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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덟 선인을 모두 마무리하다 >
“어떠하냐? 아마도 정정이 그와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지 않겠느냐? 내 추측일 뿐이다만.”
건우가 다시 꺼낸 다미의 영혼을 손바닥에 올리고 들여다보며 물었다.
= 아아아아, 아아아아.
그런데 돌아오는 반응은 무의미한 신음뿐이었다.
마치 이지를 상실한 것처럼 의미 없는 신음만 흘리는 다미의 영혼.
건우는 눈썹을 꿈틀거 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어디에서 같잖은 수작을 부리려 하느냐? 네가 그 정도에 벌써 정신을 놓았단 말이냐? 웃기는 소리! 너는 다시 들어갔다 와야 되겠구나.”
건우는 다미의 영혼이 수작을 부린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곧바로 영혼을 작게 응축시키고 공간 봉인을 걸었다. 그런데 그 때였다.
공간 봉인이 시작되는 순간 다미의 영혼에서 두 가지의 물건이 떨어져 나왔다.
“으음?”
건우는 의념으로 그것들을 허공에 띄웠다.
“이것은 조화단이군. 그리고 이것은 다미의 본명 법보인가?”
건우는 두 가지 물건의 정체를 파악하고 다시 한 번 인상을 찌푸렸다.
지금 다미의 영혼은 건우가 이전과 같은 형벌을 내릴 것을 알아차리고 의념 공간과 하나가 되어 있던 물건을 꺼내 놓은 것이다. 당연히 그 뜻은 자신에게 닥칠 형벌을 면해 달라는 것일 터.
“제 정신이 아닌 것이 거짓이 아니었던가? 그래서 본능적으로 이 두 물건을 내어주고 자비를 바란 것일까?”
건우도 다미의 영혼이 어떤 상태인지 확실히 파악할 능력이 없었다.
영혼의 겉모습은 멀쩡하지만 그 내면의 상태까지는 알아낼 재주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영혼의 반응을 가지고 미루어 짐작할 수밖에 없는데, 의념 공간과 동화된 물건까지 꺼내 놓은 것을 보면.
“그래도 아직 정신이 남아 있다는 뜻이겠지?”
건우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곧바로 다시 다미의 영혼이 들어 있는 봉인 공간에 시간 법칙을 사용했다. 이전과 같이 그 작은 봉인 공간에서만 시간이 극히 빠르게 흐르도록 만든 것이다.
“고작 보물들 따위로 나를 달래려 하다니! 어리석은 것.”
건우는 그렇게 말하며 봉인된 다미의 영혼을 다시 의념 공간에 던져 넣었다.
그리고.
“자. 이제 다시 너희 차례구나. 그래 내가 너희를 어찌할까?”
건우가 백룡 등을 보며 물었다.
그 물음에 다른 선인들이 모두 백룡을 바라보았다.
앞서 건우와 백룡의 이야기가 마무리되지 않았음을 간접적으로 알려주는 행동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건우를 두려워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했다.
“우리 모두를 죽이려는 것이 아니냐? 그런데 무얼 묻는 것이지?”
그때, 백룡은 이미 자신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는 표정으로 앞으로 나섰다.
건우도 백룡이 어는 정도는 자포자기한 심정임을 눈치챘다.
“잘 알고 있구나. 하긴, 이런 상황에 살아남기를 바랄 수 없다는 것은 잘 알것지. 살아온 세월이 있는데 그만한 이치를 모를까.”
건우가 문득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그런 건우의 말에 일곱 선인들이 모두 망연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문득 그들의 눈에 결연한 의지가 깃들기 시작할 무렵.
“그렇다고 다미처럼 죽고 싶지는 않겠지? 다미는 봉인 안에서 영혼의 근간까지 모두 닳아 없어질 것이다. 그렇게 소멸할 때까지 절대 놓아주지 않을 테니까.”
건우가 다시 다미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고 그 말은 일곱 선인들에게 하는 협박일 수밖에 없었다.
“목룡 선인, 우리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죽음을 피할 수는 없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꼭 소멸을 의미하진 않을 테지요?”
건우의 말을 들은 토룡이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역시 토룡 선인께서는 제법 판세를 잘 읽으시는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곱게 윤회에 드는 것이겠지요.”
그런 모습에 건우가 호의가 담긴 표정으로 말을 높이며 토룡을 보았다.
살려주지는 않겠지만 윤회에 들게 해 줄 수는 있다는 말이다.
당연히 다른 여섯 선인들은 부들부들 할 수밖에 없었다.
백룡조차도 쉽게 나서서 건우에게 대거리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말입니다. 상황은 이미 이리 되었고, 여러분과 내가 어차피 상황을 곱게 풀어낼 길이 없다면, 이렇게 하지요.”
“뭘 어떻게 한다는것입니까?”
토룡이 건우의 말에 눈빛을 반짝였다.
혹시라도 살아날 길이 있을까 기대를 하는 것이다.
“일곱 분, 모두를 윤회에 들게 해 드리겠습니다. 어떻습니까?”
하지만 건우의 말은 토룡 등을 실망시켰다.
물론 그나마 지금 상황에서 소멸만이라도 면할 수 있다면 그조차도 감지덕지할 일이라 할 수도 있지만.
“그리 실망할 것은 아닙니다. 윤회에 든다고 해도 따로 해코지를 하지 않을 터이니 이번 생의 공덕을 모두 짊어지고 갈 것이 아닙니까. 후생은 무척 넉넉할 것입니다.”
건우는 선인들이 실망하는 모습에 그렇고 희망을 주었다.
“원하시는 것은 구룡승룡단입니까?”
그런 건우를 향해 토룡이 물었다.
“그 뿐이겠습니까? 어차피 윤회에 들 텐데,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아낀다는 것입니까? 모든 것을 내어주고 가시지요.”
질문은 토룡이 던졌지만 건우는 일곱 선인 모두를 향해 말했다.
윤회라도 곱게 하고 싶으면 가진 모든 것을 내어놓고 가라는 소리다.
자연스럽게 울화가 치미는 선인들이지만 막상 건우에겐 눈도 제대로 치켜뜨지 못했다.
“실로 대단합니다. 감탄스럽습니다. 진정 수도계의 모범이라 하겠습니다. 인정합니다. 인정하고말고요.”
그런 중에 갑자기 독룡이 반쯤은 탄식, 반쯤은 감탄이 섞인 어조로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소매를 떨쳐 가진 모든 것을 석판 위에 쏟아 내었다.
“이것은 직접 받으시지요.”
마지막으로 독룡은 다미 선자의 영혼이 그랬던 것처럼 구룡승룡단의 독룡단과 본명 법보를 의념공간에서 꺼내어 영혼 연결을 끊고 건우에게 밀어 보냈다. 건우는 그것을 의념으로 훑어 확인하고는 그대로 자신의 의념 공간으로 던져 넣었다.
“실로 인연이 있어 언젠가 윤회한 저의 영혼을 보신다면 기연 한 가닥을 베풀어 주시길 바라겠습니다.
건우가 독룡단과 자신의 본명 법보를 수습하자 독룡은 그렇게 말을 하고는 독을 폭주시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건우는 독룡이 죽고 그의 영혼이 풀려나와 윤회의 흐름으로 끌려가는 것을 조용히 지켜봤다.
그렇게 독룡이 먼저 자살하여 윤회를 선택하자, 다른 선인들도 머뭇거리며 하나씩 앞으로 나왔다.
그들 중에는 어떻게든 건우의 마음을 돌려 보려고 시도하는 이들도 두어 명이 있었지만 성공하지는 못했다.
그 중에 흑룡과 화룡은 한 마디 말도 없이, 가진 것을 꺼내 놓고 자살을 해버렸는데, 나름의 소소한 불만 표출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건우는 그런 흑룡과 화룡의 행태를 탓하지 않았다.
오랜 세월 수련하여 등선까지 성공했는데, 오늘 이곳에서 어이없이 그 모든 공이 수포로 돌아가게 되지 않았나.
그 분노와 허무함을 생각하면 그 정도야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결국 모든 것이 당신의 뜻대로 되었군요.”
마지막 남은 백룡은 여전히 뻣뻣한 태도를 버리지 않았다.
하지만 건우는 그녀 역시 앞서 떠난 선인들과 같은 선택을 하리라 확신하고 있었다.
어설픈 반항으로 다미 선자처럼 고통을 겪으며 소멸하고 싶지는 않을 테니까.
건우의 손에서 다미 선자처럼 죽는 것이 제리배천단의 대의에 들어맞는 것도 아니고.
“내 뜻대로 된 것은 다미 선자를 잡아 벌준 것밖에 없다.’’백룡의 말에 건우는 그렇게 대답했다.
“이제 당신의 손에 구룡승룡단이 모두 들어갈 텐데도 그런 말을 하는군요.”
“오해를 한 모양이구나. 구룡승룡단과 다미 중에서 선택을 하라했다면 나는 분명 다미를 선택했을 것이다.”
“그 정정이라는 반려가 그리 중하다는 말인가요? 천지 법칙의 근원에 닿는 것보다?”
“내가 운이 좋아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게 되었지만, 내겐 무엇보다 정정이 중요하다.”
백룡의 말에 건우는 단호한 어조로 그렇게 말했고, 그 말을 들은 백룡은 한숨을 쉬며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건우에게 내어주었다.
당연히 백룡단도 거기에 포함되었다.
건우는 백룡단까지 의념 공간에 넣었는데, 그와 함께 머리 위에 띄워 두었던 영찬황후선보도 의념 공간으로 돌려보냈다.
결국 아홉 가지의 영단을 모두 취하게 되셨네요?
이에 몽이가 묘한 표정을 지으며 모습을 드러 냈다.
녹색 영과만 하더라도 관리가 쉽지 않았는데, 이제 그와 버금가는 영단 여덟 개가 더 생기지 않았나.
당연히 한숨이 나올 일이었다.
“실로 허망합니다. 어찌 일이 이리 되었는지, 하늘이 원망스럽습니다.”
백룡은 모든 것을 내어주더 니 끝내 억울한 표정으로 한탄을 했다.
그러다가 표독스러운 눈빛으로 건우를 노려보며 고함을 치기 시작했다.
“나는 수미 세계의 일도 모르는데 어찌 이렇게 죽어야 한단 말이냐! 나는 스스로 목숨을 끊기 싫으니 네가 나를 죽여라! 나는 저항하지 않을 것이다.”
건우는 그런 백룡의 모습에 깊게 한숨을 쉬었다.
사실 다미 이외에 일곱 선인들이 죽는 것은 그들이 천단에 속해 있다는 이유가 컸다.
유정정을 함정에 빠트린 천단 소속이란 생각에 강경한 처분을 결정했었다.
백룡의 말처럼 당한 이들은 억울함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수도계가 원래 그런 것이지. 운이 없으니 고계 수사의 겨룸에 이유도 모르고 죽는 일조차 허다하지 않더냐.”
건우는 백룡의 억울함에 배려를 해 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
백룡이 다미와 함께 이곳에 온 것으로 그녀의 운명은 결정이 된 것이다. 그녀 스스로 운이 없었음을 탓해야 할 것이었다.
스화확!
건우는 공간 법칙을 사용하여 백룡의 영혼을 육체에서 끌어 냈다.
그리고 영혼이 다시 육체와 이어질 수 없도록 완전하게 분리시켜버렸다.
이로써 백룡은 사실상 '죽은' 상태가 되고 말았다.
건우는 이후 곧바로 백룡의 영혼을 윤회의 흐름으로 던져 넣었다.
다른 영혼들과 달리 미련이 많은 모습이라 엉뚱한 수작을 부리지 못하게 윤회에 넣어 버린 것이다.
‘자, 그럼 다미는 어찌 되었을까? 이 정도 지났으면 영혼도 많이 닳아 없어졌을 것 같은데.’
백룡의 영혼이 윤회의 흐름에 빨려드는 것을 확인한 건우는 다시 다미 선자의 영혼에 관심을 보였다.
그래서 선인들이 쌓아 놓은 모든 것을 의념 공간에 넣어 두고, 다미 선자의 영혼이 들어 있는 공간 봉인을 꺼냈다.
‘볼 것도 없이 이미 영혼까지도 많이 닳아 있겠지만, 얼마나 남았을까 궁금하군.’
처음보다 훨씬 긴 시간을 가둬뒀으니 완전히 소멸했을 수도 있어요.
몽이는 조금 생각이 다른 모양이었다.
그 정도 시간을 버텨내진 못했을 거라는 것.
건우는 곧바로 시간 법칙을 거두고, 공간 봉인까지 풀었다.
그러자 다미 선자의 영혼이 모습을 드러냈다.
건우는 작게 응축시켰던 다미 선자의 영혼을 원래 크기로 되돌렸다.
영혼의 존재감이 거의 없네요. 마치 껍데기만 남은 거 같아요.
‘그래. 이건 네 말대로 껍데기에 불과하다. 영혼의 근간이 남아 있지 않은 허물일 뿐이지.’
그래서 그건 어쩌실 거예요?
‘다시 봉인해서 시간 법칙을 걸어둬야지. 꼴은 이래도 아직 완전히 소멸한 것은 아니니까.’
이젠 두려움이나 고통도 느끼지 못할 텐데, 굳이 그래야 할 이유가 있나요? 지금으로선 형벌의 의미도 없는데요?
‘형벌이 꼭 받는 이를 벌하기 위해서만 있는 것은 아니지.’
네? 그럼요?
‘벌 받는 죄인을 보면서 위로를 얻는 사람도 있잖으냐. 그들을 위해서 죄인을 벌하는 것이기도 하지.’
아, 그러니까 건우님은 아직 부족하다 여기신다는 거군요?
‘다미가 얼마나 고통을 느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분명 다미를 완전히 소멸시키겠다고 했으니, 그 말을 지킬 것이다.’
건우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다미 선자의 영혼을 원래처럼 만들어 의념 공간에 던졌다.
이제 다시 꺼내 볼 때에는 분명 다미의 영혼이 완전히 소멸하고 없을 것이다.
자아, 그럼 이제 어떻게 해요? 구룡승룡단이 모두 건우 님의 손에 있는데 말이죠.
건우가 일을 마치자 몽이가 잔뜩 기대하는 표정으로 건우를 보며 물었다.
< 여덟 선인을 모두 마무리하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