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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환장 통수 선협전-488화 (488/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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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좋은 날에 결국 피를 봐야 하는가 >

“잠깐 기다려라. 너는 이제 원하는 것을 얻지 않았더냐. 그러니 만족하고 물러남이 어떠하냐?”

천단주 여염에게 한껏 눈총을 준 구당문이 건우를 향해 부드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 곁에서 태고지주 역시 힘없는 표정을 짓고 있다가 건우를 보고 고개를 저었다.

“나 역시 감여진인의 청동거울에 문제가 생긴 것은 크게 유감스럽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음도 인정한다. 그러니 굳이 너를 어찌할 생각도 없느니라.”

“리단주! 그게 무슨 말입니까? 어찌 저런 놈을 그냥 놓아준다는 말입니까?”

구당문에 이어서 태고지주까지 건우와 화해를 제안하고 다툴 뜻이 없음을 밝히자 여염이 발끈하며 소리쳤다.

그러자 구당문이 그런 여염을 보고 물었다.

“이번 일이 어찌 생긴 것인지 진정 모르십니까?”

“무, 무슨 말입니까?”

정색하며 묻는 구당문의 모습에 여염이 말을 더듬었다.

“저 녀석의 품에 있는 연화주에는 쌍수수련의 반려가 있다 했습니다. 그건 아시지요?”

감여진인의 진법 속으로 빨려든 후에 몇 번이나 싸움을 벌였던 그들이다.

건우의 사정이야 이제 대부분 알고 있었다.

“그게 어쨌다는 것입니까? 그렇다고 천지 법칙의 흐름에 훼방을 놓은 것이 용서가 된답니까?”

여염이 말도 안 된다는 듯이 구당문을 노려봤다.

“애초에 천지 법칙은 그 흐름을 거스르는 일에 대하여 스스로 벌을 내립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아는 일이지요.”

“그, 그래서요?”

“하지만 이번 어디에 그런 천지 법칙의 재앙이 있었습니까?”

“무, 무슨 소리를 하려는 겁니까? 제단주!”

“그냥 순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제리배천단으로서 일을 행하는 것을 두고 천지 법칙이 벌을 내리진 않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에게 저항하거나 우리 일을 방해한다고 해서 천지 법칙이 간섭하지도 않습니다.”

“그, 그야……"

“맞습니다. 그것은 그저 선인들 사이의 개인적인 은원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실상 천지 법칙은 우리 제리배천단의 행사를 두고 크게 상찬을 하지도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어차피 우리가 이리 애를 쓰는 것은 단지 대천세계를 지키기 위함일 뿐입니다. 그리고 저 놈은 그런 단의 일을 크게 망친 놈이고요.”

그러니 마땅히 벌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무엇이 남습니까? 자칫하면 우리 중에 한둘이 큰일을 당할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구당문은 여전히 내키지 않는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리고 그의 곁에 선 태고지주 역시 같은 생각이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저 놈을 잡아 죽이는 것이 천지 법칙의 뜻이라면 나도 망설일 이유가 없지요. 하지만 아니지 않습니까. 이미 연화주는 저 놈의 것이 되었고, 감여진인의 청동거울은 파탄이 생겼습니다. 이미 저 놈 과의 은원은 끝이 났다는 이야깁니다.”

“하지만……"

구당문은 다시 여염을 설득했고, 여염은 마땅히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하여 얼굴을 붉혔다.

“재미있습니다. 당사자가 여기 있는데 어찌 모든 것을 당신들의 뜻대로만 이야기하고 결론을 내립니까?”

그 때, 그들을 지켜보고 있던 건우가 인상을 찌푸리며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그와 함께 그가 일으킨 공간 법칙의 힘이 세 단주를 향해 밀려들기 시작했다.

“잠시 기다려라. 우리는 너와 싸울 뜻이 없다.”

그러자 태고지주가 다급하게 건우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건우는 도리어 그런 태고지주를 향해 더욱 강한 법칙의 힘을 쏘아냈다.

“내가 오늘 당신들을 징치하지 않고 물러나려 했던 것은 오로지 좋은 날에 흠을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실로 오랜 기다림의 끝에 반려를 만나는데 손에 피를 묻혀서야 면이 서지 않는다 싶었지요.”

건우는 그렇게 말하며 공간 법칙의 힘을 이용하여 자신과 세 단주를 격리 공간에 가두었다.

이는 이미 세 단주도 몇 번이나 경험했던 것이라 그들 역시 태만하지 못하고 바짝 긴장하며 법칙의 힘을 끌어 올려 건우의 공격에 대비했다.

“여염 천단주는 참으로 아전인수의 대가라 하겠습니다. 가만히 사랑을 키워도 모자랄 나와 내 반려를 찢어 놓은 것이 누구입니까? 애절한 마음으로 나를 만나고 싶어서 윤회도 거부하고 스스로 시간의 봉인을 받으려 했던 아름다운 사람이 누구입니까? 그리고 그 사람을 속여 진법의 축으로 써먹은 것은 또 누구입니까?”

건우가 여염을 노려보며 묻고 또 물었다.

그럴 때마다 여염은 흠칫흠칫 어깨를 떨었다.

사실 지금까지 건우와 싸울 때마다 가장 크게 낭패를 본 것이 그녀였다.

그런데 지금은 정화 술법진을 통과하느라 크게 부상을 입은 상태가 아닌가.

따지자면 제 분을 이기지 못해서 스스로 화를 자초한 상황이었다.

“사실 어차피 오늘이 아니라도 언젠가는 찾아갈 생각이었습니다. 어찌 당하기만 하고 그냥 있겠습니까. 그저 오늘은 좋은 날이라 피를 보지 않으려 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굳이 이렇게 판을 벌려 주시니 저로서도 후일을 기약할 필요가 없게 되지 않았습니까.”

쿠구구구구궁! 파가각 파가각!

건우는 말과 함께 세 단주를 공간 법칙의 힘으로 공격했다.

세 단주는 공간을 가르고 뜯고 응축하고 찢어내는 건우의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서 전력으로 법칙의 힘을 펼쳐냈다.

“아악!”

하지만 여염은 오래 버틸 상태가 되지 못했다.

몇 번의 공격을 막은 후로는 연이어 비명을 질렀다.

여염의 주변에서는 수시로 공간이 일렁거리며 아지랑이처럼 움직였는데, 그것이 자칫 그녀의 몸에 닿을 때마다 피와 살이 튀고 있었다.

“내가 유희 선인의 호의로 정화 술법진을 수월하게 빠져나왔음을 잊은 모양입니다. 지금 유희 선인이 내 곁에 없다고 하여, 내가 당신들을 두려워할 것 같습니까?”

건우는 참았던 분노를 터트리며 여염을 더욱 거칠게 몰아갔다.

구당문과 태고지주는 견제를 하는 정도로 묶어두고 오로지 여염을 먼저 끝장내려 하는 것이었다.

“아악! 아아악!”

여염은 일순간에 피투성이가 되며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 듯이 위태로운 모습이 되었다.

공간 법칙의 힘으로 공격한 것이라 여염의 몸에 생긴 상처는 그대로 영체와 영혼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그 말은 여염이 겉으로 드러난 상처만큼 위급한 상태라는 뜻이었다.

구당문과 태고지주도 같은 제리배천단의 단주를 잃을 위기가 되자 더욱 적극적으로 건우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 때문에 여염을 끝장내지 못한 건우는 아쉬움과 분노를 구당문과 태고지주에게 쏟아내기 시작했다.

“어차피 모두 죽일 참이었습니다. 이제 스스로 그리 재촉들을 하시니 그 원을 들어드리지요!”

건우의 외침과 함께 공간 법칙의 힘이 더욱 흉포(凶暴)하게 날뛰기 시작했다.

건우가 청동거울의 정화 술법진에서 의념체를 잃은 것이 열일곱 번이고, 구당문과 여염, 태고지주와 함께 본신으로 그 술법진에 뛰어들기까지 했다.

그럼 그 술법진으로 흘러들던 것이 무엇이었나.

바로 감여진인이 윤회 법칙을 사용하여 편법으로 윤회를 거치며 쌓인 업보였다.

그리고 그 업보에는 당연히 감여진인의 윤회 법칙의 흔적이 녹아 있을 수밖에 없고.

건우는 그것을 도합 열여덟 번이나 경험을 한 것이다.

거기서 건우가 얻은 것은 바로 윤회 법칙에 대한 깊은 깨달음이고, 그런 깨달음은 곧 건우가 익히고 있는 다른 법칙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법칙이란 것이 깊이 들어갈수록 다른 법칙과의 연관성이 드러나기 마련인데, 그것이 옥선의 경지를 넘어 대라선에 이르게 되면 무수히 많은 법칙들의 얽힘도 풀어야 한다.

하나의 법칙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다른 법칙들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건우가 펼치는 공간 법칙의 깊이가 구당문이나 여염, 태고지주를 압도할 수 있는 데에는 그런 이유도 있었다.

물론 구당문 등이 정화 술법진을 통과하며 심각한 부상을 입은 것이 제일 큰 이유겠지만.

“일이 어찌 이리된단 말입니까! 천단주는 어찌 그리 상황 파악을 못하고 사태를 이리 만듭니까?”

“아무래도 아니 되겠습니다. 천단주 미안합니다.”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설마 나를 버릴 생각인 것입니까?”

태고지주와 구당문의 말에 여염이 깜짝 놀라 하나 남은 눈이 빠질 듯이 커졌다.

“원망을 하더라도 어쩔 수 없습니다. 하나라도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니, 제 단주, 천단주야 그렇다고 하지만 어찌 나까지……?”

“지금은 나 하나를 감당하기도 어렵습니다. 허허허.”

“제,제단주!”

“이, 이런!”

건우의 공격이 거세지자 구당문과 태고지주, 여염 사이에 내분이 생겼다.

구당문은 여염과 태고지주를 보호하던 시간 법칙의 범위를 줄였다.

그의 시간 법칙이 건우의 공간 법칙을 지연시키거나 잠시 멈추지 않는다면?

푸화확! 퍼버버벅!

“아아악!”

여염의 몸은 순식간에 터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쿠궁! 쿠궁! 쿠궁!

“이, 이보시오 제단주, 나, 나를 좀 살려 주시오.”

여염보다는 상황이 나았지만 태고지주의 몸에도 여기저기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함께 태고지주의 등에서 거미의 다리가 솟아나며 새하얀 거미줄을 뽑아 자신의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미안하오이다!”

하지만 구당문은 의외로 멀쩡한 상태.

셋을 감싸던 시간 법칙으로 자신만 지키게 되었으니 이전보다 여유가 생긴 모습이다.

그는 여염과 태고지주의 애타는 눈빛을 외면하고 건우를 바라봤다.

“대단하구나. 나는 실로 너처럼 빠르게 성장하는 이를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구당문이 건우를 보며 그렇게 말했지만 건우는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여염과 태고지주를 마무리하기에 힘썼다.

구당문은 그런 건우의 태도에 고개를 흔들고는 시간 법칙의 힘을 더욱 강하게 끌어 올리기 시작했다.

파스스스스스슷!

“아아아악!”

콰지직! 콰지지직!

“커어억!”

그리고 여염과 태고지주가 건우의 공간 법칙에 가루가 되어 소멸되는 순간을 노려 격리 공간을 뚫고 도망쳤다.

건우가 여염과 태고지주에 신경을 쓰느라 구당문에 대한 견제가 살짝 흐트러진 순간을 노린 것이다.

“흥! 그리 쉽게 가실 수 있을 것 같습니까?”

하지만 건우는 도망가는 구당문을 보며 코웃음만 쳤을 뿐, 여염과 태고지주를 완전히 마무리하는데 신경을 썼다. 건우가 손을 뻗자 이미 넝마처럼 망가진 여염과 태고지주가 허공을 넘어 날아왔다.

건우는 그 두 선인의 머리에 양손을 하나씩 올리고 그 영혼을 뽑아내었다.

= 꺄아아아아아!

= 크아아아악! 살려, 살려다오!

여염과 태고지주의 영혼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이내 그들의 영혼은 작게 응축되어 건우의 손에 잡힌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대로 소멸을 시키고 싶지만, 길한 날에 피를 보고 싶지 않으니 너그러이 윤회를 허락하겠다.”

건우는 그 한 마디를 던지고는 시간을 끌지 않고 두 영혼에게 윤회 법칙을 사용했다.

다만 그들의 영혼은 윤회를 하더라도 건우가 펼친 윤회 법칙의 제약을 받아 여건이 좋지 않은 삶을 시작하게 될 터였다. 그것이 어떤 형태가 될지는 건우도 몰랐지만 선인이 윤회를 하여 얻을 복락 따위는 전혀 없을 것만은 분명했다.

'그 정도면 충분하지.'

어차피 윤회에 든 영혼을 두고 무슨 원한을 더 품을까.

건우는 이 내 격 리 공간을 풀고 밖으로 나섰다.

아직 구당문의 처분이 남아 있었다.

“으음?”

그런데 막상 격리 공간을 풀고 나오니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상황이 눈앞에 펼쳐졌다. 구당문 이외에 두 명의 선인이 더 있었던 것이다.

< 이렇게 좋은 날에 결국 피를 봐야 하는가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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