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476화 (476/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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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화선의 진법 흑와류계(黑滑流界)에 도착하다 >

“드디어 왔습니다그려.”

“예상했던 것보다는 일찍 오신 것 같습니다.”

“일은 잘 보셨습니까?”

건우가 화룡과, 금룡, 토룡을 다시 찾아갔을 때, 그들은 도리어 건우가 일찍 왔다며 놀라는 모습을 보였다.

“미룰 수 없는 일이기는 했지만, 시간이 오래 걸릴 일은 아니었습니다. 자, 그럼 이제 제가 왔으니 곧바로 조화선의 진법이 있는 곳으로 곧바로 출발하면 되겠습니까?”

“그렇지요. 그리하면 되겠습니다만……"

“금룡께선 달리하실 말이라도 있으십니까?”

건우는 슬쩍 토룡의 눈치를 살피는 금룡을 보며 물었다.

“으음. 이미 알고 있는 일일 테니 숨김없이 묻겠습니다. 조온후를 만나지 않았습니까?”

그러자 금룡이 답답했던 속을 토해 내듯이 조온후의 이름을 꺼냈다.

“아, 그 일을 두고 걱정을 하시는 것입니까? 조온후가 저를 찾아온 것에 금룡께서 연관이 있으셨던 모양입니다?”

“그것이……"

“금룡이 아니라 내가 조온후에게 강 선인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금룡이 대답을 머뭇거리는데 불쑥 토룡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어린아이가 흙덩이를 주물러 만든 토우 같은 모습의 토룡이었지만 이 순간 그의 눈빛은 맑은 정광이 가득했다.

“그렇습니까? 도대체 저에 대해서 어찌 이야기를 했기에 조온후가 그리 천둥벌거숭이처럼 달려왔는지 모르겠군요.”

건우는 살짝 언짢은 표정을 드러내며 토룡의 행동을 탓했다.

그러자 토룡이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나는 조 선인에게 목룡단의 주인이 이미 정해졌으니 그만 미련을 버리라 전하려 했습니다. 아울러 강 선인은 조 선인이 넘보기 어려운 분이란 뜻도 함께 전하려 했지요.”

“그런데 조온후는 저를 무척 만만하게 생각했던 모양입니다만.”

“그것은 우리가 가진 전언 선기의 성능이 부족한 탓입니다. 거리가 멀수록 전하려는 뜻이 핵심만 남고 소실되는지라……"

“그래서 조온후가 제가 목룡단의 주인이 되었고, 이곳 숙류계에 있다는 사실만 알고 쫓아왔다는 것이군요.”

“그렇습니다. 그러니 강 선인께서는 오해가 없었으면 합니다.”

토룡 선인은 뭉텅한 손을 모으며 건우에게 몸을 숙여 인사를 했다.

조온후의 일에 대한 일종의 사과인 셈이었다.

“하하. 이러실 것 없습니다. 조온후의 일은 저에게 그리 큰 일이 아닙니다. 그저 잠시 귀찮았을 뿐인데, 토룡 선인께서 이리 과례를 하실 일은 아니지요.”

“아, 그리 생각을 해 주시니 다행입니다.”

“따져보자면 조온후가 세 분과 인연이 있을 터인데, 그런자를 윤회에 들게 했으니 그것이 도리어 미안한 일이겠지요.”

“역시 그리 되었습니까?”

“그럴 줄 알았지. 욕망을 주체하지 못하여 일의 앞뒤를 가리지 못했으니. 쯧.”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요. 조 선인이 강 선인에게 온건하게 다가가지는 않았을 터인데, 어찌 강 선인의 처사에 왈가왈부 할 수 있겠습니까.”

건우의 말에 화룡, 토룡, 금룡이 저마다 안색이 흐려지며 한마디씩 했다.

그들은 조온후가 윤회에 들게 된 것은 안타깝지만, 그것을 두고 건우 탓을 할 생각은 없다는 뜻을 전하고 있었다.

“하하. 그럼 이제 조온후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서 끝내는 것으로 하지요. 그의 종말은 다분히 그의 선택에 따른 결과일 뿐이니.”

“좋습니다. 강 선인의 말이 옳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맞습니다. 우리야 이제 조화선의 진법을 찾아가는 일이 급하지 않겠습니까?”

건우가 조온후의 일을 여기서 끝내자고 했고, 세 선인도 굳은 표정을 풀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로서는 조온후의 일로 건우가 그들에게 앙심을 가지지 않는다면 그것으로 만족스러운 일이었다.

어쨌거나 조온후가 건우를 찾아간 것이 그들 때문인데, 그 문제는 덮어준다지 않는가.

“맞습니다. 고작 조온후 따위의 일로 신경 쓸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하하하. 그런데 지금 우리가 조화선의 진법으로 출발하면, 다른 분들은 어찌 되는 것입니까?”

건우가 짐짓 일이 잘 풀려서 다행이라는 듯이 크게 웃으며 세 선인을 보고 물었다.

“그것은 걱정할 일이 아닙니다. 이미 그곳에는 수룡(首龍)이 기다리고 있고, 다른 동도들에게도 연락할 방법이 있습니다.”

“그럼요. 조온후에게도 연락이 닿았는데, 막상 직접 연관이 있는 이들이야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맞습니다. 그것은 걱정할 일이 아니지요.”

건우의 질문에 세 선인은 미리 말을 맞춘 듯이 자신 있게 말했다.

건우는 그런 그들의 모습에 고개를 끄덕이고 함께 조화선의 진법으로 출발하기로 했다.

*   *   *

조화선은 구룡승룡단을 연단할 단로(丹爐)를 만들고 그것이 단련되는 동안에 구룡승룡단의 기운을 활용할 진법을 만들었다.

조화선은 그 진법을 이용하여 천지 법칙의 근원을 탐구하려 했다.

대천세계에는 수천 가지의 크고 작은 법칙들이 있지만,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근원의 법칙이 존재할 거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수많은 법칙들 중에서도 특별한 법칙들이 더러 있지만 선인들은 그러한 모든 법칙을 아우르는 궁극의 법칙 하나를 상상했다.

조화선 역시 그런 법칙의 존재를 믿었고, 그것이 천지 법칙의 흐름 깊은 곳에 있을 거라 생각했다.

매번 승경을 할 때마다 변죽만 올리고 물러나야 했던 바로 그 곳.

그 지극한 법열의 너머에서 만나던 천지 법칙의 흐름, 그 중심에 궁극의 법칙이 있으리라.

조화선은 그렇게 생각했고, 결국 그 깊은 곳으로 들어갈 길을 만들어 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흑와류계(黑滑流界) 전체가 조화선이 만든 진법이란 사실을 지금도 믿기가 어렵습니다.”

건우는 거용의 정수리 위, 4층탑의 1 층에서 화룡, 금룡, 토룡과 함께 있었다.

그가 바라보는 앞쪽으로 검은색의 안개가 가득했다.

이곳은 흑와류계가 시작되는 지점이었다.

지금 그들은 거룡의 머리 위에서 흑와류계의 시작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그들이 거용을 타고 있는 것은 거용이 장기간의 비행에 가장 적합한 선기였던 까닭이다.

세 선인들도 나름 뛰어난 비행 선기가 있었지만, 건우의 거용이 길고 먼 비행에 가장 어울렸다.

그래서 다들 거용을 타고 흑와류계로 가는 것에 동의한 것이다.

“흑와류계가 선계의 금역이 된 것은 그 거대한 계가 하나의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모든 기운을 빨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것뿐인가? 빨아들인 기운을 또 반대쪽으로 쏟아내기도 하지. 그 쪽은 나도 가 본 적이 없기는 하지만.”

“빨려드는 쪽이나 뿜어져 나가는 쪽이나 사납고 위험하긴 마찬가지지. 그런 와류에 휩쓸린다면 옥선이 아니라 대라라고 하더라도 낭패를 면하기 어렵지. 자칫하면 윤회도 하지 못하고 소멸을 당할 수도 있고.”

“소용돌이에서 엉키고 엉킨 기운들의 변화는 아무리 등선자들이라 하더라도 예상키 어려우니 자칫하면 죽기 쉽지.”

화룡, 금룡, 토룡이 저마다 흑와류계에 대해서 평을 늘어놓았다.

건우는 아직까지 흑와류계를 본 적이 없었기에 나름 기대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마침 거룡이 흑와류계로 빨려드는 기운의 지류에 닿은 상태라 수십 년이 지나기 전에 흑와류계를 보게 될 때가 되었다.

건우는 다시 때를 기다리며 가부좌를 하고 명상에 들었다.

그리고 얼마 후.

“사실상 흑와류계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이들이 조화선의 유진을 이은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는 셈이지요.”

“흑와류계에도 어찌어찌 적응하여 살아가는 중생들이 없지는 않지만, 그래 봐야 눈 먼 장님이나 다름이 없지요. 흑와류계에서 등선에 성공한 이들조차 그들의 고향이 조화선의 진법임을 알지 못하 니 말입니다.”

“저기, 저기를 보십시오. 드디어 흑와류계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화룡, 금룡, 토룡의 부산스러운 목소리가 건우를 명상 삼매에서 현실로 끌어냈다.

“강 선인 거룡을 잘 다루어야 합니다. 자칫 진법의 생로를 놓치기라도 하는 날에는 우리 모두 횡액을 면치 못할 수도 있습니다.”

건우가 눈을 뜨자 화룡이 곧바로 흑와류계의 소용돌이에 빨려들지 않도록 조심하라며 주의를 주었다.

“하하하. 화룡께선 괜한 걱정을 다 하십니다. 이미 거룡에게 흑와류계의 중심으로 들어가는 진법의 생로를 주입해 뒀습니다. 이 강 모가 간섭하지 않아도 거용이 알아서 찾아갈 것입니다.”

건우는 이미 흑와류계에 들기도 전에 대비를 해 둔 일이라 여유로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래도 혹시 무슨 변수가 생길 수도 있으니……."

“알겠습니다. 이 강 모가 바짝 신경을 곤두세워 대비하고 있겠습니다. 그나저나 흑와류계는 진정 소름이 돋는 곳이긴 합니다.”

그럼에도 화룡은 마음을 놓지 못하는 모양이었지만 건우는 화룡의 걱정을 뒤로하고 눈앞에 펼쳐진 흑와류계의 모습을 자세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거의 검은색의 은하를 보는 것 같군.’

그러게요. 건우님의 기억에서 찾아보면 저쪽 세상에 비슷한 것이 있는데, 대천세계의 언어로는 마땅히 번역할 단어가 없네요.

‘밀도가 상상도 못할 정도로 높아서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모습이 비슷하긴 하네. 하지만 또 다르지. 저 흑와류계 안에는 어떻게든 정착해서 살아가는 생명들이 다수 존재하니까.’

하긴 그것도 그러네요. 저기가 조화선이 만든 진법의 일부란 것도 모르면서 말이죠.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번에 진법을 발동시켜도 흑와류계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크게 위험할 일은 없다는 것이지. 아니 도리어 일순간 영기가 크게 증가하여 오래도록 유지될 테니 복이라고 해야할 까?’

그래도 다치고 죽는 이들이 아주 없지는 않겠죠?

‘세월이 흐르며 진법에 달라붙은 불필요한 티끌과 먼지들이 적지 않으니 그 부분이 날려가긴 하겠지.’

물론 그 티끌과 먼지가 진짜 티끌이나 먼지를 말하진 않는다.

거대한 크기의 흑와류계 소용돌이에 끼어 있는 잔재들을 말하는 것이니 땅이 뒤집어지고, 지표면이 뜯겨 나가는 일이 드물지 않게 일어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일을 건우나 다른 선인들이 관심을 두지도 않겠지만.

“다시 봐도 역시 굉장한 광경이지 않습니까?”

“그러게 말입니다.”

“저것을 보면 조화선이 새삼 존경스럽습니다. 나는 아직 아무리 애를 써도 저만한 역사를 이룰 자신이 없습니다.”

“하하하. 토룡, 이곳에 있는 우리들중에 누가 감히 저런 역사를 완성할수 있다고 자신하겠습니까. 기죽을 일이 아닙니다.”

“금룡의 말이 옳지요. 어떻습니까? 강 선인께서는 혹여 흑와류계와 같은 역사를 이루어낼 담이 있으십니까?”

토룡, 금룡과 대화를 하던 화룡이 문득 건우를 향해 물었다.

흑와류계는 곧 조화 법칙을 이용하여 만든 거대 진법인데 그에 대한 내용은 조화선이 남긴 기록에 세세하게 적혀 있었다.

그래서 그 내용대로만 할 수 있다면 또 다른 흑와류계를 만드는 것도 가능했다.

그만한 자원과 시간과 노력을 투자할 수만 있다면.

하지만.

“그 무슨, 이 강 모가 어찌 그런 것을 감당할 수가 있겠습니까? 언감생심도 안 될 일이지요.”

건우는 두 손을 저어가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자원을 대 주면서 하라고 해도 하지 않을 짓을!’

그런 건우의 속내는 이와 같았다.

대체 흑와류계와 같은 것을 무슨 이유로 다시 만든단 말인가?

어디 구룡승룡단이 또 있기라도 한다면 모를까.

그래도 정말 장관이긴 하네요. 진법의 생로를 따라서 이동하니 마치 흑와류계를 발밑에 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요.

‘그 또한 환각일 뿐이다. 지금 우리는 회오리치며 뒤섞여 정체조차 모호해진 기운의 소용돌이를 위태롭게 지나가는 길이다. 저 환각에 속아서 조금이라도 생로를 어긋난다면 수만 개의 칼날에 난도질 당하는 꼴을 면치 못할 것이다.’

무슨 말씀을 그렇게 험악하게 하세요? 거용이 알아서 갈 거라면서요.

몽이가 양쪽 어깨를 감싸며 무서운 시늉을 했다.

하지만 건우나 다른 세 선인들 중에 누구도 흑화류계를 두려워하는 기색은 없었다.

그만큼 조화선이 남긴 기록을 믿는다는 뜻이었다.

‘조화선의 기록은 감히 조작하거나 거짓으로 꾸밀 수 있는 것이 아니었지.’

그래서 믿는 것이다.

자신의 모든 역량을 동원해서 살폈음에도 조화선이 남겼다는 기록에서 거짓을 발견하지 못했기에.

- 그게 진짜가 아니라면, 뭐 당해 줄 수밖에 없는 거죠.

몽이도 그런 면에선 건우와 같은 생각이었다.

“드디어! 끝이 보이는 모양입니다.”

그 때, 토룡이 기쁜 목소리로 거룡이 나아가는 방향을 보며 고함을 질렀다.

그러자 모두의 시선이 검은 회오리 중앙에 놓여 있는 백색의 원형 석판으로 모였다.

아홉 개의 의자가 놓여 있는 원형의 석판은 고작 백여 장 정도의 지름밖에 되지 않는 작은 크기였다.

‘세 명의 선인이 먼저 와 있군. 저 중에 다미가 있을까?’

건우의 눈빛에서 칼날 같은 기운이 치솟았다가 사라졌다.

< 조화선의 진법 흑와류계(黑滑流界)에 도착하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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