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497화 (497/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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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념 공간에 수미 세계를 담아내다 >

"으음."

"상공."

다시 3천 년의 시간이 유수처럼 흘렀다.

건우가 낮은 헛기침 소리와 함께 눈을 뜨자 유정정 역시 곧바로 삼매경에서 빠져나와 건우를 바라보았다.

"그 사이에 방문객들이 많았던 모양이군."

건우가 의념을 펼쳐 주변을 훑으며 중얼거렸다.

그러자 그 목소리가 그대로 커다란 파동이 되어 주위로 퍼져 나갔다.

그리고 그 파동에 수미산에 몰려들었던 선인과 수사들 여럿이 억 소리도 내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했다.

"그러게 말이어요. 호호호호호."

이어서 유정정이 크게 웃자, 그 웃음소리 또한 원형의 파장을 그리고 수미산 전역으로 퍼졌다.

하지만 유정정의 웃음소리를 들은 이들은 정신이 정화되고 크고 작은 깨달음이 머릿속에 스며들었다.

"불경한 것들은 그 대가를 받고."

"겸허한 이들은 그 보상을 받았음이다."

"이르노니 입령기 이상의 수사, 선인은 누구나 1만 년 이내로 수미 세계를 떠나야 할 것이다. 명심하라."

"그 후에 이를 불복하여 당할 재앙은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할 것인 즉."

건우와 유정정이 번갈아 한 마디씩을 던졌는데, 그 음성이 우렁우렁 퍼져 나가 구산팔해의 방방곡곡, 닿지 않는 곳이 없었다.

다만 그 목소리는 입령기 이상의 수사와 선인들에게만 전해지는 것이었다. 그렇게 통지를 마친 후, 건우가 유정정을 보며 웃었다.

"어찌 그러셔요?"

"내가 무슨 일을 할 줄 알고 그리 맞장구를 쳤소?"

자신은 그 사이에 수미산에 들어와 소란을 일으킨 자들을 벌했다.

그러자 유정정은 건우와 반대로 마음에 드는 언행을 한 이들에게 상을 내렸다.

이것은 서로가 의논한 바가 아니었다.

사실 건우도 벌을 내린 이후에 상을 줄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유정정이 선수를 친 것이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유정정이 건우의 속을 읽어서 그랬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1만 년 내에 모두 떠나라 했던 건우의 말에 맞장구를 친 것은 뜻밖이었다.

"제가 무얼 하였다고 그러셔요? 상공께서 이리저리하라 하셨는데 그것을 하지 않는다면 당연히 벌을 받아야 하지 않겠어요? 그래서 그리 말한 것뿐이어요."

"허 하긴 그렇긴 하오."

"그래도 궁금하긴 하여요. 어찌 1만 년 내로 모두 떠나라 하셨습니까?"

"그건 말이오……"

건우는 진중한 표정으로 그동안 의념 공간의 삼라만상을 통하여 천지 법칙과 소통한 결과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 그리하여 1만 년 이후로 이곳 수미세계는 인계로 영락하게 될 것이오."

"그렇게 격이 떨어진 수미 세계를 상공께서 의념 공간으로 받아들이시는 것이고요?"

"그렇소. 그 때가 되면 수미 세계는 지금의 백분의 일로 줄어들게 되고, 그 영기 또한 약해지게 될 터이니."

"그래서 경지가 높아진 수사들과 선인들을 미리 대피시키시는 거군요?"

"사실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어차피 떠날 수밖에 없을 것이오. 점차 기운이 쇠하는 곳에서 어찌 경지 높은 수사나 선인들이 버틸 수 있겠소?"

"그렇군요. 그럼 그렇게 수미 세계를 상공께서 품으시면 그 후는 어찌 되는 것입니까?"

"그 후?"

"그 이후로도 계속 이렇게 대천 세계에서 지내실 수 있으신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염려할 필요가 없소. 나는 여전히 대천 세계에 속한 존재라 무엇을 하건 상관이 없소. 다만."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닌 모양이지요?"

건우가 단서를 달았지만 유정정도 뭔가 제약이 있을 것을 짐작했다는 듯이 태연한 얼굴로 물었다.

"언젠가 의념 공간의 삼라만상이 한계를 넘어설 경우, 내 의념 공간의 세상이 대천 세계와 충돌을 할수밖에 없겠지. 대천 세계의 천지 법칙과 내 의념 공간의 삼라만상이 공존할수는 없을 테니까."

"어찌 공존이 불가능한 것입니까?"

"법칙이지 않소. 비슷해 보이지만 대천 세계의 천지 법칙과 삼라만상은 서로 다를 수밖에 없소."

"대천 세계 천지 법칙의 흐름에서 나온 것이 삼라만상이 아닙니까. 그런데 무에 그리 다를 것이 있습니까?"

유정정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삼라만상에 내 의지가 깃들지 않겠소? 나는 말이오. 수사들이 법칙의 힘을 깨우쳐 사용하는 것을 엄격히 금할까 하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셔요?"

"내 세상의 수사들은 등선을 하여 불사의 몸이 될 수 없다는 뜻이오. 그렇게 정할 것이오."

"하지만 수사가 되어 수련하는 궁극적인 목적이 그와 같은 불로불사인데 그것을 막아버리시면……"

"내 세상에서 불가능하다 했을 뿐이오. 법칙을 깨우쳐 등선자가 되기도 어렵겠지만 혹여 된다고 하더라도 그 즉시 대천 세계로 쫓아내면 그만이오."

"네? 등선자들 좇아 내어요?"

"그렇소. 그런 역천자들을 어디에 쓰겠소?"

"하지만 대천 세계의 천지 법칙은 그런 등선자들로 하여금 천지 법칙의 흐름을 돕게 하지 않아요? 그렇다면 삼라만상 역시……"

"삼라만상은 때가 되면 스스로 변화하며 세상을 유지할 것이오."

"그 때라는 것이 혹시 상공께서 삼라만상에 대한 통제를 버리시는 때를 말씀하시는 것인지요?"

"비슷하오."

"그런데 왜 그런 생각을 하시었어요? 상공께서는 세상의 주인이 되는 것을 포기하시는 것이 아닙니까."

"완전히 포기한다는 것은 아니오. 달리 생각하는 바가 있으니 그것이 마무리되면 그 때에 말해 주겠소."

"호호호. 알았습니다."

"그런데 저 비석은 어떠하오? 많이 깨우쳤소?"

건우는 문득 화제를 바꾸어 수미선문의 비석을 가리켰다. 여전히 대천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법칙들이 하나로 어우러져 기묘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건우의 눈에는 그 비석에 담긴 술법과 이치가 선명하게 보이고 있었다.

"3천 년을 허투루 보내진 않았지요. 저도 이젠 비석의 모든 것을 파헤쳐 내었답니다."

건우의 물음에 유정정이 자신 있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에 건우는 한동안 그녀의 깨우침을 확인하며 수미선문 비석 앞을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몇 년 후, 수미산 정상에 있던 비석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는데, 이후 아무도 그것을 다시 볼 수 없었다.

*  *  *

1만년 후.

건우와 유정정은 1만 년 동안 선계의 곳곳을 여행하며 많은 것을 보고 들었다.

물론 그 여행이 단순한 관광만이 목적일 수는 없었다.

건우는 발길이 닿는 곳마다 여러 비밀스럽고 신비하며 귀한 것들을 의념 공간으로 옮겨 넣었다.

하지만 그렇게 옮긴 것들은 삼라만상이 있는 곳과는 완전히 격리된 곳에 보관이 되었는데.

"다시 보니 참으로 안타깝네요."

그렇게 여행을 마치고 수미 세계로 돌아온 지금.

유정정은 눈앞에 펼쳐진 수미 세계를 보며 애틋한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지금 수미 세계는 건우와 유정정의 발밑, 까마득한 곳에 있어 그 크기가 작은 섬처럼 보일 정도였다.

중앙에 있는 수미산에서부터 지쌍, 지축, 첨목, 선견, 마이, 상이, 나민달라, 철위까지의 아홉 산과, 그 사이사이에 끼어 있는 여덟 바다가 한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어쩐지 그 수미 세계는 주변의 다른 세계나 역(域)들에 비해서 기운이 탁해 보였다.

지난 1만 년 동안 수미 세계는 영락에 영락을 거듭하여 선계의 불모지라 불리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지금 수미 세계는 선계에서 가지 말아야 할 금지로 인식되고 있을 정도였다.

수미 세계는 마치 인계와 비슷하게 바뀌어서 입령기 이상의 수사나, 등선에 성공한 선인들은 활동을 하기 어려웠다.

수사든 선인이든 수미 세계에서는 그들에게 영기나 법칙의 힘을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화신기 정도의 힘은 쓸 수 있겠지만 그런 식의 제약을 감내할 이유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이미 수미 세계는 그 영역도 크게 줄어들어, 과거의 백 분의 일 크기가 된 상태였다.

"너무 그리 안타까워할 것은 없소. 이제 수미 세계는 새롭게 태어나게 될 것이니 말이오. 그리고 어차피 수미에는 범인과 화신기 이하 경지의 수도계 수사와 자원만이 남았을 뿐이오. 이번 일로 그들이 피해를 볼 일은 없을 것이오."

"그리 생각하면 다행이긴 합니다만."

"자, 그럼 이제 시작을 해 보십시다. 하하하."

유정정은 그래도 마음의 근심이 완전히 걷히지는 않는 모양이지만, 건우는 크게 웃으며 수미 세계를 향해 양팔을 벌렸다. 그러자 건우의 가슴에서 밝은 빛이 터져 나오더니 발아래에 있는수미 세계 전체를 비추기 시작했다.

"아아!"

한 걸음 뒤에 있던 유정정은 건우가 뿜어내는 빛을 직접 맞지 않았으면서도 황홀한 탄성을 터트렸다. 지금 유정정은 승경 과정에서 겪을 수 있는 법열에 버금하는 쾌락을 느끼는 중이었다.

건우의 가슴에서 뿜어지는 그 빛은 그 자체로 대천 세계 천지 법칙의 흐름과 같은 것.

그 엄청난 법칙을 간접적으로라도 목도하고 있으니 그 희열이 오죽할까.

= 흔치 않은 기회요. 나조차도 전부를 파악치 못한 삼라만상이 전력을 다하여 행하는 역사가 아니오. 집중하시오.

그런 유정정의 머릿속에 건우의 심언이 맑게 울려 퍼지며 쾌감을 쓸어갔다.

그 순간 유정정은 쾌락에 흔들리던 정신을 가다듬고 건우가 수미 세계를 받아들이는 과정을 꼿꼿하게 지켜봤다.

우르르르르릉! 쿠르르르르릉!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수미 세계와 선계를 격리하는 천겁뢰운이 만들어졌다.

그 천겁뢰운은 하늘만 덮는 것이 아니라 상하로도 벽을 세워 수미 세계를 에워쌌다.

건우는 그것이 실제로는 자신의 가슴에서 뿜어지는 삼라만상의 법칙을 다른 이들이 볼 수 없도록 하기 위한 것임을 짐작했다.

수미 세계에는 빛을 보더라도 실오라기 같은 깨달음이라도 얻을 수 있을 리가 없다.

화신기 이상은 아무도 없는 수미 세계에서 어찌 수많은 법칙을 하나로 엮어 낸 삼라만상을 이해할 자가 있겠는가.

그러니 저 천겁뢰운은 대천 세계의 천지 법칙이 삼라만상을 가리기 위한 것이라 봐야 할 터.

- 정말놀라워요. 보세요. 건우 님의 의념 공간으로 옮겨진 모든 것들이 삼라만상의 법칙에 녹아들고 있어요.

그 때, 건우와 유정정의 머릿속에 몽이의 음성이 울려 퍼졌다.

그러자 유정정은 곧바로 의념 공간에 있는 본체의 정신을 깨워 안쪽에서 새로운 세상의 탄생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아아아, 작은 풀 한 포기까지, 아니 그 풀에 맺힌 씨앗 하나까지 모두 변하고 있는 것이어요."

"대천 세계 천지 법칙의 흐름에 속했던 것들이 삼라만상의 법칙에 물드는 것이어요."

"아아, 알았어요. 이전 상공의 도움으로 연화주의 봉인을 이곳에서 풀었을 때, 그 때에 저에게도 비슷한 변화가 있었던 것이어요. 삼라만상이 그 법칙을 저에게 적용하려 했던 것이어요.

"보셔요. 대천 세계의 법칙은 이제 이곳에서 적용되지 않는 것이어요."

"저는 삼라만상의 법칙을 온전히 받지 못하였지만 또 온전히 거부하지도 못하였어요."

"보셔요. 삼라만상의 세상, 수미 세계가 온전히 새롭게 열리고 있는 것이어요."

건우는 의념공간에서 울리는 유정정의 목소리를 들으며 의념 공간을 살폈다.

이 순간 건우가 삼라만상의 세상과 완전히 격리시킨 공간을 제외한 모든 곳에 삼라만상의 법칙이 적용되고 있었다.

그런데.

"으음."

어느 순간 건우는 문득 소망이와 구근이, 백죽이, 음양란, 목룡단 등을 떠올리고 그들을 모두 밖으로 불러냈다.

"너희는 삼라만상의 법칙을 이미 아득히 넘어선 존재들이니 함께 할 수가 없겠구나. 그냥 둔다면 결국 삼라만상이 너희를 용인치 못하고 천겁을 내려 소멸시키려 할 것이다."

건우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허리춤에 영찬황후선보를 꺼내 매달고, 거기에 여섯 영물들을 깃들게 했다.

"이후, 때를 살펴서 너희에게 맞는 곳을 찾아 풀어줄 것인 즉, 잠시 그렇게 머물러라."

건우는 그렇게 급한 일을 처리하고 다시 삼라만상이 수미 세계를 받아들이는 모습을 살폈다.

그렇게 천겁뢰운 속에서 다시 세월이 흘러갔다.

< 의념 공간에 수미 세계를 담아내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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