이 목청을 가다듬었다.

“커험! 제의 친구는 주로 오십 이후의 여인을 좋아하죠.”

띠요용!

허헉!

여기저기서 놀라는 비명이 들려왔다.

일목 또한 눈을 부라렸다.

“오…오십?”

“보통 사람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겠죠. 강호에서도 보면 기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 우리 상식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을 하는 것과 똑 같습니다. 내 친구의 말을 빌리면 오십을 넘은 여인이야 말로 색(色)이 무엇이지 안다는 것이죠.”

그러자 맞은편에 앉아 이왕식의 애기를 듣던 죄수 한명이 호응하듯 말했다.

“하긴 그래, 내 마누라도 혼인해서 처음 몇 년 동안은 무척 수동적이더라고, 그런데 마흔이 넘고 쉰이 넘자 이젠 본인이 더 적극적이고 즐기는 거야.”

“아니던데, 우리마누라는 혼인하자마자 즐기고 나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나서던데.”

“몇 살인데?”

“스물 아홉?”

“스물 아홉이면 아직 뭘 모를 텐데 그토록 적극적이고 즐긴다면 이유는 한 가지 뿐이로군.”

“그게 뭐요?”

“처녀적 직업이 기녀였을 거야. 그래서 왕성하고도 풍성한 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 맛을 아는 거지. 그 나이에 말이야.”

“뭐야, 이런 씨벌놈이.”

마누라 비하에 분노한 죄수가 데구르르 굴러갔다. 하지만 욕을 했던 죄수 또한 데구르르 굴러서 도망을 쳤다.

두 죄수를 보던 시선들이 다시 이왕식을 쳐다보았다. 다음 말이 떨어지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난 갓난 아이를 업고 있는 여인만을 선택합니다.”

“……”

“……”

“이유는 간단합니다. 갓난아이가 울까봐 그런 여인들은 반항을 소극적으로 하지요. 또한 아이를 낳은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무척 빠르게 달아오릅니다.”

“지금까지 모두 몇 명이나 고통에 빠뜨렸느냐?”

일목이 물었다.

이왕식이 목에 힘을 주며 대답했다.

“강호의 고수가 몇 명 죽였는지 알고 다닙니까? 저 또한 그와 마찬가지로 내가 지나갔다는 흔적만 남겨둘 뿐 숫자에는 크게 연연하지 않습니다.”

“개자식이구만.”

“짐승만도 못한 놈.”

죄수들이 욕을 하자 이왕식이 눈을 크게 떴다.

“누구든 나에게 돌을 던질 자격이 있는 사람은 돌을 던지시오. 절대 피하지 않겠소.”

움찔!

멈칫!

모두가 망설였고 이왕식이 큰 소리로 말했다.

“그대들 모두 죄를 지어 끌려가는 주제에 뭘 잘했다고 내게 손가락질을 하는 거요? 난 내 행동을 잘했다고 여기지는 않소이다. 하지만 남을 욕하지는 않소. 왜? 난 개니까?”

일목이 눈을 깜빡거렸다.

무슨 말인지 헷갈린다. 언뜻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뉘우치는 것 같기도 하지만 또 한 편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은 것으로도 들렸다.

“아무튼 넌 나쁜 놈이다.”

“불귀도로 끌려갈 자격이 있다. 네놈은.”

죄수들이 욕설을 뱉았지만 이왕식은 별다른 감정의 동요를 보이지 않았다.

문득 이왕식이 신고 있는 신발을 벗었다. 이왕식이 신고 있는 신발은 발목까지 올라오는 중간 쯤 되는 장화였는데 벗은 발로 신발을 감싸듯 들어 거꾸로 숙였다.

톡!

그러자 깔창 모양의 뭔가가 떨어졌다.

“드십시오.”

떨어진 물건을 발가락으로 집어 일목과 동천몽 앞으로 내밀었다.

일목의 눈이 커졌다.

“뭐…뭐라구? 날 더러 네놈 신발 깔창을 먹으란 말이냐? 이 새끼 죽여 버리겠어.”

일목이 묶인 두 손을 쳐들자 이왕식이 서둘러 외쳤다.

“아…아닙니다. 신발깔창이 아니라 황적어입니다. 자세히 보십시오.”

황적어란 말에 일목이 멈칫 했다. 그러더니 가까이 발로 당겨 살피며 냄새를 맡았다.

“냄새는 비슷 한데…정말이지?”

“부끄러운 얘기지만 소인 감옥 경력이 적지 않습니다. 그래서 몸에 먹을 것을 숨기는 능력 또한 탁월하죠. 원래는 저만 먹으려 했지만 두 분께서는 나 같은 놈과 질이 다른 것 같아서 대접하는 것입니다. 이쪽 신발에도 한 마리 있는데 그건 내 몫이고, 어서 드십시오.”

황적어란 말에 다른 죄수들이 침을 삼키며 안달을 했다.

“저 새끼들이 가로챌지 모르니 빨리 삼키시지요?”

일목은 멈칫 거렸다.

아무리 맛있는 황적어라고 하지만 발바닥에 깔려 있던 것이다. 발냄새도 그렇고 왠지 선뜻 입으로 가져가지지 않았다.

그러자 죄수들이 앞 다투어 말했다.

“싫으면 저 주십시오.”

“형님 저 주세요?”

망설이던 일목이 동천몽을 돌아보았는데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동천몽이 침을 삼켰기 때문이었다.

“서…설마?”

“난 음식을 배 불러라고 먹느니라.”

그 말인 즉 냄새 따위는 신경쓰지 않으니 빨리 먹기 좋게 찢으라는 얘기였다.

일목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주위를 돌아보았다. 하나같이 탐욕 가득한 시선들이다.

‘에라 모르겠다!’

일목은 찢어 먹기로 하고 양발을 가져가는데 갑자기 쩌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쭈구리 이 개자식들 봐라. 지금 어디 관광 가는 줄 아느냐? 분위기가 왜 이렇게 화기애애해.”

어느새 검을 찬 호송무사 두 명이 나타나 있었다.

일목은 신속이 황적어를 깔고 앉았다.

“모두 손과 발을 앞으로 내 밀어.”

죄수들이 손과 발을 조금 내밀자 호송무사들이 팔목과 발목에 채워진 족쇄를 풀어주었다. 발목에는 또 하나 족쇄가 채워져 있었는데 도주방지에만 목적이 있는 듯 길어 걷는데 불편함이 없었다.

“한 줄로 올라가.”

이층으로 올라가는 사다리를 가리켰다.

“무사님, 불귀도에 다 왔습니까?”

“그래 임마. 뭣들 해. 어서 올라가라니까.”

죄수들 얼굴에 체념과 공포의 빛이 떠올랐다. 한 명씩 사다리를 올라갔고 모두가 뱃전으로 올랐는데 모두가 기겁했다.

“어 이거 뭐야?”

일목이 일어서며 황적어를 발견한 무사가 눈을 빛냈다.

“이 새끼들 쳐 먹으려 던 내가 나타나는 바람에 실패한 모양이군.”

히죽 웃더니 무사가 부지런히 황적어를 찢어 씹었다.

“한데 맛이 왜 이래. 꼬리 하잖아.”

일목은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기 위해 이를 물었다.

깎아 지르는 듯한 절벽으로 둘러싸인 섬 하나가 들어왔다. 그리고 그 위에 거대한 흑성이 한 채가 눈에 들어온다.

지옥의 땅 불귀도인 것이다.

“똑바로 서지 못해.”

갑판에 선 죄수들을 호송무사들이 똑바로 세웠고 사옥선 선장이 다가왔다. 사옥선 선장은 무척 뚱뚱했는데 오른쪽 옆구리에 채찍을 매달고 있었다.

마왕(魔王) 시두환(柴斗煥), 일명 염라사자로 불린다.

시두환이 잔뜩 얼어 있는 죄수들을 쭈욱 훑어 보았다.

“저기 보이는 곳이 젖과 꿀이 흐르는 불귀도이다. 보이나?”

“네!”

“보…보입니다.”

죄수들 대답이 떨렸다.

시두환이 목소리를 깔아 말했다.

“워낙 좋은 곳이기 때문에 한번 들어가면 누구도 나오려 하지 않는다. 물론 그대들 또한 나오기 싫을 것이다. 그럼 지금부터 한 놈씩 올라간다.”

시두환이 절벽을 향해 휘파람을 휙 불었다.

그러자 절벽 위로부터 사다리가 천천히 내려오기 시작했다. 사다리가 배의 갑판위로 내려오자 죄수들이 한명씩 줄사다리를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동천몽이 줄사다리를 잡았다.

그러자 등 뒤에 서 있던 시두환이 웃으며 말했다.

“행복하여라. 불귀도가 너의 것이다.”

오른손을 뻗어 첫 칸을 쥐던 동천몽이 고개를 돌렸다. 때맞춰 시두환도 쳐다보고 있었는데 동천몽이 히죽 웃었다.

그리고 사다리를 밟고 천천히 기어 올랐고 시두환의 눈빛이 변했다. 지금까지 수백 명의 죄수를 호송했지만 아직까지 자신을 보고 웃는 놈은 처음이었다.

어느새 동천몽은 절벽 끝에 이르고 있었다. 다른 죄수보다 오르는 속도가 조금 빠르다고 생각했다.

“하긴 죽을 때가 되면 사람은 자주 웃는 습성을 갖고 있지. 그만 배를 돌려 가자.”

거대한 사옥선이 방향을 돌리며 바닷물이 소용돌이를 일으켰고 조금씩 불귀도에서 멀어져갔다.

지금까지 본 사람들 중 가장 큰 체격을 지닌 사람은 동불과 서불이었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서 있는 다섯 명의 사내들은 그들 두 사람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컸다. 사람이라기보다는 거인이라 해도 좋을 만큼 컸다.

키만 큰 것이 아니라 손도 컸고 머리도 컸고 발도 컸으며 눈도 크고 모두 다 컸다. 옆구리에 차고 있는 무지막지한 도끼는 그들을 더욱 공포스럽게 만들었다.

저벅저벅!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 흑성, 즉 뇌옥의 철문이 열리고 한 사내가 걸어왔다.

음침하고 비릿한 피 냄새가 진동하는 주위 분위기와는 다르게 다가오는 사내는 깨끗한 백의를 걸쳤다. 신발도 흰색의 장화였고 옆구리에 차고 있는 검집도 희었다.

사내가 다가오자 좌우로 도열해있던 거구의 사내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였다.

척!

두 줄로 늘어선 죄수들을 백의사내는 스윽 훑어 보았다. 눈이 가늘어 떴는지 감았는지 구분이 안될 정도였는데 동천몽은 나직히 신음을 흘렸다. 눈이 가는 사람은 심성이 잔인하다. 특히 저렇게 어떤 하나의 색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사람은 정신적으로도 문제가 있고 무척 가학적이다.

“먼 길 오느라 대단히 수고들 많았다. 본인은 이곳 불귀도의 도주 견미광이라고 한다. 진심으로 그대들을 환영한다.”

짝짝짝!

혼자서 박수를 서너 번 치더니 도열한 죄수들 앞으로 다가와 손을 불쑥 내밀었다.

잔득 겁에 질려 있던 죄수는 견미광이 손을 내밀자 움찔하더니 조심스럽게 맞잡았다.

“견미광이라고 한다. 부탁한다.”

“부…부탁은 제가 해야지요.”

“견미광이라고 한다. 잘해보자.”

“열심히 하겠습니다.”

“견미광이라고 한다. 우리 사이 좋게 지내자.”

“저…저도 찬성입니다.”

마치 전출되어 온 부하직원들을 환영하듯 견미광은 죄수들 모두에게 악수를 청했다.

멈칫!

일목 앞에 선 견미광이 눈을 크게 떴다.

남은 한 개의 눈을 찾는지 고개를 좌우로 연신 두리번 거렸다.

“뭐야? 눈 하나는 어딨나?”

“원래 하나로 태어났습니다.”

“이럴수가, 그럼 장애인 아닌가? 아무튼 환영하네. 우리 잘해보세나.”

“부탁 합니다.”

이어 마지막으로 동천몽 앞에 섰다.

견미광의 눈이 좁아졌다. 가뜩이나 가는 눈이 아예 붙어버렸는데 부하들의 안색이 변했다. 오랫동안 견미광을 지켜본 그들로서는 지금의 눈빛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알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보기엔 그냥 그런 놈인데’

견미광의 눈은 놀랄 때 더욱 가늘어진다.

“서책!”

견미광이 손들 들어 올리자 죄수들의 신상을 기록한 서책을 들고 있던 부하가 잽싸게 가져다 주었다.

파라라락!

빠르게 책장을 넘기던 견미광이 한 곳에 멈추었다.

“동천몽?”

“예, 그렇습니다.”

“뭐야? 인질극을 벌이다 잡혀왔잖아.”

“죄송합니다. 너무 배가 고파 밥 좀 훔쳐 먹으러 들어가다 그렇게 되었사옵니다. 자비를 베푸소서.”

히죽!

견미광이 웃었다.

“이해해, 사흘 굶어 남의 집 담 넘지 않는 놈 없다는데 힘 내.”

다시 서책을 부하에게 건네주고 처음 섰던 자리에 우뚝 서더니 입을 열었다.

“여긴 뇌옥이다. 내 말을 잘 듣는 사람은 살기 좋은 곳이 되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지옥이 될 것이다. 본도주의 방침에 잘 따라주고 각자가 밖에서 지은 죄를 겸허히 반성하기 바란다. 알겠나?”

“예!”

일제히 큰 소리로 대답했다.

“입옥하라.”

견미광의 명령에 지키고 있던 부하들이 두 명씩 데리고 뇌옥 안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동천몽과 일목은 같은 조가 되어 형정근이라는 대머리 거한에게 이끌려 갔다.

뇌옥을 들어가는데는 모두 세 개의 철문이 있었다.

각문마다 두 명씩의 무사가 지키고 있다가 기관을 작동해 문을 열어주었다.

뇌옥은 삼층으로 되어 있었는데 가운데가 넓은 통로이고 좌우로 방이 있었다. 일행이 들어가자 좌우 방에 갇혀 있던 죄수들이 쇠창살 너머로 쳐다보았고 동천몽은 깜짝 놀랐다.

모두 피골이 상접해 있었다. 눈에서는 녹색의 광기가 이글거리고 있었고 코끝으로 전해오는 시큼한 냄새에 동천몽이 이마를 찌푸렸다.

‘이건!’

인육 냄새였다. 넓은 실내에 냄새가 퍼질 정도면 한두 명 갖고는 턱도 없다. 모두 배가 고파 동료를 잡아 먹은 것이다. 물론 병들고 나약한 사람을 잡아 먹었을 것이다. 물론 뇌옥 측에서는 모른 체 눈감았을 것이고.

동천몽과 일목은 삼층으로 끌려갔고 맨 구석진 철문 앞에 형정근의 발걸음이 멈췄다.

탁!

한쪽 벽에 설치된 기관장치를 주먹으로 치자 팔뚝만한 쇠창살로 된 문이 열렸다.

“들어가.”

두 사람이 들어가자 쾅 소리를 내며 문이 닫혔다. 방안에는 모두 다섯명의 죄수들이 앉아 있었는데 시체를 방불케 할 만큼 말라 있었다.

동천몽은 그들의 눈에서 인육을 먹었을 때 나타나는 사이한 녹기를 발견했다.

다섯 사람의 시선이 곧두섰다. 바깥 음식에 기름진 두 사람의 체격이 그들 눈에는 푸짐한 고깃덩어리로 보이는 모양이었다.

“흐흐흐!”

“몸과 마음을 다해 환영하노라.”

동천몽이 앞서 들어갔고 일목이 뒤에 서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아직 일목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그런데 일목이 한걸음 비켜나 옆으로 서자 기겁할 듯 놀랐다.

“우우우!”

“하…한 눈.”

일목에 의식적으로 눈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눈이 접시 만큼 커지면서 시퍼런 광채가 줄기줄기 폭사했다. 그것은 실로 소름끼치기에 충분했고 죄수들 모두가 경악의 표정을 지었다.

그때 죄수 중 한 명이 잽싸게 일어나 일목앞에 무릎을 꿇었다.

“목왕신이시여 소인을 돌보소서. 오오! 목왕신이시여.”

느닷없는 행동에 일목은 물론 모든 사람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바…방장님.”

사내는 계속 엎드려 벌벌 떨었다.

“위대한 목왕신이여 절 받으소서.”

사내는 실성한 사람처럼 일목에게 절을 해댔다.

동천몽은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짚히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운남의 깊은 산속에 홍족이라고 살고 있는데 그들은 눈이 하나 뿐인 사람을 신으로 믿는다. 소위 목왕신이라고 부르는데 필시 그곳 출신임이 분명했다.

동천몽의 예측은 정확했다. 일목이 묻자 사내는 홍족이라고 말했다.

“이 쳐죽일놈들아 빨리 목왕신께 절을 올리지 못하겠느냐?”

방장이 명령을 내렸으므로 절을 하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머지 네 명의 사내들이 일어나 일목에게 마지 못해 절을 했다.

“난 부처님을 믿는데.”

“나도.”

“이게 뭐야? 자신의 종교가 중요하면 남의 종교도 중요한 줄 알아야지.”

“시끄러.”

홍족의 사내가 버럭 소릴 질렀다.

졸지에 신이 되어 버린 일목은 네 사람의 절을 받았다.

이왕지사 신으로 인정된 만큼 일목은 신이 되기로 했다.

“허험! 모두 일어서거라.”

사내들이 일어났다.

“절을 해줘서 고맙긴 한데 사실 너희들이 진짜 절을 해야 할 사람은 따로 계시다. 바로 이분이시다. 이분께서는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고 만복의 근원이시며 세상에 오직 한 분 뿐이신 대법왕님이시니라.”

대법왕이라는 말에 모두가 놀랐다. 그들도 대법왕에 대해서는 알고 있는 듯 했다.

“대…대법왕이라 하시면.”

“어떻게 대법왕같은 분이 이런 곳에 들어 올수가 있단 말이야. 웃겨 진짜.”

“신물을 보지 않고 믿는 자야 말로 진복자이니라.”

“우린 절대 믿을 수 없소.”

“대법왕이 얼마나 훌륭한 분인데 이런 짐승들 집합소에 끌려오신단 말인가.”

일목이 동천몽을 쳐다보았다.

백상불을 한 번 보여 주어야 되지 않겠느냐는 눈빛이었다. 동천몽이 숨겨 온 백상불을 꺼내 보여주자 일제히 경악하며 무릎을 꿇었다.

“오오! 어떻게 이런 곳에.”

“이일을 어찌할거나. 대법왕님께서 왕림 하시다니.”

동천몽이 모두 편히 앉도록 했다.

잠시 후 일목이 이곳에 들어오기 위해 저질렀던 인질극을 말해주었다.

사복서생을 만나기 위해 들어왔다는 말에 홍족의 사내가 눈을 크게 떴다.

“사복서생은 소인이 잘 알고 있사옵니다.”

동천몽의 눈이 빛을 뿌렸다.

“그는 어디 있느냐?”

“천이백오호에 있습니다.”

“틀림없느냐?”

“감히 뉘 앞이라고 소인이 거짓말을 하겠나이까?”

동천몽은 조용히 입을 열어 말했다. 동천몽이 인육에 대해 묻자 누구도 부인하지 않았다. 평균 하루에 한 명씩 굶주림과 병으로 죽어나가는데 묻어 두었던 곳을 기억했다가 작업중 몰래 파헤쳐 시신을 토막내어 먹는다고 했다.

“왜 오늘은 이렇게 작업에 동원되지 않고 있느냐?”

“새로운 죄수들이 오면 그 날은 하루 쉬지요.”

동천몽은 이곳에 들어오기 전에 이미 불귀도에 대해 자세한 조사를 무미선사에게 명령하여 보고 받았다. 불귀도는 무척 큰 섬인데 오년 전 한명의 죄수가 탈옥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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