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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 죽어 봅시다 >
"누구신지?"
건우가 두 선인의 뒤에 서 있는 구당문을 흘겨본 후, 앞에 있는 이들을 보며 물었다.
"나는 제리배천단의 배단주일세. 그리고 이 분은 제리배천단의 총단주이시지."
"으음. 배단주와 총단주라. 그래 두 분께서는 어찌 여기까지 걸음을 하셨습니까? 혹여 이 강 모와 악연을 쌓아보실 요량이신 겝니까?"
구당문을 뒤에 두고 보호하는 것으로 봐서는 좋은 관계가 되기는 어려워 보였다.
건우는 두 선인을 경계하며 공간 법칙의 힘을 더욱 끌어 올렸다.
원래 이곳 수련실에는 건우가 미리 안배해 놓은 공간 법칙의 금제 결계가 있었다.
그래서 구당문이 격리 공간을 빠져나갈 때에도 어느 정도 여유를 가지고 여염과 태고지주를 처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막상 나와 보니 자신이 펼친 금제 결계를 뚫고 두 명의 선인이 들어와 있지 않은가.
그것도 제리배천단의 단주와 총단주라는 이들이.
경계하지 않는 것이 이상할 상황이다.
"그것 참, 일이 공교롭게 되지 않았나. 강 선인, 자네가 벌인 일이 간단치 않음은 알겠지?"
배단주라고 스스로를 소개한 선인이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는 아주 젊은 청년의 모습이었는데 귀 뒤로 짧은 사슴뿔 같은 뿔이 돋아 있었다.
거기에 손등에도 금빛 비늘이 몇 개 달려 있는데, 보아하니 용족(龍族) 선인이 분명해 보였다.
"내가 벌인 일이라. 무엇을 두고 하는 말입니까? 정확히 말을 해 보시지요?"
건우는 배단주의 말에 도리어 눈썹을 치켜세우며 물었다.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단 말인가?
"허어, 그것 참."
건우의 그런 태도에 배단주도 유구무언, 할 말을 찾지 못했다.
"리단주와 천단주는 죽은 모양이군."
그 때, 지금껏 뒷짐만 지고 있던 총단주라는 자가 건우를 보며 툭하고 한마디를 던졌다.
"나에겐 좋은 날이라 굳이 소멸까지는 시키지 않았습니다. 윤회에 들었으니 참으로 지은 죄에 비하면 너그러운 처사가 아니었겠습니까."
건우가 그렇게 말하며 총단주와 눈싸움을 벌였다.
총단주는 사십 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건장한 체구의 사내 모습이었다.
대체로 피부가 햇볕에 그을린 듯이 검은 것만 뺀다면 일반적인 인간 수사로 보였다.
"그들이 제리배천단에 속해 있음을 알면서도 태연하기 짝이 없구나."
총단주는 건우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이 꾸짖었다.
하지만.
"애초에 일을 벌이면서 그만한 각오도 하지 않았겠습니까? 혹시라도 이곳에서 두 분께서 저와 싸우려 하신다면, 저 역시 그것을 피할 생각이 없습니다."
"뭐라고? 하하하, 정말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놈이구나."
"배단주, 흥분하지 말고 물러나 있게."
"네, 총단주."
건우의 말에 버 럭하는 배단주를 총단주가 손짓을 하며 말렸다.
그리고 그는 뒷짐을 진 상태로 한동안 건우를 노려봤다.
건우는 총단주의 눈빛에서 늪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원한이 있어서 그것을 풀었으니 개인적인 문제라고 생각하겠지?"
그가 건우를 보며 물었다.
"나와 원한을 쌓은 일이야 나에겐 개인적인 것이겠지만, 총단주의 입장에서는 제리배천단과 관계된 것이니 공적인 것이 되었겠지요. 이해합니다."
"이해한다고 내가 내리는 벌을 감수할 것은 아니겠지?"
"하하하. 당연한 말씀을 무엇 하러 물으십니까? 조금 전에도 말했지만 내 반려를 해친 것이 제리배천단의 행사임을 알았을 때부터, 나는 제리배천단 전체와 싸우는 것도 감수할 각오가 되어 있었습니다."
건우는 배단주나 총단주의 능력을 파악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과 싸우는 것이 겁나지는 않았다.
'죽더라도 후회는 없다. 연화주에서 정정을 꺼내어 회포를 풀지 못함은 아쉬울지언정.'
건우는 각오를 다지며 다시 한번 공간 법칙의 힘을 극도로 끌어 올렸다.
그런 건우의 머리 위에는 영찬황후선보가 밝은 빛을 내며 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작은 태양이 떠 있는 것 같았다.
"으음. 그 말이 옳다. 네 입장에서야 억울하겠지만 우리 단에서 벌인 일을 두고 이리 복수를 했으니, 총단주인 내 입장에서는 네게 죄를 묻지 않을 수 없지."
"그러기에 사람을 잘 보고 일을 치르지 그랬습니까. 그랬다면 내 반려를 건드리는 실수는 하지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끄응. 오늘 죽을 것을 알고 할 말은 다 하겠다는 심산이더냐?"
건우의 말이 너무 거침이 없다 싶었던지 결국 총단주도 노여움을 겉으로 드러내고 말았다.
"하하하. 길고 짧은 것이야 대 봐야 아는 것이 아닙니까. 어디 한 번 해 보십시다!"
건우는 이제 대화는 끝났다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협상이나 양보 따위를 기대하긴 어려웠지. 서로의 입장 차이는 분명하니까.'
대의를 위해 소를 희생시킨 제리배천단.
그 일로 복수를 실행한 건우.
제리배천단이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고 건우의 행위를 인정한다면 모를까.
둘 사이의 관계가 원만히 해결될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쿠우우우웅!
"허어, 천지 법칙의 이목을 속이는 격리 공간?"
건우가 힘을 쓰며 먼저 격리 공간을 만들자, 총단주가 짧게 탄성을 질렀다.
그러자 배단주라 했던 용족 선인 역시 공간 법칙의 힘을 사용하여 건우가 만든 격리 공간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었다.
건우는 배단주의 행동이 격리 공간을 공고하게 만들 뿐, 법칙의 힘에 간섭하지 않는 것을 알아차리고 순순히 힘을 합쳤다.
그러자 지금까지 만들었던 어떤 격리 공간보다 강력한 격리 공간이 만들어졌다.
"이 정도면 아무리 큰 역천을 하더라고 천지 법칙이 알아차리지 못하겠습니다."
격리 공간이 완성되자 구당문이 크게 놀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는 그 사이에 어느 정도 원기를 회복했는지 안색이 좋아져 있었다.
"그렇겠지. 이 정도의 격리 공간은 참으로 흔하지 않겠어. 선계에 금역들이 여럿 있지만 그 금역 안쪽보다 이곳이 더 천지 법칙으로부터 안전할 정도야."
건우와 배단주가 힘을 모은 격리 공간의 완성도가 예상을 뛰어넘자 총단주도 크게 놀란 기색이었다.
'이러면 나에게도 방법이 없지 않겠어.'
그 때, 건우는 내심 쾌재를 부르는 중이었다.
격리 공간을 만들어 총단주 일행을 끌어 들이면서 혹시 그들이 격리 공간을 깨트리거나 방해할 것을 걱정했는데, 도리어 힘을 합쳐 더욱 강력한 격리 공간을 만들다니.
이렇게 되면 지금껏 쓰지 못했던 법칙의 힘을 쓸 수 있다.
스스로 그 법칙의 도조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깨달음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는 바로 그 법칙.
건우는 공간 법칙을 대신해서 원기소 법칙을 끌어올렸다.
"으음? 무엇이지?"
그러자 제일 먼저 총단주가 눈썹을 꿈틀거리며 건우를 경계했다.
이어서 배단주와 구당문 역시 건우가 끌어낸 법칙의 힘을 금방 알아차리지 못하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가장 근래에 새로운 도조가 탄생했다는 그 원기소 법칙이란 말이냐!"
하지만 그것도 잠시, 총단주는 금방 건우가 사용하는 법칙의 힘을 알아봤다.
"지금 알아차린다고 무엇하겠습니까? 이제 어디 누가 죽나 한 번 해 보십시다."
하지만 그 때는 이미 건우가 의념을 최대로 펼쳐 그 범위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장악하여 핵분열을 유도한 후였다.
'미친 짓이지. 이건 원래 내가 살던 세상에서는 절대 불가능 한 일인데, 여기선 또 이게 법칙의 힘이란 명목으로 가능하다니.'
"자, 잠깐 멈춰라. 이러면 여기 있는 모두가 무사할 수가 없다!"
건우가 원기소 법칙을 이용하여 핵분열을 실행하려는 바로 그 순간 총단주가 다급하게 고함을 질렀다.
이곳이 선계가 아니고 핵분열이 법칙의 힘으로 진행되던 것이 아니었다면 어림도 없었겠지만, 그 순간 핵분열이 직전에서 멈췄다.
"아시겠지만 지금 이것은 그저 멈춘 것에 불과합니다. 시간 법칙까지 응용한 것이라 쉬이 깨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래, 총단주께서는 이 강 모에게 무슨 가르침이 계십니까?"
건우는 실로 전혀 미련이 없다는 듯이 후련한 표정으로 총단주를 보며 물었다.
사실 지금 이 격리 공간에서 건우의 원기소 법칙이 그대로 발동되면 그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아니 법칙의 힘이 작용한폭발이 일어날 것이니 영혼조차소멸에 이를 것이 분명했다.
"실로 대담하구나. 어찌 이리 뒤를 생각지 않을 수가 있단 말이냐?"
총단주가 건우를 보며 말했다.
"하하하. 이 강 모가 선계에 든 이후로 많은 선인들을 만났지만 총단주처럼 가늠이 되지 않는 분은 처음입니다. 그러니 어쩌겠습니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볼 밖에요."
"내가 그리 무섭던가?"
"왜 아니겠습니까? 자그마치 제리배천단의 총단주가 아니십니까?"
"하하. 그게 무슨 대수라고. 제리배천단이야 따지고 보면 고만고만한 광신자들이 모인 집단일 뿐이지."
"광신자?"
"총단주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총단주, 말씀이 과하십니다."
건우는 광신자란 말에 호기심을 드러 냈고, 배단주와 구당문은 불쾌감을 드러 냈다.
"들었는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단원들은 일종의 세뇌를 받은 상태란 말이지. 모두가 단에서 하는 일이 대천 세계를 이롭게 하는 지고한 사업이라 믿고 있지."
"총단주! 그만하시지요."
"어찌 그런 말씀을 저런 놈에게 털어놓는단 말씀입니까?"
"시끄럽다. 누가 끼어들라 하더냐!"
다시 한 번 배단주와 구당문이 총단주를 말리려 했지만 오히려 총단주의 고함에 고개를 처박았다.
"스스로 옳다고 믿고 행하지만 사실 절반쯤은 세뇌의 효과로 온갖 험한 일을 자초하는 이들이 우리 제리배천단의 일반 단원들이다. 그리고 그런 이들을 위에서 부리는 것이 단주를 비롯한 소수의 간부들이지."
총단주의 말에 배단주와 구당문이 다시 발끈했지만 총단주의 시선에 입도 열지 못하고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러다가 간부들 중에서 결원이 생기면 일반 단원 중에 쓸만한 이를 찾아서 세뇌를 풀고 간부의 일을 맡기지. 그런데 실상 그 간부들조차도 세뇌가 완전히 풀린 것은 아니야."
"무, 무슨 말씀입니까? 그럼 우리들이 세뇌된 상태란 말입니까?"
"그게 정말입니까?"
구당문과 배단주도 그런 사실은 몰랐다는 듯이 눈을 똥그랗게 뜨며 총단주를 노려봤다
"거긴 나도 포함되니까 그렇게 화낼 것도 없다."
그런데 그런 두 선인을 보며 총단주가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게 무슨?"
"총단주께서도 여전히 세뇌를 당한 상태란 말입니까?"
구당문과 배단주가 모두 놀라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것이 우리 제리배천단의 숨겨진 비밀이지. 사실 나조차도 우리 제리배천단에 전승되는 세뇌를 풀어낼 방법은 알지 못한다. 그저 천지 법칙의 흐름을 원만하게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그 자체가 바로 세뇌의 핵심임은 알고 있지."
"그래서 너희들 모두가 세뇌를 당한 상태니까 내가 너희를 용서해야 한다는 것이냐?"
가만히 듣고 있던 건우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총단주를 보며 물었다.
"설마 아직도 복수가 끝나지 않았나? 용서 운운하는 것을 보면 쌓인 것이 남은 것 같은데?"
건우의 말에 총단주가 물었다.
"총단주가 나타나면서 일이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까. 나는 그저 저기 있는 구당문까지만 징치하면 만족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총단주께서 나를 죽이려 하셨으니 이제 제가 어찌 제리배천단과 한 하늘을 이고 살겠습니까?"
"불구대천이라?"
"그리 만든 것은 내가 아니니 그리 노려볼 것은 아니지요."
"그래서 함께 죽자고 이런 짓을 한 건가?"
총단주가 폭주 직전에 멈춰 있는 원기소 법칙의 힘을 둘러보며 물었다.
"저로선 이게 최선이지요. 그럼 하실 말씀은 다 하신 것 같으니……"
건우는 이야기를 길게 끌어봐야 좋을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변수가 끼어들 여지를 없애긴 했지만, 선계에서 확신할 수 있는 것이 어디에 있던가.
이젠 정말 함께 죽어야 할 때였다.
"기다려라. 포기하마, 여기 구당문을 내어주고, 너와 제리배천단 사이에 어떤 은원도 없음을 인정하겠다."
건우가 최후의 수단을 사용할 것을 직감했는지 총단주가 다급하게 고함을 질렀다.
- 잠깐만요! 총단주가 항복을 하잖아요!!! 멈추세요!
< 함께 죽어 봅시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