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480화 (480/499)

(480)

< 조화진법을 발동시키다 >

“조화선의 기록을 보면, 원래 조화선은 홀로 구룡승룡단을 사용하려 했었다.”

- 그렇지만 그 방법은 기록에 없잖아요.

“그렇긴 하지. 하지만 이곳에 도착해서 목령단의 기운을 진법 중추인 석판에 흘려보니 방법이 보이더군.”

- 네? 그게 정말이에요? 방법이 있어요?

“그래.”

하지만 혼자서 진법을 발동시킬 방법이 있었다면 다미 선자가 어째서 다른 사람들을 끌어들였을까요?

수도계의 수련자들이 얼마나 자기중심적인지 잘 아는 몽이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말했다.

“그야 조화선이 남긴 기록에는 그런 내용이 없었기 때문이지.”

- 그런데 건우 님은 이곳에 와서 목룡단의 기운을 석판에 몇 번 돌려본 것만으로 새로운 방법을 알아냈다는 거예요?

“아마 다른 선인들도 내가 발견한 것을 찾아낸 사람도 있었을지 모르지.”

- 아, 알겠어요. 방법을 알았다고 해도 그걸 실행할 수가 없었겠네요. 혼자서 구룡승룡단을 모두 차지하긴 쉽지 않았을 테니까요.

“그렇지. 게다가 혹시라도 또 다른 누군가가 자신이 알아낸 방법을 발견했을지도 모르니 그것을 경계하기도 해야 했을 거고.”

- 그러느니 그냥 함께 진법을 발동시키는 것이 제일 좋은 선택이었겠네요.

“그렇지. 아홉 명이 함께 천지 법칙의 근원에 닿는다고 해서 손해될 것은 없으니까. 거기서 무엇을 얻느냐 하는 것은 개인의 역량에 달린 것일 뿐이고.

알겠어요. 괜한 위험을 자초할 필요가 없었겠네요.

“다른 여덟은 배제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해도 손해될 일은 아니니까.”

건우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깨끗하게 정리된 원형 석판을 바라봤다.

여덟 선인이 남긴 보물들은 모두 건우의 의념 공간에 들어간 상태라 남은 것이 없었다.

그런 중에 건우가 의념 공간에서 녹색 영과, 즉 목룡단을 제외한 여덟 개의 영단을 꺼냈다.

- 어쩌시게요?

몽이가 물었다.

“목룡단이 나에게 길들여진 것은 알고 있지?”

- 좀 까불긴 하지만 확실히 건우 님에게 속한 상태가 되기는 했죠. 의념 공간에서 오래 머무는 동안에 자연스럽게 길이 들었으니까요.

“맞다. 분혼을 만났을 때, 가장 많은 변화를 보였고, 그 후로도 계속해서 나의 의념에 물들었지.”

- 그런데 그건 왜요?

“지금 여기에 꺼낸 여덟 개의 영단들 역시 이전의 주인이었던 여덟 선인들에게 길들여진 것이다.”

- 그야 그렇죠.

“하지만 이제 주인이 없어졌으니 내가 이것들을 연화시켜 내 것으로 만들어야겠지.”

- 여덟 개의 영단을 한꺼 번에요? 괜찮을까요?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이미 전 주인들에게 길들여졌던 것들이라, 따지자면 야생성 따위는 걸러졌다 할 수 있으니까.”

- 하지만 전 주인에 대한 충성심이나 애정 같은 것은 있을 수 있잖아요.

“영혼과 연결되어 있던 상태에서 억지로 연결을 끊어냈으니 그런 애정이나 충성심 따위는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자신을 버린 주인에게 매달릴 정도로 속이 없는 녀석들은 아닐 테니까.”

- 아, 생각해보면 그것도 그러네요. 맞아요.

몽이도 녹색 영과로 불리던 목룡단의 모습을 오래도록 지켜봐 왔다.

그래서 곧바로 고개를 끄덕 였다.

“그러니 이제 내가 이것들을 의념으로 연화시켜 길들일 것이다. 그리고 목룡단을 포함한 아홉 영단을 각각의 탁자에 올리고 영단의 기운을 진법 중추에 흐르도록 만들 것이고.”

- 그렇게 하면 진법을 발동시킬 수 있다는 거예요?

“그걸로 끝은 아니지. 내가 석판의 중앙에서 여덟 기운을 통제해야지.”

- 어? 그런데 왜 아홉 기운이 아니고 여덟이에요?

“조화단은 다른 여덟 가지의 기운을 보조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지. 원래 조화단의 역할이 그것이었고.”

- 아 그렇구나. 알겠어요. 그런데…….

“왜? 무슨 말을 하려고 그리 머뭇거리느냐?”

- 너무 무리해서 서두르지는 말라고요.

“음.걱정이 되는거냐?”

상대가 대라선이라는데 어떻게 걱정이 안 될 수가 있어요?

건우의 물음에 몽이가 굳은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

그것은 연화주에 대한 이야기였다.

건우는 다미 선자에게 따로 유정정과 연화주에 대한 것을 물어보지 않았다.

가장 시급하게 알아내야 할 문제를 언급조차 하지 않고 영혼을 뽑아내고 시간 법칙을 동원하여 고문해버렸다.

게다가 지금쯤이면 다미 선자의 영혼은 닳고 닳아서 결국 소멸에 이르렀을 것이다.

그렇게 다미에게 화풀이만 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겉으로 보이는 모습일 뿐이다.

건우는 다미 선자가 연화궁과 유정정, 연화주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을 실오라기 하나도 놓치지 않고 모두 알아냈다.

처음에 영혼을 작은 크기로 봉인하고 시간 법칙을 걸었을 때, 다미 선자의 기억을 뽑아내는 작업도 함께 했던 것이다.

다미 선자의 영혼이 무너지는 과정에서 그 기억을 읽어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것도 한 번에 그치지 않고 몇 번이나 교차 검증을 해 가며 다미 선자의 기억에 오류가 없는지 확인을 마쳤다.

그래서 아는 것이다.

연화주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누구의 손에 들어갔는지.

몽이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이렇게 걱정을 하는 것이고.

“염려하지 마라. 내가 정정의 소식을 알아내어 서두를 것을 걱정하는 모양이지만, 그럴 일은 없다. 아직 일의 경중을 파악할 정신은 남아 있으니까.”

- 지금 당장 뛰쳐나가실 것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조화선의 진법을 발동하고, 천지 법칙의 근원에 닿는 과정을 걱정하는 거예요. 혹시라도 마음속에 작은 조급함이라도 있다면 일을 크게 그르칠 수 있으니까요.

“하하. 알았다. 알았어. 내게 네가 있는데 그럴 일이야 있겠느냐. 네가 항상 그런 점을 경계해서 살펴주고 있는데 무슨.”

건우는 그렇게 대답하며 혹시 마음속에 자라고 있을 조바심을 다시 한 번 경계했다.

실로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은 단 한 치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일이고, 이것이 성공해야 반려인 유정정을 되찾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러니 바짝 정신을 다잡아야 할 일이었다.

삼천 년 후.

흑와류계의 중심.

삼백 장 크기의 원형 석판 중앙에 건우가 가부좌를 하고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원형 석판의 가장자리에 있는 아홉 개의 탁자 위에는 구룡승룡단이 제 자리를 찾아 놓여 있었다.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난 거 같네요.

“어째 조급해하지 말라던 네가 더 서두르는 것 같구나.”

- 서두르긴 뭘 서둘러요? 구룡승룡단을 모두 연화하는 데 성공한 것이 이천 년 전의 일이고, 그 각각의 기운을 조화진법에 맞추어 통제하는 데 성공한 것이 천 년 전이었어요. 그로부터 다시 천 년 을 혹시 모를 변수를 지우느라 보냈고요.

“그래서 그 동안 몇 가지 변수를 찾아내지 않았더냐. 물론 그대로 뒀다고 해도 반드시 문제가 생길 거라 보기는 어려운 변수였다만.”

- 네네. 제가 좀 과했죠. 그러니 이젠 그만 진법을 발동시켜도 되겠다는 거예요.

“옳다. 너와 나의 뜻이 이제 일치했으니 거사를 치러 보자꾸나. 후우우.”

건우는 깊은숨을 내쉬었다.

선인이 된 후로 몸에 탁기가 쌓이지 않게 되었지만 긴장 때문에 가슴이 답답하게 느껴진 것이다.

하지만 이내 건우는 마음을 가다듬고 아홉 탁자에 있는 구룡승룡단에 의념을 전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건우의 의념으로 완전하게 연화된 영단들이 각각의 기운을 조화진법에 흘려보냈다.

우우우우우우웅!

흑룡단의 죽음 법칙의 힘.

백룡단의 정화 법칙의 힘.

화룡단의 화속성 법칙의 힘.

수룡단의 수속성 법칙의 힘.

목룡단의 목속성 법칙의 힘.

금룡단의 금속성 법칙의 힘.

토룡단의 토속성 법칙의 힘.

독룡단의 독속성 법칙의 힘.

이 여덟 법칙의 힘이 조화진법으로 흘러들었다.

그리고 아홉 번째 영단인 조화단에서 조화의 기운이 흘러나와 그 여덟 법칙을 감싸 안았다.

건우는 석판의 중앙, 조화진법의 중심에서 그 여덟 기운을 진법 발동의 순서에 맞추어 운용하고 있었다.

원래는 아홉 선인이 각자 하나의 기운을 움직이면 될 일이었는데, 지금은 건우 혼자 여덟 개의 기운을 운용하는 중이었다.

조화단의 힘은 여덟 갈래로 갈라져 각각의 기운을 따라 움직이니 여덟 갈래의 기운만 신경을 쓰면 되기에 부담이 조금 줄어든 상황이었다.

원래 아홉 선인이 여기 있었다면 다미는 조화단의 기운을 스스로 운용하여 다른 여덟 기운에 간섭했을 것이다.

그것이 조화단의 주인이 조화진법을 통하여 천지 법칙의 근원에 닿을 수 있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건우 홀로 조화선의 기연을 독차지하는 상황이니 조화단은 그저 흐름에 따라서 제 역할만 해 주면 그만일 뿐.

우르르르르르르릉!

건우가 그렇게 조화진법을 발동시키기 위해서 구룡승룡단의 기운을 운용하기 시작하자 흑와류계의 하늘을 뒤덮는 보랏빛 구름이 등장했다.

보랏빛 구름은 예로부터 천지 법칙의 재앙을 뜻하는 것.

그런 구름이 흑와류계 전체를 뒤덮으니 그 아래에 있는 천지만물이 두려움에 떨었고, 수도자들은 어떻게든 재앙을 피하고자 서둘러 먼 길을 떠났다.

‘드디어 천지 법칙의 간섭이 시작되는구나.’

건우 역시 그와 같은 상황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조화선의 기록에도 언급되어 있었던 내용이었다.

천지 법칙의 근원에 강제로 닿으려는 시도를 하는데 어찌 천지 법칙의 이목을 속일 수 있을까.

‘그래 봐야 여기까지는 들어오지 못한다.’

하나의 계를 모두 뒤덮은 보랏빛 구름 속에 그 구름조차 태워버릴 듯이 들끓고 있는 샛노란 뇌전.

그것은 뇌전으로 만들어진 바다가 흑와류계의 하늘에 떠 있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너무 강력한 재앙. 그것이 천지 법칙의 발목을 잡는다.’

건우는 그런 상황을 의념으로 살피며 마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다독였다.

어차피 흑와류계의 하늘에 뜬 샛노란 천겁뇌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 엄청난 뇌전이 흑와류계에 쏟아지면 모든 것이 소멸되기 때문이다.

건우 하나를 잡기 위해서 흑와류계의 천지만물을 소멸시키는 것은 천지 법칙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차라리 수도계의 수사나 선인들이라면 그러한 살육을 외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천 세계를 유지하는 천지 법칙의 흐름은 그럴 수가 없었다.

흑와류계의 하늘에 떠 있는 재앙은 조화선의 진법을 벌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너무 큰 칼을 뽑아 들었기에 도리어 휘두를 수가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이라 했던가?’

조화선이 진법을 통해 천지 법칙의 근원에 닿으려는 계획을 세울 때에 이미 고려한 상황이다.

그러니 건우가 평온한 상태로 기운의 운용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이다.

따다다다당 땅땅따당! 땅땅땅!

샤라라라라라랑! 따라라라랑!

어느 순간, 조화 진법의 중추인 원형 석판에서 기이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악기의 현을 튕기는 소리처럼 들리기도 했고, 금실을 넣은 비단이 서로 비벼지는 듯 하기도 했으며, 옥구슬이 쟁반 위를 구르는 것 같기도 했다.

“아아! 아아아아!”

그 소리가 들릴 즈음, 건우는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엄청난 법열을 느끼며 저도 모르게 쾌락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 건우님! 멈추세요! 정신 차리세요!

몽이의 외침이 없었다면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을 것이다.

반드시 그렇게 되었을 것이지만 건우에겐 몽이가 있었다.

"으음."

몽이의 도움으로 세포 전체를 휘감은 쾌락에서 간신히 눈을 뜨며 건우가 신음을 흘렸다.

그리고 그런 건우의 눈에 보인 것은 빛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기둥이었다.

“!!!!!!!!!”

< 조화진법을 발동시키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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