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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오각성하여 어르신을 만나면 내 뜻을 이해할 것이다 >
'와! 방금 못 멈출 뻔 했다.'
건우는 총단주의 말에 급히 원기소 법칙의 발동을 멈췄다.
그리고 그것이 성공하는 순간, 스스로도 놀라서 눈을 질끈 감았다.
"허어."
총단주가 그 모습에 마른침을 삼켰다.
방금, 소멸의 위기를 간신히 넘겼음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무슨 할 말이라도 있습니까?"
건우가 감았던 눈을 뜨며 총단주를 보고 물었다.
"없던 일로, 없던 일로 하세. 원한다면 구당문 제단주 역시 윤회로 돌려보내는 것도 인정하겠네."
그런 건우를 향해 총단주가 무조건 항복이나 다름없는 말을 쏟아냈다.
"아니, 총단주 어찌!"
"어찌는 무슨, 지금 우리가 모두 죽게 생겼는데 구당문 단주가 희생을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구당문이 거세게 항의했지만 곁에 있던 배단주가 그런 구당문의 손목을 잡았다.
구당문은 그런 배단주의 행동에 기가막힌 표정으로 눈만 꿈뻑 거렸다.
"진정으로 하시는 말씀입니까?"
건우가 구당문과 배단주를 외면하고 총단주를 향해 물었다.
모든 결정은 총단주에게 달린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이네. 그리 하세. 구당문 제단주를 내어 주겠네."
총단주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스스로 소매를 저어 구당문을 포박하여 앞으로 끌어 냈다.
구당문은 총단주가 직접 힘을 쓰자 아무 저항도 없이 앞으로 끌려 나왔다.
"어찌 하겠는가? 자비를 베풀어 구당주 스스로 윤회에 들게 허락을 하겠는가, 아니면 자네가 직접 손을 쓰겠는가?"
구당문을 몇 걸음 앞으로 내민 총단주가 건우를 보며 물었다.
건우는 그런 총단주를 잠시 보다가 말했다.
"스스로 윤회에 들겠다면 그것은 허락하지요. 굳이 내 손을 더럽힐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음, 그렇다면 그리하지. 구 제단주, 미안하지만 대의를 위해 희생해 주게."
건우의 말에 총단주는 구당문을 향해 그렇게 말했고, 구당문은 고개를 돌려 힘겹게 총단주를 바라보더니 결국 스스로 심맥을 끊어 자살하고 말았다. 건우는 구단주의 영혼이 윤회의 흐름에 스며드는 것까지 확인하고 고개를 돌려 총단주를 보았다.
"지금 이와 같은 상황을 어찌 이해해야 합니까?"
건우가 다시 총단주를 향해 물었다.
"자네의 한 수가 워낙 강력하여 이곳에 있는 모두가 죽게 생겼네. 그렇지 않은가?"
"그야 어쩌겠습니까. 홀로 죽을 수는 없으니 화풀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독하구먼."
"그렇게 살지 않은 수사가 누가 있겠습니까. 등선에 이르도록 피를 보지 않고 꽃길만 걷는 경우가 있기는 하겠습니까? 만약 그런 경우가 있다면 그 선인이야말로 세상을 모르는 바보겠지요."
"옳은 말이네."
"다시 묻겠습니다. 진정 이제 모든 은원을 잊기로 하는 것입니까? 지금까지의 일로 앞으로 제가 다시 제리배천단과 얽힐 일은 없는 것이겠습니까?"
"그러하네."
"약속하시는 것입니까?"
"음, 이유를 알아야 이해를 할 것 같으니 내 설명을 해 주지."
"그래 주시면 감사한 일이겠지요."
건우는 슬쩍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여전히 원기소 법칙의 폭발은 직전에서 멈춰 있을 뿐, 완전히 거두어진 것은 아니었다.
"자네가 우리 모두와 동귀어진을 하려고 하는데, 그것이 반드시 성공할 상황이 되고 말았네."
"그거 다행이군요."
"그러니 나는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지."
"그래서 구당문 제단주만 희생시키기로 한 것입니까?"
"내 판단이 가혹하다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이것은 당연한 일이네."
"당연한 일이라니요?"
"나는 물론이고 뒤에 있는 배단주까지, 아니 제리배천단의 모두는 한 가지 목적을 위해 움직이지."
"아, 천지 법칙의 흐름을 원만하게 유지하는 것 말입니까?"
제리배천단의 궁극적인 목적이며, 단원들이 굳게 믿는 대의명분이 그것이 아닌가.
"그렇지. 그런데 내가 이르지 않았나. 우리 모두는 세뇌된 상태라고."
"그러니까 지금 여기서 우리가 모두 함께 죽는 것은 그 세뇌된 바에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까?"
건우는 문득 총단주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짐작이 되었다.
"바로 그것이지. 여기서 우리가 모두 죽어버리면 제리배천단의 일이 얼마나 많이 일그러지겠는가. 하지만 나와 배단주라도 살아 나간다면 그런 문제를 많이 해소할 수 있지."
"하지만 저와 타협을 하는 것이 제리배천단 전체의 사기에는 좋지 않은 영향을 주지 않겠습니까?"
"사기 보다는 효율의 문제겠지. 나와 배단주의 죽음은 무척이나 큰 사안이니까. 물론 세 명의 단주가 죽은 것도 작은 일은 아니지만."
"좋습니다. 대충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이후로도 총단주께서 약속을 지키실지는 모르겠군요."
"약속을 어기고 자네를 어찌할까 걱정이 되는 건가?"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리 걱정할 일은 아니네. 자네와 다시 싸우는 것이 우리 제리배천단에 무조건 손해가 될 것이란 판단이 섰으니까 말이네."
"으음."
"진정이네. 그러니 이제 격리 공간을 풀고 이만 서로 갈 길을 가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구구절절한 총단주의 말에서 핵심은 그냥 서로 갈 길을 가자는 것이다.
서로에 대한 은원은 이제 깔끔하게 잊고.
건우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저도 굳이 죽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니 총단주님의 제안을 받아들이겠습니다."
"하하. 잘 생각했네."
"그럼 이제 배단주께서 저와 함께 격리 공간에 심은 힘을 거두기로 하지요."
"배단주, 그리하게."
"알겠습니다. 총단주님."
건우의 말에 총단주가 명령을 내렸고, 배단주는 곧바로 그 명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 세뇌라는 것이 참으로 무섭습니다."
건우는 격리 공간을 거두기 위해서 배단주와 협조하며 조금씩 공간 법칙의 힘을 줄여 나갔다.
하지만 그 과정에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총단주와 대화를 시작했다.
"무섭다고?"
"그렇지 않습니까. 어찌 은원을 한 순간에 떨쳐내고 오직 대의만을 생각하여 일을 결정한단 말입니까?"
건우는 그런 식의 사고방식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구당문만 보아도 그렇다.
총단주의 결정에 별다른 항의도 없이 윤회를 받아들여 자살하지 않았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데 거리낌이 없다니, 두려운 일이었다.
"세뇌가 그런 것이지. 천지 법칙의 유지를 위해서 우리 같은 이들도 반드시 필요하지 않겠나?"
하지만 총단주는 개인적인 감정보다는 대의를 위하는 것이 이상할 것은 없다는 반응이었다.
- 세뇌에 당한 제리배천단도 금선, 옥선, 대라, 도조 따위와 별로 다른 것이 없는 거 같아요.
그 모습에 몽이가 질린 표정을 감추지 않으며 말했다.
건우 역시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금선, 옥선, 대라, 도조의 경우에는 대부분 윤회로 영혼이 빠져나가고 남은 껍데기에 불과하다고 했지. 그런데 제리배천단에 속한 이들은 살아있는 상태로 부속품처럼 변해 버린 거 같구나.'
- 그러게요. 그런데 정말 총단주가 약속을 지킬까요?
'그게 제리배천단의 일에 더 낫다는 판단이 서면 그렇게 하겠지. 하지만 나를 처리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면 가차 없이 약속을 어길걸?'
-봐야 안다는 거네요?
'그래도 일단 함께 죽을 상황에서 함께 살아날 구멍이 생겼잖아. 구당문에 대한 복수도 끝났고.'
- 제리배천단 전체를 상대로 복수를 할 생각은 없으시다는 거네요?
'그래, 솔직히 총단주나 배단주까지 처리한다고 그게 전부는 아니잖아. 따지고 보면 천지 법칙을 유지하려고 하는 의지 그 자체가 원흉이라 할 수 있는데, 그걸 어떻게 찾아서 복수를 하겠냐?'
- 그건 그러네요. 그래서 구당문까지로 복수를 한정한 거군요?
'억울한 건 태고지주 같은 놈이지. 왜 따라 와서……. 천단주나 구당문이야 언제든 복수를 할 생각이긴 했지만, 태고지주는 아니었는데 말이지.'
- 아, 그건 그러네요.
'음,격리 공간이 곧 풀리겠군.' 건우는 격리 공간이 열리기 전에 원기소 법칙의 힘을 완전히 거둬들여야 했다.
자칫 격리 공간 밖에서 원기소 법칙이 폭발을 일으키면 천지 법칙의 징벌을 크게 받을 것이다. 게다가 격리 공간 없이 원기소 법칙을 사용하면 총단주나 배단주가 어떻게든 몸을 빼서 살아날 가능성도 있었다.
그러니 격리 공간이 풀리면 원기소 법칙으로 총단주와 배단주를 압박하기 어려울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 대책도 없이 격리 공간 밖으로 나가서 총단주와 배단주를 마주할 수야 있나.
건우는 원기소 법칙을 거두기 전에 영찬황후선보의 힘을 최대로 올려 시간 법칙을 몸에 둘렀다.
그나마 시간 법칙을 두르고 있으면 총단주나 배단주가 마음을 달리 먹어도 대처할 여유를 만들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그것이 건우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대비였지만 그래도 함께 죽는다는 상황에서 살아날 가능성이 생겼으니 아주 나쁜 상황은 아니었다. 격리 공간이 없어진 후, 총단주와 배단주에게 뒤통수를 맞아 죽지만 않으면.
* * *
"그리 예민하게 굴 필요는 없네."
공간 법칙의 힘을 모두 거두고 격리 공간을 없앤 후, 감여진인의 청동 거울이 있는 수련실에서 건우는 총단주와 배단주를 마주했다. 그 상황에서 총단주는 넉넉한 웃음을 지으며 건우에게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총단주께서 기분이 상하시겠지만 제가 어찌 총단주의 말을 철석같이 믿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니 이해를 해 주십시오."
"하하. 그래, 그 말이 옳네. 이해하지."
"감사합니다."
"그런데 강선인."
"네, 총단주."
"혹시 우리 제리배천단에서 함께 일을 해 볼 생각은 없는가?"
혹시 이와 같은 제안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했지만, 막상 닥치고 보니 쉽게 대답이 나오지 않는 건우였다. 하지만 이미 이런 제안에 대한 답은 정해 놓은 터였다.
"감사하지만 사양하겠습니다."
"흐음. 그런가? 하지만 등선자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정신적인 한계를 맞이하게 되네. 그래서 결국 언젠가는 정신이 무너져서 난동을 부리다 천지 법칙의 형벌을 받게 되지."
"제리배천단의 일을 하게 되면 그런 꼴을 피할수 있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지. 바로 그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였네……"
"대천 세계를 유지하는, 천지 법칙의 운행을 돕는, 그와 같은 대의를 위해서 용맹정진하는 삶의 목표가 확실하니 정신이 무너질 일이 없다. 그런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허어. 이미 알고 있었나?"
"하지만 제가 보기엔 제리배천단의 정식 단원이 되어 세뇌를 받게 되는 순간부터 결국 괴뢰가 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으음, 괴뢰라니 말이 심하군."
"육신의 괴뢰가 아니라 정신이 그리되는 것이지요. 그래서야 어디 제대로 된 자아를 지녔다 할 수 있겠습니까? 아니 그렇습니까?"
건우는 작심한 듯이 독설을 자제하지 않았다.
"…….그래 인정하지."
"총단주님!"
"아니야. 그리 틀린 이야기도 아니지. 하지만 이후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가 하는 문제를 생각하면 이런 삶이 억울할 것도 없지."
"그게 무슨 말입니까?"
건우는 자신의 말을 인정하면서도 그런 면조차 감수할 수 있다는 총단주의 말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냥 제리배천단에서 봉사하는 시간은 고된 수련 과정의 일부라 여기면 되는 거네. 그 이후에는 대천 세계를 뛰어넘는 한 차원 높은 세상에서 다시 태어나게 되는 것이니까."
"그러니까 결국 세뇌를 받고 제리배천단의 일을 하는 시간조차 그 새로운 세상에서 태어나는 것을 위해 감수한다는 것입니까? 그 새로운 세상이 그만큼 가치가 있습니까?"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도대체 대천세계보다 상위에 있다는 세상이 어떤 곳이기에?
"궁금하면 화두로 삼아 궁구해 보게.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대오각성을 하게 되는 때가 올 것이고, 어르신들의 선택을 받게 될 것이네."
"어르신?"
"경험해 보면 알게 된다네. 배단주, 우리는 이만 가지."
"네? 네. 총단주님. 가시지요."
"아니, 총단주님!"
할 말이 끝났다는 듯이 불쑥 모습을 감추는 총단주와 그 뒤를 쫓는 배단주.
건우는 총단주가 그런 식으로 사라질 것은 예상하지 못했기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 어차피 입단은 하지 않을 것이 아닌가. 그런데 계속 대화를 이어간들 무슨 의미가 있겠나? 다만 언젠가 큰 깨달음을 얻어 내 뜻을 이해하기를 바랄 뿐이네.
그런 건우의 머릿속에 총단주의 심언이 전해졌고, 그 직후 총단주의 기척이 건우의 의념범위 안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으음."
건우는 돌발 상황에 당황했지만 곧 정신을 수습했다.
'정정.'
총단주가 떠나고 위기가 사라진 이 순간 건우의 마음은 이미 연화주에 닿아 있었다.
< 대오각성하여 어르신을 만나면 내 뜻을 이해할 것이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