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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환장 통수 선협전-477화 (477/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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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미를 본 건우의 눈에서 섬광이 튀었다 >

“하하하. 어서 오십시오.”

“결국 이렇게 모이게 되는군요. 반갑습니다.”

“환영합니다.”

거용이 원형 석판에 가까이 도착하고, 건우 일행이 석판 가장자리로 뛰어내리자 먼저 와 있던 세 선인이 인사를 해 왔다. 건우는 그들의 환영을 받으며 속으로는 아쉬운 마음을 억누르고 있었다.

‘수룡(首龍)은 없고, 수룡(水龍)이 있군. 나머지 둘은 흑룡과 독룡이겠고.’

건우는 먼저 와 있던 선인들의 기운을 살피는 것만으로 구룡 중에 그들의 위치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만큼 그들의 속성이 명확하게 드러나 있었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다른 선인들 역시 그와 다르지 않았다.

다만 건우만이 목룡(木龍)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을 뿐이다.

그 이름대로라면 목(木) 속성(屬性)이 확연하게 드러날 정도가 되어야 하는데, 지금의 건우는 평범한 선인의 모습일 뿐이었다.

“선인께서 목룡단의 주인이십니까?”

건우가 수룡, 흑룡, 독룡을 살피는 중에 그들도 건우를 가늠하고 있었던지, 독룡이 건우를 보며 물었다.

독룡의 몸을 감싸고 있는 독 속성의 기운은 세월에 물든 종이처럼 누런빛을 머금고 있었다.

그런데 그 기운은 몹시 불쾌하여 당장이라도 종기를 돋게 하고 고름을 뽑아낼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건우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독룡을 보며 공수했다.

그것이 독룡이란 선인의 품성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옳습니다. 제가 바로 목룡단을 얻은 운 좋은 사람입니다. 강 건우라 하지요.”

“하하하. 그렇군요. 강 선인이었습니까? 그런데 한 가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독룡은 자신을 평범하게 대하는 건우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는지 밝게 웃으며 말했다.

“궁금한 것이 있습니까? 그럼 말씀을 해 보시지요. 어지간하면 대답을 해 드릴 것입니다.”

건우는 다시 독룡을 꺼리는 기색이 없이 그렇게 대답했다.

그러자.

“다름이 아니라, 과거 구룡승룡단의 연단로에서 목룡단을 꺼낸 것이 건우 수사가 맞는가 하는 것입니다. 저는 아직도 당시에 그곳에서 목룡단을 누가 가지고 갔는지 알지 못하고 또 궁금한사람입니다.”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분명히 말씀을 드릴 수 있겠습니다. 목룡단을 연단로 안의 나무에서 따서 가지고 나온 것은 분명히 제가 맞습니다. 당시에 제 실력이란 것은 미천하기 짝이 없는 수준이었지요."

“하하하. 그랬단 말입니까? 정말로 강 선인이 목룡단을 취했던 본인이란 말이지요? 그것 참 놀라운 일입니다. 그 때가 고작 화신기 정도가 아니었습니까?”

“당시 제 경지가 낮았던 것은 또 어찌 아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사실입니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미천한 경지였지요. 그 때의 저는 사실 화신기도 되지 못한 영체기였습니다. 하하하.”

“여, 영체기였단 말입니까? 하하하, 통쾌합니다 통쾌합니다. 어찌 영체기 수사가 조화선의 연단로를 뚫고 들어와 목령단을 가져갈 수 있었단 말입니까. 하하하하. 대단합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건우의 말에 독룡은 그건 전혀 예상치 못했다며 크게 웃었다.

그의 웃음에는 그의 말처럼 통쾌함이 가득 담겨 있었다.

“영체기였다니.”

“실로 믿기 어려운일입니다.”

“당시에 우리들은 아무리 못하여도 화신기는 되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말입니다.”

“연단로를 드나든 흔적이 투박하여 경지가 낮을 것이라 생각하긴 했지만, 영체기였다니. 그게 가능한 일이었습니까?”

“저 목룡이 그만한 재주가 있었다는 것이겠지요. 실로 가벼이 볼 수 없는 사람입니다.”

건우와 독룡의 대화는 다른 이들에게도 큰 놀라움을 선사한 모양이 었다.

다들 건우와 독룡을 둘러싸고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하하하. 그거야 뭐. 일단 지난 일이 아니겠습니까. 나는 그저 지금껏 궁금하게 여겼던 것이라 물어봤을 뿐, 지금 이 상황에서는 아무 의미도 없는 일이지요.”

“하긴 그도 그렇습니다.”

“당시에 목룡의 경지가 낮았다는 것이 여기서 문제가 될 것은 아니지요.”

“자자, 다들 다시 자리에 앉아보십시다. 각자의 자리에서 확인해야 할 것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그도 그렇군요. 이곳에 목룡의 자리가 채워진 것이 또한 처음이니 진법에서 목기(木氣)가 어찌 흐르는지도 실제로 확인할 수 있겠군요.”

“어떻습니까? 목룡께서 약간의 수고를 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수고라니요?”

건우는 자신에게 상황 설명도 없이 무언가 해 달라는 수룡(水龍)을 보며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수룡은 물의 기운을 온몸에 두르고 있는 수사였는데 몸의 선이 가늘어 남자인지 여자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목소리마저 남녀가 확연히 구별되지 않았기에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이였다.

“이미 기록을 읽어 아시겠지만 이 석판이 바로 조화선 진법의 중심축입니다. 이곳에서 각자가 지닌 구룡승룡단의 기운을 진법에 흘려 그 기운의 조화로 진법을 발동시키는 것이지요.”

“그건 알고 있습니다만.”

“그런데 어느 자리라도 비어 있으면 진법은 발동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금껏 진법을 발동시키지 못하였지요.”

“그랬겠지요.”

“하지만 그렇더라도 진법에 각자의 기운을 불어넣으면 그것이 어떤 경로로 흘러서 어떤 작용을 하는지는 살펴보고 조화선의 기록과 대조할 수 있습니다.”

“아, 그러니 미리 연습을 해 볼 수 있다는 말이군요? 그리고 그 과정을 다른 분들도 지켜볼 수 있고 말입니다.”

“역시 영민하십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우리들은 이미 몇 번이나 그와 같은 과정을 거쳐서 능숙하지만 목룡께서는 그렇지 않으니 미리 연습을 해 보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여러분이 지켜볼 거란 말씀이지요?”

건우는 수룡의 말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라도 충분히 요구했을 일이었다.

그래서 길게 고민하지 않고 곧바로 대답했다.

“좋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지요. 제가 기록에 따라서 목룡단의 기운을 움직여 보겠습니다. 대신에 제가 시범을 보이면 다른 분들도 저를 위해서 한 번씩은 애를 써 주시겠습니까? 여러분이 저를 모르듯, 저 역시 여러분의 진법 통제를 알지 못하니 말입니다.”

“아, 그야 당연한 일이겠지요. 아니 이참에 제가 먼저 시범을 보이겠습니다. 아무래도 능숙한 이의 모습을 본 후에 목룡께서 실제로 해 보는 것이 더 나을 터이니 말입니다.”

수룡은 건우가 자신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응하자, 이제는 도리어 자신이 먼저 시범을 보이겠다며 아홉 개의 의자 중에 하나로 이동했다.

건우가 다시 확인하니 원형 석판의 자장자리에 아홉 개의 석탁과 의자가 놓여 있는데 각각의 석탁마다 풍겨져 나오는 기운이 제각각 달랐다.

‘각각의 기운만으로 주인을 알 수 있으니, 바로 저기가 그 다미라는 자의 자리가 되겠군.’

건우가 앉게 될 목기를 품은 탁자의 오른쪽에 물의 기운을 품은 수룡의 탁자가 있고, 그 오른쪽에 다시 화기를 품은 화룡의 자리, 그 오른쪽에 정화 법칙과 비슷한 느낌의 백룡좌가 있고, 그다음이 아무 기운도 풍기지 않는 탁자였다.

건우는 그 탁자가 바로 다른 여덟 기운을 모두 포함하는 조화단의 주인이 앉을 곳임을 직감했다.

다름 아닌 수룡(首龍) 다미 (酸婚) 선자(仙子)의 자리일 것이다.

‘너는 언제 오려느냐!’

그 자리를 스쳐 가는 건우의 시선에서 다시 한 번 예리한 칼날이 번뜩였다.

*   *   *

조화선의 진법 중추인 원형 석판은 흑와류계의 중심에 있었다.

그곳에서 석판의 진법에 기운을 불어넣으면 흑와류계 전체에 퍼져 있는 조화선의 진법에 영향을 줄 수 있었다.

“오오. 옳습니다. 그것이군요. 그리 목룡단의 기운을 흘리니 흑와류계의 소용돌이에 미묘한 변화가 생깁니다.”

“맞습니다. 목룡단의 기운이 다른 기운들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변화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지금은 진법이 발동되지 않아서 그 변화가 미약하지만 백룡(白龍)과 수룡(首龍)이 도착하여 진법을 발동시키면 엄청난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정말기대가 됩니다.”

건우가 진법 중추에 도착한 이후로 일곱 명의 수사는 몇 번에 걸쳐서 석판의 운용을 연습했다.

그러는 사이에 미약하지만 구룡단의 기운을 석판에 흘리면 다른 기운들과 어울리며 어떤 현상을 일으키는지도 조금씩 밝혀졌다.

“조화선은 정말 대단한 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찌 이리 엄청난 진법을 만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목룡단, 즉 녹색 영과의 기운을 석판에 주입하여 그 흐름을 다시 한 번 확인한 건우가 감탄을 거듭했다.

벌써 세 번째였지만 그 때마다 흑와류계 전체를 아우르는 조화선의 진법은 경외감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하하하. 여기 있는 어느 누가 목룡과 다르겠습니까. 모두들 조화선에겐 엄지를 치켜들 것입니다.”

“그럼요, 그렇고 말고요.”

“또 그 정도가 되니 이런 진법을 완성하여 감히 천지 법칙의 근원을 넘보겠다고 나선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하. 그것도 그렇습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그런 분이 결국 화를 당하였다는 것이겠지요.”

“흑룡께선 마음에 없는 말씀을 다 하시고 그러십니다. 조화선이 그리 되지 않았다면 오늘 우리에게 이런 자리가 오기나 했겠습니까?”

“하하. 그건 또 금룡의 말씀이 옳습니다. 제가 실언을 하였습니다.”

“아니, 실언이라고까지 할 것이야……. 어? 오는 모양입니다.”

흑룡과 대화를 나누던 금룡이 문득 한쪽 방향을 보며 말했고, 그 때에 다른 선인들 역시 그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에는 형형한 안광을 뿜어내는 건우도 끼어 있었다.

‘드디어 오는구나.’

건우는 흑룡과 금룡이 언쟁을 시작하기 직전에 이미, 진법의 생문을 따라 들어오는 이들의 기척을 느끼고 있었다.

조화선의 진법 생문을 찾아들 수 있는 이는 이제 수룡과 백룡만 남은 상황.

건우는 그들이 따로 오지 않는다면 이번에 다미 선자를 만나게 되리란 생각에 흥분을 가라앉히기 어려웠다.

하지만 흥분하기는 석판 위에 있는 다른 선인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제 수룡과 백룡만 도착하면 드디어 조화선의 진법을 발동시킬 수 있는데 어찌 태연할 수 있을까.

“호호호호. 다들 모이셨습니다. 다들 모이셨어요.”

“그러게요. 정말 기쁜일입니다.”

그런 중에 허공에서 짜랑짜랑한 여자의 웃음과 함께 기뻐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 뒤를 또 다른 여자의 목소리가 따라왔다.

“수룡과 백룡이 도착했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이번에도 함께 왔군요.”

“같은 계에 수련 동부를 두고 있다니 당연한 일이겠지요. 자자, 다들 일어나 반겨 주십시다. 하하하.”

“그럴까요?”

수룡과 백룡의 목소리가 먼저 도착하자 몇몇 선인들이 탁자에서 일어나 한 곳을 바라봤다.

그러자 마치 먹물 소용돌이에 금가루를 띄워 놓은 것 같았던 하늘에서 두 명의 여자 선인이 꽃잎처럼 날아내리는 것이 보였다.

그 중에 하나는 입은 옷이나 풍기는 기운이나 모두 백룡임을 알아차릴 수 있는 이였고, 다른 하나는 얼굴을 면사로 가린 비단 경장의 여자였다.

건우는 다미 선자로 보이는 그 여자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다미 선자 역시 뚫어져라 자신을 바라보는 건우와 잠시 시선을 교차하며 의아한 눈빛을 보냈다.

“다들 모이셨군요. 저희가 조금 늦었습니다.”

석판에 내려선 수룡이 살짝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백룡은 그런 수룡의 한 발 뒤쪽에 내려서서 함께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하하. 누가 늦었다고 합니까? 아닙니다. 아니지요. 우리가 이 일을 도모한 세월이 이미 오랜데, 고작 이 정도의 기다림을 가지고 수룡께 타박을 하겠습니까?”

“맞습니다. 이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지요. 자자, 고개를 들고 어서 자리에 앉으십시다.”

“맞습니다. 아, 참. 수룡과 백룡께선 여기 목룡을 모르시지요? 일단 인사부터 하는 것이 순서겠습니다.”

“그렇지! 이거 마음이 급하여 그런 단순한 예의도 잊을 뻔 했습니다. 하하. 목룡, 여기 이 분이 수룡(首龍)이시고, 이 분이 백룡(白龍)이십니다.”

수룡과 백룡의 등장에 흥분한 선인들 사이에서 독룡과 토룡이 그나마 정신을 차리고 건우와 수룡과 백룡을 마주 소개했다.

건우는 수룡을 소개받자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봤다.

“우리가 언제 만난 적이 있었던가요? 어찌 그리 뜨거운 눈빛으로 저를 보시는지요?”

그런 건우를 향해 수룡이 웃는 음성으로 농을 던졌다. 그 순간 건우의 눈에서 섬광이 튀었다.

< 다미를 본 건우의 눈에서 섬광이 튀었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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