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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환장 통수 선협전-482화 (482/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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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오는 하셨습니까? 흥, 네가 이 비밀을 알기나 하느냐? >

“유희 선인께서 이곳에 오셨다는 것이 저에게 어찌 화가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까? 저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듣기에 따라서는 유희 자신이 허원계로 건우를 찾아온 것이 무언가 문제를 만든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는 말이다.

하지만 건우는 유희가 그런 뜻으로 말을 한 것이 아닐 것이라 짐작했다.

유희의 그 말 역시 뭔가 장난이 숨어 있다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쉽게 알려주면 재미가 없지. 하지만 네가 곡해를 하는 것도 보기는 싫으니 내 선심을 쓰마.”

“감사합니다.”

곡해를 염려했다면 역시 유희가 말장난을 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덕분에 건우의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너는 내가 어찌 너를 찾아왔을지 짐작할 수 있느냐?”

그런데 유희는 곧바로 건우의 궁금증을 풀어주지 않고 또다시 질문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유희 선인께서 허원계에 있는 저를 어찌 찾아오셨을지……"

건우는 말을 하다 말고 갑자기 깨우친 것이 있어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잠시 후, 이전보다 굳어진 표정으로 유희를 보며 물었다.

“제리배천단이 이곳으로 오고 있는 것입니까? 아니면 이미 이곳에 와 있는 것입니까?”

“호오? 역시 너는 영민한 데가 있구나. 내가 너를 찾아온 것이 제리배천단의 행보를 좇은 것임을 알아차리다니 말이다.

“유희 선인께서 제 소식을 알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지 생각해 보니 제리배천단이 가장 유력했습니다.”

“그렇지. 내가 너를 따로 감시할 수단이 있는 것도 아니니, 네 소식을 알자면 제리배천단 밖에 무슨 방법이 있겠느냐.”

“그렇습니다. 그것을 깨닫고 나니 이곳에 유희 선인께서 오셨다는 것이 제게 문제가 될 수밖에 없음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지?”

“이미 그들이 허원계에 도착을 했거나 아니면 오래지 않아서 올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지요.”

“호호호. 나는 너의 이런 면이 마음에 드느니라. 때로 이리 상황을 훌쩍훌쩍 뛰어넘는 것이 재미가 있거든.”

“감사합니다. 그런데 제리배천단은 언제나 이곳에 닿겠습니까?”

“이미 도착해 있을 수도 있다 하지 않았더냐. 그런데 어찌 그리 묻느냐?”

“상황이 다급했다면 유희 선인께서 이리 여유를 부리지 않으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유희 선인께서는 환상대시를 자유로이 이용하실 수 있으시니 허원계 근처로 열리는 통로를 쓰셨다면 제리배천단보다 빨리 이곳으로 오셨을 것 같습니다.”

“호호호. 옳다 옳아. 네 추측이 틀린 곳이 없구나.”

짝짝짝짝!

유희 선인은 박수까지 치며 기뻐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다가 잠시 후.

“우선 어디 조용한 곳에 가서 이야기를 하자꾸나. 이곳은 허원계의 대성으로 수많은 수사와 선인들이 오가는 곳이라 중요한 이야기를 하기에는 맞지 않으니.”

유희 선인이 주위를 훑어보는 시늉을 하고는 정색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리고 건우의 대답도 듣지 않고 둔광과 함께 모습을 감추었는데, 홀로 남은 건우도 잠깐 당황한 듯 의념을 펼치더니 곧이어 모습을 감추었다.

* * *

“이리저리 바쁘게도 다녔더구나.”

대성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동한 후, 오랜만에 거용의 머리 위 탑안에 마주 앉은 건우와 유희.

유희는 첫 마디부터 뾰족한 느낌을 숨기지 않았다.

“다시 한 번 사과드리겠습니다. 제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흥, 못한 것이라 하지 않고 않았다고 하는 것을 보면 그래도 양심은 있는 모양이구나?”

“실로 송구하지만 유희 선인을 진선도로 먼저 보낸 것은 제가 하려는 일을 숨기기 위함도 있었습니다.”

“이미 알고 있는 일이지만 네 입으로 직접 들으니 기분이 더 나쁘구나.”

유희는 건우의 말에 표정이 굳어지며 앉은 자세에서 몸을 살짝 옆으로 틀었다.

그것은 앞에 있는 상대를 외면하는 모습이었다.

이런 자세의 상대와 이야기를 나누면 제대로 된 대화를 하기 어렵다.

건우도 그것을 알기에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유희에게 시시콜콜 모든 일을 고하며 이해를 구하지는 않았다.

아무리 길잡이를 자초한 유희라도 건우가 모든 것을 공개할 의무는 없지 않은가.

“흥! 그래서 숙류계로 가서 제단의 단원을 죽이고, 옥선의 봉인을 풀어줬더냐?”

“봉인이야 옥선이 어찌했는지 저는 모르는 일이고, 제단의 단원을 죽인 것은 그가 먼저 저를 함정에 빠트렸기 때문이지요.”

“제단 단원이 먼저? 그렇다면 혹시 그 배후가 구당문이었더냐?”

유희는 숙류계에서 제단의 단원이 건우를 함정에 빠트렸다는 말에 곧바로 그 배후에 구당문이 있음을 추측해 냈다.

“그렇습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구당문 제단주가 저를 제물로 삼으려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단의 단원을 죽였다?”

“네. 유희 선인.”

“좋다. 그럼 그 다음에는 어찌하여 흑와류계로 가서 수천 년을 보낸 것이냐? 게다가 흑와류계에서 한 때 엄청난 천겁운과 천겁뢰가 피었다는데, 그것과 네가 연관이 있더냐?”

“선인, 그 일에 대해서는 자세히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다만 그 때에 그곳에 제가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건우는 흑와류계에서의 일을 그렇게 두루뭉술하게 말하고 말았다.

유희는 건우가 숨긴 내막을 궁금하게 여기는 눈빛이었지만 건우가 먼저 선을 그으니 더는 묻지 못했다.

대신에 아랫입술을 깨문 유희가 다시 허원계의 일을 묻기 시작했다.

“좋다. 흑와류계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더 이상 묻지 않으마. 하지만 이곳 허원계에서는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니 상황을 알려줘야 하지 않겠느냐? 설마 네가 나를 버리려는 것이 아니라면 말 이다.”

“흐음.”

유희의 말에 건우는 즉답을 하지 않고 잠시 생각에 잠긴 모습을 보였다.

“무엇이냐? 진정 이제는 나를 버리려는 것이냐?”

그러자 유희가 당혹스러운 표정과 음성으로 당장이라도 달려들어 멱살이라도 잡을 것처럼 건우에게 따지며 노려보았다.

건우는 그런 유희의 모습에도 한동안 고민을 거듭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눈빛에 힘을 주며 유희를 바라보았다.

“이제 말을 하려느냐?”

“잠깐 생각을 해 보니, 어차피 유희 선인께서는 저와 정정의 일을 모두 알고 계십니다.”

“그렇지. 수미 세계와 연화궁, 다미 선자에 대한 이야기도 나와 함께 파헤치지 않았더냐. 아, 그러고 보니 흑와류계에서 죽은 천단의 단원들 중에 다미 선자도 있었더구나.”

유희가 문득 생각이 났다는 듯이 다미의 죽음에 대해서 말했다.

건우는 역시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다미 선자의 죽음을 유희가 알고 있다면 그것은 제리배천단의 천단에서 다미와 다른 선인들의 생사를 파악할 수단이 있었다는 뜻이다.

지금 천단이 건우를 쫓고 있다면, 그것은 한꺼번에 여덟 선인들이 죽은 것을 조사한 결과일 것이다.

'죽이지 말고 어디 봉인을 시켜두는 것이 좋았을까?'

- 그 때, 건우님께 그럴 여유가 없었죠. 다미 선자로 인해서 판단력이 흐려졌던 때였으니까요.

'판단력이 흐려진 것은 아니었다. 그저 결단이 좀 과했을 뿐이지.'

- 그런 걸 두고 흔히 시야가 좁아졌다고 하지 않아요?

'쯧, 어떤 일이든 시간이 지나고 보면 대부분 후회가 남기 마련이다. 그 일도 그런 경우일 뿐이지.'

건우는 대충 그렇게 몽이와의 대화를 마무리하고 유희를 보았다.

“흑와류계에서 다미를 만난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다미가 저의 손에 죽은 것도 사실이고요.”

“역시 그렇구나. 그럼 그 과정에서 네 반려인 유정정에 대한 정보도 얻었겠구나? 당연히 네 반려가 있는 곳은 이곳 허원계일 것이고?”

“그렇습니다. 유희 선인의 추측이 틀리지 않습니다.”

“그럼 이제 남은 것은 네 반려가들어 있다는 연화주의 행방이구나. 어디의 누가 가지고 있는 것이냐?”

유희 선인이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건우를 보며 물었다.

“선인, 이번 일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어쩌면 제리배천단 전체에 공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신중히 생각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함께 움직이기 시작하면 이후론 제리배천단의 이목을 속이기 어려울 것이다.

이전에도 제리배천단의 뒤를 쫓긴 했지만, 이번처럼 정체가 드러날 가능성이 높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제리배천단과 직접 충돌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았다.

건우는 그에 대한 각오를 유희에게 묻고 있는 것이었다.

“네가 그렇게 묻는 것을 보니 이번에는 쉬이 물러나지 않을 모양이구나?”

유희가 장난기를 걷어낸 눈빛으로 건우를 보며 물었다.

“그렇습니다. 반려를 앞에 두고 어찌 물러나겠습니까? 게다가 이번에 일이 잘못되면 제가 도망을 친다고 하더라도 정정은 무사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니...."

“끝장을 보고 말겠다는 게로구나? 그래서 나 또한 그만한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이야기고."

“마음의 준비를 하시란 것이 아니라 이쯤에서 물러나실 것을 권하는 것입니다.”

“흥, 네가 나를 어찌 보고 그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구나!”

건우의 말에 유희가 버럭 화를 냈다.

하지만 건우는 그런 유희의 모습에도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선인과 저의 관계를 돌아보면 그 시작부터 계약에 의한 것이 아니었습니까. 그리고 그 후로도 선인께서 위험할 일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지만 이제는 지난날과는 상황이 다르니 선인께선 스스로 위기를 자초하지 마시라는 이야깁니다.”

“하! 그래. 그렇구나. 생각해보면 네 뜻이 가상하다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것은 네가 나를 잘 모르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유희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건우도 그녀가 뭔가 할 말이 있음을 깨닫고 조용히 기다려 주었다.

“너는 내가 누군지 알 것이다. 정확하게는 내 본신에 대해서. 그렇지 않으냐?”

“환상대시에 있는 이들 대부분이 삼십육 홍의선자들이 몽유희 대라선의 분체임을 알았을 것입니다. 제가 그것을 아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지요.”

“흥, 그렇겠지.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란 것을 알아야 한다.”

“다른 무엇이 또 있습니까?”

건우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유희를 보았다.

“이는 실로 비밀스러운 이야기라 아는 이들이 별로 없다. 그러니 너도 함부로 입을 놀려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 엄한 이야기입니까?”

“내가 너에게 이것을 말하는 것만으로 천지 법칙의 제약을 상당히 받게 될 정도니라.”

“그렇게나 귀한 이야기란 말입니까?”

그러면 말하지 않아도 된다고 해야겠지만 그럴 거라면 유희 선인이 말을 꺼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건우는 묵묵히 그녀의 이야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너는 금선, 옥선, 대라선, 도조 등의 선인들이 다른 진선들과 다름을 알 것이다.”

“그렇습니다. 그들이 천지 법칙의 흐름에 크게 기여한다 했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큰 깨달음을 얻어 소아를 버리고 대아를 깨우쳤다는 이야기도 알겠구나?”

“큰 깨달음과 하나가 되어 개인적인 욕망이나 생각은 점차 사라지고 오직 큰 깨달음과 하나가 되어 간다고 들었습니다.”

“옳다. 바로 그러한 이들이 금선, 옥선, 대라선, 도조가 되는 것이지. 물론 그 지위를 나누는 것은 법칙에 대한 이해도, 깨달음, 법칙에 관여할 수 있는 능력 등에 따른다.”

“알고 있습니다.”

“흥, 너는 여기 중요한 것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들이 큰 깨우침을 얻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는 말이다.”

건우가 습관적으로 대답을 하는데 갑자기 유희가 엄한 목소리로 건우에게 가르침을 내리듯이 그렇게 말했다.

건우는 곧 정신을 바로 하고 유의의 말뜻이 무엇인지를 고민했다.

큰 깨우침을 얻는다는 것이 중요한가?

그것은 곧 자신을 잃고 거대한 하나에 속하게 된다는 의미로 알고 있었는데?

건우가 의아한 눈빛으로 유희를 바라보았다.

유희가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깨우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 본신인 몽유희는 대라선으로 바로 그 거대한 깨우침을 얻은 존재니라.”

“네? 하지만 유희 선인께서는 그 몽유희 대라선의 분체가 아니십니까. 그렇다면 아직 몽유희 대라선께서도 자아를 지니고 계시는 것이 아닙니까?”

유희의 말에 건우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대의에 녹아 자아를 잃은 몽유희가 어찌 삼십육 홍의선자를 만든단 말인가.

그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였다.

“휴우, 바로 그 점에서 내가 아까 말한큰 비밀이 나오게 되는 것이니라.”

우르르르릉! 꽈릉!

유희의 말과 함께 하늘에 보랏빛 구름이 몰려들고 이어서 샛노란 뇌전이 그 구름 속에서 거칠게 울었다.

< 각오는 하셨습니까? 흥, 네가 이 비밀을 알기나 하느냐?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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