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498화 (498/499)

(498)

< 삼라만상 세계의 건우와 유정정 >

"흐음, 갈 수사! 이 죽일 놈!"

가부좌를 하고 있던 건우가 버럭 고함을 지르며 눈을 번쩍 떴다.

- 진정하세요 건우 님. 본신으로 돌아오셨어요.

그런 건우의 눈앞에 몽이가 날아들어 재빨리 상황을 알렸다.

"아니, 이게 진정할 일이냐? 고작 성단기 승경인데, 그걸 뒤통수를 쳐?"

하지만 건우는 자신이 본신으로 돌아온 것을 알게 된 후에도 분을 삭이지 못했다.

- 아쉽긴 하네요. 성단기만 넘기면 보물을 얻어 승승장구 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죠.

"어디 보자, 그러니까 성단기 다음에 내가 통천진보(通天珍寶)를 얻기로 되어 있었던 거네?"

몽이의 말에 건우가 허공을 응시하며 뭔가를 살피더니 울컥하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 꼭 그렇게 될 건 아니었어도 가능성은 높았죠. 아니, 분명히 얻을 수 있었을 거예요. 아깝게 되었네요.

몽이가 활짝 웃는 얼굴로 그리 말하는데 딱 봐도 건우를 놀리는 것이 분명했다.

"성단기도 못 되다니, 지금껏 살았던 중에 손에 꼽을 정도로 한심한 성취로군."

그런 몽이의 놀림에 건우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임을 인정하고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스승이라 그렇게 굳게 믿었던 갈수사에게 뒤통수를 맞고 죽은 것이니 누구에게 하소연을 할 것인가.

- 쉽지 않죠?

"그러게 말이다."

몽이의 말에 건우가 살짝 한숨을 쉬었다.

건우는 자신의 의념 공간에 자리 잡은 삼라만상의 세상에서 윤회를 통해 살아가는 과정을 반복하는 중이 었다.

매번 새로운 삶을 경험하며 그 삶이 끝나는 순간에만 이렇게 본체로 돌아와 삶을 돌아보는 것이다.

그 과정을 통해서 삼라만상의 세상에 문제가 없는지 파악하기도 하고, 또한 여러 유형의 삶을 경험하는 즐거움을 누리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 삶에서는 고작 성단기 승경을 시도하던 중에 스승인 갈수사에게 뒤통수를 맞아 죽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것도 하필이면 세계의 주인으로서 윤회체에게 부여한 기연을 얻기 바로 직전에 당한 일이었다.

그러 니 다른 때보다 더 화가 날 수밖에.

- 그런데 그 갈 수사도 건우 님과 연이 있었던 영혼인 것은 아세요?

"응? 갈수사의 영혼이?"

- 네.

건우는 화를 내고 있다가 문득 몽이가 갈 수사의 영혼이 자신과 연이 있다는 말에 눈을 감고 윤회법칙의 힘을 끌어 올려 갈 수사의 영혼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후!

"허! 그 놈이 흑마원의 영혼이었어?"

건우는 윤회법칙을 이용하여 갈수사의 영혼을 살핀 끝에 오래전 자신과 연이 있었던 흑마원의 삶을 찾아냈다.

갈 수사는 흑마원 이후로도 여러 번의 윤회를 거쳐 지금의 삶을 사는 중이었다.

"그럼 나와 악연이 있어서 그랬던 건가? 그간에 거친 윤회가 꽤나 많은데도?"

건우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 그게 무슨 상관이겠어요? 그냥 서로 마주치는 순간, 전생의 악연이 그리 뒤엉키는 것이죠.

"으음. 그래. 생각해보면 흑마원도 간단한 인연은 아니었다. 그로부터 흑성성패력(黑猩猩覇力) 공법을 얻었기에 성해룡결공법(星擊龍結功法)을 얻을 수 있었지."

건우는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당시 흑마원은 건우에게서 마수의 수련법을 빼앗기 위해서 계책을 썼다가 도리어 모든 것을 잃었던 일이 있었다.

당시에 흑마원은 건우에게 머리통이 터진 후, 소멸을 피하기 위해서 스스로 윤회에 들었었다.

- 정확히는 진혈을 이용해서 수련 공법을 만들 수 있는 무명공을 얻은 거죠. 그 무명공을 성해룡주에 사용해서 성해룡결공법을 얻은 거니까요. 그리고 그 후로도 그 무명공은 꽤나 요긴하게 써먹었어요.

"그래, 중요도로 따지자면 무명공이 우선이겠지. 어쨌거나 그런 귀한 공법이 흑마원과 엮여 있었으니 인연이 간단치는 않지."

- 그러니까 이번 일은 이해하세요. 그 흑마원이 건우 님의 뒤통수를 좀 쳤다고 그리 화를 내실 일은 아니잖아요.

"그건 아니지. 이미 수많은 윤회를 거듭한 후에 다시 만난 영혼인데……"

- 어쩌겠어요. 건우 님이 쌓은 악업인 것을요.

이리 말을 하면 또 할 말이 없는 건우다.

따지고 보면 수도계에 든 후로 좋은 인연이 몇이나 있었겠는가.

그걸 생각하면 대천세계에서 삼라만상의 세계로 영혼을 끌어들이기로 한 것이 잘못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삼라만상의 세상에 격이 높은 영혼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자신과 인연이 있는 영혼들을 대천세계에서 끌어오는 통로를 만들었다.

삼라만상의 세계에서 등선자가 생기면 곧바로 대천세계로 넘어가게 해 놓는 것으로 대가를 치른 교환이었다.

그런 덕분에 건우와 연이 있었던 많은 영혼들이 삼라만상의 세계로 윤회를 하는 경우가 생긴 것인데.

"왜 윤회를 할 때마다 그렇게 악연들만 만나는지 모르겠구나. 전에는 그래도 미우(美遇)의 윤회를 만나서 그런대로 잘 풀렸는데 말이지."

- 솔직히 선연이 얼마나 있었다고 그러세요? 툭하면 뒤통수쳐서 죽이시고는.

그게 자신만의 탓은 아니라 하고 싶지만, 그렇다고 악연이 선연이 되는 것은 아니니 입을 다물고 마는 건우다.

- 그리고 미우의 윤회체가 남자의 몸이었다는 것을 다행으로 아세요. 그 때, 정정 수사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어요.

그런 건우를 또 다시 놀리는 몽이.

"아니, 윤회 중일 때에는 나도 나를 모르는데 그 중에 미우의 윤회체를 만난 것이 무슨 잘못이라고."

- 정정 수사에게 그리 말씀을 드려볼까요?

억울하긴 하지만 굳이 그런 이야기를 다시 꺼낼 이유는 없다.

무슨 상황이라도 다시 거론해 봐야 득 될 것은 하나도 없는 이야기니까.

그때.

"어머, 상공!"

분홍빛의 둔광과 함께 연꽃이 나타나 활짝 피어나며 유정정의 모습이 나타났다.

"정정! 표정이 밝구려?"

건우가 유정정을 반겨 활짝 웃으며 물었다.

"호호호. 이번에 통천진보를 얻어서 태령기까지 올랐답니다. 그런데 어찌 즐겁지 않겠어요?"

건우에게 다가와 슬쩍 안겨 몸을 기대며 유정정이 새처럼 재잘거렸다.

"오호? 그렇소? 나는 통천진보를 예비해 두고도 바로 직전에 스승에게 뒤통수를 맞아 죽었소만."

"호호호. 재밌어라. 어찌 그리되셨어요? 호호호."

"몹쓸 악연을 만나 그리되었지."

건우는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이미 연연하지 않는다는 듯이 담담한 기색을 보였다.

그런 건우에게 유정정은 뭔가 재밌는 이야기가 있다는 눈빛을 보내며 은근한 어조로 말했다.

"그렇군요. 그런데 그거 아셔요?"

"뭘 말이오?"

"이번에 제가 통천진보를 얻어 태령기가 되었는데, 결국 수명이 다할 때까지 등선을 하지 못하였어요."

"그야 어쩔 수 없지 않겠소. 삼라만상의 세상에서 등선을 하는 것은 대천세계에서보다 몇 배는 어려운 일이니."

삼라만상의 세계에서는 등선자가 탄생하는 것이 무척 어렵다.

애초에 삼라만상의 법칙은 수사들에게 법칙의 힘을 허락하지 않았다.

법칙은 오직 삼라만상이 조율하는 것이며, 수사들은 절대로 그것에 직접 간섭할 수는 없었다.

그러니 법칙의 힘을 깨달아 신선이 되는 등선자가 탄생하기 어려울 수밖에.

"그건 그렇지요. 그런데 그런 중에 제가 제자들을 키우지 않았겠어요?"

"하긴 태령기라면 세상에서는 견줄 이가 없는 지고한 경지이니 당연히 그럴 수 있겠지."

"호호호. 네, 맞아요.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 제자들 중에 미우와 길매의 윤회가 있었다는 것이어요."

"응? 그 이름이 어찌 또 거기서 나오는 것이오? 그리고 그건 어찌 알았소? 태령기 수준으로 윤회를 꿰뚫어 보고 전생을 읽을 수는 없었을 텐데?"

건우는 뜻밖의 말에 깜짝 놀라며 물었다.

"호호호. 그 아이들이 미우와 길매의 윤회인 것이야 저도 이곳에 돌아와서야 알았지요. 그것을 어찌 윤회 중에 알았겠어요?"

"아, 그런 것이오?"

건우는 그럼 그럴 수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유정정은 여전히 건우에게 반쯤 안긴 모습으로 고개를 들어 건우의 얼굴을 살피며 화사하게 웃었다.

그런 그녀와 눈빛을 맞추던 건우가 문득 헤아려보다가 떠올린 듯이 물었다.

"그런데 어찌 당신이 그 영혼들과 자주 마주치는 것 같지 않소? 나는 몇 번 만나지 못했는데, 유독 정정 당신과 연이 자주 닿는 듯 한데? 어찌 그런 거 같소?"

"그걸 제가 어찌 알겠어요? 그저 무슨 이유인지 인연이 깊어지는 모양이지요. 어쨌거나 재능이 있는 아이들이라 이번에 제가 죽을 때에 그 둘에게 의발(依述)을 전하였어요."

"하하. 그리 선연을 맺어 놓은 것이오? 다행이오. 내 돌이켜보니 삼라만상의 세계에서는 수도계가 조금은 더 아름다웠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소."

건우는 유정정의 이번 윤회의 과정이나 결과가 그리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며 밝게 웃었다.

그러면서 자신이 요즈음 생각하는 새로운 수도계에 대한 바람을 이야기했다.

"호호호. 저도 그랬으면 좋겠지만 역천을 꾸미는 수사들이 그게 가당키나 하겠어요?"

하지만 유정정은 건우의 생각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지금껏 경험했던 수도계를 생각하면 당연한 반응일 것이다.

이에 건우가 그동안 고심했던 방책 하나를 꺼내 놓았다.

"또 모르지 않겠소? 통천진보(通天珍寶)가 수사의 인성을 가린다면 어떻겠소?"

건우의 방책은 다름 아닌 통천진보였다.

"통천진보가 선한 자를 가려 주인을 삼도록 하자는 것입니까?"

유정정도 건우의 말에서 뭔가 가능성을 발견한 듯이 품에서 빠져나와 건우를 똑바로 보며 물었다.

"너무 큰 제약을 둘 수는 없겠지만 수사들의 인식이 그렇게 변할 정도만 되어도 수도계의 흐름이 크게 바뀌지 않겠소?"

"호호호. 맞아요. 그거 재미있겠어요. 통천진보를 얻기 위해서는 선한 심성을 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아요. 하지만 그리 해 놓으면 또 삼라만상이 균형을 맞추려 들지 않겠어요?"

방법은 괜찮은데, 삼라만상의 간섭이 걱정된다는 소리다.

하지만.

"그건 내가 조금 애를 쓰면 될 것도 같소. 어차피 통천진보는 기물이며 역천지보(逆天之?)가 아니오? 그러니 삼라만상의 힘이 그만큼 덜 미칠 수밖에 없지. 그러니 내가 손을 쓰기가 더 편할것이오."

"호호, 알겠어요. 그리된다면 오죽 좋겠어요? 제 생각에도 통천진보를 그리 이용하면 수도계의 피바람이 조금은 줄어들 것 같기도 하여요. 통천진보를 얻기 위해서는 선한 심성을 가져야 한다는 인식이 생기면……"

통천진보(通天珍寶)라 하는 것은 삼라만상의 세계에서 비할 것이 없는 최고의 수도계 보물이다.

이것의 종류는 삼천여 종이 넘는데, 그 중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한 번에 서넛에서 열을 넘지 않았다.

그러니 같은 종류의 통천진보가 연이어 나타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이야기다.

어쨌건 이 보물은 세상의 지고한 이치 하나씩을 품고 있는데, 그것을 깨우치면 높은 수도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전한다.

그 뿐만이 아니라 그 통천진보(通天珍8) 자체로도 특별한 힘을 지니고 있어서, 그것을 얻은 이들은 대부분 무사히 성장하여 큰 성취를 이루었다. 그리고 그 통천진보의 정체는 바로 수미산 정상에 있던 수미선문의 비석이었다.

"수미선문의 비석을 법칙별로 나누어 통천진보를 만든 것은 정말 통쾌한 수였어요. 덕분에 삼라만상의 세상에 수도계 자원이 풍부해지지 않았겠어요?"

유정정이 뿌듯한 표정으로 흥이 나서 떠들었다.

"자화자찬인 것이오? 그리 하자고 했던 것은 정정 당신이 아니오?"

건우는 그 모습도 사랑스럽다는 듯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제가 스치듯 한 말을 상공께서 구체화 하신 것이지요. 저야 생각이 있더라도 능력이 부족해 이룰 수 없는 일이었는데요."

"무슨 그런 소리를. 정정 당신이 이미 나와 어깨를 나란히 할수 있음을 내가 모르겠소? 다만 이 세상이 내 의념 공간이라 내가 앞선 듯 보일 뿐이지."

서로의 얼굴에 금칠을 한다.

한 쪽에 밀려난 몽이가 한숨을 쉬고 있다.

"그런데 보아하니 이번 윤회에서 크게 경을 치신 모양이어요?"

유정정도 그것을 깨닫고는 말을 돌리는데, 그 표정이 몽이가 건우를 놀릴 때와 다르지 않다.

건우는 살짝 한숨을 쉬고는 못 이기는 척, 조금 전에 끝난 윤회를 유정정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 삼라만상 세계의 건우와 유정정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