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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숙류계의 임무는 어디 가고 목룡단이 나온단 말인가 >
"헛! 이런!"
귀왕은 갑작스럽게 급증하는 공간 법칙의 힘이 자신의 사령 법칙을 뚫고 숙류계로 공간 통로를 여는 것을 느끼고는 경악하고 말았다.
이미 그 전에도 건우란 놈이 제법 강력한 법칙의 힘을 쓰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도대체 무슨 선보를 썼기에 이토록 법칙의 힘이 급증할 수 있단 말인가.
"허어, 이렇게 놓치고 마는가?"
귀왕은 숙류계로 도망쳐버린 건우 일행의 기척을 더듬으며 탄식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들이 가지고 간 사리를 얻을 수 있었다면 허량원에 묻힌 신수의 뼈를 몇 배는 더 귀하게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사리들을 사령 법칙으로 연화시킨 후, 원래의 자리에 끼워 넣었다면 신수의 뼈는 이후로 사령 법칙의 힘을 계속해서 생산해 내었을 터. 그렇다면 자신이 쓸 수 있는 사령 법칙의 힘이 얼마나 강력해졌겠는가.
"하지만 이미 늦었다. 이제 그 세해갈이란 놈이 사리를 품어 싹을 틔운다면 그것은 이미 내가 쓸 수 없게 된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였는데 아쉽군.
원래는 세해갈과의 약속을 지킬 생각도 있었다.
어차피 허량원 지하에 묻힌 태고 신수의 뼈를 자신의 몸으로 만드는 데에도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사실 귀왕조차도 언제 그 일을 끝마칠지 가늠하지 못했고, 또 그것을 끝까지 성공시킬 수 있으리라 장담하지도 못했다.
그토록 광대한 뼈를 연화시킨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며 또한 긴 인내의 시간이 필요한 일일지.
어쩌면 그것을 이루기도 전에 자신의 정신이 무너질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욕심을 더하여 사리까지 취하려 했더니……. 허허허허허."
귀왕은 스스로도 자신의 행동이 어이가 없었던지 크게 웃고는 그 거대한 몸체가 풀썩 흩어져 뼛가루가 되어 허공에 뿌려졌다.
그리고 그렇게 모습을 감춘 귀왕은 그 후로 허량원에서 오래도록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후로 허량원을 지나는 것은 과거보다 쉬워지고, 날뛰는 망령의 수도 크게 줄었다는 이야기가 선계로 퍼져 나갔다.
* * *
"후우! 성공했습니다."
건우가 짧은 한숨과 함께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그의 곁에는 유희와 세해갈이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서 있다가 건우의 말에 표정이 부드럽게 풀렸다.
"그 와중에도 목적지인 숙류계를 제대로 찾아왔구나?"
유희도 주변을 살피고는 곧바로 자신들이 있는 곳이 숙류계임을 알아본 모양이었다.
"그, 그것은 무엇이었습니까?"
하지만 세해갈은 자신들이 귀왕의 위협을 뚫고 숙류계에 도착했다는 것보다, 건우가 드러냈던 선보에 더 관심을 보였다.
"무얼 묻는 것이냐? 당연히 강 선인의 본명 법보가 아니겠느냐."
이에 대답한 것은 유희였다.
그리고 그 유희의 말에는 다른 선인의 보물에 대해서 묻는 것은 실례라며 책하는 투가 담겨 있었다.
"아! 죄송합니다."
세해갈은 곱지 않은 유희의 눈빛을 알아차리고는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
"이제, 너와의 인연은 여기서 마무리를 하면 되겠구나. 처음부터 허량원의 시련을 함께 통과하기 위해 잠시 함께 했던 것이니."
그런 세해갈에게 곧바로 이별을 통보하는 유희.
이에 세해갈은 별다른 불만의 표정을 보이지 않고 이번에는 건우를 보며 인사를 했다.
"강 선인의 도움으로 이제 이 세해갈이 자유를 얻어 선계를 종횡하게 되었으니 언제고 기회가 닿으면 은혜를 갚겠습니다."
"이리 급하게 가실 일은 아닌 듯 하지만, 유희 선인께서 이미 말씀을 하시니 저도 잡을 수가 없습니다. 부디 뜻하시는 바를 이루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강 선인과 유희 선인 모두 또 뵙기를 바라겠습니다."
세해갈은 그렇게 인사를 남기고는 둔술을 펼쳐 어디론가 모습을 감추었다.
건우는 굳이 의념을 펼쳐 세해갈의 행방을 쫓으려 하지 않았다.
"그나저나 이곳이 숙류계입니까? 참으로 그 이름처럼 기운이 맑고 투명하기 그지없습니다."
산과 들, 하늘과 호수, 계곡과 강.
어디를 보아도 깨끗하게 느껴지는 세상이었다.
우거진 숲의 녹음초차도 맑디 맑아서 어둠이라 느껴지지 않는 곳.
숙류계는 이름 그대로 맑은 기운이 흐르는 세상이었다.
"이제 이곳에 왔으니 네가 무엇을 해야 할지 알겠느냐?"
숙류계의 맑은 기운에 감탄하는 건우와 달리 유희는 건우의 일에만 관심을 보였다. 건우는 잠시 숙류계의 좋은 기운에 취했던 마음을 추스르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자신이 이곳에 온 것은 제리배천단의 제단주인 구당문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구당문이 건우에게 부탁한 것은 시간 법칙이 필요한 일 대문이라 했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문제가 있었다.
"그런데 유희 선인께서 허량원을 지나는데 못해도 9백 년은 걸릴 것이라 하지 않으셨습니까."
"음. 그렇구나. 그리 예상했었는데 귀왕의 일로 시간이 좀 더 많이 걸렸구나."
건우의 말에 유희가 이제야 깨달았다는 듯이 표정이 굳었다.
"그렇습니다. 신수의 뼈에서 신기를 모두 뽑아내느라 걸린 시간이 3천 년에 가깝습니다. 게다가……"
"그 이외에 또 다른 문제라도 있다는 것이냐?"
건우가 말을 주저하자 유희가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진선도를 나설 때에 구당문 선인이 제게 시간 법칙을 좀 더 깊이 깨우칠 수 있도록 깨달음의 편린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귀왕의 일로 그것을 제대로 궁구하지 못한 것도 마음에 걸립니다."
"으음. 구당문이 그것을 그냥 주지는 않았을 터. 마땅히 그 정도 깨우침은 있어야 자신을 대신할 수 있다고 여겼겠지?"
"저도 그리 생각합니다. 게다가 제가 숙류계에 닿으면 곧바로 제가 할 일을 알게 되리라 했던 것도, 그 깨달음의 끄트머리에 그 실마리를 넣었을 듯 합니다."
"결국 어딘가 자리를 잡고 구당문이 준 화두를 깨우쳐야 한다는 말이구나."
유희는 건우의 말뜻을 알아차리고 그렇게 말했다.
"그렇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여기서 무슨 수로 구당문이 맡긴 일을 찾아서 해결을 할 수 있겠습니까?"
건우는 결국 숙류계의 일은 구당문에서 비롯했으니 그가 준 가르침이 들어 있는 옥간에 답이 있으리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게 아니라면.
"어쩌면 조만간 누군가 너를 찾을 수도 있겠지. 구당문이 미리 연통을 했다면 말이다."
"제가 어디서 어떻게 숙류계로 들어올 줄을 알고 저를 기다렸다가 찾아오겠습니까? 허량원에서 숙류계로 넘어올 때에는 항상 그 위치가 일정치 않을 텐데 말입니다."
공간 법칙을 제법 깊이 익힌 건우는 허량원에서 다른 곳으로 통하는 통로에 정해진 위치가 없다는 것을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그래서 구당문의 지시를 받고 누군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가능성은 높게 보지 않았다.
그보다는 구당문이 깨달음 한 덩이라고 했던 옥간에 답이 있다고 여기는 것이 더 가능성이 높았다.
"누군가 찾아오길 기다리거나 구당문의 가르침을 참오(參伍)하거나 간에, 어딘가 자리를 잡기는 할 테니, 일단 움직여 보자꾸나."
자신의 말을 듣고 생각이 많아진 건우를 향해 유희가 그렇게 고민할 필요가 없는 제안을 던졌고, 건우는 곧바로 유희와 함께 어디론가 모습을 감추었다.
* * *
"누가 나를 찾아온 것입니까?"
건우는 숙류계에 마련한 자신의 거처에서 구당문이 준 시간 법칙에 대한 깨달음을 궁구하던 중, 문득 누군가의 기척을 느끼고 눈을 떴다.
"우리의 접근을 이리 쉽게 알아차리다니 대단하십니다. 참, 그리 경계하실 것은 없습니다."
"우리는그저 선인께 물어볼 말이 있어 찾아왔을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니 그리 경계하지 마시고 마음을 놓으십시오."
건우의 거처 상공에 나타난 선인은 모두 셋.
보고만 있어도 뜨겁게 느껴지는 불꽃을 몸에 두른 선인이 하나.
구릿빛의 피부를 지닌 거대한 체구의 선인이 하나.
흙을 빚어 어설프게 인간의 형상을 만든 토우(土偶) 같은 모습의 선인이 또 하나.
이렇게 세 명의 선인이 허공에 모습을 드러낸 것인데, 건우는 그들이 각각 화, 금, 토의 속성을 극한으로 익힌 이들임을 알수 있었다.
당연히 그들이 익힌 법칙 또한 그러한속성의 법칙일 것이 분명했다.
"뉘신지 모르겠지만 이 강 모에게 볼 일이 있으신 모양입니다?"
건우는 둔술을 펼쳐 자신의 동부 위의 허공에 있는 세 선인 앞으로 나아갔다.
"하하하. 그리 반갑지는 않으신 모양입니다. 하긴 기별도 없이 찾아온 낯선 불청객을 누군들 반기겠습니까. 이해합니다."
불같은 성격을 지녔을 것 같은 화(火) 속성 선인이 건우를 보며 유쾌한 표정으로 말했다.
건우는 그가 세 사람을 대표하는 것인가 싶어 그를 바라봤다.
하지만 곧이어 그 곁에 있는 금(金) 속성의 선인이 앞으로 나섰다.
"아주 간단한 질문을 좀 하려고 합니다. 아니라면 아니라 하면 그만인 일입니다만, 그렇다면 그렇다고 하십시오. 그리하면 무궁한 이득만 있을 뿐, 해는 절대 없을 것입니다."
건우가 자연스럽게 그 선인에게 시선을 던졌을 때, 이번에는 토(土) 속성의 토우 선인이 뒷말을 이었다.
"저 말엔 한 치의 거짓도 없습니다. 우리는 찾고자 하는 것이 있으며 그것을 지닌 이는 마땅히 우리와 함께 엄청난 기연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이는 제 존재를 걸고 약속할 수 있는 일입니다.
토우 선인까지 나서자 건우는 그들 셋 사이에 우열이 없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찾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든, 세 선인이 거짓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토우 선인의 선언이 아니라도 저들의 태도에는 거짓된 느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에게 무엇을 묻고자 함입니까?"
건우는 그렇게 물으면서도 내심 구당문의 지시를 받은 이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였다.
그들이 아니라면 자신을 찾을 이들이 없을 것이니, 아마도 저들은 자신과 관계가 없는 이들일 것이라 여겼다.
"구룡승룡단을 아십니까?"
"구룡승룡단의 목룡단을 아십니까?"
"고대 문파의 연단로 속 아홉 섬과 그 섬들 중에 한 곳에서 난 녹색 영과를 아십니까?"
하지만 세 선인이 일제히 건우를 향해 그렇게 물었을 때, 건우는 잠시 멍해지는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녹색 영과라니.
왜 지금에 와서 그것을 찾는 이들이 나타난단 말인가?
"역시!"
"당신이 그것을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한 모양입니다."
"허량원에서 사라진 종적을 찾기 위해 우리가 얼마나 애를 썼는지 모릅니다. 허량원의 귀왕이란 자를 찾아 묻는 것에만 적잖은 공이 들었습니다."
"그렇지요. 그렇고 말고요. 하하하. 어쨌거나 이렇게 목룡단의 주인을 만나게 되니 속이 시원합니다."
"맞습니다. 맞고말고요. 으하하하하. 결국 이렇게 만나고야 말았습니다. 아우렴요. 일은 이렇게 되도록 되어 있었던 것이지요. 하하하하하."
건우가 제대로 기색을 감추지 못한 탓에 세 선인은 곧바로 건우가 녹색 영과, 목룡단의 주인임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을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는 듯이 확고한 믿음을 보였다.
"으음. 목룡단이라 했습니까? 그것이 무엇인지 자세히 일러주시겠습니까? 아, 그것이 무엇을 말하는지는 대충 짐작이 되지만 저는 목룡단이란 이름 자체를 처음 들었기에 드리는 질문입니다."
지금껏 녹색 영과라 불러왔던 것이 구룡승룡단 중에서 목룡단이라 부르는 것인 줄은 짐작하고도 남았다.
하지만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기 위해서나, 목룡단에 대한 작은 정보라도 얻으려면 저들에게 말을 시킬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던진 질문이었다.
"아, 그것이 궁금했습니까? 이를 말이겠습니까. 자세히 설명을 해 드리겠습니다."
"어차피 우리가 목룡단, 아니 선인을 찾아온 이유를 설명하려면 목룡단에 대해시 먼저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실상 목룡단에 대한 이야기가 곧 우리가 선인을 애타게 찾아다닌 이유나 다름이 없지요. 하하하하."
하지만 그런 의도는 상관없다는 듯이 세 선인은 건우의 질문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곧바로 목룡단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 숙류계의 임무는 어디 가고 목룡단이 나온단 말인가 > 끝