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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환장 통수 선협전-491화 (491/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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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공, 사랑하여요. 나도 사랑하오 정정 >

절대로 방해받고 싶지 않다.

건우는 그 생각만으로 사람들이 오지 않을 곳을 찾아 움직였다.

그리고 그 끝에 그가 자리 잡은 곳은 다름 아닌 선계 금역 중에 한 곳인 무망애(無望호).

정확히는 무망애의 경계였다.

무망애는 들어가는 것도 나오는 것도 뜻대로 할 수 없다는 신비를 지닌 선계 금역이었다.

그 이름처럼 끝도 없는 절벽이 무망애인데, 절벽 위에서 뛰어내린 선인이 수백 년을 추락하고도 끝내 바닥에 닿지 못했다고 하는 곳이 무망애다.

그런가 하면 어떤 경우엔 무망애 끝에서 한 걸음만 내딛어도 곧바로 금역에 빨려들어 실종되기도 하는 곳.

그런 곳이 무망애였다.

언젠가는 무망애의 비밀을 파헤치겠다고 나섰던 선인들 수백을 한 번에 삼키고 지금껏 내어놓지 않았다던가.

무망애에 큰 보물이 있다는 소문이 수시로 돌아서 지금껏 얼마나 많은 선인이 그곳에 들어갔는지 헤아릴 수 없다고 한다.

물론 무망애에 뛰어내린다고 무조건 금역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운이 좋거나 나쁘거나, 어쨌건 운에 맡겨야 하는 곳이다.

- 그럼 뭐해요. 몇 번을 반복해서 시도하다 보면 결국 들어갈 수 있는 거잖아요. 확률이란 것이 다 그런 거죠.

'뭐,그건 나도 인정한다.'

- 그런데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셨어요? 무망애 절벽 밑에 거처를 마련하다니요. 그러다가 금역으로 빨려들면 어쩌려구요?

'어쩌긴 그 때는 금역 안에 거처를 마련하면 되는 거지. 뭐 그럴 일이 없다는 걸 믿고 온 거지만.'

- 와! 그래도 금역인데요? 일이 잘못되었으면 지금 건우님하고 저하고 금역 안에 있었을 수도 있다고요.

'그런 것에 겁먹을 내가 아니지. 그리고 사실 조화선의 기록에 이곳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으니까 그걸 믿은 거지.'

- 뭐, 생각 없이 뛰어내린 것이 아닌 건 저도 알지만요. 그래도 이렇게나 내려오다니 정말.

'고작 삼십 년을 떨어졌을 뿐이다. 그 정도를 가지고 감탄할 일은 아니지.'

- 감탄 아니거든요?

'그래도 이만은 해야 정정과의 만남에 방해를 받는 일이 없겠지.'

건우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소매에서 연화주를 꺼냈다.

지금 건우가 있는 곳은 무망애 절벽에서 30년간 추락해야 닿을 수 있는 곳이다.

애초에 무망애 절벽에서는 둔술이니 공간 이동과 같은 것을 쓸 수가 없다.

추락하는 속도 이상으로는 이동하지 못하는 금제가 펼쳐져 있던 것이다.

이후에 다시 절벽 위로 가려면 30년은 올라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수고를 아끼지 않은 것은, 몸을 숨기고 누군가의 방해를 받지 않기에 이만한 곳도 드물기 때문이다.

이곳에 거처를 정하고 다시 백 년 넘는 시간이 흘렀다.

그 동안 건우가 펼쳐 놓은 진법과 금제가 얼마나 많은가.

아마 작정하고 건우의 거처를 침입하려 해도 절대 쉽지 않을 것이다.

- 그런데 의외로 건우 님과 비슷한 생각을 한 선인들이 있다는 건 좀 놀랐어요.

'그런 이들이 몇 있긴 하지만 모두 비슷한 입장이니 서로를 방해할 일은 없겠지. 혹여 그런 일을 벌이는 놈이 있다면 소멸을 각오해야 할 게다.'

건우의 눈에 불꽃이 튀듯 영기가 번뜩였다.

하지만 건우는 곧 정색을 하고 몽이를 보며 말했다.

'됐다. 이제부터 집중을 해야 하니 조용히 해라.'

- 네네, 알았어요. 어차피 건우 님이 집중을 하시면 저는 나오기도 어렵다고요.

건우는 몽이의 투덜거림을 한 귀로 흘리며 연화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연화주는 봉인 술법이 펼쳐진 귀물이다.

그것은 제리배천단의 천단에서 심혈을 기울여 만든 것으로 어지간한 선보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물건이었다.

이 봉인주(封印珠)에는 연화궁의 중심부를 그대로 축소하여 담아 놓아 연화주란 이름이 붙었는데, 연화궁을 넣은 탓인지 구슬 표면에 연꽃 문양이 떠 있었다. 의념을 집중하면 연화주 안에 거대한 전각이 여럿이고, 연못과 정원, 크고 작은 언덕들까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건우는 원래 연화주만 얻으면 유정정을 만나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었지만, 의외로 연화주의 봉인이 강력했다.

'직접 들어가서 안에서부터 봉인을 풀어내야 한다. 자칫하면 연화주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어. 그런데 시간 법칙에 능한 수사가 아니면 그것이 불가능하지.'

연화주 안에는 시간 법칙이 강력하게 걸려 있었다.

그 때문에 시간이 아주 느리게 흐르는데, 시간 법칙의 경지가 그것을 펼친 수사보다 미흡하다면 연화주 안에서 움직일 수가 없다.

다행히 건우의 시간 법칙 수련 경지는 연화주에 시간 법칙을 걸어 놓은 다미 선자에 비해 훨씬 뛰어나다.

그러니 연화주 안으로 들어간다고 해도, 시간 법칙의 제약을 받을 일은 없을 것이다.

'내가 시간 법칙을 익히지 않았다면 정말 곤란했겠지. 정정을 구하려면 시간 법칙을 새로 익혀야 했을 테니까.'

그것을 생각하면 구당문의 가르침을 받은 것이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다.

물론 그렇다고 자신을 죽이려 했던 구당문을 용서하거나, 그를 윤회로 돌려보낸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으으으음.'

건우는 조금씩 잡스러운 생각들을 지워가며 연화주에 집중했다.

그리고 연화주 겉면에 걸려 있는 봉인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이건 포장지에 불과하다. 이것을 벗겨 내면 그 안에 실체가 들어 있지.' 건우가 그렇게 연화주 겉면의 봉인을 풀어내고 안쪽으로 들어갈 길을 만드는 데만 수백 년의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건우는 절대 조급해 하거나 서두르지 않았다.

등선자에게 시간이란 가장 흔하게 넘치는 수련 자원이 아닌가.

게다가 연화주 안에 있는 유정정의 시간은 너무도 느리게 흐른다.

그래서 건우가 밖에서 수백 년을 보내도 유정정에겐 고작 며칠 정도의 기다림이 늘어날 뿐이다.

물론 유정정은 그조차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긴 했다.

그녀가 있는 봉인의 심처는 최대한 외부 자극이 닿을 수 없게 만들어진 곳이었다.

바람도 통하지 않고, 색도, 향도, 맛도 없으며 따뜻하고 추운 것도 느낄 수 없게 만들어진 곳.

유정정은 그런 곳에서 머물고 있었다.

'원래, 완전히 시간이 멈춰야 하는 것이거늘, 제리배천단의 천단이 부린 수작 때문에……'

유정정이 고통을 받은 것을 떠올리면 이가 갈린다.

하지만 이미 복수는 끝났고, 그녀를 만나는 것은 금방이다.

*   *   *

연화주 안.

옛 연화궁의 모습은 아름답고 고풍스러 웠다.

건우는 연화궁의 포도(鍾道:포장된 길)를 걸으며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눈길이 가는 곳마다 잘 꾸며진 전각이며 정자, 정원, 누각, 연못 따위가 눈에 들어온다.

인적이 없다는 것이 아쉬울 뿐, 연화궁의 모습은 여전히 아름답다.

물론 시간을 완전히 멈춰 놓은 것은 아니어서 조금씩 시간의 때를 탄 부분들이 보이긴 했다.

건물의 색이 바랜 곳도 있고 풀이 무성하게 자란 곳도 있으며 나무들도 가지를 다듬지 않아 멋대로 자란 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그런들 어떤가.

이제 거기 저곳에 정정이 있는데.

건우는 유쾌한 발걸음으로 연화궁의 본전으로 다가갔다.

끼이이이이익!

연화본궁 현판이 붙어 있는 궁전.

대전으로 드는 문이 낮은 마찰음과 함께 좌우로 활짝 열렸다.

건우는 양손으로 문을 당겨 열며 대전 안의 모습을 살폈다.

문을 열기 전에는 건우의 의념도 받아들이지 않고 막아내던 궁전이었다.

그만큼 과거 연화궁의 방비가 뛰어났다는 소리다.

하지만 대전 문이 열리는 순간 그 모든 방어가 힘을 잃고 건우를 더는 막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건우를 주인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듯 했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건우는 대전 안으로 들어서서 거침없이 걸음을 옮겼다.

대전 안쪽 끝에 있는 보좌(寶座), 그곳에 그녀가 앉아 있었다.

"정정, 내가 왔소."

건우가 유정정의 앞에 서서 그녀를 불렀다.

하지만 일체의 미동도 없이 눈을 감고 앉아 있는 유정정.

건우는 떨리는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만지려다 황급히 손을 뒤로 뺐다.

보좌에 있는 유정정이 온전치 않음을 알았던 것이다.

"공간 법칙?"

유정정의 몸에 공간 법칙이 펼쳐져 있었다.

"공간 법칙을 펼쳐 정정을 그 안에 다시 안치했다. 그리고 그 공간은 여기 정정의 몸에 연결해 두었어."

건우는 유정정에게 걸린 공간 법칙을 알아보고 다시 정신을 집중했다.

그리고 의념체를 만들어 유정정의 몸과 연결된 공간으로 들어갔다.

"옳거니. 정정의 정신을 보호하기 위해 따로 공간을 마련했던 것이었군. 으음. 무(無)의 공간인가? 하얀색은 있으니 무라 할 수는 없겠지만."

하얀색, 그 이외에는 무엇도 느껴지지 않는 공간이다.

하지만 건우는 개의치 않았다.

"홀로 있으면 이 공간이 의미가 있겠지만 둘이 되는 순간 이 공간이 가지는 무(無)는 의미를 잃고 말지. 인식할수 있는 대상이 생기면 이리 만든 곳이 무슨 의미가 있겠소? 정정, 그렇지 않소?"

건우는 몇 걸음 앞, 허공에 떠서 가부좌를 하고 있는 유정정에게 말을 걸었다.

눈을 감고 깔고 앉은 방석과 함께 허공에 떠 있는 유정정.

그녀는 조금 전 대전 옥좌에 앉아 있던 모습 그대로였다.

"정정."

건우는 천천히 손을 내밀어 비눗방울을 만지듯이 유정정의 볼을 쓰다듬었다.

의념체인 건우의 손가락이 유정정의 뺨을 스치는 순간, 그녀의 미목(美目)이 열렸다.

"오시었어요. 오신 것이어요."

주르르르르륵!

활짝 웃는 유정정의 두 눈이 부풀어 오르다가 후두두둑 눈물을 쏟아냈다.

"왔소. 내가 왔소. 정정, 내가…… 건우는 말을 잇지 못하며 그저 유정정의 뺨에 양손을 대고 떨리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 다가 와락!"

"상공이어요. 상공, 흐흐흐흑!"

"정정, 정정!"

건우는 유정정을 부둥켜안고 한참을 있었다.

그리고 유정정은 그런 건우에게 안겨 한참을 울었다.

둘은 서로를 품에 안고 하염없이 그 향과 온기를 더듬었다.

"가지 마시어요. 가지 마시어요. 다시는, 다시는 가지 마시어요."

"가지 않소. 가지 않소. 절대로 정정 당신을 두고 가지 않을 것이오."

"사랑하여요. 사랑하여요."

"나도 사랑하오. 정정, 나도 사랑하오."

건우와 정정은 부둥켜안은 두 팔을 오래도록 풀지 않았다.

*   *   *

건우는 무의 공간을 무너뜨리고 정정의 정신체를 해방시켰다.

정정의 정신체는 곧바로 연화본궁 대전의 육체로 돌아왔고, 그곳에서 다시 건우와 감격의 상봉을 했다.

이후 건우는 유정정과 함께 연화주 안에서 머물렀다.

당장 연화주의 봉인을 깨트리고 밖으로 나가고 싶었지만, 연화주의 봉인과 유정정의 정신이 뒤섞여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유정정은 연화주를 통해서 오래도록 정화 법칙의 힘을 빼앗겨 왔다.

그런 때문인지, 유정정의 정신이 연화주를 이루는 봉인과 뒤섞여 버린 것이다.

그래서 무작정 연화주의 봉인을 깨고 유정정을 해방시킬 수가 없었다.

"천천히 해요. 이곳이 조금 좁기는 하여도 크게 갑갑하지는 않아요."

유정정은 자신 때문에 연화주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건우를 그렇게 위로했다.

하지만 건우는 자신의 갑갑함 따위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저 지금까지 갇혀서 고생한 유정정의 족쇄를 빨리 풀어주지 못하는 것이 속이 상할 뿐.

"미안하오. 하지만 최대한 빨리 당신을 자유롭게 해 주리다."

"호호. 괜찮다지 않아요. 정말이어요. 그런데 상공?"

"음? 무슨일이오?"

"상공의 이야기를 해 주시어요. 지금까지는 제 이야기만 했으니."

"내 이야기라. 그건 밖으로 나가서 해 주려 했는데, 당신이 듣고 싶다면 당연히 해 줘야지. 그러니까 내가 종선생의 도움으로 윤회를 하고 깨어났을 때, 나는 장우란 사람이 되어 있었소."

"장우요?"

"그렇지. 그런데 그 때의 나는 미안하게도 당신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소. 아니 전생에 대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라고 해야겠지."

"어쩜, 그래서 어찌하셨어요? 분혼을 찾기 전까지는 스스로를 알지 못하는 상태가 된 것이 아니어요?"

"그렇지, 게다가 하필 수도계 입문을 할 때부터 나를 제물로 삼으려는 스승을 만나……"

"어머나, 상공을 제물로 삼으려 했다고요? 아니 어디 그런 못된……"

"하하하. 그래도 내가……"

건우는 유정정의 맞장구에 흥이 나서 더욱 열성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연화주에서의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다.

< 상공, 사랑하여요. 나도 사랑하오 정정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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