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475화 (475/499)

(475)

< 마난색을죽이다 >

“뭣이라? 감히 나에게 뭐라?”

건우의 노성이 터지자 마난색도 참지 않고 대거리를 하며 건우를 노려봤다.

“네가 보기에 내가 그리 허술해 보이더냐? 뭐라? 네 봉인이 천지 법칙의 눈을 가릴 수가 있다고? 그래서 이 봉인 안의 옥선에게 시간 법칙을 걸어도 그 사실을 천지 법칙이 모를 거라고?”

건우가 화를 내며 마난색에게 쏘아붙였다.

“그럼 내 말을 믿지 못한단 말이냐? 감히 내 봉인을 의심해? 너 따위가?”

이에 마난색은 자신과 자신의 봉인을 무시했다며 건우를 향해 삿대질을 했다.

“이, 미련한 놈 봉인이 천지 법칙의 이목을 가릴 수 있다면 안에 있는 옥선이 어찌 흐름 법칙을 이용하여 천지 법칙의 운행을 도울 수가 있단 말이냐? 너는 그 간단한 이치도 생각지 않고 나에게 거짓말을 했느니라!”

이에 건우가 마난색을 한껏 비웃는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고, 이에 다급한 마음에 되지도 않는 소리를 했던 마난색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그, 그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다. 구당문 선인이 어찌하여 나를 이런 함정으로 밀어 넣었을까? 내가 지금껏 그를 서운케 한 적이 없었는데.”

말도 제대로 잇지 못하는 마난색을 앞에 두고 건우는 허탈한 표정을 연기하며 구당문에 대한 섭섭함을 토로했다.

그러다가 다시 마난색을 노려보았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이 너의 음모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제단의 단주인 구 선인이 나를 이리 대할 이유가 없다. 그러니 지금 상황은 마땅히 마난색  네가 꾸민 함정일 것이다.”

“무, 무슨 소리를……"

건우의 말에 마난색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건우는 그것이 마난색의 연기가 아니라면 이번 일의 중심에 구당문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구당문까지 적으로 만들 수는 없었다.

그러니 모든 일을 마난색의 탓으로 몰아서 그를 처리할 생각이었다.

어차피 보고 듣는 이가 없는 상황에서 굳이 구당문에 대한 이야기를 조심할 필요가 없을 것 같지만, 혹시 모를 상황을 생각해야 했다.

“내 너를 잡아서 왜 이런 함정을 꾸민 것인지 알아내고 말겠다.”

건우가 마음의 결정을 내리고 곧바로 공간 법칙을 펼쳐 격리 공간을 만들어 냈다.

그런데 건우가 격리 공간을 모두 만들 때까지 마난색은 그것을 방해하지 않았다.

“하하하하. 실로 대단하구나. 천지 법칙의 이목을 숨기는 격리 공간을 만들다니. 하하하. 하지만 이것이 너의 실수임을 너는 아느냐?”

마난색은 건우의 격리 공간이 완성되자 크게 웃으며 법칙의 힘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건우는 그가 무슨 법칙을 사용하는지 유심히 살피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의외로구나. 색욕(色慾)의 법칙이라니.”

마난색이 끌어낸 법칙의 힘은 그의 몸을 휘감는 분홍색의 기류로 나타났다.

그런데 그 법칙의 힘에 담긴 이치는 색욕, 다르게 성욕이라 할 수 있는 그 힘에 대한 것이었다.

익히는 이가 있어도 좀처럼 겉으로 드러내는 일이 드문 법칙이 색욕의 법칙이었다.

하지만 건우는 마난색이 펼친 색욕의 법칙을 절대 무시하지 않았다.

생명 탄생에 관련된 법칙들이 여럿 있지만, 그중에서 색욕의 법칙만큼 중요한 것도 많지 않다.

탄생에 얽힌 법칙 중에는 생기 법칙이나 태어남(生)에 대한 법칙이 당연히 중요하다.

하지만 색욕이란 것은 아주 특별한 탄생과 연관이 있으니 이는 번식욕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이성을 지닌 존재들 중에서 번식욕에 기반하여 탄생의 시초가 이루어지는 일은 별로 없다.

대부분이 번식욕이 아닌 색욕이 탄생의 시작이 된다.

하지만 색욕은 탄생과 전혀 상관없는 다른 이치와도 수없이 연결된다.

색욕을 느낄 수 있는 존재들 대부분이 색욕을 여러 다른 것들과 연관 짓기 때문이다.

‘따져보자면 욕망이 천지 법칙의 흐름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는 너무도 명확하다.’

건우는 마난색의 색욕 법칙을 알아차린 순간, 새롭게 작은 깨달음을 얻었다.

지금까지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던 욕망이 의외로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음을 알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색욕 법칙 앞에서 겁먹을 건우가 아니었다.

“어리석은 놈, 고작 그만한 힘으로 나를 노렸다고? 옥선에 미치기에도 부족한 실력으로?”

건우는 곧바로 의념 공간에 영찬황후선보를 불러내고, 여섯 영물들을 영찬후에 깃들게 했다.

그것만 하여도 옥선급 정도의 선인은 충분히 상대하고도 남았다.

이미 두어 번 그와 같은 경험을 하지 않았던가.

건우는 마난색을 향하여 시간 법칙을 시전했다.

이곳의 봉인을 찾기 위해 구당문이 전한 시간 법칙의 깨달음을 모두 수습한 건우였다.

당연히 이전보다 시간 법칙을 더 깊이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었다.

“허엇! 어찌 이리 강력한 시간 법칙을 쓴단 말이냐? 구당문 단주를 모신다더니 평범한 단원이 아니었던 것이냐?”

“무얼 놀란단 말이냐? 봉인 안의 옥선에게 시간 정지를 걸어야 하는데, 그럼 내가 이만한 수준도 되지 않을 것이라 봤더냐?”

건우는 사정을 봐 줄 생각이 없다는 듯이 곧바로 마난색을 향해 시간 법칙을 사용했다.

마난색 역시 색욕 법칙의 힘을 끌어 올려 자신을 보호하며 건우를 향해 색욕 법칙의 힘을 흘려보냈다.

“네 법칙의 힘이 감히 내게 닿을 수 있을 것 같으냐?”

하지만 건우는 마난색이 뿌린 법칙의 힘이 자신에게 닿지 못하도록 시간 법칙으로 자신을 완전히 감싸 보호하고 있었다. 법칙의 힘은 법칙의 힘으로만 상대할 수 있고, 서로 사용하는 법칙의 힘에 차이가 있다면 승부는 쉽게 날 수도 있다.

하지만 마난색이 펼친 색욕 법칙의 힘은 조금 달랐다.

부드럽게 일렁거리며 스며들 듯 시간 법칙의 힘으로 젖어 들었다.

건우는 그 때마다 색욕 법칙의 힘에 물든 시간 법칙의 힘을 떼어내어 흩어 버리기를 반복했다.

“제법이구나. 이런 식의 사용은 처음이지만 새롭고도 놀랍다. 하지만 그래 봐야 네가 먼저 무너진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건우는 마난색의 수법이 대단하다며 칭찬했지만 그 때 마난색은 이미 건우의 시간 법칙에 휘말려 조금씩 느려지는 중이었다.

마난색만 다른 시간에 속하게 되었으며 점차 그의 시간은 느려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이 되면.

뚝!

마난색의 모든 것이 멈추었다.

구당문의 깨달음을 전해 받아 시간을 멈출 수 있는 범위와 대상을 크게 넓힌 건우였다.

특히 구당문은 선인들을 대상으로 시간을 멈추는 것에 대해 깊은 깨달음을 전했는데, 지금 마난색이 그 첫 실험체가 되었다.

하지만 건우는 마난색을 완전히 제압한 직후, 자신에게도 문제가 생긴 것을 알아차렸다. 언제 스며든 것인지 마난색의 색욕 법칙이 건우에게 영향을 주기 시작한 것이다.

- 이건 심독(心毒)과 같아요. 성욕을 극한으로 끌어올려 다른 모든 것을 잊게 만드는 고약한 힘이에요.

‘재미있구나. 마음 같아선 이 색욕 법칙에 젖어 한동안 시름을 잊어도보고 싶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지.’

몽이가 마난색이 색욕 법칙에 심어 놓은 의념을 읽어냈고, 건우 역시 특별한 경험에 잠시 호기심을 보였지만 곧바로 훌훌 털어냈다.

“결국은 의지의 문제다. 내가 색욕 따위에 휘둘릴 것 같았더냐?”

건우는 시간이 멈춰버린 마난색 앞으로 다가가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물론 마난색의 시간은 흐르지 않으니 건우의 말을 듣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너를 어찌할까? 시간이 멈췄으니 너를 해치는 것도 쉽지 않지. 너를 해치려면 내가 걸어 놓은 시간 법칙을 깨트릴 정도의 힘을 써야 하니 말이다.”

시간 법칙은 간단치 않다.

마난색의 시간을 멈추었다는 것은 그 상태가 유지되는 한, 그에게 어떤 위해도 끼치지 못한다는 것과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너를 이대로 둘 수는 없지. 시간이 멈춘 것도 영원할 수는 없으니까.”

시간이 멈춘 상태에서 마난색은 어떤 것도 보고 듣고 느낄 수 없다.

그러니 지금 상태가 마난색에게 형벌이 될 수도 없는 것이다.

“시간 법칙에 대한 깨달음 덕분에 나는 정정이 무척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임을 알아냈다. 정정의 시간이 완전히 멈추었다면 연화주에서 정화 법칙의 힘이 흘러나올 수가 없지. 분명 정정의 시간은 지금도 흐르고 있을 것이다. 아주 느리게 흐르고 있다 하더라도.”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가능성이 높은 추측이었다.

그래서 건우는 다미를 만나는 일이 다급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구당문의 일을 처리하기 위해 여기까지 왔는데, 이런 함정이라니!

“마침, 이곳은 격리 공간으로 천지 법칙의 이목을 속일 수 있는 곳이다. 예전에 이곳을 좋아하던 선인이 있었지. 다른 것은 몰라도 순간 파괴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대단한 법칙을 깨우쳤 는데, 마침 너에게 쓰기에 딱 맞겠구나.”

건우는 시간이 멈춰버린 마난색을 처리할 방법으로 오랜만에 원기소 법칙을 사용하기로 했다.

멈춘 시간을 풀어주고 처리하는 것은 마난색에게 틈을 주는 일이라 꺼려지니 그냥 자신의 시간 법칙을 원기소의 파괴력으로 깨트리며 동시에 마난색을 처리하려는 것이었다.

“네가 오체분시가 되더라도 영혼을 붙잡아 일의 전후를 알아보면 될 터. 그러니 그냥 죽어라!”

건우는 그렇게 외치며 원기소 법칙을 이용하여 곧바로 마난색을 둘러싼 모든 것을 원자 단위까지 분해하여 그것을 폭발시켰다.

쿠구구궁!

파괴력만을 따지자면 비교할 것이 없는 원기소 법칙의 힘이 마난색을 감싼 시간 법칙을 단숨에 깨트리고, 이어서 마난색 자체를 흩어 버렸다.

건우는 그 순간을 노려 마난색의 영혼만 건져 내었다.

하지만.

“이런, 영혼까지 이리 타격이 심할 줄이야. 법칙의 힘이 영혼까지 소멸시켰군.”

폭발의 힘이 워낙 강력하여 건우의 예상을 뛰어넘어 버렸다.

덕분에 마난색의 영혼은 대부분 흩어지고 일부만 남았을 뿐이었다.

“이것에 추혼을 펼쳐본들 제리배천단이나 구당문에 대해서는 알아낼 것이 없겠다. 쯧.”

건우는 혀를 차며 마난색의 영혼을 놓아주었다.

지금 남은 마난색의 영혼은 말 그대로 영혼의 근원에 해당하는 부분뿐이었다.

그동안 쌓아 온 전생의 업보조차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상태라 윤회를 거쳐 새로 태어난 영혼에 가까웠다.

그러니 마난색으로선의 기억이 남아 있을 턱이 없는 것이다.

"쯧."

건우는 격리 공간을 풀어 마난색의 영혼이 윤회로 돌아가도록 하며 아쉬움에 혀를 찼다.

하지만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일에 오래 마음을 두는 것은 건우의 성격이 아니었다.

그는 곧바로 고개를 돌려 항아리와 접시로 이루어진 봉인을 바라보았다.

‘이제 저것을 어찌하면 좋을까?’

건우는 잠시 고민하다가 다시 봉인에 의념을 투사하여 의념 분체를 만들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위에 파묻힌 선인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네가 다시 온 것을 보니 마난색은 크게 경을 쳤겠구나?”

바위 속의 옥선이 히죽 웃는 얼굴로 건우를 맞이했다.

“다음 생에선 수사가 되기도 어려울 것입니다."

“뭐라? 죽였단 말이냐? 게다가 그 정도 되는 놈이 다음 생에 수사조차 되기 어렵게 만들었어?”

“의도한 것은 아니나 영혼의 무게를 덜어 주었지요.”

“크하하하하. 대단한 놈. 그게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텐데?”

“의도한 것이 아니라 하지 않았습니까? 어쩌다 보니 그리 된 것입니다. 다시 하려고 해도 쉽지 않을 것입니다. 차라리 영혼을 소멸시키는 것이 쉽겠지요.”

“흐흠, 하긴 그게 무슨 상관이겠느냐. 내 속이 이리 후련한 것만으로 충분하지. 하하하.”

바위 속의 옥선은 다시 한 번 크게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은 길게 가지 않았다.

“오랜만에 속이 시원하였다. 그런데 이제 어쩔 것이냐?”

금방 웃음을 그친 옥선이 건우를 보며 물었다.

“어찌해 드리면 좋겠습니까? 시간을 멈춰 드릴 수도 있고, 이대로 떠날 수도 있습니다.”

건우가 그를 보며 물었다.

“봉인을 풀어줄수는 없고?”

“쉽지 않은 일인데, 제가 시간이 없습니다.”

“시간이 없다? 시간 법칙을 쓴다는 놈이 어찌 시간이 없어?”

건우의 말에 옥선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아무리 제가 시간 법칙을 쓴다 하여도 고작해야 좁은 범위에 불과합니다. 대천 세계 전체의 시간에 어찌 간섭을 하겠습니까? 게다가 시간 법칙을 잘못 쓰면 천지 법칙의 벌을 받게 되는 것을 아시지 않습니까?”

“천지 법칙의 이목을 속일 방법이야……"

“제가 급히 해야 할 일은 그리 숨어 지내면서 이를 일이 아닙니다.”

옥선이 뭔가 아쉽다는 듯이 말을 이어가려 했지만 건우는 그것을 단호하게 끊어냈다.

그리고 다시 옥선을 보며 물었다.

“저는 이제 떠나려 합니다. 그러니 그전에 원하시는 것이 있으시면 말씀을 해 주십시오. 가능하면 들어드리겠습니다.”

“끄응. 그렇다면 이것을 봉인 항아리의 물에 띄워 주거라. 그것이면 되겠다.”

결국 바위 속 옥선은 앓는 소리를 내며 건우에게 손가락 크기의 배를 하나 허공에서 만들어 건우에게 밀었다.

“이것을 접시와 함께 항아리 물에 띄워 놓으란 말입니까?”

“그렇다. 거기엔 내 흐름 법칙이 들어 있으니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봉인을 풀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 전에 제리배천단 놈들이 온다면 어찌 될지 모르지만.”

“알겠습니다. 어렵지 않은 일이니 그리 해 드리겠습니다.”

“고맙다. 그리고 세상일에 공짜는 없는 법이니, 이것을 보상으로 주마. 내가 익힌 흐름 법칙의 일부니라.”

바위 속의 옥선은 건우에게 옥간 하나를 밀어 주었다.

건우는 그 옥간을 받고 공수하며 인사를 하고는 곧바로 봉인에서 의념을 회수했다.

그런 중에 옥간과 배를 가지고 나오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의념의 힘을 이용하여 강제로 뚫고 나왔다.

어차피 봉인 따위야 어찌되건 자신이 신경 쓸 일이 아니라 생각한 것이다.

이후, 건우는 옥선이 준 나무배를 접시 옆에 띄워 놓고 훌쩍 몸을 날려 봉인이 있는 동부를 떠났다. 이제는 조화선의 기연에 얽힌 일을 풀어볼 차례였다.

< 마난색을 죽이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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