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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환장 통수 선협전-487화 (487/499)

(487)

< 연화주를 얻기 위해 세 단주를 이용하다 >

“이것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법칙이군요. 무어라해야 할까요? 규정(規定), 정의(定義), 재단(裁斷) 그런 것입니까?”

“호호호. 제법 눈을 뜬 놈이구나. 그렇다. 내가 깨우친 법칙은 규정(規定)의 법칙이다. 잣대에 비추어 옳고 그름을 나누고 또 평가하여 바로 잡는 것이지.”

“하지만 제가 느끼기에 바로잡는 것은 아직 미약한 듯합니다. 그저 평가질만 잘할 뿐, 무엇하나 제대로 바로잡을 능력은 없지 않습니까.”

여염이 자랑스럽게 자신이 익힌 법칙을 건우에게 으스댔지만 건우는 도리어 그녀를 비웃었다.

분명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특이한 법칙이었지만 그것이 건우를 어찌할 힘은 없었다.

그것을 이미 알아차린 건우로선 의기양양한 여염의 모습이 가소롭기만 했다.

"네놈이 감히!”

하지만 여염은 그런 건우의 비웃음을 견딜 수 없었다.

그녀는 스스로 도조에 버금가는 수련 경지를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여염이 익힌 규정의 법칙은 실로 희귀하여 그것을 익힌 선인이 몇 되지 않았다.

여염도 운이 좋아서 제리배천단의 천단에 규정 법칙을 익힌 단원에게 그것을 배울 수 있었다.

이후 각고의 노력으로 규정 법칙의 수련 경지를 끌어 올렸는데, 그러다 보니 어느새 규정 법칙에 대해서는 그녀보다 깊이 아는 자가 없게 되었다.

그것을 인식하게 된 여염은 비록 자신이 규정 법칙의 금선이나 옥선, 대라선 등의 지위를 얻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그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마음이 점차 커지다 보니 결국 여염은 스스로 규정 법칙의 도조에 비길 경지에 올랐다는 자평까지 서슴지 않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런 그녀를 건우가 비웃었으니 그 수치스러움이 오죽할까.

“호호호, 내 너를 잘게 저며 내어 그 편(片) 하나하나를 재어 볼 것이다. 실로 네가 대천 세계에 어울리는 면이 있는지.”

여염은 그렇게 건우를 저주하며 한껏 규정 법칙의 힘을 건우에게 쏟아냈다.

그 힘은 건우에게 잣대를 대고 이리저리 잘라내려 했다.

여염은 제멋대로 잣대를 펼치고 그에 맞지 않으면 자르거나 이어붙여 끼워 넣으려 했다.

그것이 여염이 건우에게 적용하려는 법칙의 힘이었다.

하지만.

“고작 이런 정도로 나를 어찌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건우는 영찬황후선보를 이용하여 조율 법칙의 힘을 끌어내어 여염이 뿌리는 규정 법칙의 힘을 흩어내었다.

정해진 잣대에 맞추어 모든 것을 끼워 넣으려는 여염의 힘은 모든 것을 조화시켜 아우르려는 조율 법칙의 힘을 이기지 못했다.

건우는 조율 법칙에 대한 깨달음이 시간이나 공간 법칙은 물론이고 감여진인의 윤회 업보로부터 깨우친 윤회 법칙만도 못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건우가 펼친 조율 법칙의 힘은 여염의 규정 법칙의 힘을 압도하며 흩어내었다.

“아, 아니. 이럴 수는! 이럴 수는 없다!”

그 모습에 여염이 깜짝 놀라며 손에 걸치고 있던 비단으로 된 띠자(尺)를 힘껏 뿌려 건우를 포박했다.

휘리리리리릭!

하염없이 늘어나며 건우의 몸을 휘감는 비단 띠자.

하지만 건우는 태연한 얼굴로 영찬황후선보의 힘을 빌려 여염의 비단 띠자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찌직! 찌지지직! 찌지지지직!

“아악, 아, 안 된다!”

건우가 뿌리는 법칙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조금씩 찢어지기 시작하는 비단 띠자.

여염은 깜짝 놀라며 자를 회수하려 했지만 어쩐 일인지 건우를 휘감은 비단 띠자는 여염의 손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아직 잴 것이 남았는데 어딜 간다는 것입니까? 가시려거든 일단 이 본명법보라도 남기고 가시지요."

찌지지지직! 찌이익!

“아아악!”

건우가 여염에게 고함을 지르며 의념을 강화하자 순식간에 비단 띠자가 찢어져 끊기고 말았다.

그리고 그 순간 여염은 영혼과 연결된 본명법보의 파손으로 큰 타격을 입고 비명을 질렀다.

“으음. 두 분은 아직도 여유가 있으신 모양입니다?”

그 때, 건우는 낭패를 당한 천단주 여염을 구당문과 태고지주 두 선인이 두고만 보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하하하. 천단주가 조금 밀렸다곤 해도, 아직 우리가 끼어들 상황은 아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옳습니다. 우리가 지금 나선다면 이후에 천단주에게 괜한 핀잔만 듣겠지요.”

건우의 말에 구당문과 태고지주는 여유를 잃지 않은 낯빛으로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본명법보인 비단 띠자를 잃은 여염의 몸이 부풀었다.

“까아아아앙! 깡깡깡깡! 고작 진선 한 놈에게 이런 수모를 당할 줄은 몰랐구나. 하지만 이제 더는 보아주지 않으리라!”

여염은 한순간에 두 배 이상으로 커졌는데 주둥이가 길어지고 눈이 찢어졌으며 귀가 솟아났다.

“여우였군.”

건우가 그 본신의 정체를 알아보고 그렇게 중얼거렸다.

“캬하하하하. 나를 이리 불러냈으니 이제 너를 가만히 두지 않겠다. 죽여주마!”

여염은 건우 때문에 본색을 드러낸 것에 더욱 화가 난 듯 고함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그 때, 건우가 문득 옆에 있는 유희를 보며 물었다.

“준비가 되었습니까?”

“호호호. 그래, 이제 되었다.”

“그럼 시작을 하시지요.”

건우와 유희는 뜻 모를 대화를 나누었고, 이어서 유희가 감여진인의 유진인 청동 거울을 향해 강력한 법칙의 힘을 날려 보냈다.

까아앙! 파스스스슷!

청동거울은 유희의 공격을 맞고 맑은 쇳소리를 냈고, 이어서 열두 겹의 방어막을 피워 올렸다.

“하아앗!”

퍼버버버버벙!

그렇게 열두 겹의 방어막이 피었을 때였다.

건우가 공간 법칙의 힘을 이용해 그 방어막과 청동거울의 연결을 두드렸다.

“무, 무슨 짓이냐!”

“아니, 저 놈이?”

“갸아아아, 이런……"

그 모습에 시I 명의 단주는 기겁을 하며 놀라 소리를 질렀다.

그러면서 서둘러 수련실 밖으로 빠져나가려던 그들.

하지만.

"마, 막혔다니!”

“언제 금제 진법을?”

“보, 봉인입니다. 공간 법칙을 이용한 봉인.”

“어서 빠져나가지 못하면 감여진인의 진법 결계에 빨려들고 말 것입니다. 이런……"

구당문과 여염, 태고지주는 당황하여 어쩔 줄을 몰랐다.

그들이 비록 제리배천단의 단주라지만 그 경지는 아무리 높게 잡아도 대라선에 닿기 어려웠다.

여염이 스스로 도조에 가까운 수련 경지라 자랑을 하지만 그것은 규정 법칙 자체가 워낙 한미한 법칙이기 때문이다.

이르자면 건우도 원기소 법칙으로 따지면 도조를 넘볼 수 있지 않은가.

그와 같은 이치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단주들에게 윤회 법칙의 대라선이 펼친 금제 진법이 발동되었으니 어찌 두렵지 않을까.

“먼저 가서 기다리겠습니다. 어서 따라 오십시오.”

“호호호. 재미있구나. 재미있어.”

건우가 당황하는 세 단주를 향해 도발을 하고는 자신이 발동시킨 감여진인의 진법 안으로 뛰어들었고, 그 뒤를 깔깔거리는 유희가 따라갔다. 그리고 남겨진 세 단주들 역시 번져오는 금제 진법의 확장을 피하지 못하고 그 안으로 빨려들고 말았다.

* * *

“고약하구나. 결국 우리를 미끼로 쓴 것이냐? 그것을 찾기 위해?”

구당문이 건우를 보며 노성을 터트렸다.

“제가 지금껏 바란 것은 오직 이 연화주와 이 안에 있는 반려를 찾는 것이었습니다.”

건우는 오른손 손바닥을 펼쳐 연꽃이 담겨 있는 구슬을 내보였다.

그것이 바로 연화주.

유정정이 봉인되어 있는 바로 그 구슬이었다.

“네 놈 때문에 이제 감여진인의 청동거울이 쓸모를 다하게 될 것이다. 그 죄업을 어찌할 것이냐. 어찌!”

몸의 절반 정도가 사라진 거대한 여우, 여염이 한쪽 눈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건우를 향해 분노를 토해냈다.

하지만 정작 여염은 건우를 두려워하여 직접 달려들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감여진인의 진법에 빨려든 이후로 건우와 여러 차례 싸웠는데 매번 손해를 보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은 정화 술법진을 지나는 동안에 크게 손해를 보아서 의념도 법칙의 힘도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 꼴로 건우에게 달려들었다가는 한 번에 소멸을 당할 수도 있었다.

“나는 시간 법칙을 이용하여 리단주와 천단주를 겨우겨우 보호했는데, 너는 오히려 나보다 멀쩡하구나.”

구당문이 건우에게 감탄의 기색을 숨지기 않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구 단주께서는 두 명의 동료를 지켜내셨지만 저는 오히려 유희 선인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그리 말씀을 하시면 오히려 비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무슨 소리를! 내 분명히 몽유희 대라선의 분체가 스스로 정화 술법진으로 뛰어드는 것을 보았거늘.”

건우의 말에 구당문이 당치도 않다는 듯이 손사래를 쳤다.

그의 말처럼 유희는 정화 술법진을 나서기 직전에 건우의 도움을 거부하고 스스로 술법진에 몸을 던졌다.

어차피 몽유희 대라선의 분체인 까닭에 죽고 사는 것은 의미가 없는 존재였기에 충격을 받을 일은 아니었다.

게다가 유희는 그렇게 스스로 몸을 희생하는 것으로 건우가 정화 술법진에서 아무 피해도 없이 벗어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실로 나는 보았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인연이란 말인가. 꿈과 기쁨에 빠져 살았으되 마지막 가는 길에는 크고 아름다운 진정(眞情)을 보고 싶었더니 연화주로 그 바람을 이루었다. 그러니 이것으로 그 보답을 하마.]

유희가 마지막으로 정화 술법진에 스스로 몸을 던질 때에 건우에게 한 말이었다.

그렇게 분체를 희생하여 건우가 정화 술법진을 빠져나가는데 도움을 준, 유희.

건우는 아직도 그녀가 무엇을 보고 만족하여 떠났는지 정확히는 알지 못하고 있었다.

다만 연화주를 먼저 취한 것이 유희였음을 생각하면 정정에게 답이 있을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다.

물론 지금은 제리배천단의 세 단주를 상대하는 것이 급한 일이지만.

“너는 이제 저것이 보이느냐?”

그 때, 정화 술법진을 빠져나온 후로 조용히 있던 태고지주가 한 곳을 가리켰다.

그곳은 바로 그들이 빠져나온 곳.

정화 술법진의 출구였다.

감여진인이 남긴 청동거울에는 윤회의 업보가 시시각각 되살아나 청동거울을 더럽혔다.

그리고 그런 이유로 감여진인이 남긴 윤회 법칙의 힘을 천지 법칙에 제대로 전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만든 것이 정화 술법진.

감여진인이 남긴 온갖 윤회의 찌꺼기들이 쉬지 않고 그 진으로 흘러들어와 다시 깨끗한 기운으로 바뀌는 곳이다.

이곳에서 흘러간 맑은 기운은 다시 감여진인의 청동거울을 씻어내어 윤회의 찌꺼기를 품고 술법진으로 돌아오리라.

그리고 그것이 다시 정화 술법진을 거치면.

맑고 순수한 기운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 태고지주가 가리킨 곳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은 아주 미약하지만 탁기가 스며 있었다.

“네가 벌인 일로 정화 술법진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제 시간이 흐르면 언젠가 대라선급의 윤회 법칙이 힘을 잃을 것이고, 그리되면 천지 법칙의 흐름에서 윤회에 문제가 생길 것이다. 너는 이것이 대천세계에 얼마나 큰 누가 되는 일인 줄을 아느냐?”

태고지주는 세상을 잃은 표정으로 건우를 성토했다.

하지만 건우는 그런 테고지주의 말에도 태연하기만 했다.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랍니까? 그렇게 걱정이 되면 다시 정화 술법진을 보완하면 될 일이 아닙니까. 나는 이제 청동거울이나 제리배천단의 일에는 관심이 없으니 말입니다.”

“흥! 네가 그러고도 무사할 것 같으냐? 감히 천지 법칙의 흐름에 이리 큰 해악을 끼치고도?”

건우의 말에 여염이 분을 이기지 못한 듯 소리를 질렀다.

“그럼 진정 여기서 끝장을 보아야지요. 후환을 남길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쿠구구구구구궁!

결국 여염의 도발이 건우의 인내심을 넘어선 듯.

건우가 영찬황후선보를 다시 현현시키며 강력한 공간 법칙의 힘을 끌어내었다.

“허어!”

"여염 선자! 좀!”

그 모습에 구당문과 태고지주가 기겁을 하고 말았다.

< 연화주를 얻기 위해 세 단주를 이용하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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