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법왕-41화 (41/71)

제5장 천인공노

마침내 운기가 이루어졌다. 의도한대로 진기가 경락을 따라 이동한 것이다. 정확히 보름 만이었다. 보름동안 운기가 되지 않아 얼마나 애태우며 마음을 졸였던가.

운기가 되면서 창백하던 전신으로 붉은 혈기가 돌기 시작했고 점차 수증기 같은 뽀얀 기체가 뿜어나왔다. 그리고 삽시간에 알몸을 감싸버렸다. 소용돌이치며 형성되던 기체는 단단히 뭉쳤고 사람의 모습은 완전히 사라졌다.

두우우!

돌연 흰 덩어리가 붕 떠올랐다.

‘부…부공삼매.’

막 지하실 문을 열고 들어서던 모용산의 눈이 커졌다.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 부공삼매였다.

‘부상에서 완전히 치료되었을 뿐만 아니라 공자님의 무공이 한 단계 도약했구나.’

모용산의 입가에 밝은 미소가 떠올랐다.

허공에 떠오른 흰 덩어리는 순식간에 남궁관의 콧속으로 사라졌고 다시 알몸이 드러났다. 사내의 알몸인데도 모용산은 시선을 거두거나 부끄러워하는 기색 없이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오히려 모용산의 얼굴이 빨개졌다. 그것은 부끄러움에서 오는 변화가 아니라 정염이었다.

서서히 바닥으로 내려선 남궁관이 눈을 떴다.

순간 적으로 눈에서 뇌전이 폭발했다. 그러나 곧바로 사라졌고 평범한 시선으로 돌아왔다.

“모…모용낭자.”

일어서던 남궁관이 모용산을 발견하고 당황한 빛을 감추지 못했다.

“완쾌를 축하드려요. 정말 걱정했는데 이제 안심이에요.”

모용산이 다가왔다.

“지난 보름여 동안 공자님의 안위가 염려되어 하루도 제대로 자지 못했어요. 그런데 지금 보니 완전히 몸이 정상으로 돌아온 것 같아요. 너무 기뻐요.”

모용산이 다가오자 연향이 맡아졌다. 향이란 진해도 천박하고 옅어도 짜증을 나게 만드는데 모용산의 몸에서 풍겨나오는 연향은 가장 사내들이 맡기 좋아하는 농도였다.

힐끔!

모용산의 시선이 아래를 향했다.

남궁관의 남성이 하늘을 향해 곧추서 있었다. 뿐만 아니라 남궁관의 눈빛도 흔들리고 있었다. 사내를 가장 유혹하는 향기라는 연향에다 옷은 걸쳤지만 상체를 틀며 소녀표향대법을 시전하자 남궁관의 시선이 타오른다.

“모…모용낭자 그만.”

그만 돌아서달라고 말하려는데 모용산이 와락 품으로 안겼다.

“공자님!”

“이…이건.”

모용산이 더욱 힘껏 끌어안았다. 그러자 남궁관의 남성이 아플만큼 하복부를 압박해 들어왔다. 모용산이 의복을 걸쳤지만 남궁관의 남성은 그녀의 하체를 건드리고 있었다.

남궁관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모용산을 끌어안았다.

스르르!

놀랍게도 모용산의 백의가 바닥으로 흘러내렸고 속에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알몸이었다. 두 남녀는 순식간에 바닥으로 쓰러져 서로를 힘껏 끌어안았다.

남궁관의 입에서 거친 숨소리가 흘러나왔고 곧바로 모용산의 배 위로 올라가 짐승처럼 덮쳤다.

“아악!”

모용산이 이마를 찌푸리며 비명을 질렀다. 남궁관의 남성이 채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 곧바로 밀고 들어오자 찢어지는 듯한 통증을 느낀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뿐 이내 그녀의 얼굴에 홍조가 짙어지며 쾌감이 전신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아아!”

모용산의 입이 벌려졌고 남궁관의 하체는 빠르게 요동을 했다. 알몸의 두 남녀는 정점을 향해 몸부림 쳤고 지하실의 공기는 끈적끈적해졌다.

그때와는 전혀 달랐다. 동천비의 묵곤혈참기에 부상을 입고 장축교 숲속에서 관계를 맺을 때와 지금의 남궁관은 완전히 틀렸다. 그때는 단순히 짐승적인 움직임이었는데 지금은 노련한 사공처럼 조정을 할 줄 알았다.

모용산이 쾌락의 극치에 오르려하면 잠시 늦췄다가 다시 그녀를 끌어 올렸고 그에 따라 모용산은 허리를 비틀고 목을 젖히며 통곡에 가까운 신음을 흘렸다.

“아아흐! 고….공자니임.”

그것은 경험이 일천한 사내의 동작이 아니었다. 최소한 오랜 시간 많은 여인들을 겪어 보지 않고는 시도 할 수 없는 여러 가지 행동과 자세를 요구하고 직접 이끌어갔다.

모용산은 몇 번이고 숨이 넘어갔다. 죽을 것 같은 쾌감에 그녀는 짐승처럼 절규를 터뜨리며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

시신은 모두 열 다섯 구였다. 옷자락도 찢어지지 않았고 피를 흘린 모습은 더욱 없었기에 마치 독에 중독되어 사망한 것 처럼 보였다. 그러나 백쾌섬의 눈은 한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눈썹과 눈썹 사이 미간이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많은 바늘 끝 만한 흔적이 있었다.

처음부터 작지는 않았을 것이다. 처음에는 제법 큰 흔적이었겠지만 문제는 너무 빠르다보니 검을 맞고서도 한 참 동안 숨이 끊어지지 않았다. 그 사이 피부가 수축하면서 상처부위가 좁혀진 것이었다. 도대체 얼마나 빠르면 검을 맞고서도 상처부위가 거의 아물 시간동안까지 생존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자신도 검을 사용한다. 어려서부터 검과 친해졌고 단 하루도 손에서 검을 놓지 않으며 성장했다. 또한 너무 빨라 백쾌섬이라는 별호를 얻었다. 하지만 눈앞의 남궁천의 검과 비교한다면 열세를 인정해야 했다.

뭐든지 빠르다는 것은 이롭다. 특히 무사에게 검이 빠르다는 것은 어떤 조건보다 우월한 것이었다. 칼이나 창(槍) 월(鉞)등 모든 병기를 사용하는 무인들의 소원은 좀 더 빠른 것이었다. 조금 더 상대보다 앞서는 속도를 내기 위해 뼈를 깎는 수련을 마다하지 않는다.

오죽하면 벼락을 자를 만큼 빠르다는 말이 있겠는가.

장로회의에서 왜 남궁천을 척살 대상 일호로 의견일치를 이루었는지 알 수 있었다.

“믿을 수가 없사옵니다.”

곁에서 지켜보던 삼천목이 숨을 삼켰다.

남궁천에 대한 정보는 극히 미미했다. 남궁천 만큼 오랫동안 드러난 사람치고 정보가 제한적인 사람은 없었다. 다 방면으로 그에 대 한 분석과 조사를 시도했지만 역대 남궁세가의 가주들 중 가장 뛰어난 능력을 지녔다는 것과 무림맹의 맹주라는 것이 전부였다.

그래서 혹시나 하고 그의 손에 죽은 사벌 무사들 시신을 가져와 분석한 것이었다.

어쨌든 수고한 만큼 소득은 컸다. 검의 신이라고 불렀지만 직접 본적이 없었는데 비록 간접적인 목격이지만 그의 검에 당한 시신을 본다는 것은 큰 수확이었다.

백쾌섬이 마당가로 걸어갔다. 조그맣게 흐르는 개울물 손을 씻었다.

맑은 개울물 속에 비친 자신의 표정이 굳어 있었다. 그 만큼 남궁천의 검에 충격을 받았음을 의미하고 있었다.

손을 씻고 허리를 세우자 삼천목이 흰 수건을 건네주었다. 백쾌섬은 수건에 물기 묻은 손을 닦았다.

“아마 일부러 혼신을 다해 사벌의 무사들을 베었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경고를 주려는 목적이었다는 것이냐?”

“이왕이면 가장 강력한 수단으로 목숨을 끊어 자신의 위력을 보임으로 심리적으로 우위를 눌러보겠다는 의도이겠지요.”

나름대로 날카로운 분석이었다. 남궁천이라면 충분히 그런 계산을 하고 검을 휘두를 위인이었다.

“훗훗!”

백쾌섬이 미소를 지었다. 드러난 이가 여인의 것인 양 희고 가지런했다.

그때 한 사내가 마당 저편에서 다가왔다.

두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고 다가온 사내가 깍듯하게 예의를 갖추더니 말했다.

“무통령이 내려졌다 하옵니다.”

화악!

두 사람의 눈이 동시에 커졌다.

사내는 빠르게 말을 이었다.

“찬성 여덟에 반대가 다섯, 기권 한명으로 정도무림의 모든 권한이 남궁천에게 안겨졌다 하옵니다.”

백쾌섬과 삼천목의 시선이 부딪혔다. 두 사람 얼굴이 돌덩이처럼 딱딱해졌고 잠깐 동안 아무런 말이 없었다.

휘이이!

한줄기 바람이 불어왔고 두 사람이 걸치고 있는 백의와 흑의가 펄럭거렸다.

딸랑!

특히 두 조각으로 된 백쾌섬의 귀고리가 부딪히며 마치 풍경처럼 청아한 소리를 냈다.

“무통령이라고 하면 모든 권한이 남궁천에게 넘어갔다는 얘기 아니냐?”

백쾌섬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렇습니다. 모든 권한 뿐만 아니라 전쟁이 시작되었음을 뜻하기도 하죠. 곧 우리를 향한 선전포고 인 셈입니다. 전쟁이란 단 한사람의 지휘관 아래 똘똘 뭉쳐야 승리를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아직까지 어느 시대 어느 무림맹주에게도 구파일방을 비롯한 사대세가의 지휘권이 주어진 적이 없었다.

백쾌섬이 인상을 찌푸린 이유는 지금보다 더 흑도가 험악하게 강호를 유린하고 피를 일으켜도 무통령이 내려진 적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흑도와 백도는 공존이 불가능한 물과 불과 같은 물질이다. 그래서 백도는 끊임없이 흑도를 말살하려 했고 흑도는 항상 쫓기고 핍박받는 세월을 보냈다. 물론 흑도무림이 융성하고 천하를 거머쥘 때도 있었지만 그 시간은 아주 짧았다.

“무통령이 내려지면 의견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무림맹주 뜻대로 마음대로 하는 것이지요. 누구의 제지도 받지 않고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남궁천의 뜻대로 할 수 있게 되었군요.”

“반대 한 곳은 어디 어디더냐?”

사내가 대답했다.

“소림과 무당을 비롯한.”

“그렇지. 그럴거야. 그들이야 말로 누군가에게 휘둘린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모욕일테니까.”

백쾌섬의 입가에 야릇한 미소가 떠올랐다.

“천상각 일은 어찌되었느냐?”

“아직까지 밀고 당기는 모양이옵니다.”

백괘섬의 이마가 더욱 찌푸려졌고 보고하던 사내가 슬그머니 두 사람의 곁을 떠났다.

“아직도 해결하지 못했단 말이냐?”

“동오룡이 완강하게 버티는 모양입니다.”

“아들에게 버텨서 뭘 어떡하겠다는 건가? 어차피 장자에게 넘겨줄 것이라면 빠를수록 좋은 것 아니던가. 더구나 지금이야 말로 돈이 가장 필요할 때인데.”

“그런 말 있지 않습니까? 이판사판, 처음에는 겁을 먹고 무림맹도 찾아가고 아들들에게도 어느정도 나누어 주었지만 이왕 내놔도 죽고 내놓지 않아도 죽는다는 생각에 내놓지 않고 죽는 길을 택한 것 같습니다.”

“그가 동오룡을 죽일 확률은 얼마나 되느냐?”

“묵곤혈참기가 십이성에 이르렀습니다. 조금씩 인성이 말살되고 있지요. 아마 거의 라고 판단되옵니다.”

“훗훗! 자식이기는 부모 없다는데 끝내 자식의 손에 참수를 당하려는가? 글쎄 우린 돈이 없어봐서 잘 모르겠는데 돈을 가진 자들은 그렇게 돈을 애지중지 하더만. 목숨까지 버려가면서까지도 돈을 지키려고 하더라고.”

“아까운게죠?”

“아깝기로 따지면 목숨이 더 하지. 목숨은 하나뿐이잖느냐? 돈이라는 건 말 그대로 다시 벌면 되지만.”

“그렇지만 인간이 어디 그렇게 현명하옵니까? 사실 인간처럼 어리석고 둔하고 멍청한 동물은 없사옵니다. 아마 가장 자기무덤을 잘 파는 동물이 인간일 것이옵니다.”

백쾌섬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런 것 같더군. 아무튼 당분간 절대 움직이지 말거라. 설혹 천상각이 다시 무림맹에 함락되더라도 손을 뻗치지 말도록.”

“그래야지요.”

삼천목이 웃었다.

움직이지 않음으로 동천비를 압박하려는 수단이었다. 전쟁도 돈이다. 그런데 군수물자와 모든 것이 부족해 움직이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동천비가 더욱 동오룡의 목줄을 쥐어 틀 것이다. 두 사람은 그것을 노리고 있었다.

사실 흑도의 가장 약점은 자금이었다. 전쟁이 장기전으로 간다면 가진 자가 이긴다. 그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한 진리이다. 자신들이 보는 무림맹의 자금 여력은 삼 개 월이다. 그러나 이쪽은 한 달을 채 못 버틴다. 최소한 사 개월은 버텨야 무림맹을 압박하고 무너뜨릴 수 있다는 계산이고 그 열쇠를 동천비가 쥐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백쾌섬의 얼굴이 굳어졌다.

삼천목의 세 개의 눈이 이채를 발했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심각한 백쾌섬의 표정에서 뭔가 심상치 않음을 발견한 것이었다.

백쾌섬의 시선이 바당 한쪽에 나란히 눕혀져 있는 시신들을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가장 가까운 시신 곁으로 다가가 쭈그리고 앉았다. 시신은 육십 가량의 노인이었는데 눈썹이 짙고 광대뼈가 불쑥 튀어나온 마른 체격이었다.

미간에 긁히듯 난 미세한 검흔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이상하다고 여겨지지 않느냐?”

삼천목도 맞은편에 쭈그리고 앉았다.

“자세히 보거라. 안력을 높여 집중을 해보거라. 뭔가 이상한 점이 발견될 것이다.”

삼천목이 안력을 높였다. 그러자 세 개의 눈이 괴상하게 빛을 뿌렸는데 대낮인데도 주위가 더 훤해지는 것 같았다. 한참을 쏘아보던 삼천목의 눈빛이 작은 파장을 일으켰다.

“이상한 것을 알았느냐?”

삼천목은 대답하지 않고 다시 살폈다. 한 동안 숨까지 죽이며 살피던 삼천목의 입이 열렸다.

“상처 주위가 약간 푸르군요.”

“바로 그것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넘어갔겠지만 난 처음부터 상처 주위가 푸른 것을 발견했다. 다만 내 생각이 잘못되고 눈이 틀리기를 은근히 바랐지. 잠시 얘길 나누면서 시간이 경과한 이후에 다시 봐도 여전히 푸르다.”

삼천목이 맞은편에 앉은 백쾌섬을 쳐다보았다.

“대종사님, 상처 주위가 푸르다 하오시면?”

백쾌섬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전히 표정은 굳어 있었는데 시신을 내려다보며 혼잣말처럼 중얼 거렸다.

“아니냐. 내가 요즘 피곤한 나머지 생각까지도 과해, 과민 반응을 일으키는 것일게야.”

스스로 부정하려는 듯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럴리는 없지. 절대로.”

말은 단호히 부정을 했지만 백쾌섬의 눈빛은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것은 거대한 난제를 만났을 때 인간이 보이는 약간의 두려움이었다.

시녀가 놓고 간 찻잔을 내려다보던 동오룡의 표정이 굳었다. 차에서 풍겨오는 향기가 아주 역겹다. 혹시 자신의 코가 잘못되었는가 싶어 가까이 대고 냄새를 맡아봤지만 확실히 시궁창 냄새가 나고 있었다.

“여봐라.”

시녀가 허겁지겁 문을 열고 들어섰다.

“부르셨사옵니까? 가주님.”

“이게 무엇이더냐? 왜 차에서 시궁창 냄새가 나느냐?”

팟!

한 순간 동오룡의 눈이 커졌다. 혹시 차에다 무엇인가를 탔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었다.

“내…냄새라뇨?”

“네 이년, 당장 맡아보거라. 이게 차더냐. 시궁창 물이지.”

시녀가 다가가 찻잔을 들어 냄새를 맡았다. 아무리 콧구멍을 벌름 거리며 맡아도 시궁창 냄새는 커녕 아주 향기로운 용정 특유의 진한 향이 흘러나올 뿐이었다.

“이…이년의 코에는 아주 좋은 냄새가 나는데요.”

“뭐라, 네년이 감히.”

그러면서 다시 찻잔을 빼앗아 냄새를 맡았다.

“우웩!”

동오룡이 구역질을 뱉더니 시녀를 향해 찻잔을 집어 던졌다.

“네년이 감히 날 속이려 들다니. 차에 무엇을 탔느냐?”

찻물을 뒤집어 쓴 시녀가 벌벌 떨었다.

“무…무엇을 타다뇨? 억울하옵니다.”

“이년이 말로해서는 사실대로 말을 하지 않을 모양이구나. 여봐라. 밖에 아무도 없느냐?”

악을 쓰며 외쳤지만 누구도 들어오지 않았다. 한 순간 동오룡의 서릿발처럼 일어났던 동오룡의 눈이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다. 지금 자신의 곁에 믿을 만한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그나마 몇 명 두었던 호위무사들까지 동천비에 의해 모조리 목이 베어졌다. 그들이 자신의 판단과 귀를 흐리게 한다는 이유였다.

시녀는 울면서 다시 차를 갖다 바쳤지만 또다시 호통을 당하고 하마터면 목이 잘릴 뻔 했다.

어머니도 시녀였다. 천상각에서 일하는 사람과 혼인하여 자신을 낳았다. 그러다보니 자신도 자연스럽게 시녀가 되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었지만 운명으로 알고 최선을 다해 동오룡을 받들었다.

뿐만 아니라 요즘 천상각이 어찌 돌아가고 있는지 훤히 알고 있었다. 아마 동오룡이 차에서 시궁창 냄새가 난다고 하는 것은 신경과민에서 오는 현상일 것이었다.

벌컥!

동오룡은 끝내 냉수를 가져다 마셨다.

물 잔을 내려놓은 동오룡의 눈이 빛을 뿌렸다. 여전히 흥분되어 있다는 뜻이었다.

‘흥 어림없다!’

동오룡은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언젠가 우연히 사냥을 나갔다가 토끼를 추적했다. 분명 토끼집에서 나온 놈을 쫓았기 때문에 갈 곳은 없었다. 그런데 어느 한 순간 토끼는 자신의 시야에서 사라졌고 다가가 확인 한 결과 또 다른 구멍을 파놓고 있었는데 물론 집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때 동오룡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는다. 최소한 강호에서 자신은 토끼와 다를 바 없다. 토끼란 먹이사슬에서 가장 하층에 있는 동물인데 자신을 잡아먹으려는 여우를 비롯한 동물들이 워낙 많다 보니 나름대로 생존 방식이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구멍이었다.

하나의 구멍을 파갖고는 오래 생존할 수 없다. 언제 어디서 잡아먹으려는 천적으로부터 쫓길지 모르므로 여러군데 구멍을 파놓는다. 그래서 유사시에는 가까운 구멍으로 몸을 피하는 것이었다.

동오룡은 거기에서 중요한 깨우침을 얻었는데 중원에서 가장 돈이 많은 자신은 무림맹을 비롯한 힘을 가진 자들이 걸핏하면 찾아와 돈을 뜯어갔고 위협을 했다.

집으로 돌아온 동오룡은 곧바로 다른 구멍을 파기 시작했다. 만약을 대비해 많이 팔수록 좋다는 것을 알고 아무도 모르게 혼자 여러개의 구멍을 판 것이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잘한 일이었다. 그렇지 않고 한 개의 구멍만 파놨다면 이미 무림맹으로 모든 것은 넘어가고 말았을 것이다. 아니 동천비를 비롯한 자녀들에 의해 산산이 조각나고 말았을 것이었다.

덜컹!

거칠게 문이 열리더니 동천비가 들어왔다.

흠칫!

동천비를 바라보던 동오룡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동천비의 눈은 이제 완전히 먹물로 변해 있었다. 흰자위가 전혀 보이지 않은 것이다.

동천비의 눈에서는 무서운 살기가 쏟아졌다. 아마 한 가닥 이성이 그의 행동을 제약하고 있는 것 같았는데 언제 무너질지 알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만 소자에게 비고(秘庫)의 위치와 열쇠를 주십시오.”

동오룡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예 동천비의 얼굴을 쳐다보려고 하지도 않았다.

“아버지.”

동오룡은 여전히 창밖을 보았다.

동천비의 먹물로 변한 눈빛이 흔들렸다.

“이 아들을 믿어 주십시오.”

“없다. 쥐어짜도.”

와락.

갑자기 동천비가 동오룡의 멱살을 거머쥐었다.

동오룡이 눈을 부라렸다.

“네…네 이놈, 감히 지금 무슨 짓을 하는게야? 아비의 멱살을 잡다니.”

동천비가 웃었다.

“흐흐흐! 셋을 세겠소. 그래도 말을 하지 않으면 결코 살아남지 못할 것이오.”

동천비의 눈에서 묵기가 뿜어나왔고 눈을 찌르듯 아파왔다.

“으으!”

동오룡은 너무 눈이 아파 감아버렸다.

동천비가 멱살을 움켜쥐고 음산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딨습니까? 비고?”

“모른다. 이것 못 놓겠느냐? 캑캑.”

“그럼 세지요. 하나!”

동오룡은 숨이 막히는지 동천비의 손을 떼어내려고 발버둥 쳤다. 하지만 무공으로 단련된 그의 힘을 당해 낼 수는 없었다.

“두울 입니다!”

“나…나를 죽여라. 이노오옴.”

콱!

동천비가 더욱 목을 쥐었다.

“캐…캑! 으으!”

동오룡의 얼굴이 빨개졌다. 금방이라도 숨이 막혀 죽을 듯 보였는데 동천비의 음성은 무심했다.

“마지막입니다. 기회는 없습니다.”

“커컥! 죽여라! 죽여!”

“셋!”

그리고 곧바로 왼쪽 팔을 잡더니 확 잡아당겼다.

우두둑!

뼈와 살이 찢어지는 소리가 들리며 동오룡의 오른팔이 어께에서부터 찢어졌다.

“크아악!”

찢어진 어께에서 엄청난 피가 흘러내렸고 동천비가 냉혹하게 말했다.

“잠시 후에 다시 오겠습니다. 그때도 가르쳐 주지 않으면 이번에는 한쪽 다리를 뽑아 드리지요.”

동천비가 부친을 쏘아보고 방을 나갔다.

우우우!

동오룡이 고통에 몸부림 쳤다.

문이 열리고 시녀가 뛰어들더니 기겁했다.

“악! 가…각주님 팔이.”

쫙!

시녀는 곧바로 입고 있던 자신의 백의를 찢어 동오룡의 팔을 감싸멨다. 하지만 워낙 상처가 컸기 때문에 금방 감은 천 밖으로 피가 흘렀다.

“이…이일을, 잠시만 기다리세요. 천녀가 의원을 불러오겠어요.”

시녀가 부리나케 밖으로 뛰어나갔다.

동오룡은 잘린 자신의 팔을 쳐다보았는데 너무 기가 막혀 아무 말도 않고 그저 인상만 쓰고 있었다.

관도 위로 한 대의 마차가 달려가고 있었다. 마차는 세 마리의 말이 끌고 있었는데 마부의 솜씨는 노련했다. 세 마리의 말인데도 똑같이 발걸음을 맞추게 하여 몰아갔다. 그 덕에 울통불퉁한 길인데도 마차는 그다지 요동을 하지 않았다.

북경을 떠난 지 사흘 만에 마차는 섬서성으로 접어들었다.

섬서성에 들어서자 관도는 두 갈래로 나눠졌다. 마부는 빠르게 길가를 훑었다. 다 썩어가는 팻말 두개가 길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는데 오른쪽은 장안으로 가는 길이고 왼쪽으로 접어들면 남전이었다.

장안과 남전은 멀지 않은 거리였다. 그래서 장안을 거쳐 남전을 갈수 있지만 곧장 가는 길을 이용하는 것이 빨랐다. 마부는 익숙한 듯 거침없이 남전을 향하는 길로 마차를 몰아갔다.

두두두두!

뿌연 먼지를 일으키며 마차는 빠르게 속도를 올렸다.

남전(藍田)은 경옥(硬玉)의 산지로 옥산(玉山)이라고도 부른다. 금광이 발견되면 광부들을 상대로 하는 술집과 도박장이 생기듯 남전 또한 경옥으로 인해 많은 술집과 도박장이 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마차는 남전으로 진입하는 저자거리 입구에서 멈췄다.

“다 왔소이다. 손님들.”

마부가 내려 뒤쪽 마차를 향해 말했다.

하지만 마차 안으로부터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손님들, 남전이옵니다. 어서 내리소서.”

그러나 역시 반응이 없었고 마부가 조심스럽게 문을 열어 젖혔다.

덜컹!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던 마부가 깜짝 놀랐다

의자에 앉은 일목이 손가락을 입에 대고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처음부터 태우기 싫었다. 그러나 눈이 하나 뿐이라는 것이 너무 소름끼쳐 태웠는데 눈을 부라리며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내자 얼른 입을 다물었다.

드러러렁!

바닥에 동천몽이 큰 대자로 뻗어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마부는 조용히 말했다.

“소…손님 남전에 왔는데요.”

일목이 대번에 인상을 썼다.

“대법왕님 주무신다.”

마부는 조용히 문을 닫고 나왔다. 한마디만 더 했다가는 무슨 행패를 부릴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사람을 실어 나르는 마차는 시간이 돈이다. 물론 평소 보다 더 많은 돈을 받긴 했지만 빨리 내려주고 남전의 차부로 가봐야 한다. 운이 좋으면 북경가는 장거리 손님을 만날 수도 있다. 단거리 손님은 장사가 안 된다. 장거리 손님을 만나야 재미가 쏠쏠하다.

하지만 쳐다만 봐도 오금이 저리는 일목이 대법왕인지 뭔지 하는 사람이 일어날 때까지는 절대 깨울 수 없다고 노려본지라 하는 수 없었다. 손해가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개 코가 대법 왕이다!’

마부는 속으로 욕을 했다.

처음 마차를 탈 때부터 말마디 대법왕님 대법왕님 했다. 자신은 한번도 대법왕을 본적은 없지만 저렁 거렁뱅이 비슷한 사람이 대법왕일 리는 없다. 위대하고 성스러운 대법왕이 눈구멍이 하나 뿐인 병신을 데리고 다닌 다는 것은 더욱 말이 안되었다.

필시 대법왕을 사칭하고 다니면서 불쌍한 백성들을 후려먹는 사기꾼일 것이다. 관부에 신고할까 하는 마음도 들었지만 자칫 눈치라도 채는 날이면 눈 하나뿐인 놈의 검에 목이 달아 날 것 같아 겨우 참고 있었다.

마차를 하다보면 온갖 잡놈들이 다 있었다. 특히 강호에서 제법 위세 좀 떨친다는 놈들은 마부를 사람으로 보지도 않는다. 새파랗게 어린놈이 반말 찍찍 갈기는 건 예사고 좁은 골목을 비집고 집 앞까지 태워줬는데도 은자 한 푼까지 거슬러 받는다.

오히려 그럭저럭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더 후했다. 과부가 홀아비 마음 아는 것이다. 지금까지 마부로 이십년을 살아왔지만 규정 요금 이외에 수고비를 준 사람은 단 한 놈도 못봤다. 금화 몇 십 냥짜리 하는 육십년산 죽엽청을 마셨네 백년산 설리홍을 마셨네 떠벌리고 자랑할 때면 구역질이 난다.

그래서 왜 있는 놈은 다 그 모양일까 하는 생각을 자주해봤는데 결론은 하나였다. 태생이 천하기 때문이었다. 부모가 천하고 천한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대법왕인지 대밥왕인지 하는 작자가 일어날 때는 해가 서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무려 한 시진을 옴짝달싹 못하고 기다린 것이었다.

“아함!”

하품소리가 너무 반가워 벌떡 일어나 문을 열었다.

동천몽이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편히 주무셨나이까?”

일목이 공손히 말했고 동천몽이 마차밖에 서 있는 마부를 보며 말했다.

“내가 일어나자마자 도착한 모양이구려.”

마부는 단호히 말했다.

“아닙니다. 한 시진을 깨어나길 기다렸사옵니다.”

“뭣이? 한 시진을?”

홱!

그러면서 일목을 노려보았다. 보지 않아도 어찌 돌아간 속사정인지 안다는 눈빛이었다.

“너…너무 곤하게 주무시고 계셔서.”

“네 이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마차가 도착했으면 깨워야 할 것 아니냐? 그래서 저분더러 본 왕이 일어날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단 말이냐?”

“기…기다리라고는 안했습니다. 자기가 알아서.”

동천몽이 일목을 잡아 먹을 듯 노려보았다.

“쯧쯧! 네놈은 아직도 주제를 모르느냐? 네놈 생긴 것을 보면 누구든 알아서 기다리게 된다는 걸 정녕 모른단 말이냐? 이런 미안할 데가.”

동천몽이 품을 뒤졌다.

왼 가슴 오른 가슴 중간 가슴 마구 뒤지더니 뭔가를 꺼냈다.

“영감님 본 왕이 가진 것이 이 것 뿐이오. 마음 같아 서는 돈을 듬뿍 주고 싶지만 형편이 넉넉지 못하지 이것이라도 받고 노기를 거두시오.”

마부는 거절하지 않았다.

주머니를 받아 안을 들여다보던 마부가 깜짝 놀랐다.

“크헉!”

찢어질 듯한 눈으로 동천몽을 보며 말했다.

“이…이건 모듬주 아니옵니까?”

주머니 안에는 모듬주 두개가 들어있다. 모듬주는 장강에서 나는 모듬어 눈알로 어둠속에서도 길을 밝힐 만큼 빛을 뿜는데 한 개에 금화 한 냥 가치였다.

“저…정말 준단 말 입니까?”

“미안하오. 더 주고 싶지만 몇푼 있는 것은 노자로 써야 하니 이해 하시오.”

그러면서 마차에서 내렸다.

“수고 하셨소. 조심해 돌아가시오.”

손을 들어보이고 돌아서는 동천몽을 향해 마부의 허리가 휘어져라 구부려졌다.

“감사합니다. 감사 하…합니다.”

마부의 두 눈이 빛을 뿌렸다. 자신의 생각이 아주 짧았다. 틀림없는 대법왕이었다.

일목의 입이 튀어나왔다. 푹 자도록 온갖 편의를 제공해 주었는데도 칭찬은커녕 꾸중만 들었다.

남전의 거리는 화려했다. 저자거리는 인파로 가득했고 좌우로는 수많은 기루와 객점이 처마를 맞대고 이어져 있었다.

동천몽은 언뜻 소주를 떠올렸다. 미도라고도 부르고 흔히 색도라고도 하는 소주에 못지 않은 남전의 거리를 보며 돈이 넘친다는 것을 피부로 직감할 수 있었다.

도시의 화려함은 옥 때문일 것이었다. 남전에서 중원에서 가장 큰 옥광산이 있으며 최고의 품질을 자랑한다. 그래서 천축은 물론 새외와 바다건너 동영에서까지 남전의 옥을 구하기 위해 찾아온다.

두 사람은 객점으로 들어갔다. 점소이의 안내를 받아 자리를 잡고 각자 음식을 시켰다. 점소이가 무엇을 시킬 것이냐고 묻는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두 사람의 시선이 부딪혔다.

때마침 옆 좌석에서 구수한 냄새가 날아왔다. 장사꾼 차림의 두 사내가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앵두육을 먹고 있었다. 가뜩이나 배고 고픈 마당인데 앵두육 특유의 향기가 두 사람의 코를 찌른다. 둘 모두 마른 침을 삼켰고 식욕을 불태웠다. 하지만 이내 출가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며 얼굴에 극도의 고통과 절망이 나타났다.

“험! 만두 주게.”

“나도.”

필시 혼자 있었다면 보는 사람도 없겠다 거침없이 앵두육을 시키고 말았을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못마땅해 하는 시선으로 한번 흘겨 본 후 고개를 돌렸다. 남이 먹는 음식을 쳐다보며 침 삼키는 것처럼 비참한 것은 없다.

간단한 음식인 탓에 빨리 나왔다.

두 사람은 각자 만두를 입에 넣기 시작했다. 그러나 앵두육에서 흘러오는 절묘한 향기는 만두 맛을 상당히 떨어뜨렸고 배는 고프지만 씹는 맛은 자갈 같았다.

급기야 일목의 분노가 폭발하고 말았다. 가뜩이나 편안 잠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는데도 칭찬을 받지 못한데다 옆에서 쩝쩝거리며 앵두육 먹는 소리에 참지 못한 것이다.

“이보쇼. 좀 조용히 먹을수 없소? 개새끼오. 쩝쩝거리며 먹게.”

두 사내가 발끈 하며 숙였던 고개를 쳐들었다. 무섭게 고개를 쳐들던 두 사내의 고개가 다시 무섭게 숙여졌다. 하나뿐인 일목의 눈은 어떤 용기도 낼 수 없을 만큼 무서웠다.

“소…송구합니다. 조용히 먹겠사옵니다.”

좌측 남자가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말했고 일목이 쏘아 붙였다.

“천천히 소리 내지 말고 먹읍시다. 점잖게 말이오.”

“예예!”

두 사람은 입을 꼭 다물고 조심스럽게 소리나지 않게 씹었다.

바로그때였다. 우측으로 두 번째 탁자에 앉아 있던 세 명의 무사가 술을 마시며 떠들었다.

“무통령이라는 것이 도대체 뭡니까? 형님.”

“무림맹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신패일세. 무통령이 발령되면 모든 권한이 무림맹주에게 주어진다네.”

“그럼 구파일방과 사대가문의 수장들까지도 무림맹주의 명령을 들어야 한단 말입니까?”

“물론이지.”

“거참 이상하군요. 목와북천이 무섭게 일어나고 있다고는 하지만 정도 수백 개 문파를 하나의 명령권으로 일원화 할 만큼 당금 강호가 급박하거나 위험하지도 않는데 어떻게 무통령이 내려질 수가 있지요? 소제가 알기에 무통령이 어지간해서는 잘 내려지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그렇지. 워낙 무통령에 담긴 권한이 절대적이기 때문이지. 자칫하다간 고양이에게 생선 가게를 맡기는 꼴이 될수도 있으니까?”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기다뇨?”

“생각해보게. 막강한 권한을 쥔 무림맹주가 딴마음이라도 먹어보게.”

“딴마음이라면 혹시 천하를.”

“그럴리는 없지만 사람 마음을 어찌 알겠는가? 그래서 벌써부터 강호 분위기가 뒤숭숭하다네. 일부 뜻있는 고인들께서는 무척 불안한 시선으로 무림맹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네.”

“설마 그럴리야 있겠습니까? 어느시대의 맹주보다 공명정대하고 정의로운 남궁천 맹주님인데.”

“나도 그랬으면 좋겠지만 왠지 조금 그렇구만, 어서들 먹고 가세. 해떨어지면 처음길이라 찾기도 어려워지네.”

세 사람은 부랴부랴 음식을 먹어 치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편 일목은 만두를 먹고 있는 동천몽을 놀라움 가득한 얼굴로 쳐다보았다.

동천몽이 인상을 썼다.

“뭘 그렇게 보느냐? 본왕의 얼굴에 뭐라도 묻었느냐?”

“그…그게 아니옵고 너무 놀라서.”

“뭐가 말이냐?”

“대…대법왕님께서 북경을 떠나실 때 소승에게 뭐라고 하셨사옵니까? 무통령이 내려질 것이라고 장담했잖습니까?”

“그랬지.”

“조금 전 세 놈 입에서 나온 말을 들으셨지요? 대법왕님 예상대로 무통령이 내려졌다 하옵니다.”

동천몽은 여전히 만두를 먹는데 열중했고 일목은 여전히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 표정이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생기리라는 것을 알았단 말인가. 미래를 훤히 보지 않고서는 맞출 수 없는 어려운 난제였기에 자신은 내리지 않을 것이라고 큰 소리쳤다. 그러나 결과는 동천몽의 예상대로였다.

이따금 동천몽은 정말로 부처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앞일을 내다보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었다.

“어떻게 그렇게 미래에 일어날 일을 잘 아십니까?”

“너에게는 어려운 일인지 모르지만 내게는 아주 쉬운 일이다. 조금만 머리를 굴러보면 답이 나오지.”

“하오시면 이번일도 잔머리를 굴려 알아냈단 말입니까?”

“어서먹자.”

동천몽은 열심히 만두를 입에 밀어 넣었고 일목의 두 눈은 여전히 충격으로 넘쳐있었다.

이른 저녁을 먹은 두 사람은 소화도 시킬 겸 근처 다루로 자리를 옮겼다.

그런데 두 사람이 들어서자 조용하던 다루가 시끄러워졌다. 모든 사람들 시선이 일목에게 집중되었고 점소이까지 어서오십시오 하고 고개를 쳐들다 말고 기절할 듯 놀랬다.

“세…세상에 눈이 하나 뿐이라니.”

“아이구 요상해.”

요즘 들어 만나는 사람마다 하나 뿐인 일목의 눈에 만큼 관심을 보인다. 사람들의 이상한 시선에 오래전 면역이 되었지만 심사가 꼬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점소이가 차를 가져왔는데 두 손이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차를 놓자마자 점소이는 신속히 물러났다.

두 사람은 찻잔을 들어올렸다. 아무리 차를 많이 마셔도 값은 한잔 값만 받는다. 동천몽은 부지런히 차를 시켜 마셨고 일목 또한 차를 좋아하지 않지만 한잔 값만 받는다는 동천몽의 설명을 듣고 단번에 잔을 비워댔다.

저녁에 차까지 마셔 배가 터질 것 같았다.

“저…저어 대법왕님.”

일목이 크게 트림을 하고 정색하여 쳐다보았다.

동천몽은 느릿하게 찻잔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아주 실례되는 질문인줄 알지만 한 마디 물어도 되겠사옵니까?”

“해보거라.”

“이곳에는 무슨 일로 오셨는지요?”

가장 궁금한 내용이었다. 오면서 묻고 싶었지만 마차를 타자마자 잠에 골아 떨어져버려 물어 볼 틈이 없었다.

동천몽이 찻잔을 내리며 물었다.

“볼일이 있어 왔느니라.”

“그러니까 그 일이 무엇이냐는 물음이지요?”

동천몽의 이마에 주름 한 개가 생겼다.

“내가 너에게 꼭 그것을 말해야 하느냐?”

일목이 소스라치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옵니다. 하도 궁금해서 물었을 뿐, 죄송합니다. 다음부터는 죽어도 묻지 않겠사옵니다.”

일목은 혹시라도 주먹이 날아올지 몰라 얼른 사죄를 하며 합장했다.

하지만 일목의 머리 속에는 궁금증이 가시지 않았다.

“배도 부르고 차도 마셨으니 그만 일어나자꾸나.”

동천몽이 앞장서 나가며 차 값을 계산했다.

일목이 나가자 기다렸다는 듯 사람들이 큰 소리로 흉을 보았다.

밖으로 나온 동천몽은 곧장 서쪽을 향해 걸었고 인파가 뜸 해지자 신법을 전개했다. 일목은 아무 소리 않고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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