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9)
< 안녕!(완결) >
= 왔더냐. 그 동안 세월이 많이 흘렀구나.
몽유희는 시간이 멈추는 법칙의 힘이 깨어지는 것을 느끼고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영혼의 힘을 이용하여 세상을 살핀 끝에 자신이 매우 긴 시간 동안 멈춰 있었음을 깨달았다.
"세상 하나가 그런대로 모양을 갖추는 일인데 어찌 짧은 시간으로 되겠습니까."
건우가 그런 몽유희를 보며 말했다.
= 그래, 어찌 되었더냐. 네 세상에 내가 기억을 가지고 윤회를 할 수 있겠더냐?
몽유희는 오랜 기다림의 보상을 받고 싶다는 듯이 곧바로 건우의 대답을 물었다.
하지만 건우는 몽유희의 기대와 달리 고개를 저었다.
"방법을 찾아보려 했으나 불가합니다."
= 불가하다? 이유가 무엇이냐?
몽유희가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삼라만상의 세상은 등선자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 등선자를 허하지 않는다?
"등선자가 되는 순간 곧바로 대천 세계로 옮겨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삼라만상의 세상에서 태령기까지 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 흐음.
"게다가 몽 선인께서는 이미 법칙에 대한 깨달음을 가지고 계신데, 삼라만상의 세계에서는 법칙의 힘을 그 누구도 쓰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그 세계의 법칙입니다."
= 법칙의 힘을 수사가 쓸 수 없다는 말이냐? 전혀?
"예외로 미약하게 법칙의 힘을 다룰 방법이 있으나 그것은 통천진보라 하는 기물의 힘을 빌려 쓰는 것일 뿐이고, 그 또한 제약이 상당하지요. 그러니 몽 선인께 재미있는 곳이 될 수 있겠습니까.
= 들어보니 네 말이 틀리지 않구나. 재미가 없겠어. 재미가.
"그러하니, 몽 선인께서는 대천 세계의 상위 세계로 윤회하심이 옳을 듯 합니다."
= 흥! 그러면서도 너와 네 반려는 기억을 가진 상태로 그 삼라만상의 세상을 누리고 있겠지?!
건우의 말에 몽유희가 못마땅하다는 듯이 꼬집어 말했다.
"꼭 그런 것도 아닙니다. 저와 제 반려도 삼라만상의 세계에선 항상 기억을 지우고 윤회를 합니다. 기억을 되찾을 때에는 죽어서 본신으로 돌아올 때뿐이지요."
= 호오? 그거 재미있겠구나.
건우의 말에 몽유희의 영혼이 호기심을 드러냈다.
하지만.
"하지만 몽 선인께 그와 같은 자리를 드릴 수는 없습니다. 삼라만상의 세계와 연결된 특별한 공간을 마련하여 저와 제 반려가 머무는데 어찌 그곳에 몽 선인을 함께 모시겠습니까?"
= 흥! 고약한 것!
건우의 단호한 거부에 몽유희가 눈을 사납게 뜨며 그를 노려봤다.
하지만 건우는 요지부동, 절대 몽유희를 받아줄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하여 결국 얼마간 실랑이를 벌인 끝에 몽유희는 상위 세계로의 윤회를 결정했다.
= 너는 언제고 삼라만상에 잡아 먹히고 말 것이니라. 흥!
몽유희는 그렇게 건우를 향해 험담을 쏟아내며 윤회에 들 준비를 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삼라만상에 제가 관여하는 일이 거의 없고, 삼라만상도 세계를 유지하는 데 저의 도움이 필요 없습니다. 그러니 서로 자극을 주고받을 일이 드물어 제가 삼라만상에 잡아먹힐 일은 없을 듯합니다."
= 흥. 어디 잘 되는가 두고 보자꾸나. 언젠가 너 역시 상위 세계로 올라올 일이 있을 것이니, 그 때에 다시 만나 확인할 것이다.
"하하하. 그럴 일이 있겠는지 모르지만, 혹여 다시 뵙게 되면 웃는 얼굴로 맞아주십시오. 몽 선인."
= 새로 만날 때는 어떤 인연일지 누가 알겠느냐. 그래 잘 있거라.
몽유희는 그렇게 인사를 하고는 스스로 영혼을 씻어 내어 순수한 상태로 돌아갔다.
그렇게 순수해진 영혼은 남녀의 구별이 되지 않는 어린 아이의 모습을 했는데, 곧바로 대천 세계 윤회의 흐름이 나타나 몽유희를 데려가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대천 세계 윤회의 흐름을 뚫고 황홀한 서광이 비치더니 몽유희의 영혼을 이끌어갔다.
건우는 몽유희의 영혼이 대천 세계 윤회의 흐름 건너편으로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새로운 윤회가 있기는 했구나. 상위 세계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대천 세계의 윤회와는 다른 윤회가 있었어."
그렇게 중얼거리는 건우는 언젠가 저 새로운 윤회에 대해서 알아낼 날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신기하여요."
그 때, 건우의 곁에 유정정이 모습을 드러내며 눈빛을 반짝였다.
"보았소?"
"네. 저런 윤회는 처음이어요. 도대체 어디로 가는 것일까요?"
"그것을 어찌 알겠소. 하지만 언젠가 우리 함께 경험해 볼 방법을 찾아보겠소."
"호호호. 그리하여요. 상공의 능력이면 무엇을 못하겠어요? 이미 실체를 확인했으니 그 실마리를 잡은 것이나 다름이 없겠지요."
"하하하. 나를 너무 과대평가하는 것이 아니오?"
"무슨 말씀이셔요. 상공은 저에게 하늘이어요. 하늘이 무엇을 못하여요?"
"하하하하."
유정정의 말에 건우는 크게 웃을 뿐이었다.
그 때, 유정정이 표정을 진지하게 고치고 물었다.
"이제 어찌하실 것이어요? 당장 시작을 하실 것이어요? 아니면 좀 더 대천 세계를 누려 보실 것이어요?"
"이만하면 충분하지 않겠소?"
"그렇긴 하여요. 대천 세계의 어딘들 아니 가본곳이 없을 터이니."
"그러니 이만 대천 세계와의 연도 마무리를 하는 것이 좋겠소. 대천 세계의 천지 법칙도 점차 부담스러워 하는 것 같으니."
"그런가요?"
"왜 아니겠소. 뱃속에 독주머니가들어 있는 느낌이 아니겠소? 전혀 다른 법칙으로 유지되는 세계가 뱃속에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으니."
"그럼 이제 상공께서 의념 공간으로 완전히 들어오시게 되면, 그 때 삼라만상의 세계는 어디에 있게 되는 것일까요?"
"하하하. 그것을 어찌 알겠소? 대천 세계가 떠 있는 우주태허(무由太虛)의 공간 어디로 던져지지 않겠소? 몽 선인이 대천 세계 이외의 여러 세계를 보았다는 바로 그 공간 말이오."
"하긴, 그리되어야 이치에 맞겠지요. 그런데 괜찮을까요?"
"삼라만상과 내가 충돌하지 않을까 걱정인 것이오? 내 이미 몇 번을 이르지 않았소. 그럴 일은 없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네, 알았어요. 그럼 저는 먼저 들어가 상공께서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겠어요."
"하하. 그리하시오. 내 곧 들어가리다."
유정정은 걱정을 지우지 못한 표정으로 건우를 보다가 홀연히 삼라만상의 세상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그리고 홀로 남은 건우는 환상대시를 벗어나 하염없이 하늘 위로 날아오른 후,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천지 법칙의 흐름이 고요하고 대천 세계의 기운이 흐릿한 곳까지 올라온 것이다.
이곳에서 더 나아가면 대천 세계 밖이 될 것이지만, 건우에게 허락된 일은 아니었다.
대천 세계에 있는 이상 건우 역시 대천 세계의 법칙의 흐름에 묶여 있는 몸이기 때문이다.
"참으로 꿈 같은 삶이었다."
건우는 가부좌를 하고 앉아 대천 세계를 내려보며 만감이 교차하는 눈빛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대천 세계에서 자신의 존재를 지워 의념 공간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그의 의념 공간은 이제 삼라만상의 세계가 되어 삼라만상의 법칙에 따라 유지되는 곳이었다.
건우는 삼라만상에게 자신의 의념 공간 거의 전부를 내어 주었지만, 아주 일부를 따로 떼어 자신과 유정정의 거처로 삼았다.
따지자면 삼라만상 세계의 역천 공간인 셈이었다.
건우는 대천 세계와 자신의 연계가 끊어지며 자신의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이제 그는 삼라만상의 역천공간에 머무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고맙고 감사하구나."
건우는 눈앞이 흐려지는 것을 느끼며 대천 세계에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그리고 자신이 가지고 가지 못할 모든 것을 대천 세계에 흩뿌렸으니 이로써 한동안 대천 세계에 온갖 기연과 보물이 나타나는 계기가 되었다.
* * *
안녕하세요 몽이입니다.
오늘도 건우 님과 정정 님은 윤회 놀이를 하고 계십니다.
한 번 저리 윤회 놀이를 시작하시면 짧으면 수 백 년에서 길면 수 만 년을 꼼짝도 않으시죠.
그러면 저는 뭘 하느냐!
이 역천공간을 관리하고 때로 삼라만상의 세계를 구경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냅니다.
아니, 사실을 말하자면 저는 그냥 있어요.
할 일이 없죠.
건우 님의 정신에 속한 일부이긴 한데, 어쩌다 보니 너무 오래 독립적인 활동을 해서 그런지, 제가 건우 님의 일부란 사실이 믿기지 않아요. 물론 믿기지 않는다고 그게 거짓이 되는 건 아니지만요.
아무튼 저는 음, 건우 님의 다중이 같은 존재인 것 같아요.
어? 잠깐만요.
이게 뭘까요?
아, 알아냈어요.
이건 아주 오래전에 건우 님의 의념 공간과 합쳐졌던 그거네요 수미산을 담았던 겨자씨, 그 일부가 확실해요.
솔직히 너무 작고 미약한 기운인데, 이게 어떻게 지금까지 건우 님의 의념 공간에 섞여 있었는지 모르겠어요.
아, 재미있는 것이 생각났어요.
우와, 보세요. 겨자씨의 작은 기운을 이용해서 우주(무由)태허(太虛)에서 다른 세계와 연결되는 통로를 만들었어요.
솔직히 이 통로가 어디로 연결되는 것인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잠시 여행을 다녀오는 것은 괜찮지 않을까요?
어차피 건우 님과 정정 님은 윤회 놀이를 하고 계시고, 저는 할 일도 없으니까요.
그렇다고 이대로 무작정 떠나면 안 되겠죠?
일단 창고에서 통천진보 하나를 챙겨야겠어요.
아무래도 이 겨자씨의 기운과 잘 어울리는 건 공간 법칙의 통천진보일 거 같아요.
건우 님이 특별히 빼놓은 몇 개의 강력한 법칙 중에 하난데요, 뭐 제가 건우 님이고 건우 님이 저 아니겠어요?
그러니까 좀 빌려 쓰는 것은 문제가 없을 거예요.
음, 그리고 또 그 공간 법칙의 통천진보에 이런저런 것들을 채워 보기로 했어요.
처음으로 혼자 떠나는 여행인데 준비는 만만(滿滿)하게 해야죠.
무슨 일이 생길지 어떻게 알겠어요?
아, 나중에 건우 님께 혼날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혼자서 역천공간을 지키고 있는 건 솔직히 너무 심심해요.
할 일이 아무것도 없다고요.
그러니까 두 분이 윤회를 마치고 돌아오시기 전에 살짝 나갔다가 오려고요.
아, 살펴보니 마침 건우 님과 정정 님 모두 이번 윤회에서는 통천진보를 얻으셨네요.
이렇게 되면 못해도 수 만 년의 시간이 흘러야 해요.
통천진보를 얻으셨으니 어지간하면 입령기까지는 가실 거거든요.
일이 잘풀리면 태령기까지 가실지도 모르죠.
아, 그러다가 혹시라도 등선까지 해 버리면 곤란한데 말이죠.
그 때는 제가 여기 있어야 하거든요.
등선을 하게 되면 대천 세계로 끌려가게 되는데, 그걸 제가 중간에서 막아야 하거든요.
뭐, 설마 그런 일은 없겠죠.
그리고 그런 일이 벌어진다고 해도, 결국 대천 세계에서도 건우 님이나 정정 님께서 죽거나 윤회에 들게 되면 다시 이곳 본신으로 깨어나실 테니까 괜찮아요.
네?
혹시 소멸을 당하면 어떻게 되냐고요?
그건 좀 문제가 되겠죠.
본신에서 깨어나시긴 하겠지만 요양을 좀 오래 하셔야 할 거예요.
뭐, 그래도 또 시간이 흐르면 다 회복할 수 있어요.
네, 사실이에요.
그리고 설마 그런 일이야 있겠어요?
하필 제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두 분이 등선을 해서 대천 세계로 끌려가시 기야 하겠냐고요.
아, 몰라요.
아무도 이 몽이를 말릴 수는 없어요.
어차피 그럴 사람도 곁에 없긴 하지만요.
저는 이제 떠날 거예요.
이 통로가 어디로 연결되어 있는지는 모르지만, 어쩌면 건우 님의 고향과 닿아 있을지도 모르죠.
확신할 수는 없지 만요.
아무튼, 갈래요.
그럼 다음에 봐요.
또 소식을 전할 수 있으면 전해 드릴게요.
안녕!
[작가의 말]
감사합니다.
500화의 긴 여정을 이렇게 끝내게 되었습니다.
저로서는 취향 저격인 글이라 정말 쓰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긴 시간의 집필이 그렇게 힘들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함께 해 주신 독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아무리 자기 재미에 빠져 쓰는 글이라도 독자님들의 응원이 없었으면 이렇게 흡족하게 마무리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이제 저는 수사들의 세계를 잠시 떠나 다른 세상을 기웃 거리겠지요.
하지만 언젠가 다시 수사들의 세상을 찾아오고 싶습니다.
그만큼 지난 대천세계의 여행이 마음에 든 까닭입니다.
어떤 분은 아쉽다 하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어떤 글인들 그렇지 않겠습니까.
항상 세상의 종말이 오지 않은 이상, 남은 이야기는 있기 마련이지요.
그런 이야기는 이제 독자님들의 상상 속에서 수많은 평행세계를 만들어 갈 것이라 믿습니다.
이후 어쩌면 저는 그런 세계 중의 한 곳을 기웃 거릴 수도 있겠지요.
마지막 몽이의 일탈이 마음에 걸리기는 합니다.
어쩌면 저는 그 불안한 녀석의 뒤를 쫓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여 그렇게 된다면 다시 지면을 통해서 그 녀석의 이야기를 전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후아아아.
길게 숨을 내쉬며 툭 하고 던져 봅니다.
"안녕 대천세계."
감사합니다.
< 안녕 ! (완결)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