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493화 (493/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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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상대시에서 몽유희를 다시 만나다 >

"저기가 환상대시인가요?"

거용의 머리 위에서 유정정이 건우와 나란히 서서 멀리 보이는 환상대시를 보며 물었다.

십여 리의 넓이에 벽을 두르고 그 안의 모든 것이 소인국처럼 작게만 보이는 환상대시.

하지만 실제로 환상대시의 안에 들어가면 그 작았던 것들이 정상적인 크기로 늘어나며 십여 리 크기가 수천 리의 넓이로 바뀐다.

물론 그래 봐야 선인들의 인식으로는 그리 넓다고 할 수 없는 곳이긴 하다.

하지만 그 수천 리의 공간에 잘 꾸려진 시장의 모습을 가득 채워 놓았다면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세상 어디에 그리 큰 규모의 시장이 있을까.

게다가 그 넓은 곳에 보이는 이들은 모두가 수사와 선인들뿐이다.

"그렇소."

건우도 오랜만에 보는 환상대시의 모습에 남다른 감회를 느끼며 대답했다.

그런 건우에게 유정정이 물었다.

"그 몽유희라는 대라선이 아직 있을까요?"

유정정은 건우에게 몽유희란 선인에 대해서 모든 것을 들었다.

하지만 건우가 숨김없이 이야기했음에도 유정정은, 어째서 몽유희가 건우를 도왔는지 속 시원한 답을 떠올릴 수가 없었다.

실상 그것은 건우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그래서 선계 여행을 나선 김에 환상대시를 먼저 찾아오게 된 것이다.

"어쩌면 모든 것을 정리하고 윤회에 들었을 수도 있지만, 환상대시가 아직 유지되는 것을 보면 여전히 이곳에 있을 것도 같지 않소?"

"그래도 이전에 헤어지고 벌써 3만 년이 넘게 흘렀으니 윤회에 들었을 가능성이 더 높아 보여요."

건우가 무망애 절벽에서 연화주의 봉인에 들어가 유정정을 만난 것이 벌써 3만 년 전이다.

그 이후 지금까지 무망애 절벽 은신처에 머물며 유정정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하필이면 무망애 금지에 이변이 생겨 그들이 머물던 절벽이 불안정해졌다.

자꾸만 지진이 일어나고 조금씩 무너지는 현상이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천 년 정도에 한 번이던 이변이 몇백 년에 한 번으로 간격이 줄어들자 건우는 곧바로 무망애를 떠나기로 했다.

괜히 무망애 금지가 무너질 때까지 버티고 있다가 여러 복잡한 상황에 얽히고 싶지 않았다.

유정정과 함께하는 지금은 과거처럼 모험을 쫓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았다.

더구나 이제 다시 기연을 만나거나 보물을 탐내는 마음도 생기지 않았다.

그러기엔 의념공간에 있는 '삼라만상'만 하여도 차고 넘쳤다.

그래서 길을 나서게 되었는데 그 때에 몽유희가 떠올라 환상대시를 찾아온 것이다.

"몽 선인이 이곳에 없다고 한들 또 무슨 상관이겠소. 작은 아쉬움이야 남겠지만, 헤어짐이야 만남의 수만큼 있는 것이 아니겠소?"

건우는 몽유희가 이미 윤회에 들었다고 해도 상관없다는 입장이었다.

굳이 몽유희를 만나서 그녀의 속을 들여다봐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호호호. 아니지요. 만남의 수만큼 헤어짐이 있다 하여도 상공과 저의 예가 있으니 꼭 하나의 헤어짐은 항상 모자라지 않겠어요?"

그런데 돌아오는 유정정의 대답이 엉뚱한 곳으로 튄다.

"하하하. 결국 그걸 말하고 싶었소?"

그런들 또 어떠한가.

듣고 보니 그것도 나쁘지 않다.

이 또한 애정의 확인이 아니던가.

"상공을 다시 만난 것이 벌써 3만 년이 흘렀고, 그 대부분을 상공의 의념 공간에서 함께 붙어 지냈어도 매일이 어제와 같으니 어찌하겠어요? 호호호."

"으하하하. 나 역시 그렇소."

닭살이 돋을 말을 서슴없이 하는 유정정, 건우가 그런 유정정의 어깨에 팔을 둘러 끌어당기며 또 좋다고 웃었다.

꾸르르릉!

그리고 제 머리 위에서 그런 애정행각을 벌이는 것이 못마땅한 듯, 짧게 꿈틀거리는 거용의 신호를 받고서야 둘은 훌썩 몸을 날려 환상대시로 드는 문을 향해 나아갔다. 뒤에 남은 거용은 스스로 몸집을 줄이고 건우를 따라가 그 소매 속으로 파고들었다.

*   *   *

"여전하십니다 그려?"

"호호호. 이게 누구냐? 강 선인이 아니냐."

건우의 인사에 검붉은 비단옷을 몸에 두른 여자 선인이 놀란 표정을 짓다가, 활짝 웃으며 그를 반겼다.

"이리 계신 것을 보니 반갑기는 합니다만, 어찌 아직 윤회에 드시지 않으셨습니까?"

건우가 몽유희의 분체를 보며 물었다.

의념을 펼쳐보니 환상대시 곳곳에 지금 눈앞에 있는 것과 비슷한 분체가 서른 정도나 더 있었다.

이전 건우를 만났을 때, 몽유희가 서른여섯 개의 분체를 만들어 놀이를 즐겼던 때와 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호호, 누가 윤회에 들지 않았다고 하더냐? 몽유희는 이미 오래전에 윤회에 들었지."

그런데 돌아온 대답은 또 다르다.

건우는 잠시 생각하다가 몽유희의 분체를 향해 물었다.

"과거의 것을 복제하여 반복하는 것입니까?"

"그래, 그렇게 알아차릴 줄 알았다. 옳다."

"그렇군요. 그럼 굳이 이야기를 해 보아야 의미가 없지 않겠습니까."

건우는 조금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그렇게 말을 하면서 옆에 있는 유정정을 바라보았다.

유정정은 처음에는 몽유희의 분체에게 관심을 보이다가, 그것이 과거의 반복이란 소리에 흥미를 잃은 눈빛이었다.

"그래도 이리 왔는데, 그냥 가면 섭섭하지 않으냐. 본신이 윤회에 들기 전에 네게 남긴 사념이 있으니 한 번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실망을 깨끗하게 털어줄 말이 분체의 입에서 나왔다.

"몽 선인께서 나에게 사념을 남겼다는 것입니까?"

"호호호. 그렇다는구나. 나도 몰랐는데, 너를 만나니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기억이 있느니라."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한 번 가서 만나보겠습니다."

건우는 그렇게 대답하고는 분체로부터 사념체가 있다는 곳의 위치를 듣고 유정정과 함께 둔술을 펼쳤다.

"환상대시는 재미있는 곳이네요. 선인들의 수도 많고, 등선하지 못한 수사들의 수도 많고."

건우 곁에서 함께 둔술을 펼치며 유정정이 환상대시에 대한 감상을 이야기했다.

"나도 이전에는 몰랐던 것들이 제법 보여서 재미가 있소. 전에는 환상대시에 걸려 있는 몇몇 금제와 술법들을 알아보지 못했소. 특히 환상대시의 문들 말이오."

"아, 선계의 곳곳에 무작위로 문이 열린다고 하는 저것 말씀이어요?"

건우의 말에 유정정이 환상대시의 문들 중에 하나를 가리켰다.

지금 건우와 유정정이 가는 방향도 바로 그 문이 있는 쪽이었다.

"이제 보니 무조건 무작위로 공간을 연결하는 것은 아니오. 원하면 언제든 문이 열리는 곳을 정할 수 있게 되어 있지 않소."

"저는 잘 모르겠어요. 공간 법칙에 능하신 상공께서야 그리 쉽게 파악을 하셨겠지만……"

"그리 겸양을 한다고 내가 정정의 실력을 모르겠소? 이미 대부분의 법칙을 대라선의 경지까지 끌어 올리지 않았소? 그런데 무슨 그런 말을 하시오?"

"아이, 부끄럽게 왜 그러셔요. 아직 상공에 비하면 한참 모자라요. 상공께서 아무리 그 '삼라만상'에 대해서 모든 것을 공유해 주셔도, 의념 공간의 주인인 상공과 제가 같을 수는 없지요."

"으음. 그러면 다시 수련을 해야 하지 않겠소? 내 어찌 정정의 모자람을 그냥 두고 볼 수 있겠소!"

"호호호. 괜히 또 그러셔요. 아무리 그러셔도 상공께서 깨우치지 못하시면 제가 알 수 없는데, 어떻게 제가 상공과 어깨를 나란히 한단 말이어요? 괜한 소리는 하지도 마시어요."

"아니, 나와 정정이 온전히 하나가 되어 그……"

"상공!"

"어어, 꼬집지는 마시오! 내가 무얼 어쨌다고."

몽유희가 남겼다는 사념을 만나러 가는 그 짧은 시간에도 건우와 유정정은 애정행각을 멈추지 않았다.

그나마 의념공간에 자리 잡은 삼라만상을 살피며 여러 법칙의 경지가 대라의 수준에 오른 그들이라 주변 선인들이 둘의 모습을 제대로 살피지 못하는 것이 다행이었다. 누구라도 지금 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면 등을 돌렸으리라.

"자, 가 봅시다."

그러는 중에 건우는 유정정과 함께 목표로 했던 문에 도착했고, 그 문의 공간 연결 기능을 이용하여 몽유희의 사념이 있다는 곳으로 길을 열었다. 딱 건우 자신과 유정정만 지날 수 있도록.

*   *   *

= 호호호, 어서 오너라.

"몽유희 대라선?"

"사념이 아니지 않아요?"

건우와 유정정은 사념체가 있다는 곳에 도착해서 만난 몽유희의 모습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분명 윤회에 든 몽유희가 남긴 사념이 있으리라 했는데, 의외로 그곳에 있는 것은 사념이 아닌 완전한 영혼이었다.

= 그리 놀라면 곤란하지 않으냐. 너희 정도의 경지에 있는 이들은 천지 법칙이 잠시도 눈을 떼지 않는단다. 격정이 드러나면 그 관심 또한 커지기 마련이지.

건우와 유정정이 크게 놀라자 몽유희가 바짝 긴장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건우는 이게 무슨 소린가 하는 표정으로 유정정을 보다가 몽유희의 영혼을 보다가 했다.

= 이미 짐작하지 않느냐. 천지 법칙은 세상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이들에 대해서는 항상 감시의 눈을 거두지 않고 예의주시하고 있지.

그런 건우와 유정정을 보며 몽유희의 영혼이 말했다.

"그렇다고 한들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이곳은 아무리 천지 법칙이라고 하더라도 엿볼 수 없는 공간인데 말입니다."

하지만 건우는 도리어 무슨 소리를 하냐는 표정으로 몽유희의 영혼을 쳐다봤다.

그의 말처럼 지금 몽유희의 영혼이 있는 곳은 건우가 만들 수 있는 최고 수준의 격리 공간에 비길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곳이었다.

공간 법칙의 깨달음이 대라선의 경지를 넘었다고 자부하는 건우조차도 애를 써야 겨우 밖으로 나갈 길을 찾을 수 있을 정도였다.

= 흥, 여전히 재미가 없구나? 그리 말을 해 버리면, 놀리는 재미가 어디에 있단 말이냐? 그나마 네 반려는 조금 재미가 있었는데.

건우의 반응에 몽유희의 영혼이 토라진 듯 팔짱을 끼고 고개를 돌렸다.

건우가 그런 몽유희를 보며 물었다.

"어찌 된 것입니까. 영혼이 많이 상하지 않았습니까?"

= 상하기는 무슨, 어차피 윤회에 들게 되면 모두 버리고 갈 것인데, 무슨 상관이란 말이냐?

"그렇긴 합니다만, 이미 많은 기억들이 사라졌겠습니다."

= 괜찮다. 어차피 너를 만나기 위해서 기다린 것, 그러니 다른 기억들 따위야 무슨 상관이겠느냐? 그저 너와 정상적인 대화를 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지.

"그리 말씀을 하시면 제 반려가 오해를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 호호호. 무슨 오해를 한단 말이냐? 설마 내가 너를 은혜하거나 뭐 그런 것으로?

몽유희의 영혼이 재미있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유정정을 바라보았다.

"흥, 저는 설대로 그런 오해 따위는 하지 않아요. 그리고 혹시 몽유희 선인이 그런 뜻을 품었다고 해도 무슨 상관이겠어요? 내 상공께서 잘나 그리된 것인데요. 다만 오히려 그렇다면 몽유희 선인만 가여울뿐이죠."

= 내가 가엾다? 어째서냐?

"그야 답을 들을 수 없는 고함을 지르는 것이나 다름이 없기 때문이지요. 상공께서 몽 선인에게 마음을 주실 일은 없을 테니까요."

= 호호, 그야 봐야 아는 일이 아니겠느냐. 원래 남자란 족속은 그런 쪽으로는 믿을 수가 없는 것이란다.

"흥, 그럼 마음대로 하세요. 저야신경 쓰지 않을 테니."

"정정, 그래도 조금은 신경이 쓰이지 않겠소? 그리 믿어 버리니 어째 더 섭섭한 거 같기도 하오."

"그래서요?"

"아니오. 믿으시오."

= 쯧쯧쯔. 내가 이 꼴을 보려고 지금껏 기다린 것은 아니었는데……. 흥! 되었다. 장난은 그만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자꾸나.

자칫하면 못 볼 꼴을 보겠다 싶었을까?

결국 항복한 것은 몽유희였다.

이후 몽유희는 지금껏 윤회를 하지 않고 건우를 기다린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하는데 그 시작은.

= 네가 조화선인의 조화진법을 발동시켰으렸다?

이것이었다.

< 환상대시에서 몽유희를 다시 만나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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