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478화 (478/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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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칠 것 없이 다미(酸婚)를 징치하다 >

“수미세계를 알겠지?”

다미 선자의 물음에 건우가 이전과는 전혀 다르게 굳어진 안색에 서늘한 목소리로 물었다.

“수미 세계? 그게 어찌 되었다는 건가요?”

“연화궁을 알 터이고, 연화궁의 주인이었던 유정정을 알 터이지?”

“연화궁의 유정정? 그게 무슨……. 설마 목룡 당신이 그녀와 인연이 있다는 것인가요?”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다미 선자의 목소리도 이전과 달리 웃음기가 사라셨다.

“정정은 내 반려다. 그런데 네가 그녀를 상대로 음모를 꾸몄다지?”

우르르르르르릉!

건우는 말과 함께 곧바로 영찬황후선보에 여섯 영물을 깃들여 현실로 불러냈다.

그리고 동시에 공간 법칙을 사용하여 석판 위의 공간을 봉쇄했다.

“이게 무슨 짓이냐? 목룡! 당장 이것을 풀지 못하겠느냐기”

그러자 화룡이 곧바로 건우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

그리고 다른 선인들 역시 건우를 경계하며 화룡 주위로 모여들었다.

“나는 너희에게는 따로 볼 일이 없다. 지금이라도 이곳을 떠나겠다면 내보내 주겠다. 하지만 나와 저 다미의 일에 끼어들 생각이 있다면 그 또한 말리지는 않겠다.”

“목룡, 당신이 우리 여덟을 한꺼번에 상대할 자신이 있다는 것입니까? 무모합니다.

건우의 말에 독룡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하지만 건우는 그들을 보며 도리어 코웃음을 쳤다.

“무모? 너희 여덟이 모인다고 옥선을 능가할 성 싶으냐? 그럴 수 있다면 어찌어찌 나와 상대가 되겠지. 하지만 내가 보기에 너희들의 수준은 고작해야 평범한 진선에 불과하다. 그런 너희가 여덟이 든 스물이든 내가 겁낼 이유가 있을 것 같으냐?”

“뭐? 뭐라고?”

“옥선? 그럼 목룡 당신이 옥선을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까?”

“미, 믿을 수 없습니다.”

건우의 말에 금룡과 토룡, 수룡이 각각 눈을 크게 뜨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믿거나 말거나 나와는 상관없다. 나는 일단 지금은 저 다미에게만 볼 일이 있으니.”

쩌저저저적!

말과 항께 다미를 향해서 걸음을 옮기는 건우.

그의 발밑에서 석판이 위태로운 소리를 내며 갈라지기 시작했다.

“목룡! 무슨짓이냐! 감히 조화선의 진법을 훼손하려는 것이냐!”

이에 흑룡이 깜짝 놀라 고함을 지르며 죽음 법칙을 펼쳐냈다.

흑룡의 검은 기운은 다름 아닌 죽음 법칙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흑룡이 떨쳐낸 죽음 법칙의 힘은 서너 장을 뻗지 못하고 그대로 허공으로 흩어져 버렸다.

영찬황후선보까지 현현시킨 건우 앞에서 진선급의 법칙 운용은 어린아이 장난이나 다름없었다.

흑룡이 애써 법칙의 힘을 뿌려 봐도 건우가 봉쇄한 석판 위의 공간에선 아무 소용이 없었다.

석판 위는 건우의 공간 법칙의 힘이 골고루 퍼져 있기 때문이었다.

흑룡의 죽음 법칙에 비해서 훨씬 밀도가 높은 공간 법칙의 힘이 존재하는데, 어찌 흑룡이 힘을 쓸 수 있을까.

“연화궁의 정정이라니! 그게 언제 일인데, 지금에 와서! 게다가 그것은 모두 대천 세계를 유지하기 위한 대의였을 뿐이다. 그것을 두고 나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어!”

다미는 한 걸음씩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건우에게 고함을 지르며 시간 법칙의 힘을 끌어 올렸다.

시간 법칙은 공간 법칙만큼이나 격이 높은 법칙이었다.

그래서 다미는 어느 정도 건우에 맞설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이, 이게 어찌 된 일이야. 어찌 시간이 도리어 빨라진단 말이야!”

다미는 건우의 시간을 멈추려는 의지를 가지고 법칙의 힘을 사용했는데, 도리어 자신에게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변화가 생기자 깜짝 놀라 고함을 질렀다.

다른 이들이 듣기에는 말이 평소보다 많이 빨라진 꼴이라 소리가 이상하게 들려왔다.

하지만 그런 다미의 모습에도 어느 누구 하나 웃을 수가 없었다.

이제 거의 다미 선자에게 다가간 건우가 다미의 목을 움켜쥐고 있는데도 자신 있게 목룡을 말리려 나설 수가 없었고, 그것이 뜻하는 바는 명백했다.

목룡이 두렵다는 것.

“네. 네 놈도 시간 법칙을 익혔구나.”

다미가 건우의 시간 법칙을 알아보고 놀란 눈동자로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제단의 구당문 단주에게 사사했지. 그래서 내가 너보다는 시간 법칙의 수준이 훨씬 높은 것이고.”

“구당문 단주라고? 그럼 너, 너도 제리배천단의 단원이란 말이냐?”

“그 역시 너를 찾기 위해서 가입한 것이라 해야겠지.”

다미의 의문에 그렇게 대답한 건우는 다미의 얼굴을 끌어당겨 코가 닿을 듯이 가까이 마주 보았다.

다미의 눈동자 속에 혈광이 넘실거리는 건우의 눈동자가 보였다.

“너를 어찌할까? 이대로 죽여 영혼을 소멸시키는 것은 너무 허무한 결말이겠지?”

건우가 더욱 거칠게 다미의 목을 움켜쥐며 중얼거렸다.

이 순간 건우의 손안에서 다미의 목뼈가 조금씩 바스러지는 중이었다.

선인에게 그 정도야 문제 될 것도 없겠지만, 다미는 목이 잡힌 이후로 법칙의 힘은 물론이고 영기 한 올도 제대로 끌어올리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 때문에 적잖은 고통을 느끼는 중이 었다.

“호, 호호. 호호. 마음대로 하여라. 이미 너에게 잡힌 몸인데, 내가 무엇을 할수 있겠느냐. 하지만 혹시라도 내가 너의 손을 벗어난다면 나는 어떻게든 너에게 복수를 할 것이다. 그러니 마무리를 완벽하게 해야 할 것이다.”

다미 선자는 건우의 사나운 말에도 전혀 기가 죽지 않았다.

까마득한 세월을 수도계에서 버텨온 그녀였기에,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돌이킬 방법이 없음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나마 바랄 것은 상대의 자비뿐인데, 반려에게 몹쓸 짓을 한 자신에게 자비를 베풀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그래. 담이 크구나. 어쩌면 내가 너를 아무리 고통스럽게 하더라도 의미가 없을지 모르겠다. 이미 모든 것을 포기한 것 같으니.”

“이제 알겠느냐? 호호호. 그냥 죽이거나 소멸시키긴 싫다고 했으니 어디 마음대로 해 보거라. 호호호.”

다미는 아무 상관도 없다는 듯이 태연한 척 웃으며 말했다.

그런 다미를 보는 건우의 눈에선 혈광이 더욱 짙어졌다.

당장이라도 다미를 핏물로 녹여버리고 영혼을 뽑아내어 갈아버릴 것 같은 눈빛이었다.

하지만 건우는 그렇게 성급하게 움직이지 않았다.

“내가 생각을 해 보았더니, 연화주에 갇혀 있는 정정의 시간이 멈춰 있지 않을 것 같더구나.”

건우는 다미를 죽이는 대신에 낮은 음성으로 조곤조곤 중얼거렸다.

다미는 그런 건우의 말에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벌써 수십만 년이 흘렀는데, 정정은 연화주 안에서 어찌 지내고 있을까? 밖의 상황은 알 수 있을까? 그 동안 그녀의 시간은 얼마나 흘렀을까? 혹여 그 긴 시간에 정신은 온전할까? 나를 그리고 기다리며 원망은 크지 않을까?”

건우의 목소리는 점차 공허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듣는 다른 선인들은 어쩔 줄을 모르고 시선이 건우와 다미 선자 사이를 오고 갔다.

“그래서 너를 만나면 해 보고 싶었던 것이 있었다.”

건우는 말을 하다가 다시 다미 선자의 얼굴에 초점을 맞추며 그렇게 말했다.

“무엇을 해 본다는 것이냐?”

다미 선자가 살짝 떨리는 눈동자로 물었다.

아무리 대범한 듯 보이는 그녀라도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 전혀 관심이 없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 어떤 자극도 없는 곳에서 너는 얼마나 긴 시간을 네 정신을 가지고 버틸 수 있을까? 나는 그것이 궁금했다.”

“뭐? 뭐라고?”

“네가 정정에게 했던 짓과 비슷하지 않으냐? 게다가 다행하게도 나는 시간 법칙을 제법 깊이 익혔느니.”

“시간법칙?!”

“또한 공간 법칙도 비슷한 경지로 익혔고.”

“고, 공간 법칙과 시간 법칙?! 서, 설마?”

“그 정도면 내가 생각한 것을 너에게 시험해 볼 수 있지 않겠느냐?”

건우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한쪽 손을 다미 선자의 머리에 올리고 그 영혼을 뽑아내었다.

= 꺄아아아아아!

육신과 영혼이 강제로 분리되는 고통에 다미 선자가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건우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다미 선자의 영혼을 구슬처럼 뭉치더니 그것을 더욱 작게 줄여 겨자씨 크기로 만들었다.

“크기가 작아야 시간 법칙을 더욱 강하게 걸 수 있다는 것은 너도 알 것이다.”

건우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겨자씨처럼 작게 뭉친 다미 선자의 영혼을 공간 법칙으로 감싸서 봉인했다.

건우가 다미 선자의 영혼을 봉인한 공간은 아무것도 없는 그야말로 허무의 공간이었다.

빛도 없고, 소리도 없으며, 무게도 없고, 방향도 없는 곳.

오로지 겨자씨 크기의 영혼이 들어갈 작은 공간만 존재하는 곳.

건우는 그곳에 다미 선자의 영혼을 넣은 후에, 시간 법칙을 극도로 집중시켜 시간을 빠르게 흐르도록 했다.

건우의 심장이 한 번 뛸 때마다 다미 선인의 시간은 백 년이 훌썩 흐를 정도로 큰 시간의 차이를 만들어 낸 것이다.

“자, 그럼 이것으로 다미 선자에 대한 1 차 처분은 마무리가 되었군. 그럼 이제 너희를 어찌할지 결정을 해야겠구나?”

다미 선자의 영혼이 들어 있는 겨자씨 크기의 봉인을 의념공간으로 던져 넣은 건우가 한 곳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선인들을 보며 말했다.

“감히 제리배천단의 단원이 어찌 같은 단원을 그리 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런데 건우가 그들을 바라보자 지금껏 말이 없던 백룡이 건우를 보며 소리쳤다.

“개인의 사사로운 은원에 제리배천단이 무슨 소용이란 말이냐? 너는 단원이라 하여 여기 있는 누군가가 너의 원수라 하여도 그냥 넘어갈 수 있느냐?”

건우는 그녀를 비웃으며 그렇게 물었다.

그런데 백룡의 대응은 건우의 생각과는 전혀 달랐다.

“당연한 일이 아니냐. 제리배천단에 속했다는 것은 스스로 대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겠다고 결심한 것. 당연히 입단 전에 있었던 은원은 잊어야 하지 않겠느냐.”

“하하하. 참으로 대단하구나. 그렇다면 입단 후에 서로 악연이 생긴 것은 어찌 할테냐.”

“말도 안 되는 소리! 어찌 제리배천단에 그와 같은 배덕자가 있을 수 있단 말이냐!”

건우의 말에 백룡이 고함을 질렀다.

“크하하하. 너 같은 이를 무어라 해야 할까? 홀로 꽃밭에 산다고 할까? 내가 이곳 흑와류계에 오기 전에 숙류계에 있었는데, 그곳에서 제리배천단의 단원인 마난색이 나를 속여 천지 법칙의 벌을 받게 만들려 했다. 내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면 윤회에 들었거나 혹은 소멸을 당했겠지.”

“거짓말!”

“하하하. 백룡 선인, 네 이름이 뭔지 모르겠다만, 너도 천단에 있으면서 많은 선인들을 도구로 썼을 것이다. 아니냐?”

“그 모든 것이 대의를 위한 것인데 무엇이 잘못이란 말이냐?!”

“하하하. 내가 너를 설득하려던 것이 잘못이다. 옳다. 네 믿음이 그러하다면 그런 것으로 하자꾸나. 그리고……"

“뭐냐? 또 무슨 변설을 늘어놓으려는 것이 냐?”

“별 것 아니다. 그저 진심으로 물어보고자 하는 것이 생겼을 뿐이다. 묻겠다. 천단의 행사에서 네 희생이 필요하면 너는 당연히 그것에 응하겠지?”

"...그렇다. 대의를 위한 희생을 어찌 거부한단 말이냐?”

건우의 물음에 백룡은 그렇게 대답했고, 건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알겠다. 네 뜻이 그리 숭고하니 마땅히 인정을 해 줘야겠지. 아, 이야기가 조금 길어졌으니 잠시 다미 선자를 다시 불러내어 만난 후에 우리의 이야기는 이어 하자꾸나.”

건우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의념 공간에 던져 넣었던 작은 봉인을 꺼냈다.

그리고 걸어 놓은 시간 법칙을 풀고, 다미 선자의 영혼을 봉인에서 풀었다.

그 사이 다미 선자의 영혼은 족히 수만 년의 시간을 봉인 속에서 보냈을 것이다.

건우는 다미가 어찌 변했을지 그것이 무척이나 궁금했다.

< 거칠 것 없이 다미 (?媚)를 징치하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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