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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전에 조화선인이란 자가 있었더란다 >
선계의 진선 중에 조화선이란 인물이 있었다 한다.
그는 금선, 옥선 따위의 지위에 연연하지 않고 오로지 법칙의 깨달음에만 전념했는데, 그가 수련한 법칙이 바로 조화에 대한 것이었단다.
그렇게 조화 법칙을 수련하던 조화선이 어느 날 큰 깨달음을 얻어 장대한 계획을 세우게 되니, 그 때 만든 것이 건우가 발견한 바로 그 연단로였다.
조화선은 진선의 힘을 쏟아부어 엄청난 크기의 연단로를 만들고, 그 안에 아홉 가지의 속성을 담고 서로 상생하며 성장케 했다는 것이다.
"그럼 그 연단로의 주인이 조화선이란 선인이었다는 말이군요?"
건우가 조금 미안한 표정으로 세 선인을 보며 물었다.
"그렇긴 합니다만 그것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니 마저 이야기를 들어 보시지요."
건우의 말에 토우 선인이 웃으며 그렇게 이르고는 다시 구룡승룡단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연단로에서 아홉 영단이 익어가기를 수십만 년이 흘렀을 때, 조화선이 어떤 선계의 일에 휘말려 죽고 말았습니다."
"네? 갑자기 조화선이 죽었다고요?"
"선계에 조화선이란 이름을 쓰는 선인이 한둘이 아니겠지만 구룡승룡단의 연단로를 만들었던 조화선은 분명 죽었습니다."
"그럼 구룡승룡단은 어찌 되는 것입니까?"
건우는 연단로의 주인이 없어졌다는 이야기에 녹색 영과를 두고 다툴 일은 줄어들겠다 싶어 조금 마음이 여유로워졌다.
"조화선의 사후에 당연히 그 연단로는 잊혀지고 말았지요. 아울러 조화선이 열었던 수도 문파 역시 몰락하고 말았고 말입니다."
"그나마 축기기나 영체기 따위를 배출하는 문파가 있기는 했으니 완전히 없어졌다 하기는 어려울지 모르지만, 대충 몰락했다 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그러니 그 비루한 문파가 어찌 진선의 유산을 알아차리고 관리할 수 있었겠습니까?"
세 선인은 조화선의 후예들이 연단로에 권리가 없음을 말하고 싶은 모양이었고, 건우도 그에 대해선 별로 지적하고 싶지 않았다.
당시에 그 연단로에 대한 의뢰를 받았을 때, 자신도 의뢰를 한 축기기 수사에 대해 비슷한 처신을 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주인 없는 구룡승룡단이 어찌 되었다는 것입니까?"
중요한 것은 연단로 안에 있던 구룡승룡단이 아니겠는가.
건우는 그것을 재촉해 물었다.
"시간이 흘러 연단로와 그 안에 있는 구룡승룡단에 대해서 아는 이가 없게 되었을 때, 우연히 어떤 선인이 그 연단로를 발견했습니다."
"연단로만 발견한 것이 아니라 조화선이 남긴 기록까지 찾았지요."
"구룡승룡단이 지닌 엄청난 비밀이 그렇게 그 선인의 손에 들어갔습니다."
"으음. 그러니까 조화선 이후로 또다시 구룡승룡단의 주인이 생겼다는 말입니까?"
건우는 슬쩍 불안한 마음이 들어 그렇게 물었다.
"음, 구룡승룡단에 애초에 주인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조화선이 돌아간 마당에."
"그렇지요. 조화선의 연단로와 기록을 발견한 선인 역시 구룡승룡단의 주인이라 할 수는 없었지요. 어차피 구룡승룡단 중에 취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밖에 없었으니 말입니다."
"네? 하나 밖에 가질수 없다고요?"
하나만 가질 수 있다는 말에 건우가 놀라며 되물었다.
"그렇습니다. 연단로에서 취할 수 있는 영단은 오직 하나입니다. 욕심을 부리면 큰 화를 당하게 되지요."
"영단을 취한 자가 다시 연단로에 기웃거리면 천지 법칙의 재앙에 버금가는 공격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누구도 그런 시도를 하지 않았지요."
"이상한 일이 아닙니까. 그런 내용은 조화선의 기록을 발견한 이만 알고 있을 내용이 아닙니까? 어찌 세 분 모두가 그것을 알게 된 것입니까?"
건우는 어느 인심 좋은 선인이 조화선의 기록을 발견하고 사이좋게 아홉 영단을 나누어 먹자고 했을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하하하. 여기서 우리가 선인을 찾아온 이유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처음 조화선의 기록을 발견한 선인도 영단 하나만 취하고 그냥 모른 척 하고 떠나면 그만이었겠지만, 구룡승룡단에는 엄청난 비밀이 있었던 것입니다."
"구룡승룡단을 취한 아홉 사람이 모두 한 곳에 모여서 조화선의 진법을 발동시키면……"
"상상도 못할 지극한 기연을 얻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조화선의 기록을 발견한 선인이 어찌 영단만 취하고 나머지를 포기할 수 있었겠습니까?"
"아홉 종류의 영단을 취한 아홉 사람이 한곳에 모여서 조화선의 안배를 발동한다는 말입니까?"
건우가 가만히 이야기를 듣다가 심장이 뛰는 것을 간신히 진정시키며 물었다.
녹색 영과만 하더라도 엄청난 보물임을 알고 있는데,그런 것을 아홉 개나 만들었던 조화선의 아홉 영단을 이용해서 발동하려고 했던 안배라니.
도대체 아홉 영단의 주인이 모이면 무슨 일이 벌어진다는 것일까?
"자자,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우리 이야기를 들을 준비를 하십시오."
"듣기만 하여도 흥분을 주체하기 어려우니 다시 한 번 마음을 가다듬으십시오."
"이제 준비가 되셨습니까? 그럼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아홉 영단의 주인이 모여서."
"조화선의 안배를 발동하면."
"천지 법칙의 근원에 닿을 수 있습니다."
"찰나라도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도조의 깨달음도 훔치지 못할 게 무엇이겠습니까?"
"찰나라도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도조을 넘보지 못할 것이겠습니까?"
"찰나라도 근원에 닿는다면 도조의 깨달음에 가까이 갈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마지막 말은 세 선인이 동시에 한 말이었으나 그 뜻은 조금씩 달랐다.
화 속성 선인은 도조의 깨달음을 훔칠 것이라 했고, 금 속성 선인은 도조를 넘볼 생각을 했으며, 토 속성 선인은 도조와 비등한 깨달음을 욕심내고 있었다.
그렇게 조금씩 달랐지만 한편으론 같은 것이 있었으니.
"진정 그 말이 참입니까? 아홉 영단의 주인들이 모여서 조화선의 안배를 발동하면 천지 법칙의 근원에 접할수 있다는 말! 그것이!?"
건우가 흥분하여 고함을 지르며 물었다.
이에 세 선인이 동시에 벙긋 웃으며 건우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참이 아니라면 우리가 어찌 수고로움을 감수하며 여기까지 선인을 찾아왔겠습니까?"
"여덟이 모여도 하나가 모자라면 아무 의미가 없기에 오래도록 기다렸습니다."
"도대체 어찌 영단의 기운을 숨기는 것인지, 그저 감탄스러울 뿐입니다."
세 선인은 건우의 말을 긍정하며 더욱 밝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건우는 흥분한 가운데서도 쉽게 그들을 믿지 못했다.
"자, 여기 이것을 받으십시오."
"그 옥간에 조화선의 기록이 그대로 복사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보면 우리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대신에 한 가지만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우리에게 목룡단의 모습을 한 번만 보여 주십시오."
"그렇습니다. 진정 선인이 그것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습니다."
세 선인은 건우에게 옥간을 날려 보냈지만, 정작 건우의 손에 닿지 않는 거리에 멈춰 세우고는 그렇게 요구했다.
"단지 목룡단이라 하는 그 녹색 영과를 확인시켜 주기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까?"
건우가 그렇게 물어 보며 영찬황후선보의 영찬후에 녹색 영과를 깃들게 하여 의념 공간 밖으로 꺼냈다.
"허어. 신묘합니다. 본명 법보와 하나가 되게 하여 의념 공간에 보관을 한 것입니까?"
"하지만 의념 공간에 있다고 하여 구룡승룡단 끼리의 공명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아닙니다. 아니에요. 이미 구룡승룡단을 얻어 그것을 본명법보로 삼은 분이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하여 그 분의 영단이 공명하지 않은 때가 있었습니까?"
건우가 녹색 영과가 깃든 영찬황후선보를 꺼내 그 영과의 기운을 드러내자 세 선인이 크게 놀라워했다.
하지만 그 놀라움은 곧 환희로 바뀌었다.
"하하하. 지금 그런 것을 따질 이유가 뭣이랍니까?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저기 목룡단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아홉이 모두 한 곳에 모이기만 한다면……"
"우리 아홉이 일거에 천지 법칙의 근원에 다다라 큰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겠지요;
"기록대로라면 도조의 깨달음도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이라 했지만, 그것이 좀 과장되었다 하더라도 도조에 비견할 정도는 될 수 있겠지요."
"그조차도 욕심이라 하더라도, 설마 그리 거창하게 말을 했는데 대라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은 아닐 것입니다. 으하하하하."
최소한으로 잡아도 대라의 깨달음은 얻을 수 있으리란 기대.
그 때문인지 세 선인은 입꼬리가 귀에 걸릴 정도로 웃고 있었다.
"일단 이 옥간을 깊이 살펴보겠습니다. 그리고 확신이 서게 되면 제가 직접 세 분을 찾아가지요. 그러니 오늘은 이만 물러가심이 어떻겠습니까?"
건우는 영찬황후선보까지 드러내며 녹색 영과의 소유를 증명하고 조화선의 기록이 담겼다는 옥간을 챙겼다.
그리고 그 옥간의 내용을 보기 전에 세 선인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이제 저들을 보내고 만반의 준비를 마친 후에 옥간을 살펴볼 생각이었다.
"하하하. 아직 선인께서는 우리를 신뢰할 수 없을 테니, 당연히 그리 말씀하실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우리는 이대로 물러나 선인의 기별을 기다릴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기다림을 생각하면 선인의 연통을 기다리는 것이야 문제도 아니지요. 우리는 모두 당분간 숙류계에 머물러도 됩니다."
건우의 말에 세 선인은 여전히 너그럽고 여유로운 태도를 고수했다.
"알겠습니다. 허량원을 거쳐 오셨다니 아시겠지만 저는 강건우라 합니다. 함께 숙류계로 온 동행도 있고, 이곳에 온 목적도 있으니 함부로 움직이기는 쉽지 않습니다만, 옥간을 보고 차후의 일정을 정하겠습니다."
건우는 세 선인이 숙류계에 머물 것이란 소리에 그들도 겉보기와는 달리 흥분과 기대가 상당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래도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야지. 아니 의심스러우면 아무리 튼튼한 다리라도 발을 올리지 말아야지.’
건우가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건우의 말을 들은 세 선인이 다시 한 마디씩을 던졌다.
"알겠습니다. 나는 화룡이라 합니다."
"나는 금룡입니다."
"짐 작하겠지 만 나는 토룡입니다."
"처음 조화선의 기록을 발견한 분을수룡(首龍)이라 하고, 나머지는 소유한 영단의 성질에 따라서 이렇게 부르는 것입니다. 이제 강 선인은 우리에게 목룡(木龍)이 되는 것이지요."
"이 또한 옥간에 있는 내용이니 우리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아무리 중한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도조의 깨달음을 얻는 기연에 비길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최대한 빨리 우리와 합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럼 그때에 다시 보시지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그리고!"
"알겠지만 구룡승룡단에 대한 이야기는 누구에게도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옥간을 보면 알게 되겠지만 설마 이와 같은 커다란 기연을 다른 이에게 떠벌리는 일은 없겠지요."
"강 선인이 그리 어리석지는 않으리라 믿습니다."
물러가겠다고 인사를 한 토룡 선인의 인사 뒤에, 세 선인은 미리 준비를 한 것처럼 비밀 엄수의 경고를 남기고 떠났다.
건우는 그들이 사라지자 조화선의 기록이 담겼다는 옥간을 손에 쥐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옥간을 살피기 전에 세 선인의 방문과, 그들이 이곳에서 했던 언행들을 되새겨보며 이상한 점을 찾으려 하는 것이었다.
- 너무 호의적인 것이 문제라면 문젤까, 나머진 깔끔해 보이는데요?
‘나도 기이하게 그들에 대해서는 의심스러운 마음이 들지 않는다. 그들은 무척 진솔해 보였어.’
- 그렇죠? 뭐, 저 역시 건우님의 일부라 그런지 의심하는 마음은 들지 않네요.
‘우리의 감이 그들의 이야기를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말이겠지.’
건우는 몽이와 그렇게 대화를 나누며 옥간에 여러 술법과 금제를 둘러 이상이 없는지 확인했다.
그리고 결국 아무런 이상도 찾아내지 못하자, 드디어 옥간에 의념을 불어넣어 그 내용을 읽어가기 시작했다.
< 오래전에 조화선인이란 자가 있었더란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