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장 경천동지
바로 그때였다. 안쪽으로부터 돈 계산하던 사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 놈입니다. 저 개자식이 총관님을 때리고 나도 때렸습니다.”
어느새 돈 계산 하던 사내가 자리를 빠져나가 세 명의 무사를 데리고 왔다.
셋 모두 옆구리에 칼을 차고 있었는데 기세가 자못 흉흉했다. 동천몽은 셋 모두 떠돌이 무사들이라는 것을 읽어냈다. 아마 막오광에게 고용된 자들일 것이다.
땅바닥에 아랫도리를 감싸며 있던 철재수가 세 무사를 보며 눈빛이 바뀌어졌다.
“뭣들 하느냐? 저 개자식 모가지를 당장 잘라 버려라.”
“크크크!”
“흐흐흐!”
웃음소리도 흉포했다. 보통사람이라면 이들의 웃음소리에도 오줌을 지리고 말 것 같았다.
“저승 명부에 오르려면 이름은 말해야 할 것 아니냐?”
“나 대법왕이니라.”
대법왕이란 말에 세 무사가 움찔하더니 이내 큰 소리로 웃었다.
“우헤헤! 이 새끼 진짜 웃긴다. 네놈이 대법왕이면 난 부처님이니라.”
“이거 몇 개.”
가운데 무사가 손가락 두 개를 펴고 물었다.
동천몽이 가볍게 웃었다.
그러더니 손가락 두 개를 든 무사의 아랫도리를 벼락처럼 걷어찼다. 가운데 무사가 피해야 한다는 생각이 떠올랐을 땐 이미 아랫도리가 깨진 듯 아파왔다.
“아그륵!”
너무 고통스러운 듯 비명도 제대로 지르지 못했고 좌우 무사들이 멈칫 할 때 연거푸 그들의 사타구니도 달군 쇠꼬챙이에 지진 듯 했다.
“꺽!”
“아우우!”
“이…이 새끼가.”
가운데 사내가 인상을 쓰며 칼을 뽑으려 했다. 하지만 반도 뽑히기 전에 다시 사타구니에 강렬한 충격이 가해졌다.
“아부부! 꼬륵!”
가운데 사내가 그대로 기절했고 동시에 칼을 뽑아 내려치려던 두 무사 역시 간발의 차이로 낭심을 얻어맞고 고꾸라졌다.
철재수의 얼굴이 공포로 우그러졌다. 자신은 물론이고 주인 막오광까지 그토록 믿고 신뢰하던 세무사가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기절한 광경에 그저 식은땀만 흘러 내릴 뿐이었다.
“오광이 있느냐?”
철재수가 대번에 고분고분 해졌다.
“계…계십니다. 들어가시면 만나 뵐 수 있을 것입니다.”
동천몽이 서너걸음 걷다 돌아보자 철재수가 기절할 듯 놀라며 부동자세를 취했다.
동천몽이 웃으며 말했다.
“사기치지 마라. 제 값 계산해주란 얘기니라.”
“네!”
동천몽이 가벼운 웃음을 지어보이며 안으로 들어갔다.
삐이걱!
전각문을 밀고 들어서자 짧은 복도가 있었고 안쪽 끝 방에서 여인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호호호! 아이 간지러워요.”
사내의 넋을 녹일 뇌쇄적인 웃음에 동천몽의 입가에 야릇한 미소가 떠올랐다.
보지 않아도 방안의 상황이 짐작 되었다.
동천몽이 복도를 걸어 끝 방에 도착했다. 방문은 닫혀 있었지만 안에서부터 들려오는 음성은 전혀 막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흐흐흐!”
“아아!”
동천몽이 문을 밀고 들어섰다.
예상대로 침대 위에서 알몸의 남녀가 뱀처럼 엉켜 뒹굴고 있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미친 듯 서로의 몸을 탐닉해가는 두 남녀의 정사를 지켜보던 동천몽이 옆에 있는 의자를 끌어 당기더니 앉아 본격적인 구경에 돌입했다.
여자가 남자 배 위에 있었는데 움직임이 상당히 능숙했다. 동천몽은 여자가 무척 경험이 풍부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밑에 있는 사내는 여자의 엉덩이가 움직일 때마다 죽는다고 신음을 흘렸다.
사내는 필시 막오광일 것이다.
“아이고…아이고!”
“호호! 내가 뭐랬어요. 오늘 완전히 죽여준다고 했죠. 이 정도는 이제 시작에 불과해요.”
막오광이 죽는다는 신음을 흘렸다.
“오늘 진정한 천국이 무엇인지 보여 드리겠어요.”
“지…지금도 천국이니라…아그그그.”
여인은 여러 가지 동작을 취했다. 적지 않은 경험은 갖고 있는 동천몽이지만 처음 보는 자세도 많았고 막오광은 거의 미쳐 가고 있었다.
두 사람의 정사는 무척 오래 지속되었다.
막오광이 끝날 듯 하면 여자는 동작을 멈추고 시간을 끌기를 반복했다.
‘고수로군!’
동천몽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흠칫!
그러다 문득 동천몽이 자신의 아랫도리를 내려다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남녀의 정사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즉 살아 있는 사내라면 지금쯤 노소를 불문하고 반응을 보여야 정상이었다. 그런데 아랫도리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과거에는 지나가는 여인만 쳐다봐도 민감한 반응을 보였던 아랫도리였다.
‘이…이런!’
동천몽의 얼굴에 당황한 표정이 떠올랐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꿀꺽!
가슴이 철렁 무너지면서 앞이 캄캄해졌다. 심각한 문제이자 경악할 일이었으므로 동천몽은 곧바로 하의를 들추었다. 그리고 안을 들여다 보았는데 기겁했다.
‘마…맙소사!’
놀랍게도 아랫도리는 조용히 늘어져 있었다.
몇 번 눈을 비비고 다시 내려다 봤지만 힘이라고는 전혀 없어 보였다. 다시 한 번 침을 삼킨 동천몽은 슬며시 손을 집어넣어 튕겨보았다.
아프기만 할 뿐 도무지 생기라고는 찾아 볼 수가 없다.
한 순간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무…무상탄독!’
하나 이내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걸병광우철포공은 아랫도리까지 그 영향을 미친다. 즉 아랫도리도 여느 피부와 다를 바 없이 상처를 입지 않는다. 만약 그때 충격을 받았다면 아프거나 상처를 입었어야 했는데 돌이켜 봐도 전혀 이상한 점은 발견하지 못했었다.
동천몽의 안색이 흑빛으로 변했다.
아랫도리는 사내의 가치다. 아랫도리가 제 구실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사내의 가치가 소멸되었음을 반증하며 미물이라 아니 할 수가 없다. 그리고 그것은 죽음이오 실패이며 패배이고 생생한 몰락의 실상이었다.
아무리 손으로 튕기고 주물러도 전혀 고개를 쳐들지 않는 아랫도리를 보며 절망에 쌓여 있을 때 갑자기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아악!”
고개를 쳐들자 막오광의 배 위에 있던 여인이 동천몽을 발견하고 천으로 가슴을 가렸다.
“왜… 왜 그러느냐?”
“저…저기.”
여자가 손가락으로 동천몽을 가리켰다.
침대에 누운 막오광이 입구로 고개를 돌렸다가 의자에 앉아 있는 동천몽을 발견하고 흠칫 했다.
화악!
배위에 주저앉아 있는 여인을 밀치고 막오광이 상체를 일으켰다. 다짜고짜 벽에 걸린 칼을 거머쥐더니 알몸으로 침대를 내려왔다.
“뭐하는 놈인데 남의 방을 들어왔느냐?”
동천몽은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표정이 굳어 있었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자꾸 아랫도리가 신경 쓰였다.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 하려고 해도 불안했다. 남녀의 정사장면을 직접 보았고 생생한 현장의 소리까지 들었는데도 반응을 보이지 않는 다는 것은 심각한 사태가 아닐 수 없었다.
“뭐해요. 어서 쫓아버리던지 베어 버려요.”
여자가 가슴을 가린 채 침대 위에서 소리쳤다.
“이 새끼가.”
막오광이 그대로 칼을 내려쳤다.
동천몽은 의자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고 내려치는 칼을 오른손으로 막았다.
탁!
맨손으로 도신을 거머쥐자 막오광의 눈이 커졌다.
하나 정신을 차리고 잽싸게 칼을 비틀었다. 잡은 손을 아작 내려는 수 였다. 하지만 칼은 꼼짝도 하지 않았고 톡 소리가 나더니 부러졌다.
“헉!”
반 토막이 난 칼을 보며 막오광은 입을 떡 벌렸다.
보통 인물이 아니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리고 떠오르는 또 하나의 생각은 자칫하면 오늘 자신의 삶이 정리 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었다. 여기까지 무사히 들어온 것을 보면 밖에 있는 무사들이 무너졌다고 봐야 한다. 무공을 전혀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뛰어나지도 않았다. 밖에 있는 세 무사는 자신이 고용한 자들인데 백초 이상을 겨뤄야 겨우 제압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육욕에 빠졌다고 해도 싸우는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던 것을 감안하면 자신쯤은 상대가 아니라는 결론이 나온다.
콱!
막오광이 반토막 밖에 남지 않은 칼을 힘껏 쥐었다.
누구 못지않게 열심히 살아왔다. 물론 칭찬 받을 짓 하며 올바르게 살아오지는 않았다. 돈이라는 것이 묘하게 정직하면 품을 자꾸 떠나고 악독하게 못되게 굴면 품을 파고들었다.
그래서 오늘날 사방천지가 적이다. 그러나 그 댓가로 부는 일궜다. 부모가 누군지도 모르고 태어나 이만큼 부를 일궜으니 성공한 인생이다. 이제는 버는 것보다는 뺏기지 않기 위해 애를 썼다. 다행히 힘이 들긴 했지만 아직까지 꾸준히 평행선은 유지해오고 있었고 마누라 말고 두 명의 첩까지 두었다. 유일한 걱정이라면 체력의 한계성이었는데 세 여자를 다루다 보니 힘이 부족했다. 좋은 약이란 약은 빼놓지 않고 챙겨 먹는데 뜻대로 되지 않아 고민일 뿐 다른 걱정거리는 없었다.
“죽엇!”
막오광이 달려들었다.
어떻게 쌓아온 오늘의 부이며 영광인데 여기서 무너질 수는 없었다. 무너질 바에는 차라리 죽는게 나았다. 다시 과거의 그 지긋지긋한 피폐한 삶으로 내 던져진다는 것은 절대 있을 수 없었고 있어서도 안되었다.
빠악!
동천몽의 주먹이 칼과 부딪혔는데 퉁겨 날아간 사람은 막오광이었다.
뒤쪽 벽에 부딪히고 사정없이 방바닥으로 나동그라졌다. 하나 막오광은 곧바로 일어나 떨어뜨린 반 토막의 칼을 거머쥐고 노려보았다.
“죽자아아!”
악을 쓰며 동천몽의 배를 쑤셨다. 죽이지 못하면 자신이 죽는다. 물러 설수도 없고 물러 설 마음은 없다. 물러 설 바에는 차라리 죽는게 나았다.
쾅!
덤빌 때보다 더 빠르게 날아가 이번에는 창문에 부딪혔다.
와장창!
창문이 박살나고 밖으로 사라졌다. 하나 곧바로 다시 창문을 기어 넘어와 재차 달려든다.
빡!
쓰러지면 일어나 다시 달려들었고 피를 흘리면서도 막오광은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필사적이며 집요했고 악착같았다.
팟!
동천몽의 눈에서 빛이 뿜어졌다.
막오광의 모습에서 한 사내를 떠올린 것이었다. 그 사내 또한 형들로부터 엄청나게 두들겨 맞았다. 저항 할수록 더욱 얻어맞았고 끝내는 죽음의 위기까지 겪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내는 한 가지 사실을 깨우쳤다. 힘을 갖추지 않고서 저항하는 것은 어리석은 만용이고 자살 행위라는 것을.
그때부터 두들겨 패면 맞았고 한 대라도 덜 맞기 위해 바닥을 기었으며 스스로를 버렸다. 철저히 벌레가 되어 겨우 목숨을 부지했고 오늘에 이르렀다.
막오광의 모습에서 한 때 자신의 모습을 본 것이었다.
빠박!
막오광의 얼굴은 피투성이가 되었다. 그런데도 그의 눈빛은 더욱 푸르게 빛났고 투쟁력은 강해졌다.
“야 이 멍청한 새끼야 그러면 더 죽어. 미련한 놈아.”
소리치며 있는 힘껏 막오광을 가격했다.
콰아앙!
“크악!”
막오광이 구석으로 떨어졌다. 피투성이가 되었고 벌레처럼 꿈틀거리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제대로 몸을 가누지도 못하면서 주먹부터 거머쥐었다.
“주…죽여라. 날 절대 살려 두지 마라. 모든 걸 뺏기느니 차라리 죽겠다.”
“으아아악!”
막오광이 처절한 기합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동천몽의 눈빛이 깊숙이 가라앉았고 막오광의 주먹을 피하며 멱살을 거머쥐었다.
탁!
“캐애액!”
거센 멱살에 숨이 막힌 듯 막오광이 바둥거렸다.
“목숨은 이런 식으로 지켜지지 않는다. 머리를 써라. 머리를. 힘으로 맞서면 더 죽어갈 뿐이다. 알겠느냐?”
동천몽의 두 눈에서 가공할 기세가 뻗어나갔다.
“커컥! 죽여라. 어서 날 죽여.”
화악!
동천몽이 막오광을 세차게 밀었다. 그러자 힘없이 뒤로 나자빠졌고 동천몽이 품에서 백상불을 꺼내 다시 공격하기 위해 일어나는 막오광에게 보여주었다.
흠칫!
막오광이 주먹을 말아쥐다 백상불을 발견하고 두 눈을 크게 떴다.
“배…백상불, 당신은?”
“대법왕이니라.”
막오광은 옷차림을 살폈다. 머리만 깎았을 뿐 속의를 걸쳤다. 하지만 백상불은 틀림없는 대법왕의 신물이며 이따금 백성들의 삶을 보기 위해 속의로 변장하고 다닌다는 말은 들어보았다.
막오광의 눈빛이 흔들렸다.
과연 복종해야 하느냐 죽더라도 끝까지 저항해야 하는지 갈등의 빛이었다.
“미…미안합니다. 소인을 이해 해 주십시오.”
막오광은 싸움을 택했다. 그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동천몽이 주먹을 쥐고 틈을 노리는 막오광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한 가지 약속을 해라.”
“무…무엇이오.”
“사실 널 찾아 올 땐 죽이려고 했다. 힘없는 백성들의 피를 뽑아 배불리 먹고 있으니까. 하지만 지금 널 보며 마음이 조금 바뀌었다. 널 살려주겠다. 또한 네가 모은 재산에 대해 일체 손을 대지 않겠다. 대신 한 가지만 지켜라.”
“……”
“이곳에서 생산되는 모든 약초가 정상적인 거래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해라. 더 이상 착취하지 말라는 얘기다. 그 약속만 지키면 돌아가겠다.”
막오광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믿기지 않는 다는 것이냐?”
“사실이오.”
“믿어라.”
동천몽이 깊숙한 눈빛으로 막오광을 주시 한 후 등을 돌렸다. 동천몽이 문을 막 벗어나는데 뒤로부터 쿵 소리가 들렸다.
“대…대법왕이시여, 약속 하겠사옵니다. 앞으로는 철저히 시장에 맡길 것이고 더 이상 가난하고 힘든 백성들을 괴롭히지 않겠습니다.”
“고맙구나.”
동천몽이 한 마디를 남기며 사라졌다.
막오광은 동천몽이 사라진 복도를 향해 무릎을 꿇고 큰절을 올렸다. 그의 두 눈에서는 진정의 빛이 넘쳤다.
막오광의 장원을 걸어나오자 만강수가 초조하게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동천몽을 발견한 만강수가 긴장한 얼굴로 다가왔는데 차마 결과를 물어보지 못했다.
혹시라도 자신의 짓이라는 것을 막오광이 알면 엄청난 피해가 닥쳐오리란 것을 생각하자 괜히 입을 열었다는 후회를 계속 하고 있었다.
투툭!
동천몽이 만강수 등을 토닥였다.
“잘 됐느니라. 앞으로 고생한 만큼 수익을 얻을것이니 걱정말거라.”
“호…혹시?”
“너의 짓이라고 막오광에게 말했느냐고 묻는 것이냐? 염려마라. 그런 말은 하지 않았느니라.?”
만강수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행복하게 살거라. 다시 한 번 날 구해주어 고맙구나.”
“아…아니옵니다. 그…그러하온데.”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만강수가 더듬거리자 동천몽이 물었다.
“할 말 있으면 망설이지 말고 하거라.”
만강수가 동천몽의 얼굴을 빤히 보며 말했다.
“소…송구하온데 대법왕님의 존안이 어두워 보입니다. 무슨 근심 있으신지?”
동천몽이 흠칫했다.
잠시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던 동천몽이 표정을 바꾸며 억지 미소를 지었다.
“아니니라. 본왕이 무슨 걱정이 있겠느냐? 그럼 나중에 궁으로 한번 오거라.”
동천몽이 천천히 걸어갔고 만강수가 크게 허리를 구부려 절을 했다.
만강수와 헤어진 동천몽은 곧바로 의원을 찾아갔다. 의원은 자신의 몸 하나도 제대로 가누지 못할 만큼 늙었다. 그러나 안다에서 가장 영험하다는 소문이 있었으므로 동천몽은 신뢰하기로 했다.
“어디가 아파서 오셨소?”
동천몽은 얼른 입을 열지 못했다.
그러자 의원이 이마를 찡그리며 말했다.
“왜 말을 못하시오. 어디사 아프냐고 묻잖소. 젊은이.”
동천몽은 마른침을 삼키고 말했다.
“사…사실은…거시기가.”
의원은 여전히 동천몽의 말뜻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동천몽이 다시 침을 삼키며 말했다.
“그…그것이…물건.”
그제 서 야 의원이 눈치를 챈 듯 물었다.
“어디가 어떻게 문제가 있는지 상세히 말해보시오?”
“일어서지를 않소이다.”
“일어서지를 않는 다는 것은 전혀 구실을 못한다는 말이오?”
동천몽은 조금 전 막오광의 장원에서 있었던 상황을 말해주었다. 얘기를 듣고 난 의원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정말이오? 거 참 그 정도 생생한 현장이라면 대부분 화를 내는 것이 정석이거늘…어디 팔을 좀 내밀어 보시오.”
의원은 맥을 짚었다. 하지만 큰 이상을 발견 못한 듯 이번에는 아랫도리를 내려 보라고 했다.
의자에 앉아 아랫도리를 내린 동천몽을 의원은 살폈다.
“일단 겉모습은 이상이 없는 것 같소이다만 좀더 정밀 검사를 해봐야겠소.”
그러더니 탁자 서랍에서 얇은 면장갑을 꺼내 손에 끼었다. 그러더니 동천몽의 아랫도리를 이리저리 만지며 살폈다. 한 참을 살피던 의원이 가볍게 눈살을 찌푸렸다.
“올해 나이가 몇이오?”
“스물이오.”
의원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 나이면 늙은이가 만져도 반응을 보이는 법이거늘…허어.”
의원의 고개가 연신 좌우로 서너 번 기울어지더니 아랫도리를 올리라고 말했다.
장갑을 벗은 의원이 동천몽을 보며 말했다.
“아직 혼인도 하지 않았는데 거시기에 문제가 생기면 중차대한 일이지요. 본격적으로 검사를 한 번 해봅시다.”
“본격적인 검사라면.”
“나만의 검사방법이 있소이다.”
“밖에 용이 있느냐?”
“네 사부님.”
문이 열리고 이십대 가량의 청년이 들어섰다. 의원의 제자인 듯 했는데 넙죽 허리를 숙였다.
“가서 삼월이를 좀 데려오너라.”
“알겠사옵니다. 사부님.”
용이라는 제자가 나가고 동천몽은 궁금한 표정으로 의원을 쳐다보았다. 동천몽의 표정을 읽은 듯 의원이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조금만 기다려보면 알게 될거요.”
의원은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잠시 후 의원은 다른 환자를 보기 위해 밖으로 나갔고 혼자 남은 동천몽은 무슨 검사를 어떻게 하려는 건지 무척 궁금했다. 온갖 생각을 다해봤지만 마땅히 떠오르는 건 없었다.
이다경쯤 지났을 쯤 다른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나갔던 의원이 들어섰고 곧바로 밖으로부터 용이라는 제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삼월이를 데려 왔사옵니다.”
“오, 어서 안으로 데리고 들어오너라.”
드르륵!
문이 열리는 소리에 동천몽이 고개를 들다말고 흠칫 했다.
용이라는 제자가 한 명의 아리따운 여인을 데리고 들어섰다. 여인은 무척 화장을 짙게 하고 있었는데 동천몽을 힐끔 쳐다보더니 혀를 찼다.
“쯧쯧! 새파란 오빠가 어쩌다.”
의원이 여인을 향해 말했다.
“뭣 하느냐? 어서 벗거라.”
여인은 두 말도 않고 옷을 벗기 시작했다.
동천몽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지금 무엇을 하는 거요?”
“검사를 한다고 하지 않았소. 아무 소리 말고 가만있으시오.”
화악!
동천몽의 눈이 커졌다.
여인은 마지막 남은 속옷까지 홀라당 벗었다. 미끈한 여인의 몸매는 가히 조각품이라 할만했다.
“삼월이를 똑바로 쳐다보시오. 시선은 아무데나 두어도 상관없소.”
동천몽이 너무 민망해 시선을 똑바로 들지 못하자 의원이 버럭 소릴 질렀다.
“이보시오. 지금 장난 하는 줄 아시오? 빨리 검사에 응하지 못하겠소.”
동천몽은 그제 서 야 의원이 말한 검사 방법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여인의 옷을 벗겨 실컷 감상하게 한 다음 자신의 반응을 살피려는 것이었다.
“삼월이를 한 번 부르는데 돈이 얼만줄 아시오. 시간 없으니 어서 고개를 들고 똑바로 보시오.”
의원이 호통을 쳤고 삼월은 이미 이런 일에 익숙한 듯 요염한 자세로 섰다. 전혀 부끄러움을 모르는 듯 양 다리를 적당히 벌리고 가슴을 한 껏 돋보이게 하려는 듯 내 밀었다.
동천몽이 삼월이를 정면으로 쳐다보았다.
피부가 까칠하고 눈가에 주름이 있는 것이 서른 초반 정도로 보였다. 하지만 몸매 하나는 너울거리는 물결을 보는 듯 유연하고 부드러웠다. 가슴 또한 도발적으로 치켜 올라갔고 허리 또한 한 줌도 되지 않을 듯 가늘었다.
그리고 밑으로 이어지는 여체의 아름다움은 사내를 유혹시키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어떻소? 지금도 반응이 없소?”
의원이 한쪽에 서서 물었다. 동천몽은 아랫도리를 들췄다.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도대체 이해 할 수도 없고 뭐라고 설명도 되지 않는 어처구니없는 현상이었다.
“네.”
의원이 삼월을 향해 말했다.
“이 단계로 들어가거라. 덧붙여 말하지만 아무리 중증 환자라 해도이 단계에서 모두 반응을 나타냈다는 것을 미리 말씀드리오.”
삼월이 한쪽에 있는 의자를 끌어 당겼다.
의자에 앉아 오른쪽 다리를 구부려 올리고 좌측 다리는 바깥으로 약간 벌렸다. 그러자 검은 숲속에 잠겨 있는 여인의 샘이 보일 듯 말 듯 아슬아슬했다. 또한 자신의 양쪽 가슴을 손으로 받쳐 올리며 도발적인 자세를 취했다.
동천몽이 삼월의 자태를 휘둥그런 눈으로 보았다. 실로 아찔하기 이를데없는 자세이며 아무리 단호한 의지를 갖고 있는 사내일지라도 욕망을 분출시키도록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지금은 어떻소?”
의원이 눈을 빛내며 물었다.
동천몽은 아랫도리를 확인하지 않았다. 변화가 있으면 느낌으로 이미 알아차려지는 것이다.
“설마, 이 단계에서도?”
동천몽이 굳은 표정으로 신음했다.
“으음!”
“허어! 이런 괴이할 데가.”
삼월이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정말 반응이 없어요. 혹시 내 몸을 더 보고 싶어 있는데도 없다고 하는 거 아니에요?”
“궁금하면 직접 보시오. 와서.”
동천몽이 퉁명스럽게 말하자 삼월이 눈을 크게 떴다
“세상에 목석도 이 단계에서는 반응을 보이는데.”
의원이 삼월을 보며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는 수 없구나. 마지막 삼 단계를 펼치거라.”
삼월이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가슴을 쫙 편채 다가왔는데 양쪽가슴이 탄력있게 흔들거렸다. 동천몽의 면전에 이른 삼월이 내려다보았다. 그러더니 두 손을 뻗어 동천몽의 뺨을 어루만지며 조금씩 아래로 내려갔다.
스으으!
삼월의 손이 뺨에서 목을 타고 내려와 앞가슴을 더듬었다. 동천몽의 눈앞에서 삼월의 탐스런 가슴이 현란하게 덜렁거린다. 삼월의 길다란 손가락이 가슴을 더듬고 아랫배를 지나 급기야 아랫도리쪽으로 손을 뻗어갔다.
욱!
삼월이 어딜 만졌는지 동천몽이 움찔 하며 신음을 흘렸다. 그리고 더 이상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슥!스슷
삼월의 양손이 바빠졌다. 그러면서 동천몽의 얼굴을 살폈는데 여전히 무표정이다.
삼월이 인상을 쓰며 좀더 세게 거머쥐었다.
“아프오.”
동천몽이 짧게 말했다.
삼월이 허리를 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런 남자 처음이예요. 아무런 효과가 없어요. 여전히 꼼짝도 하지 않아요.”
그러면서 돌아가 옷을 걸치기 시작했다.
옷을 걸친 삼월이 의원을 향해 손을 뻗었다.
“검사비 주셔야죠.”
의원은 두말도 않고 품에서 은자 한냥을 꺼내 주었다.
“그럼 수고하세요.”
삼월이 꾸벅 인사를 하고 나가려다 말고 넋을 놓고 앉아 있는 동천몽을 돌아보았다.
“오빠, 혹시 그거아냐? 고자?”
동천몽이 버럭 소릴 질렀다.
“닥치거라. 재수 없게.”
“꼴에 성질은, 흥!”
탁!
문을 세차게 닫고 삼월이 나갔다.
삼월이 나가고 방안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의원이 뭔가 생각을 하는 듯 턱을 괴고 이마를 찌푸렸다.
동천몽은 얼굴은 흑빛이었고 시선에는 초점이 없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여자의 나신을 보는 것도 부족해 직접 만지작거리기까지 했는데도 일체의 반응이 없다는 것이 한 바탕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가끔 마차에 치여 불구가 되는 사람을 보았다. 그렇지만 자신은 마차에 치인적도 없고 그곳을 다친 적은 더욱 없었다. 아무리 지 난 날을 되돌아봐도 문제되는 사건이나 행동은 일체 없었다.
“다시 한 번 잘 생각해보시오. 혹시 허리를 다쳤다거나 아니면 마누라에게 시원찮다고 조롱당한 일이 있소?”
“왜 마누라에게 시원찮다고 조롱당하면 무반응을 보이오?”
“이따금 밤일 하나도 제대로 못한다는 마누라의 타박에 기능을 잃은 사람도 더러는 있소이다.”
“난 혼인을 하지 않은 몸이오.”
“하면 여자 친구로부터 그런 모욕을 당한 적 있으시오?”
“없소.”
“모욕을 당한 적이 없다는 거요. 아니면 여자 친구가 없다는 거요?”
“둘 다요.”
의원이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또다시 이마를 찡그렸고 동천몽이 물었다.
“이게 치료법의 다요?”
“아니오? 다른 몇 가지 방법이 있긴 하지만 가장 강력한 것이오.”
“다른 건 해보나 마나라는 얘기구려?”
“거 참.”
의원이 길게 한숨을 내쉬더니 정색했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으시오. 솔직히 공자의 기능상실에 대한 원인은 불분명하오. 그러나 오랜 의원 생활의 경험으로 볼 때 유일한 방법은 한가지 뿐이오.”
동천몽이 눈을 빛냈다.
“그래 뭐요?”
“화중동거(花中同居)요.”
동천몽의 눈이 커졌다.
“그 말은 여자들 속에서 생활하며 끊임없이 거시기에 자극을 주라는 말 아니오?”
“그 방법 말고는 현세에 치료법은 없소. 자화자찬 같지만 이 늙은이의 주특기는 남자의 아랫도리를 고치는 것이오. 그래서 그곳에 문제가 있는 환자들이 자주 찾아오지요. 일부는 고쳐준 것에 너무 고맙다며 지금까지 연락도 해오고 있고.”
동천몽은 침묵했다.
자신은 대법왕이었다. 활불이자 뭇 백성의 어버이인 자신이 여인들 속에 파묻혀 산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며 불가능하다.
의원은 계속 말했다.
“어쨌든 아직 젊기 때문에 가능성이 있다고 보오. 용기를 잃지 마시오. 그리고 오늘 치료비는 은자 닷냥이오.”
동천몽은 품을 뒤져 은자 닷냥을 꺼내주었다.
그리고 조용히 일어나 방을 나왔다. 어깨가 축 쳐져 걸어나가는 동천몽을 향해 의원이 한마디 덧붙였다.
“힘을 내시오. 고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중요하오.”
탁!
문이 닫혔다.
“쯧쯧! 새파랗게 젊은 놈이.”
문이 닫히자 기다렸다는 듯 의원은 혀를 찼다.
동천몽은 하염없이 걸었다. 어디 목적지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냥 걷고 싶었다. 주위는 이미 어두워지기 시작하고 있었고 점심부터 굶었는데도 배는 전혀 고프지 않았다.
“야 이 자식아 죽고 싶어 환장 했어. 안 비켜.”
등 뒤에서 마차를 끌던 마부가 버럭 소릴 질렀다. 하지만 동천몽은 전혀 듣지 못한 듯 걸었고 마차가 조심스럽게 비켜 지나가며 마부는 다시 욕설을 퍼부었다.
“길 한 가운데를 막고 가면 어떡해? 미친 놈 아냐?”
매서운 눈으로 마부가 노려보았지만 동천몽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걸었다.
어둠이 짙어오면서 관도는 완전히 정적에 파묻혔다. 이따금 지나가던 마차도 더 이상 찾아 볼 수 없었다.
털썩!
다리가 아팠으므로 동천몽은 길가 바위에 걸터 앉아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아랫도리를 열어 젖히고 살펴보았다. 여전히 힘없이 쳐져 있을 뿐이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은가루를 뿌려 놓은 듯 별들이 반짝인다. 먹먹한 시선으로 밤하늘의 별들을 올려다보는 동천몽의 입에서는 한숨이 끊이지 않았다.
문득 눈앞으로 부친의 얼굴이 떠올랐다.
언젠가 부친은 취중에 말했다. 시체가 아닌 한 살아 있는 동안만큼은 어떻게 해서라도 구실을 해야 사내는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고.
오죽했으면 새벽에 기지개를 켜지 못한 사내에게는 금전거래도 하지 말라고 했겠는가.
동천몽은 한숨과 함께 다시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 다시 훑어보고 되새겨 봐도 사고를 당하거나 문제가 생길만한 일을 겪지 않았다. 가장 가능성이 있다면 무상탄독의 폭발인데 아랫도리만큼은 확실하게 이상이 없었다.
백쾌섬과 삼천목이란 자의 검에도 그곳만큼은 맞지 않았고 만강수 등에 업혀 천포지각을 향할 때는 더욱 아무런 일도 생기지 않았다.
“흐흐흐! 도대체 이거 몇 일만에 걸린 고기냐?”
“반갑다. 친구야.”
음산한 목소리에 동천몽이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조그만 고개 길을 넘어가고 있었는데 다섯 명의 사내들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