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법왕-6화 (6/71)

제6장 걸병광우철포공

동천몽은 뭔지 모르지만 일단 알았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두 사람이 다시 한 번 크게 절을 올리더니 몸을 일으켜 세웠다. 동불이 자신이 짊어지고 온 포대자루에서 쇠몽둥이 한 개를 꺼냈다.

카악!

퉤!

손바닥에 가래침을 뱉더니 쇠몽둥이를 힘껏 움켜 쥐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죽어도 고의가 아닙니다. 또한 주의할 것은 절대 반항하거나 피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경우 걸병광우철포공은 얻을 수 없을 것입니다.”

뭔가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것을 그제 서야 알아차린 동천몽이 이마를 찡그렸다.

“알겠는데 그 몽둥이는 왜 그렇게 힘껏 거머쥐고 그러느냐?”

“백문이불여…”

마지막까지 말을 하지 못하고 서불을 보자 그가 대답했다.

“일견.”

“직접 보면 압니다.”

말이 끝나자마자 동불이 손에 쥐어 있던 쇠몽둥이가 허공을 갈랐다.

동천몽이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뭐…뭐하는 것이냐”

빠아악!

“으악!”

동천몽이 단 한방에 나가 떨어졌다.

“아이고…나 죽네.”

바닥을 나뒹군 동천몽이 벌떡 일어나 동불을 보고 씹어 뱉듯 말했다.

“이런 개자식이 너 미쳤냐? 감히 날 쳐.”

동불이 다시 허릴 숙였다.

“큭큭큭! 용서 하시옵소서. 걸병광우철포공을 얻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습니다. 결단코 고의가 아니라고 했지 않사옵니까?”

“그…그럼 뭐냐? 걸병광우철포공이라는 것이 날 때리는 것이란 말이냐?”

“허…허헝! 그…그러하옵니다. 앞으로 대법왕님께서는 여기 있는 철병십타가 모조리 닳고 부숴질 때까지 맞고 또 맞을 것입니다. 상당한 고통이 뒤따르겠지만 열매는 아주 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절대 소…소승을 미워하지 말아주십시오.”

동천몽이 입을 떠억 벌렸다.

철병십타는 모두 쇠로 만들어져 있었다. 저 열 개의 병기가 닳고 부숴질 때까지 맞아야 한다는 말에 눈을 휘둥그레 떴다.

“무…무슨 무공이기에 사람을 때린단 말이냐?”

“맷집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

“인간의 육체는 신기하여 맞을수록 단단해집니다. 저 열 개의 병기가 모두 닳고 나면 대법왕님의 몸은 어떤 병기도 파고들지 못할 것입니다.”

동천몽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세상에서 가장 큰 고통이 두들겨 맞는 것이다. 그것도 함께 싸우며 치고 박는 것이면 몰라도 일방적으로, 그것도 쇠몽둥이로 맞아야 한다는 말에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이름하여 무림에서는 금종조 또는 철포삼이라고 하는데 이 걸병광우철포공은 그런것들과 차원이 다르지요. 그럼 다시 시작하겠나이다. 이…이 몸 나중에 실컷 때려 주십시오.”

휘이익!

“자암깐!”

동천몽이 소리쳐 제지를 시켰지만 소용이 없었다.

빠아악!

“으아아악!”

동천몽이 힘없이 무너졌고 동불이 다가오며 큰소리로 외쳐 말했다.

“어흥허응! 이 나쁜 놈 맞아 죽을 각오로 대법왕님을 때리겠나이다. 또다시 강조하지만 절대 때리고 싶어서 때리는 것이 아님을 헤아려 주소서.”

퍽!

퍼퍼퍽!

쓰러진 동천몽의 몸을 무자비하게 때리기 시작했다. 동천몽은 이리저리 피하며 죽는다고 비명을 질렀다.

“멈춰. 개자식아. 나 이딴 것 안 배워. 빨리 안 멈춰. 대법왕인 날 우습게 보는 거야. 아이고.”

동불은 몽둥이질을 하며 통곡하듯 말했다.

“흐흐흑! 아이고 다시 말씀드리지만 절대 때리고 싶어 때리는 것이 아닙니다. 모두가 대법왕님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조치이니 자비를…”

“자비고 개비고 그만 해…으악.”

“아이고 우리 대법왕님 죽네…아미타불.”

급기야 동불은 통곡을 하며 때렸다.

“대법왕님을 때려야 하는 소승의 가슴은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지옵니다. 아아…미타불. 으어어엉!”

“이런 개자식들이 진짜…악…컥…윽!”

빡!

퍼어어---억!

꽈직!

소나기처럼 몽둥이세례가 가해졌다. 처음에는 악착같이 피하던 동천몽도 이제 기력을 잃은 듯 몽둥이에 몸을 맡겼다. 대신 입으로는 쉴 사이 없이 욕을 해댔다.

“모…모두 죽여 버릴거야. 이런 상노무새끼들…나 동천몽을 우습게 봤다 이거지. 이런 사기꾼 새끼들.”

뚝!

동천몽을 때리던 동불이 동작을 멈추었다.

그러자 뒤에 서 있던 서불이 다가와 쇠몽둥이를 넘겨 받았다.

“대법왕님이시여 이 서불을 용서 하소서. 소승 또한 절대 미워서 때린다거나 개인적으로 어떤 감정이 있어서 때리는 것이 아니옵니다. 모든 것은 오로지 대법왕님을 위하고 본궁을 위한 충성심의 발로이니 부디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그럼 지금부터 때립니다.”

“그….그만.”

빠아아악!

공기를 가르며 몽둥이가 옆구리를 찍었다.

“우왁!”

동천몽의 몸이 활처럼 휘어졌고 서불의 몽둥이가 작렬하기 시작했다.

동천몽은 또다시 온갖 욕설을 다 뱉었다. 그러나 서불의 몽둥이질은 결코 멈추거나 흔들리지 않았다.

한데 한 가지 놀라운 일이 있었다.

쇠몽둥이로 두들겨 맞는데도 동천몽의 몸에서는 단 한 방울의 피도 흘러나오지 않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몽둥이질을 피하기 위해 이리저리 뒹구는 동천몽의 행동을 보면 뼈 또한 부러지거나 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

빠악!

퍽!

두 사람은 지칠 만하면 서로 번갈아 때리기 시작했다.

욕설을 퍼부으며 떠들던 동천몽이 지친듯 축 늘어져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두 사람의 몽둥이질은 쉬지 않고 계속 되었다.

그날 저녁 석굴로 천장금왕이 들어섰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동천몽을 보며 숙연한 표정을 지었다.

‘아미타불! 참으셔야 합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참으셔야 합니다.’

천장금왕이 온 몸에 땀이 흥건히 젖은 쌍거불을 돌아보았다.

천장금왕의 시선이 닿자 움찔 놀랐다.

“소…소승들이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아마 우린 지옥에 떨어질 것입니다.”

천장금왕이 말했다.

“아니다. 너희들은 응당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 하지만 사사로운 직위와 정에 연연하여 봐주거나 대충해서는 안된다. 대법왕님이 똑바로 서야 본궁이 선다. 혼신을 다해 때리거라. 그리고 약속대로 석 달 안에 걸병광우철포공을 완성시켜야 한다.”

“아미타불.”

“알겠사옵니다.”

“주…죽여 버릴 거야. 네놈들 모두 죽여 버릴 거야. 내가 네놈들을 살려두면 개새끼다. 으으으!”

동천몽이 꿈틀대며 중얼거렸다.

“내…내가 바보인줄 알…아. 이렇게 사람을 때리며 수련…하는 무공이 있다는 말은 금시초…문이다. 느이들 사기집…단이지. 정체를 밝혀…라.”

동천몽이 반쯤 상체를 일으켜 세우더니 세 사람을 쏘아보았다. 두 눈에서 야수와 같은 살기가 쏟아졌고 세 사람은 흠칫했다.

“주…죽여 버릴 거야.”

천장금왕이 침통한 표정으로 말했다.

“시작은 쓰지만 끝은 달 것입니다. 조금만 참아 주십시오.”

“닥쳐. 이 후레자식…아.”

천장금왕이 길게 한숨을 내쉬더니 포권의 예를 취하고 석굴을 나갔다.

“무…물을 줘. 목이 마르다.”

동불이 가로저었다.

“안됩니다. 수련 중에 절대 물은 드시면 안됩니다.”

“입…닥치…고 물 가져…와.”

“음식은 가능하지만 물 만큼은 절대 안됩니다.”

“이 새끼가.”

휙!

가까스로 일어나 주먹을 날렸다.

빡!

동불에 배에 주먹이 격중되었지만 오히려 동천몽이 나가 떨어졌다.

바닥에 주저앉은 동천몽이 눈을 크게 뜨고 자신을 바라보는 동불을 쏘아보았다.

한참 동안 동불을 쳐다보던 동천몽의 눈이 빛을 뿌렸다.

‘이건 아니다.’

지금까지 겪은 바와 여러 정황에 비춰 이들은 자신을 진짜로 죽은 전 대법왕의 환생자로 확신하고 있었다. 그건 즉 지금 자신을 때리는 이 모든 행위가 어떤 사심이나 부당한 목적이 개입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작금의 모든 것은 진실성이 가득 담겨 있는 것이다. 정말로 자신을 강한 대법왕으로 만들기 위한 행동인 것이다. 아프고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지만 절대 다른 음모나 계략은 없다. 그러므로 자신의 소원인 빨리 이곳을 벗어나려면 악착같이 버티는 것 밖에 달리 방법이 없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그가 깨달은 것이 있었다. 보통 사람 같았으면 쇠몽둥이로 그만큼 맞았다면 죽었어야 정상이었다. 그런데 아프긴 하지만 목숨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그건 곧 철저한 선의임이 분명했다.

‘좋다. 그렇다면….’

다음날부터 동천몽의 입은 굳게 닫혀 있었다. 단 한마디의 비명도 내지르지 않았다. 두 사람이 때리는 쇠몽둥이를 고스란히 맞으며 참고 또 참았다. 그리고 석 달이 어서 빨리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시간은 거꾸로 매달아도 간댔지.’

동천몽은 피가 나도록 이를 물었다.

만경의 오른발이 일목의 정강이에 부딪혔다. 정강이뼈가 불에 데인 것처럼 화끈거리고 아팠지만 일목은 이를 악물고 참았다. 눈앞으로 노랗고 빨갛고 파란 온갖 별들이 떠올랐다.

“벌써 보름이 지났는데 그놈의 흔적을 못 찾았다는게 말이 되느냐? 어엉!”

빠박!

또다시 정강이를 걷어찼다.

일목의 하나 뿐인 눈이 격렬하게 꿈틀 거렸다. 맞은 곳을 또 맞은 것처럼 아픈 것은 없다. 조금 전 맞은 정강이에 또다시 만경의 발이 꽂힌 것이다.

너무 아파 눈물이 나오려고 했지만 사내가 흘려서는 안될 것 중 하나눈물이라고 어머니는 말했다.

“찾아라. 당장 찾아 죽여란 말이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만경이 버럭 소릴 질렀다.

“똑바로 해 이놈아.”

“네에!”

일목 또한 큰 소리로 대답했다

멍청하긴 해도 동물적인 감각을 갖고 있다. 그런데도 일목의 감각으로 숨어 있는 장소를 아직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그 만큼 사대법왕측 또한 신중히 대처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더욱 빨리 서둘러야 했다.

십이법회를 이용해 동천몽의 존재를 확인하려는 자신의 계획은 성공했다. 하나 그에 못지 않은 실(失)도 있었다. 자신을 따르던 일부 원로들이 동천몽을 보고 돌아선 것이다. 자신이 보기에도 동천몽은 확실히 전 대법왕의 환생자임이 분명했다. 그러나 사제와 사실에 이어 사손에게까지 대법왕 자리를 넘겨줄 수는 없었다.

“놈의 시체를 갖고 오너라.”

“기대해 주십시오.”

일목이 큰 소리로 대답하고 밖으로 사라졌다.

얼마 전까지 자신을 추종하는 제자들이 과반 가까이 되었다. 그런데 동천몽이 모습을 드러낸 이후 썰물처럼 흩어지고 떨어져 나갔다. 죽였는지 죽이지 못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불러냈는데 그것이 오히려 자신에게는 커다란 악수로 등장할 줄이야.

‘죽일!’

홍산을 비롯해 대설산에는 수백 수천 개의 자연동굴이 있다. 그 많은 동굴 어딘가에 동천몽을 숨겨놓고 무예를 가르치고 있을 것이었다. 모두를 뒤져서라도 찾아내야 한다.

오늘도 동불과 서불의 몽둥이질은 계속되었다. 피 한 방울 흘러나오지 않고 신체에 전혀 손상이 없다는 것이 동천몽은 몹시 신기했다.

뚝!

한참을 때리던 몽둥이질이 갑자기 멈췄다.

죽은 듯 축 늘어져 있던 동천몽이 장대비처럼 쏟아지던 몽둥이질이 멈추자 꿈틀 거리며 고개를 쳐들었다.

팟!

동천몽의 눈이 기광을 뿌렸다.

놀랍게도 지난 보름동안 자신을 두들기던 쇠몽둥이가 부러져 있었다.

“왜…왜 부러진 것이냐?”

동불이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철장(鐵杖)이 부러진 것은 몸의 저항력이 철장의 힘보다 강해졌다는 뜻이옵니다. 이로써 제 일단계인 철장수련은 끝났사옵니다.”

동천몽은 자신의 손으로 피부를 만져보았다.

피부는 물렁거렸고 여전히 예전과 큰 차이가 없었다.

그걸 보며 동물이 입을 열어 말했다.

“다른 외문무공과 달리 걸병광우철포공은 경지가 높아질수록 피부가 부드러워지고 윤기가 흐르옵니다. 그럼 지금부터 제 이 단계수련인 검타(劍打) 수련을 시작하겠사옵니다.”

동불이 이번에는 커다란 검을 뽑아 들었다.

금방이라도 몸을 두 동강 낼 듯 검신에서는 무시무시한 섬광이 뿜어져 나왔다.

“그…그 것으로 날 찌른단 말이냐?”

몽둥이는 둥글기 때문에 단순히 충격만 주었지만 검은 다르다. 날이 서 있기 때문에 피부가 잘려지고 피가 흐를 것은 불문가지.

“하오면 지금부터 검타 수련을 시작 하겠나이다. 또다시 말씀드리지만 절대 고의가.”

동천몽이 버럭 소릴 질렀다.

“알았어. 이제 그 소리 그만해.”

동불이 처음 시작할 때처럼 깍듯하게 허리를 구부려 예를 취하더니 검을 세워들었다.

동천몽의 두 눈이 심하게 흔들거렸다. 저 거구가 내려치면 자신의 몸은 단번에 두 조각 날 것 같았다. 하지만 결코 죽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품으며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하고 눈을 질금 감아버렸다.

휙!

검이 떨어져 내렸다.

양손으로 검의 손잡이를 쥐고 내려쳤는데 파공성에서 가공할 힘이 느껴졌다.

푸우욱!

예리한 검 날이 동천몽의 몸에 찍히듯 박혔다.

“크후훅!”

동천몽이 비명을 지르며 얼른 눈을 뜨고 자신의 아랫배를 내려다보았다.

화악!

검이 맞은 자리에 가는 혈선이 나타나 있었다. 피가 베어 나오기 직전의 모습이었다. 건드리기만 하면 피가 샘물처럼 솟아나올 것 같았다.

파악!

동불의 검타는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붉은 혈선만 생길 뿐 피는 흘러나오지 않았다. 동천몽은 그 이유가 지난 보름동안 쇠몽둥이로 피부가 다져진 탓이라고 여겼다.

콰---콰콰콱!

삽시간에 동천몽은 몸은 붉게 변해 있었다. 슬쩍 건드리기만 해도 핏물이 왕창 쏟아질듯 달아올랐다. 그러나 동불과 서불은 돌아가며 검을 내려쳤고 그 때마다 동천몽의 비명이 석굴을 울렸다.

이른 아침의 전각은 옅은 안개 속에 잠겨 있었다. 단촐한 전각의 용머리에 두 마리의 까치가 나란히 앉아 짹짹거리며 시끄럽게 떠들다 갑자기 푸드득 소리를 내며 뒷산으로 날아가 버렸다.

전각 앞마당에 한 사내가 나타났다.

앞가슴에 적오(赤烏)가 선명하게 새겨진 백의를 걸친 당당한 체구의 체격의 사내는 동천비였다. 마당에 잡초가 수북한 것이 주인이 오랫동안 집을 비웠음을 알 수 있었는데 동천비의 고개가 들려졌다.

‘화생각(火生閣)’

피식!

동천비의 입 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불처럼 화끈하게 살다 죽겠다고 동천몽이 직접 쓴 현판이다. 그래서 빼어난 필치를 자랑하는 여타 현판과 달리 삐뚤빼뚤했다.

‘미친 놈!’

차가운 중얼거림을 흘리며 동천비는 천천히 전각을 향해 다가섰다. 신발은 신은 체 방안으로 들어선 동천비는 텅 빈 방안을 천천히 돌아보았다.

팟!

방안을 살피던 동천비의 두 눈이 예리한 광채를 발했다. 주인이 실종된 지 오래되었는데도 방안이 깨끗했다. 누군가 날마다 청소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부자리도 단정하게 개어져 있었고 바닥 또한 따뜻한 것을 보면 어제 밤 까지 누군가 불을 지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동천비가 방안의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있을 때 돌연 밖으로부터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에 누구냐? 설마 몽이가 왔단 말이냐?”

약간 흥분에 젖은 목소리와 더불어 벌 컹 문이 열리며 한 여인이 들어섰다. 오십 가량의 중년의 여인이었는데 눈가에 잡힌 몇 개의 주름만 없앤다면 이십대의 여인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빼어난 용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너…너는 천비 아니냐?”

중년여인이 흠칫했는데 물결처럼 두려움 한줄기가 얼굴을 가로질러 사라졌다.

동천비는 중년여인을 날카롭게 쳐다보았다.

중년여인은 천상각의 안주인 능씨였다. 동오룡에게는 모두 두 명의 부인이 있었다. 첫 부인은 십육 년 전 병으로 타계했고 지금의 능씨는 두 번째 부인인 것이다. 그래서 동천몽을 제외한 나머지 사 남매는 모두 전 부인이 낳은 자식들이었다.

“네….네가 여긴 어인일로?”

“동생의 방에 형이 찾아오면 안 되는 것입니까?”

“그…그렇지는 않지만.”

그때 두 명의 시녀가 밥상을 들고 들어왔다.

능씨가 두 시녀를 향해 말했다.

“저쪽으로 놓거라.”

능씨 부인의 지시에 따라 두 시녀는 밥상을 아랫목에 놓았다. 밥상을 바라보는 동천비의 눈이 이채를 발했다. 화려한 반찬들이 즐비했는데 그중 동천비의 시선을 끄는 것은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곽탕(藿湯)이었다.

시녀들이 물러나고 방안에는 동천비와 능씨 부인 단 두 사람만이 남아 있었다.

“뭡니까? 저건?”

능씨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벼…별것 아니다. 사실 오늘이 천몽 그 아이의 생일이다. 그래서.”

능씨부인은 제대로 동천비와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고 안절부절 했다.

생일이라는 말에 동천비의 눈이 커졌다.

“오늘이 막내 생일이란 말입니까?”

“주…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지만 어미로써 그냥 지나칠 수가 없더구나.”

“이런 소자에게 귀띔이라도 하시지 그랬사옵니까? 그러고 보니 항상 이맘때 녀석의 생일이었죠.”

동천비가 눈을 크게 뜨며 고개를 끄덕였다.

“형이 되어 동생의 생일도 까맣게 있고 있었다니 송구합니다. 용서 하십시오.”

능씨가 약간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

“아…아니다. 괜찮느니라. 워낙 바쁜 너 아니냐?”

“도대체 어딜 가서 이렇게 이 형의 애간장을 태우는 거야. 몹쓸 놈 같으니.”

동천비의 얼굴에 동천몽을 염려하는 낯빛이 가득했다.

동천비가 생일상을 바라보고 있는 능씨를 향해 말했다.

“너무 염려 마십시오. 워낙 똘똘한 녀석이니 별 탈 없을 것입니다. 소자 또한 나름대로 열심히 천몽을 찾아보고 있으니 머잖아 좋은 소식 올 것입니다.”

능시부인의 표정이 조금 환해졌다.

“고…고맙구나.”

“고맙다뇨? 진즉부터 찾아봤어야 했는데 워낙 바쁘다보니 신경을 쓰지 못했습니다. 책임지고 막내를 어머니 곁에 데려다 줄 테니 마음 놓으십시오.”

능씨가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고마움이 깊이 베인 표정을 지은 능씨 부인이 차려진 생일상을 쳐다보았다. 한동안 물끄러미 밥상을 쳐다보던 능씨 부인의 두 눈에 갑자기 이슬이 맺혔다.

주르륵!

끝내 눈가에 맺힌 물방울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능씨 부인의 눈물을 발견한 동천비의 표정은 무심했다. 아니 언뜻 경멸의 표정이 나타났다.

한참 속으로 흐느끼던 능씨 부인이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며 돌아섰다. 능씨 부인이 문턱을 넘어 갈 때 돌연 동천비가 조용한 목소리로 불렀다.

“어머니.”

흠칫!

도둑질이라도 하다 들킨 사람마냥 능씨 부인이 깜짝 놀랐다.

자신이 시집왔을 때 동천비의 나이는 열 다섯이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의 입에서 단 한 번도 어머니라는 소리는 흘러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처음으로 어머니라는 소리를 들은 것이다.

“어머니께서도 아버님의 결정이 잘된 것이라고 생각 하십니까?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는 천몽이에게 객점을 넘긴 것 말입니다.”

부르르!

능씨부인의 몸이 가볍게 떨렸다.

등을 돌리고 서 있는 능씨부인을 향해 동천비는 차갑게 말했다.

“아시겠지만 객점은 본가의 전장입니다. 다른 업종에 비해 규모는 크지 않지만 가장 많은 현금이 도는 관계로 아주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지요. 그런 중요한 객점을 그놈에게 넘기겠다는 아버지의 결정을 옳다고 보느냐구요?”

능시가 등을 돌린 체 더듬거렸다.

“나…난 잘 모르겠다. 너희 아버지가 하는 일이라.”

“어머니께서 좀 말려주십시오. 천몽이에게 객점을 넘기겠다는 아버님의 뜻을 돌려 달라는 것입니다. 객점은 제가 맡아야 합니다.”

능씨의 몸이 빳빳하게 굳었다.

그런 능씨를 보며 동천비가 다그치듯 언성을 높였다.

“왜 아무런 말씀이 없으십니까?”

“나…난 그냥.”

“어머님만을 믿겠습니다.”

한 마디를 남기고 동천비가 능씨 부인을 지나 밖으로 나갔다. 걸어가는 동천비를 쳐다보는 능씨부인의 얼굴에 식은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걸병광우철포공을 수련한지 두 달이 지나고 있었다. 어느새 철장을 비롯해 검과 칼 쇠사슬 활 채찍까지 끊어졌다. 남은 타병은 이제 네 가지였다. 이제는 두들겨 맞아도 자국 따위는 생기지 않았다. 하지만 통증 은 전혀 변함이 없었다. 그래서 그 이유를 쌍거불에게 물었다. 피부가 강해지면 통증까지 느끼지 않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그런데 돌아온 대답은 아주 간단했다. 걸병광우철포공은 피부의 저항성을 강하게 만들어 외부로부터 전해지는 공격을 막는 것이지 감각까지 죽이는 무공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통증은 엄연히 살아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느껴야 한다는 것이었다.

동불이 도끼를 쥐었다.

도끼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지금 동불이 거머쥔 것은 도끼 중 가장 큰 월(鉞)이었다.

흠칫!

동천몽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도끼가 너무 큰데다 날이 어찌나 날카롭게 선지 푸르스름한 광채가 뿜어져 나왔기 때문이다. 철타십병 중 가장 크고 무시무시했다.

이미 맞은 만큼 맞아 두려움에 대한 면역이 생겼는데도 커다란 도끼를 보자 더럭 겁이 났다.

“잠깐!”

내려치려는 동불을 향해 외쳤다.

동불이 서둘러 도끼를 멈췄다. 동천몽이 침을 삼키며 동불에 손에 들린 도끼를 보며 말했다.

“나…날이 너무 섰지 않느냐?”

아닌 게 아니라 도끼의 날은 하얗다 못해 시퍼렇게 서 있었다.

“이…이것 봐라.”

동천몽이 바닥에 떨어진 종이조각 한 개를 도끼날에 갖다 대자 깨끗하게 잘려나갔다.

동천몽이 더욱 소름이 끼치는 듯 몸을 떨며 더듬거렸다.

“나…날을 조금 무디게 하여.”

“용서하십시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도끼가 떨어졌다.

“개…개자식아 찍으면 찍는다고 말을 해야지.”

빠악!

“크아아아!”

둔탁한 소리와 더불어 동천몽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흘러나왔다. 동천몽은 바닥에 쓰러져 있었는데 금방이라도 곧 죽어갈 사람처럼 온 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눈앞이 캄캄 했고 호흡이 뜻대로 이뤄지지 않았으며 온 몸이 벼락을 맞은 뜻 화끈했다. 예상대로 도끼로부터 전해지는 충격은 이전의 여타 병기와는 차원이 달랐다.

“기…기다려봐.”

손을 쳐들며 잠시 멈출 것을 요청했지만 동불의 도끼는 무자비하게 떨어졌다.

콰콱!

“컥!”

반쯤 들려진 고개가 바닥에 쳐 박히며 개구리처럼 또다시 동천몽의 몸이 떨렸다. 동불은 동천몽의 반응에는 전혀 주목하지 않았다. 그는 오로지 있는 힘을 다해 도끼를 휘두를 뿐이었다.

동불의 도끼가 갈수록 빨라졌고 그의 입에서도 거친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동천몽의 몸은 움직일 힘도 없는 듯 축 쳐져 있었고 서불이 도끼를 넘겨받아 내려치기 시작했다.

동불은 한쪽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목이 마른 듯 떠다 놓은 냉수를 벌컥벌컥 마시며 바닥에 늘어져 있는 동천몽을 쳐다보았다. 그러면서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쌍거불의 임무는 딱 한 가지뿐이었다. 오직 다음 대법왕에게 가르칠 걸병광우철포공의 수련법을 배우고 익히는 것이었다. 올해로 두 사람의 나이는 쉰 하나였다. 아홉 살에 궁에 들어와 열다섯 부터 새로 환생하게 될 다음 대 대법왕을 위해 오로지 걸병광우철포공에 대한 가르침만을 받았고 연습했다. 동천몽에게 걸병광우철포공을 가르치면 곧바로 차기 대법왕에게 가르치게 될 두 명의 쌍거불을 제자로 거두어 가르친다.

사실 겉보기에는 아무 곳이나 마구잡이로 두들기는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았다. 철저히 걸병광우철포공의 구결에 따라 내려쳐야 하며 제대로 하기만 하면 뼈가 부러지거나 살이 찢어지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심혈을 기울여 지난 삼십 오년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연습을 했다.

빡--빠빠박!

서불이 씩씩거리며 도끼를 내려치고 있었다. 지친 듯 보였으므로 교대해 주어야 했다.

천장금왕이 가파른 산길을 올라갔다. 나무라고는 찾아 볼 수도 없고 온통 붉은 암벽으로 이뤄져 있는 홍산은 대설산의 지류지만 높이가 무려 수 천장에 달할 만큼 높다. 멀리서 보면 산전체가 불길에 휩싸여 있는 듯 보여 홍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특히 뒤쪽의 대설산의 흰 눈과 비교가 되면서 산은 더욱 붉게 보인다.

중턱쯤 올라선 천장금왕이 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저 밑으로 포달랍궁의 웅장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은 천잠금왕이 산허리를 돌아갔는데 얼마가지 않아 한 개의 동굴이 입을 떡 벌리고 있었다.

바로 동천몽으로 분장한 천지철왕이 은신해 있는 곳이었다.

뚝!

동굴 입구를 막 들어서던 천장금왕의 걸음이 세워졌고 코가 벌름 거렸다. 동굴 안으로부터 피 냄새가 맡아진 것이다.

휙!

천장금왕이 단번에 몸을 날려 쏘아 들어갔다.

동굴은 십여 장쯤 좁게 이어지다 상당히 넓은광장 형태로 이뤄져 있었는데 바닥에 내려선 천장금왕이 소스라칠 듯 놀랐다.

“사…사제!”

동천몽으로 분장한 천지철왕이 피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누군가와 치열한 싸움을 벌인 듯 동굴 천장에 매달려 있던 수많은 종유석들이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고 승포 자락도 갈기갈기 찢겨져 있었다.

다행히 아직 숨이 완전히 끊어지지 않은 듯 미세하나마 심장이 뛰고 있었다.

척!

곧바로 천지철왕을 등에 업은 천장금왕의 신형이 동굴 밖을 향해 몸을 날렸다.

퍼어억!

일목이 빙굴에 들어서자마자 엎어졌다. 일목의 몸은 완전히 피투성이었고 가슴에 갈비뼈가 드러날 만큼 깊이 패여 있었다. 숨을 들이 쉴 때마다 패인 가슴으로부터 샘물처럼 피가 흘러내렸다.

파팍!

만경이 재빠르게 혈도를 눌러 지혈을 시켰다.

이윽고 안쪽으로 들어가더니 조그만 선반 석 위에 놓인 약병을 가져와 마개를 열고 안에 든 가루를 일목의 상처에 뿌렸다. 가루약이 상처에 닿은 순간 흰 연기가 피어나더니 삽시간에 살 속으로 파고들었다.

상처부위에 가루를 뿌린 이후 일목을 땅을 보도록 엎드린 후 등 뒤 명문혈에 대고 내기를 주입하기 시작했다. 만경의 손바닥을 통해 뜨거운 내기가 일목의 몸속으로 들어갔고 하얗던 얼굴이 조금씩 혈색을 띄기 시작했다.

내기 주입은 한동안 반각가량 계속 되었고 우왁 하는 소리와 함께 엎드린 일목이 바닥에 검붉은 피를 토했다. 그 제서야 장심을 통해 내기를 주입하던 만경의 동작이 멈췄다.

일목이 꿈틀거리더니 상체를 일으켜 세운 후 주위를 휘둘러보다 결가부좌하고 있는 만경을 발견하고 화들짝 일어나 무릎을 꿇었다.

“주…주인.”

만경이 날카로운 시선으로 물었다.

“어찌된 일이냐?”

“소…속았사옵니다. 놈은 동천몽이 아니라 바로 천지철왕이었습니다.”

“뭣이? 정말이더냐?”

“예!”

만경이 이제야 알겠다는 듯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일목이 왜 이제야 이렇게 다쳤는지 이해가 된 것이었다. 처음 일목이 빙굴 입구에 들어오자마자 의식을 잃었을 때 무척 놀랐다. 일목의 능력을 누구 보다 잘 아는 자신이었기 때문에 그의 부상은 충격이었다. 순간적으로 시간이 너무 이르다는 것은 알았지만 동천몽이 완성 되었을지도 모른 다는 우려였다.

포달랍궁의 대법왕이 익히는 무공은 누구도 적수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일목에게 중상을 입힐 고수라면 대법왕 밖에 없다고 여긴 것이다. 그런데 그의 말을 듣고 보니 수긍이 갔다. 사대법왕 중 한 사람이라면 일목에게 부상을 입힐 수는 있었다. 물론 상대는 더 많이 다쳤을 것이다.

“쉬어라!”

일목의 상처는 깊었다. 하루 이틀 쉬어가지고는 나을 정도가 아니었다. 일목이 동굴 안쪽으로 들어가고 만경의 입술을 비집고 나직한 불호가 흘러나왔다.

직접 나설 수도 있지만 자신의 무공은 노출되어 있었다. 설혹 대법왕의 환생자를 죽인다고 해도 금방 자신의 짓임이 드러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제자들의 지지는 더욱 멀어진다. 자신을 따르던 사람들까지 등을 돌릴 수 있었다. 그래서 자신이 거둔 일목을 동원한 것이었다.

운기조식에 빠져든 일목을 바라보는 만경의 시선이 강렬한 빛을 뿌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이라고는 한 가지 뿐이었다.

동불의 눈에 한 자루 낫이 들려 있었다. 일반 농사에 이용되는 낫보다 손잡이가 길었고 날의 폭이 좁았다. 비록 농기구중 하나이지만 낫은 어떤 병기보다 상대에게 주는 위압감이 크다.

이미 철타십병 중 아홉 개를 모두 부러뜨렸지만 낫을 보는 동천몽의 눈빛이 흔들렸다. 금방이라도 자신의 목을 베어 버릴 듯 시퍼런 광채가 눈을 쏘았다

“그…그것은 어떻게 쓰느냐?”

동불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했다.

“낫이 뭡니까? 농작물이나 풀을 벨 때 쓰는 기구 아닌지요.”

“설마 그것으로 날 베겠다는 말이냐?”

“예!”

동천몽이 움찔 몸을 떨었다.

설마 베어지지는 않겠지만 등골이 서늘했다.

“베는 병기는 많습니다. 검으로도 벨 수 있고 칼로도 벨 수 있지요. 그러나 낫보다 베는데 더 유익한 병기는 없지요. 같은 힘이라면 낫이 훨씬 물체를 잘 벱니다.”

“으응…!”

“지금부터 대법왕님을 저와 서불이 벨 것입니다. 물론 아홉 개의 병기를 모두 부러뜨린 몸이기 때문에 베어지지는 않겠지만 무척 아플 것입니다. 두들기는 철장이나 다른 병기와 달리 베어지지 않는 아픔이야 말로 상상할 수 없는 고통입니다.”

차라리 베어지면 고통은 덜하다. 오히려 베어지지 않아 뜯기는 것이 더욱 아픈 것이다. 동천몽의 표정이 약간 파래졌다.

“하지만 너무 겁먹을 것은 없습니다. 이제 마지막이므로 힘을 내십시오. 대법왕이시여. 또다시 강조 하지만 저…절대 고의가 아님을.”

“시끄러.”

동불이 낫을 쳐들었다. 푸른 섬광이 뿜어져 나온 낫을 올려다보던 동천몽이 왼손을 들어 올리며 제지했다.

“조금만 기다려라. 조금만.”

동천몽이 길게 심호흡을 했다. 뭐든지 닿으면 베고 말 것 같은 섬뜩함이 등줄기를 적셨다.

동천몽이 길게 숨을 들이 마신 후 눈을 감고 조용히 중얼거렸다.

‘난 할 수 있다!’

이를 악물고 눈을 뜬 동천몽이 힘차게 외쳤다.

“베라 씨벌.”

낫을 동천몽을 막 베어가려던 동불이 멈췄다. 귓가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천장금왕이 굳은 신색으로 동굴을 들어서고 있었다.

“그…금왕님 아니시옵니까?”

동불과 서불이 잽싸게 한쪽으로 도열하여 예를 취했고 동천몽은 눈을 떴다. 천장금왕의 굳은 얼굴을 보며 동천몽은 무슨 좋지 않은 일이 발생했음을 직감했다.

“막내사제가 당했사옵니다.”

“다…당하다니?”

“지금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습니다.”

“천지철왕이 말이오?”

천장금왕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게 정말입니까? 감히 누가 막내 법왕님을 죽일 수가?”

동불과 서불이 기겁하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자신들이 아는 사대법왕의 무공은 인간의 경지를 벗어나 있었다. 천하에 그들의 적수는 몇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두 사람의 확신이었는데 천지철왕이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고 하자 놀란 것이다.

“서둘러야겠다.”

동불과 서불은 무슨 뜻인지 알아차렸다. 걸병광우철포공을 최대한 단축시키라는 의미였다. 두 사람은 사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깨닫고 곧바로 동천몽을 베기 시작했고 천장금왕은 비명을 지르며 나뒹구는 동천몽을 깊은 눈으로 보고 있었다.

삼 개월을 예정했는데 두 달 보름 만에 걸병광우철포공이 끝났다. 포달랍궁 사상 가장 빠른 기록이 반년이라고 했는데 동천몽은 거의 두 배를 단축시킨 것이다. 이런 추세로 나간다면 예상보다 훨씬 동천몽의 무예를 완성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천장금왕은 생각했다.

“이미 심법과 내공은 얻으셨습니다. 또한 걸병광우철포공까지 얻어 모든 기초는 완벽해졌습니다. 앞으로는 본격적인 초식 연마에 들어가실 것입니다. 국화공주민박석백유로 인해 대법왕님의 내공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습니다. 불사심법 또한 아직은 부족하지만 계속 수련을 하시면 죽지 않는 신체가 될 것입니다.”

동천몽의 눈이 부릅떠졌다.

“내…내가 안 죽는다고 했느냐?”

“그러하옵니다. 말 그대로 불사의 신체가 되지요. 전신이 토막나고 심장이 밖으로 끄집어 내지지 않는 한 절대 죽지 않습니다.”

꿀꺽!

동천몽이 마른침을 삼키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진짜인가? 그 말? 거짓이라면 넌 나쁜 놈이다.”

“소승이 어찌 대법왕님 앞에 거짓을 말하겠나이까? 믿으셔도 됩니다.”

“내가 안 죽는 단 말이지?”

동천몽은 몇 번이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자신이 안 죽는다는 사실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거짓이 아니라고 천장금왕이 정색하여 말했지만 너무 믿을 수 없는 소리였기 때문에 반신반의했다. 천장금왕이 불사심법의 특징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해주었다. 설명을 들은 동천몽의 얼굴이 흥분이 떠올랐다.

‘극성에 이르면 내가 죽지 않고 살수가 있다니’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너무 기쁜 나머지 갑자기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언제부터인가 자신의 소원은 오래 사는 것이었다. 집안에 돈이 워낙 많았으므로 병에 걸리거나 죽지만 않으면 미치도록 재밌게 세상을 살 자신이 있었다. 특히 돈이 많은 관계로 자신이 표적 삼아 자빠뜨리지 못한 여자가 없었다. 천상각의 막내아들이라고 하면 알아서 훌훌 옷을 벗어 던진 여자가 한 둘이 아니었다. 돈 앞에서는 천하절색의 계집도 옷 벗기를 마다하지 않았고 누구도 자신 앞에서 고개 빳빳하게 쳐들고 목에 힘주지 못했다. 그저 굽실거리며 아부와 비위맞추기에 급급했다.

‘이대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지금 이대로 죽지 않고 사는 것이 자신의 최대 소망이었는데 정말로 소망이 이뤄질 줄이야.

“안 죽는 것 맞느냐? 화 안 낼 테니 솔직히 말해 보거라.”

도저히 믿기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물었다.

천장금왕이 웃으며 말했다.

“불사심법이 십이성 극성에 이르면 소승의 말처럼 죽지 않습니다. 아까 말했듯 심장이 밖으로 꺼내지기 전에는 말입니다.”

동천몽이 고개를 쳐들어 울퉁불퉁한 석굴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아무리 참으려고 해도 웃음이 마구 터져 나오려고 하여 이를 악물고 참았다.

이렇게 좋은 횡재수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고향에 돌려 보내달라고 악착같이 탈출을 감행한 자신의 과거 행동을 떠올리자 섬칫 했다. 만약 탈출에 성공해버렸다면 이 좋은 기연을 놓쳤을 것이 틀림없었다.

“대법왕께서는 본승을 비롯해 나머지 사제들을 통해 두 가지 무공을 익히게 됩니다. 하나는 만마생사혈(卍魔生死血)이라는 검법과 지옥금(地獄禽)이라는 장법입니다.”

동천몽이 눈을 깜박거렸다.

“만마생사혈은 본궁의 초대법왕 천룡법왕께서 일만 명의 마신(魔神)들을 베었던 검법이며 지옥금은 삼대 법왕이셨던 자갈법왕께서 만드신 것이지요.”

“가만!

갑자기 동천몽이 오른손을 번쩍 들어 천장금왕의 말을 잘랐다.

“불사심법 그걸 완벽하게 익히면 절대 죽지 않는다고 했잖느냐? 그런데 그 두 선조대법왕들이 죽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이지?”

동천몽이 의심 가득한 시선으로 물었다.

천장금왕이 무슨 질문인지 알았다는 듯 침을 삼키더니 아주간단하게 대답했다.

“두 분의 무공이 높은 것은 사실이었지만 불사심법을 완성의 경지에까지 오르지는 못했습니다.”

동천몽이 눈을 깜빡 거렸다. 잔뜩 의문을 품고 던진 질문에 비해 돌아온 대답은 너무 간단했다. 불사심법이 완성되지 못해 죽었다는 데에 할 말이 없었다.

“일 만 명의 마신을 죽일 정도로 높은 고수인데도 불사심법을 완성시키지 못했단 말인가?”

“기록에 의하면 십이성 직전까지 올랐다고 합니다. 하지만 완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불행하게도 숨을 거둘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동천몽이 말이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 말하라.”

“본궁의 사대법왕은 대법왕을 호위하며 궁의 안위를 총괄하지만 한 편으로는 다음 대법왕을 위해 두 가지 무예를 배우게 됩니다.”

“그 말은 너희들이 내가 배울 무공을 알고 있다면 내가 아무리 열심히 익혀도 널 비롯한 사대법왕을 이기지 못한다는 말 아니냐? 제일 높은 자리에 앉은 사람보다 무공이 높은 부하가 있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

동천몽이 불쾌한 표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자신이 생각하는 제일인자는 무조건 강하고 일등이어야 했다. 부하들 중 누구도 적수가 되어서는 안 되고 강력한 힘으로 생사를 마구 주무를 수 있어야 하는데 사대법왕이 알고 있다는 말에 기분이 나빠진 것이다.

천장금왕이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나름대로 일리 있는 질문이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시대와 달리 이번에 타계하신 대법왕께서는 급작스럽게 돌아가셨습니다. 대부분의 대법왕님들께서는 죽음이 닥쳐오면 미리 자신의 환생자로 제자들 속에서나 아니면 세속의 인물들 중 한 사람을 지목하여 모든 것을 가르칩니다. 그런데 이번에 돌아가신 대법왕님께서는 미처 그러한 준비를 하지 못했습니다.”

설웅법왕(雪熊法王)의 죽음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급서였다. 나중에서야 심장마비로 밝혀졌지만 준비 없는 죽음은 적잖은 혼란을 가져왔고 그 한 예가 만경의 야망이었다. 이미 사제에게 대법왕의 자리를 빼앗긴 이후 불만 가득하던 그에게 사질 설웅법왕의 죽음은 더할 나위 없는 호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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