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472화 (472/499)

(472)

< 목룡단을 노리는 도적이 나타나다 >

"실로 백만 년의 시간이 허무하구나. 조화선의 일은 그 백만 년의 세월로도 거슬러 올라갈 수 없을 정도로 오래전의 일."

옥간의 내용을 면밀히 살핀 건우가 깊은 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옥간에는 한 치의 거짓도 들어 있지 않아요. 조화선이 연단로를 만들어 아홉 성질의 영단을 단련한 것도 사실이고, 그 영단들의 조화를 이용하여 엄청난 조화 법칙의 진법을 세운 것도사실이에요.

몽이도 감탄을 감추지 못하고 흥분한 표정으로 말했다.

단지 옥간에, 그것도 이전의 내용을 복사한 것에 불과하지만 충분히 그와 같은 확신을 줄 수 있는 내용이 옥간에 담겨 있었다.

당장 세월만 허락한다면 조화선의 연단로를 만들 수도 있고, 조화 법칙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익히면 그 연단로에서 구룡승룡단을 단련할 수도 있었다.

물론 그만한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야 할 일이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할 내용이 옥간에 온전히 들어 있었다.

게다가 구룡승룡단을 차지하고 그 기운을 제대로 운용할 수 있는 아홉 사람이 모이면, 조화선이 만들었다는 조화 법칙의 진법을 발동시킬 수 있다는 것도 사실이었다.

옥간에는 그 모든 운용과 조화 법칙의 진법에 대한 것까지 상세하게 기록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옥간의 내용을 모두 파악했으니 내가 조화 법칙을 깊이 수련하기만 한다면 과거 조화선이 했던 모든 일을 그대로 다시 할 수도 있다."

건우는 옥간을 의념 공간의 한구석에 던져 넣으며 그렇게 확언했다.

그만큼 옥간에 담긴 내용이 충실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시간과 노력과 재화죠. 거기에 들어갈 자원을 마련하는 것도 꿈과 같은 이야기고, 또 수백만 년이 필요한 준비 기간도 감당하기 어려워요.

하지만 몽이는 반대 입장을 분명하게 드러냈다.

이에 건우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 말대로 할 수는 있는데, 또 성공을 확신할 수 없는 것이 또 조화선의 업적이라 할 수 있겠구나."

할수 있지만, 하기는 어렵다.

시간과 노력과 자원이 준비되어도 중간에 별다른 일이 벌어지지 않아야 한다는 천운도 필요하다.

조화선의 경우만 보아도 그렇다.

모든 준비를 끝냈음에도 불구하고 선계의 어떤 일에 연루되어 목숨을 잃었다지 않던가.

"할수 있어도, 내가 직접 나서서 하지는 않을 일이지."

-하지만 이미 차려진 밥상을 거부할 이유는 전혀 없지요. 이미 조화선이 밥상을 완벽하게 차려 두었으니까요.

"그 잔칫상을 조화선과는 전혀 연관이 없는 이들이 받아먹으려 하는 중이고."

-뭐,그냥 둔다고 다른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자리도 아닌데요 뭐.

"하하. 그러니 내 몫은 당연히 찾아 먹어야 한다는 말이렸다?"

-그야 당연하죠. 절대 빼앗길 수 없는 기회라고요.

몽이가 허공에 주먹까지 붕붕거리며 의욕적인 모습을 보였고, 건우는 그 모습을 보며 활짝 웃었다.

몽이가 곧 건우가 아니던가.

구룡승룡단에 얽힌 기연을 반드시 취하겠다는 생각은 이미 굳어진 후였다.

다만.

"구당문이 시킨 일은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군. 게다가 구룡승룡단에 대한 것은 유희 선인에게 알릴 일이 아니기도 하고."

건우는 제리배천단의 일과 유희의 문제를 두고 고민스러운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당장이라도 화룡과 금룡, 토룡이라 했던 선인들을 찾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큰 기연을 앞에 두고도 건우는 유정정의 일을 뒤로 미룰 수가 없었다. 조화선의 기연은 당연히 크게 욕심이 날 일이지만, 여기서 구당문과의 관계가 일그러지면 이후 제리배천단의 일을 파내기가 어려워진다.

그리되면 다시 어디에서 유정정의 일을 알아본단 말인가.

- 맞아요. 천지 법칙의 근원에 닿을 수 있다는 기연은 분명 욕심이 나지만, 그렇다고 정정 선인의 일을 뒤로 미룰 수는 없지요.

‘그렇지?’

- 네. 그리고 어차피 구룡승룡단의 여덟 주인들도 건우님이 마음을 정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수 없어요.

‘그래, 내가 나설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겠지. 아니면……'

- 건우님이 가진 목룡단을 빼앗는 방법도 있겠지만, 설마 그게 가능하겠어요? 화룡 등이 이미 허량원에서 귀왕을 만나고 왔다면 건우님을 가볍게 볼 수 없음은 분명히 알고 있을 걸요?

‘옥선 정도로는 나를 어쩌지 못함을 알 테니, 여러 명의 옥선급 실력자나 대라선급을 움직이지 못한다면 나를 도모할 생각을 하지 않겠지. 그러니 내가 시간이 필요하다 하면……

- 기다려 줄 거예요. 따지자면 등선자에게 가장 흔한 자원이 시간 아니겠어요?

‘가장 흔하면서 또 가장 강력한 수련자원이기도 하지. 어쨌거나 이런 경우엔 흔하디 흔한 시간을 좀 투자하라는 데에 반발은 그리 심하지 않겠지.’

건우는 제 마음대로 그런 결론을 내리고, 구룡승룡단의 기연은 잠시 뒤로 미루기로 했다.

하지만 그런 결론을 내리고 나자 구당문의 부탁을 빨리 해결하고 싶은 조바심이 들었다.

- 바늘 허리에 실을 묶어 바느질을 할 수는 없다죠? 진정하시고 구당문이 준 것이나 잘 수습하세요.

그나마 다행히 몽이가 건우의 마음을 다독여 가라앉히지 않았다면 아마, 구당문의 시간 법칙에 대한 깨우침을 받아들이는데 더 많은 시간이 결렸을 것이다.

하지만 건우에겐 몽이가 있었고, 그 덕에 구당문이 전한 시간 법칙의 깨우침을 어찌어찌 갈무리 할 수 있었다.

당연히 그 마지막에는 건우의 예상처럼 구당문이 숙류계에서 건우에게 시키려 했던 일이 잘 정리되어 담겨 있었다.

"쯧, 시간 법칙을 이용해서 옥선 하나의 폭주를 멈추라는 거네?"

건우가 그 내용을 확인하고는 혀를 찼다.

구당문의 부탁을 짧게 정리하면 그렇게 말할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건우가 할 일은 단순했다.

폭주하는 옥선은 이미 제압이 되어 봉인된 상태라 그 봉인 안쪽 시간을 정지시키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던 것이다. 다만 숙류계에 도착하는 것이 2000년 정도 늦었기에 지금 상황이 어떤지는 알 수가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간 숙류계의 수도계에 큰 이변이 없었다고 하니, 폭주하는 옥선을 봉인한 것은 그대로 유지가 되는 모양이네. 어서 가서 구당문의 일을 마무리해야겠다."

건우는 그렇게 짐작하고 곧바로 유희를 찾아가 구당문이 부탁한 일에 대해서 설명하고 홀로 봉인이 있다는 곳으로 찾아갔다.

유희는 일이 끝나면 진선도에서 다시 만나는 것이 좋겠다며 후일을 약속하는 방법으로 미리 떼어 내었다. 구당문의 일을 처리하고 곧바로 구룡승룡단의 기연을 찾아갈 생각이라 그렇게 처리한 것이었다.

*   *   *

"누구신가? 누군데 내 앞을 가로막고 있는가?"

건우는 구당문이 남긴 정보에 따라 폭주하는 옥선을 봉인했다는 곳으로 찾아가던 중에, 앞을 막는 선인 하나와 대치하게 되었다.

그 선인은 건우가 보기에도 목령족의 특징을 지니고 있는 선인이었지만, 건우와는 전혀 안면이 없는 이였다.

"내가 누군지는 네가 알 필요가 없다. 다만 너는 내게 목룡단만 내어놓으면 된다."

그런데 건우의 앞을 가로막은 목령족은 대화를 할 생각이 없다는 듯이 곧바로 건우를 윽박지르며 목룡단을 요구했다.

"음. 목룡단? 네가 어찌 그것이 나에게 있음을 알고 나를 찾아왔지?"

건우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이전에 자신을 찾아왔던 세 선인들을 떠올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들이 이 목령족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퍼트린 것이 아닌가 의심스러웠기 때문이다.

"무슨 말이 많으냐가 냉큼 목룡단을 내어놓지 않고!"

하지만 이번에도 목령족은 건우의 말에는 대답도 않고 목룡단을 내놓을 것만 요구하며 건우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목령족이 끌어낸 힘은 다름 아닌 목속성 법칙의 힘.

건우는 그 모습에 콧방귀를 뀌며 웃고 말았다.

"고작 목속성의 법칙으로 무얼 어쩌자는 것이지? 네가 그 법칙으로 나를 어찌 할 수 있는지 한 번 보자구나."

속성을 나타내는 법칙은 종류에 따라서 매우 강력할 수 있다.

특히 화 속성과 같은 경우는 모든 것을 불태우는 기본적인 힘을 지니고 있기에 파괴력도 강력하다.

당연히 그런 법칙의 힘은 상대를 제압하거나 위협하는데 효과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목속성 법칙은 그 자체로 큰 힘을 지니지 못한다.

나무 속성이란 대체로 순하고 부드러우며 정적(靜寂)인 힘이다.

물론 나무 속성이 강건할 수도 있고, 강한 생명력을 뿜어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여러 가지 특성을 고려하더라도 목속성 법칙은 누군가와 싸우기엔 적합하지 않은 법칙이다.

"네 놈이 나를 우롱하려는구나!"

목령족 선인도 건우의 말뜻을 알아차렸는지 크게 화를 내며 더욱 강력하게 목속성 법칙의 힘을 뿜어냈다.

그러자 서로 대치하고 있는 건우와 목령족의 발밑에 있던 풍요로운 숙류계의 나무들이 일제히 꿈틀거리며 건우를 향해 가지를 뻗어 올리기 시작했다.

못해도 수십 리 범위의 모든 나무들이 건우를 향해 살의를 드러낸 것이다.

"이게 무슨 짓이냐? 이런 짓을 해 봐야 아무 이득도 없음을 모르느냐? 고작 나무들 따위로 나를 어찌할 수 있을 성싶으냐?"

이에 건우는 상대 목령족에게 버럭 화를 내며 공간 법칙의 힘을 펼쳐 그를 격리하려 했다.

"그리 쉽게 당할 것 같더냐?"

하지만 목령족은 재빨리 숙류계 나무들의 가지를 끌어와 자신과 연결했다.

그렇게 하자 건우의 공간 법칙이 목령족의 목속성 법칙의 힘을 끊어내지 못하고 겉돌게 되었다.

생각보다 목령족 선인의 법칙의 힘이 강력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본 건우가 다시 코웃음을 쳤다.

"훗, 고작 그걸로 안심하긴 이르다. 네가 그리 나온다면 너와 그 나무들까지 모두 잘라내면 그만이다. 하핫."

건우는 그렇게 목령족 선인을 비웃으며 공간 법칙의 힘을 더 넓게 펼쳐내어 목령족이 목속성 법칙의 힘으로 장악하고 있는 십여 리의 공간 전체를 격리해 버렸다.

"이, 이게 무슨? 어찌 이리 법칙의 힘이 크고 강하단 말이냐!"

이에 목령족 선인은 건우가 다루는 법칙의 힘이 그가 상대할 수 없을 정도임을 알아차리고 얼굴빛이 창백하게 변했다.

목령족 특유의 나무껍질 피부가 새하얗게 바뀌니 마치 백양목의 껍질을 보는 듯 했다.

"네가 감히 나를 노리고 왔으니, 다시 돌아가지 못한다 하여도 후회는 없겠지?"

건우는 목령족과 그가 법칙의 힘으로 장악한 숙류계의 일부까지 공간 법칙으로 잘라내어 격리한 후,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그리고 그 때에 목령족은 이미 전의를 상실한 표정으로 목속성 법칙의 힘을 간신히 유지하는 중이었다.

"너는 도대체 누구란 말이냐? 어찌 이리 강력한 법칙의 힘을 사용하지? 너 같은 놈이 있다는 소리는 들은 적이 없다. 너는 누구냐?!"

목령족 선인은 도무지 믿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건우를 보며 물었다.

하지만 그 물음은 꼭 대답을 듣겠다는 뜻보다는 그저 궁금하니 물어보는 것처럼 무게가 없어 보였다.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나를 노렸단 말이냐? 그럼 너는 내가 목룡단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어찌 알았지?"

건우는 자신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어 보이는 목령족의 상태가 이상하여 그렇게 물었다.

"너에 대해서 누가 알려줬는지는 나도 말하지 못한다. 그저 나와 연이 깊었던 이가 네게 목령단이 있음을 알려줬을 뿐이다."

"내가 누군지, 어떤 사람인지는 알려주지도 않고?"

"설마 그가 나를 해코지 하기 위해서 너에 대해서 알려주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이라면 틀렸다. 그와 내가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수단이 제한적이라 너에 대해서 간단한 것만 들었을 뿐이니."

"뭐, 그렇다고 하지. 그거야 너를 잡아 죽이고 추혼술을 펼쳐보면 알 일이지."

"놈, 감히 나를 죽이고 추혼술을 펼치겠다고? 네 재주로 금선 이상의 깨달음을 얻은 내 영혼에 추혼술을 펼칠 수 있을 성싶으냐?"

건우의 말을 들은 목령족 선인은 도리어 건우를 비웃었다.

일반 등선자의 영혼도 쉽게 추혼술 따위에 당하지 않는데, 자신처럼 금선급의 깨달음을 얻은 이에게 어찌 추혼술을 쓸 수 있겠느냐는 자신감이다.

"그것은 두고 보면 알 일이다. 그럼 이제 네 유언은 그것으로 끝이냐? 혹시 네가 죽고 나면 너를 대신해서 복수를 해 줄 놈들이라도 있더냐?"

건우는 혹시 하는 생각에 목령족을 보며 물었다.

그와 친한 이가 있어서 그에게 목룡단에 대해 알려 줬다면, 그 자가 영단을 소유한 자일 가능성이 높았기에 작은 단서라도 얻을까 하여 물은 말이었다.

"하하하. 너는 결국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것이다. 내가 재미있는 것을 알려주랴? 나는 구룡승룡단에 대한 것을 자세히 모른다. 하지만 그 영단 아홉 중에 여덟을 우리 천단의 단원들이 얻은 것은 분명히 알고 있지. 다시 말하자면 너 이외의 여덟은 모두가 한통속이란 말이니라. 하하하하."

"뭐? 천단? 지금 천단이라 했느냐?"

"음, 네가 천단을 안다고?"

건우의 반응이 의외였던지 목령족 선인이 처음으로 정색한 표정을 지었다.

이미 공간 격리를 당하는 순간부터 최후를 예감한 상태였는데, 문득 건우가 천단이란 이름에 반응을 보이자 혹시 하는 희망이 생긴 것이다.

< 목룡단을 노리는 도적이 나타나다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